콜린은 그동안 조지 클라크에게서 딴 85달러를 테이블 위에 쏟아부었다.
“어때?”
조지 클라크의 눈동자가 요동치고, 주변에서는 탄성을 내지르며 결정을 재촉한다.
결국,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 잠시 기다려봐.”
*
‘더럽게 안 나오네.’
콜린이 설마 술만 처마시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든다. 시선은 술집으로 향한 채, 막스가 물었다.
“총 수리 끝나면 다음 할 일은 뭐냐?”
“주인님 신발 수선. 그런데 그 전에 똥 좀 싸야겠어.”
알프레도가 마구간 구석에 앉아 바지를 내리려 했다.
“워워. 뭐 하는 거야?”
“아까부터 배가 꾸루륵 거렸거든.”
“밖에서 싸.”
“말도 여기서 싸는데?”
“넌 사람이잖아.”
“음?”
알프레도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막스를 지나쳐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1분이 채 되지 않아 술집에서 나온 남자가 마구간 쪽으로 다가왔다.
‘바운서?’
막스는 되도록 시선이 안 마주치려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따악!
“야, 여기 있던 새끼 어딨어.”
뒤통수를 후려치며 알프레도를 찾는다.
“모르는데요.”
“몰라?”
바운서가 마구간을 들어와 이리저리 둘러본다. 보이질 않자 다시 나와서는 막스에게 말을 건넸다.
“그 새끼 오면 주인 총 가지고 나한테 오라 그래.”
“주인 총이요?”
‘갑자기 총을 찾아?’
도박하는 조지 클라크가 갑자기 총을 찾는다. 빠르게 두뇌를 가동하는 막스에게 바운서가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냥 예 하면 될 걸 꼬박꼬박 질문하고 지랄이야.”
바운서가 오른손을 치켜들자 막스의 눈빛이 번쩍인다.
‘심부름시킨 놈이 안 오면?’
막스의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바운서의 목울대 아래를 수도로 후려치고.
“켁!”
놈이 목을 움켜쥐고 고개를 숙일 땐,
머리카락을 잡아끄는 동시에 놈의 뒤를 점하며 양손을 교차해 턱을 잡는다.
그리고는.
뚜둑.
목을 비틀었다.
사삭, 사삭.
막스는 마구간 구석에 시신을 눕힌 뒤 건초더미로 뒤덮었다.
그리고 잠시 후.
마침내 조지 클라크가 술집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바운서! 급해 죽겠는데, 왜 안 오는 거야! 하여간 일을 시키면 하루종일 걸린다니까. 알프레도!”
조지 클라크가 마구간으로 다가오며 자신의 노예를 부른다. 하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자 남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 노예 새끼가 미쳤나.”
가뜩이나 돈 잃은 게 짜증 나던 참이었다.
양 소매를 걷어 올리며 근처에 있는 몽둥이를 쥐고는 마구간 안으로 들어왔다.
말들의 여물 먹는 소리와 코 푸는 소리가 간간이 섞여 나오고.
어둠 속. 한 인영이 남자 앞에 불쑥 튀어나오며 남자의 뒤에서 속삭였다.
“조지 클라크.”
소스라치게 놀란 조지의 목이 휘감기며 강한 압박이 목을 조여왔다. 손에 있던 몽둥이가 떨어지고. 음산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네 놈은 로렌스에서 심판받는다.”
“!”
필사적으로 몸부림을 치지만, 그럴수록 숨통만 조여올 뿐.
이때 마구간에 막 들어온 자를 보며 조지 클라크가 소리를 쥐어 짜냈다.
“아··· 프레····도····”
그 말을 끝으로 의식이 끊겨버렸다.
“방금··· 무, 무슨 짓을 한 거야?”
“보면 몰라? 막을 생각이면 네 주인을 죽여버릴 테니 알아서 해.”
덩치에 안 맞게 오들거리는 알프레도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막스는 말 위에 조지 클라크를 눕히고 담요로 돌돌 말고는 밧줄로 꽁꽁 묶어버렸다.
막스가 말에 오르려 하자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 대체 정체가 뭐야?”
말에 올라탄 막스는 알프레도를 쳐다봤다.
“납치된 주인의 노예. 그리고 바운서를 죽인 살인자. 이런 누명 안 쓰려면 너도 피해야 할 거야.”
“뭐?”
