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2화 (52/360)

조지 클라크가 목소리를 죽여 자신의 노예를 부른다.

“주인이 잡혀있는데 어딜 누워! 어서 날 꺼내야지, 새끼야!”

“......”

“저기 열쇠 있으니까, 얼른 문 열어!”

알프레도의 시선이 본능적으로 주인이 가리킨 곳을 향한다.

벽에 걸린 철창 열쇠. 순간 갈등이 일었지만, 이내 고개를 젓는다.

“어어? 너 미쳤어?”

“...... 더 이상 말 안 들을 거예요.”

“이··· 개새끼가! 너 내가 평생 이러고 있을 거 같아? 나가면 팔다리 전부 잘라 버릴 줄 알아!”

“...... 맘대로 하세요.”

“이게 진짜!”

조지 클라크가 철창을 잡고 흔들 때였다.

“한 마디만 더하면 네놈 팔부터 자른다. 철창에 손대도 마찬가지.”

담요 속에서 음산한 콜린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식겁한 조지 클라크는 철창 뒤로 물러났다. 그리곤 애원하는 눈빛으로 알프레도를 쳐다본다.

그 모습을 눈에 담은 알프레도는 등을 돌린 채 침대에 몸을 누였다.

똑같은 인간으로서 겁먹은 주인의 모습을 본 순간 그동안 억눌렀던 분노와 울분이 밑바닥에서부터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사무실을 나와 막스가 향한 곳은 프리스테이트 호텔.

3층 높이에 20여 개의 객실이 있는 이곳은 로렌스 마을 초기부터 지어진 곳으로, 와카루사 전쟁 때 지휘소로도 사용되었다.

연일 계속되는 강추위. 따뜻한 물로 몸을 씻기에 여기 만 한 장소가 또 있을까.

막스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 여직원이 놀라며 총부터 찾는다.

“접니다. 로렌스 보안관.”

“엥? 설마···.”

구구절절 설명하는 동안 호텔 주인인 셸러 엘드릿지가 나타났다. 그는 흑인으로 분한 막스를 보며 눈을 껌뻑거렸다.

“보다시피 지우기가 힘들거든요. 요금 낼 테니까, 욕실 좀 쓸게요. ”

“에이, 요금은 무슨. 막스 보안관한테 돈 받았다간 사람들한테 욕먹을 게 뻔한데.”

엘드릿지는 웃으며 직원에게 최고급 방을 내주라며 지시했다.

“씻고 나오거든 아침 식사나 같이하자.”

“그럼 사양 안 하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끝내고 나오겠습니다.”

“천천히 해. 딱 보니까 지우는데 한참 걸리겠구만.”

막스는 직원의 안내로 호텔에서 가장 좋은 방의 욕실을 사용할 수 있었다.

이전보다 더 깔끔해져서 나온 막스를 여직원이 힐끔거리고 이내 식당으로 안내했다.

“앉아. 바쁘신 보안관님이랑, 드디어 밥 한번 같이 먹는구만.”

셸러 엘드릿지는 NEEAC 소속으로 찰스 로빈슨과 함께 이곳에 정착한 인물이다.

동부에서 나름 자산가였던 그는 초기 임시 휴게소를 세운 뒤 지금의 호텔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유주와 노예주의 갈등 속에 호텔 경영은 언제나 리스크를 떠안고 있었다.

“와카루사 전쟁은 잘 넘어갔지만. 내 생각엔 캔자스가 자유주든 노예주든, 결판이 날 때까진 계속 이런 일이 생기지 않을까 싶은데.”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문제는.”

엘드릿지의 말마따나 앞으로 벌어질 일들.

고기를 썰던 막스가 칼을 내려놓았다.

“놈들이 제대로 된 공권력을 이용했을 때 벌어질 문제죠.”

“공권력?”

“거듭 실패를 경험한 애치슨이라면 그걸 생각하지 않을까요. 워싱턴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은 다음 압박하는 겁니다.”

막스가 끼어들지 못할 거대한 힘.

와카루사 전쟁에 이은 제2라운드는 일명 ‘로렌스 약탈’이라 불리는 항거하기 힘든 공권력의 개입이다.

엘드릿지는 심