막스가 건초더미를 가리키자 그 아래 발이 삐죽 튀어나온 걸 볼 수 있었다.
‘바운서도 죽였어?’
떨고 있는 알프레도를 지나치며 막스가 나지막이 읊조렸다.
“나 따라오면 네게 숙식을 제공해줄게.”
“......”
“참고로 곧 소란스러워질 테니까 빨리 결정해야 할 거야.”
말에 탄 채 마구간 밖으로 나간 막스는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며 랩톤 바를 쳐다봤다.
다각, 다각.
느릿느릿 이동하는 창문을 사이에 두고 몇몇 사람들과 시선이 마주쳤다.
막스의 오연한 표정은 이상할 게 없지만, 문제는 그가 흑인 노예로 보인다는 점이다.
“저 노예 새끼가 미쳤나.”
“눈깔에 힘준 것 봐.”
점점 술집에서 막스를 쳐다보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옅은 미소를 짓는 콜린과 짧게 시선을 교환하고, 맥주잔을 들고 있는 사무엘 존스와도 눈이 마주쳤다.
이윽고 말을 멈춰 세운 막스가 존스를 넌지시 쳐다본다.
그리곤 총을 꺼냈다.
존스의 눈동자가 크게 출렁거릴 땐.
타앙!
존스가 들고 있던 맥주잔이 깨지고,
타앙!
타앙!
잇단 총성에 술집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 여섯 발을 쏜 뒤엔.
“이럇!”
말 허리를 박차고 레콤프턴 마을을 벗어났다.
‘이 정도 소란 떨었으면 콜린도 알아서 빠져나오겠지.’
작가의말
위장 크림을 두고 흑인 차별은 아닐지 고민이 많이 되었습니다.
간혹 영화에서 보긴 했지만, 요샌 이런 것도 민감한 상황이라
오해가 없으셨으면 합니다.
언급했듯이 노예제 옹호론자들의 심장부인
레콤프턴을 자연스럽게 들어가기 위한 변장 정도로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더불어 흑인 노예인 알프레도와 자연스레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장치로서 위장을 사용했음을 다시 한 번 강조드립니다.
주인도 똑같은 인간이었다
깊은 밤에 울려 퍼진 여섯 발의 총성이 레콤프턴 마을을 깨웠다.
“당장 미친 노예 새끼를 쫓아라!”
술집과 상점, 심지어 집에서도 무장한 자들이 거리로 튀어나왔다. 그들 중엔 콜린도 있었다.
‘나도 슬슬 가볼까.’
콜린은 곧바로 마구간을 향했다.
타고 온 말을 찾으려 할 때, 구석에 있는 곰을 보고는 기겁하며 총을 뽑았다.
“사, 사람이에요.”
가슴을 쓸어내린 콜린은 흑인 노예임을 알고 쓴웃음을 지었다.
“왜 그러고 숨어 있냐?”
“그자가 바, 발견되면 위험할 거라고···.”
“누가?”
“내 주인을 끌고 간 자요···.”
덩치 큰 알프레도는 겁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콜린이 다가오자 눈을 질끈 감았다.
“조지 클라크의 노예구나.”
알프레도가 고개를 끄덕인다.
“네 주인을 데려간 자가 너한테 또 뭐라고 하든?”
“따, 따라오면 숙식 제공해준다고. 같은 노예 주제에 건방진····.”
“뭐?”
갑자기 콜린이 낄낄거린다.
그 모습을 본 알프레도는 더욱 움츠러들어 벽에 등을 밀착시켰다.
“바보 같은 놈. 그럼 바로 따라갔어야지.”
“제겐 말이 없는걸요.”
노예에게 무슨 말이 있겠는가.
마구간에 널려있는 말들은 백인들의 것.
감히 손을 델 엄두도 내지 못했다.
“다 자기 같은 줄 알았겠지.”
재미있다며 낄낄대던 콜린은 말 한 필을 더 끌어와 알프레도에게 고삐를 넘겼다.
“이제부터 네 말이다. 나랑 같이 가자.”
“어, 어디로요?”
“따라와 보면 알아.”
“제가 어떻게 믿고 당신을···”
“마!”
콜린은 눈을 부라리며 말을 이었다.
“이래 보여도 지하철도 차장이야. 잔말 말고···.”
이때 누군가 마구간으로 들어왔다.
콜린과 알프레도를 보곤 눈을 치켜떴다.
“포커판에서 돈을 쓸어 담은 점박이? 아니 그것보다, 아까 조지가 마구간에 들어온 것 같은데 지금 어딨어!?”
남자가 다가오며 추궁한다.
잔뜩 겁먹는 알프레도가 말을 버벅거린다. 남자는 의심의 눈초리로 마구간을 둘러봤다.
그리고 눈에 들어온 건.
건초더미에 삐죽 튀어나온 다리였다.
“뭐, 뭐야 저건!”
바운서 시체를 조지 클라크로 오해한 남자는 재빨리 홀스터로 손을 뻗었다.
이때 왼쪽 뺨의 위장크림을 문지르던 콜린이 오른손을 휘두른다.
날카로운 금속 빛이 번쩍이고.
“켁.”
목에 붉은 선혈이 생겨나더니 피를 쏟으며 쓰러진다.
콜린은 머리카락을 잡아끌어 건초더미 위로 집어 던졌다.
그런 뒤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보위 나이프를 집어넣으며 알프레도에게 다가갔다.
“스카프로 얼굴 가려. 지금부터 탈출 시작이니까.”
콜린은 목에 두른 검은색 스카프를 건네주고는 말에 올라탔다. 눈을 뻐끔거리던 알프레도는 이내 정신을 차리곤 얼굴을 스카프로 휘감았다.
마구간을 빠져나온 콜린과 알프레도.
스카프 사이로 드러난 알프레도의 눈동자가 좌우로 굴러가며 마을을 벗어난다.
막스가 제대로 분탕 쳐놓은 덕에 둘을 신경 쓰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캔자스 강줄기를 따라, 막스는 동쪽으로 이동했다. 이런 식으로 가면 레콤프턴에서 로렌스까지의 거리는 대략 18km.
뒤쫓아올 콜린을 위해 서두르지도 않았다.
“뭐, 뭐야! 날 어디로 끌고 가는 거야!”
뒤늦게 정신을 차린 조지 클라크가 소리를 질러댔다. 하지만 들어줄 사람은 막스, 아니 멀리서 달려오는 두 명뿐이었다.
“입 안 다물면 혀 뽑아 버린다.”
“흡.”
뒤를 돌아보며 경계한 막스는 이윽고 손을 흔드는 콜린과 뒤따르는 알프레도를 확인하곤 미소를 지었다.
“생각보다 늦었네요.”
“짐이 하나 늘어서 말야.”
알프레도는 막스 뒤에 담요와 밧줄로 꽁꽁 묶인 주인을 쳐다봤다. 조지 클라크의 눈에는 눈물이 맺혀있었다.
“알···프레···”
“말하면 혀 뽑아 버린다고 했지.”
“흑···.”
알프레도는 눈물을 떨구는 주인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때리고 욕만 하던 주인도 눈물을 흘리는구나.’
하늘처럼 여겼던 주인의 겁먹고 나약한 모습.
뭔가 기분이 이상하다.
알프레도는 막스를 힐끔거렸다.
‘대체 누굴까.’
바운서를 죽이고 주인을 납치하질 않나.
랩톤 바에 총질까지 해대는, 오늘만 살 것처럼 날뛰는 흑인 노예의 정체가 궁금했다.
*
로렌스 마을에 도착한 건 동이 막 틀 무렵.막스는 조지 클라크를 보안관 사무실 철창에 집어넣었다.
“난 이제 시체니까, 깨우지 마셔들.”
담요를 뒤집어쓴 콜린은 자연스레 소파와 한 몸이 되고, 알프레도는 좌불안석의 얼굴로 서성거렸다.
“너도 저기에서 눈 좀 붙여.”
막스가 철창 옆에 있는 침대를 가리켰다.
“누구 침대야?”
“내 거.”
“아, 너 보안관 사무실에서 일하는구나. 난 안 자도 돼. 곧 보안관님 오실 텐데 내가 청소 도와줄게.”
막스는 알프레도를 미소를 지었다.
“오늘 늦게 나올 거야. 그때까지 자도 돼.”
“진짜?”
“어. 내가 깨우면 그때 같이 청소하자.”
“..... 알았어, 그럼.”
침대에 앉은 알프레도는 그래도 불안한지 바로 누울 생각을 안 한다.
막스는 피식 웃으며 사무실을 나왔다.
“알프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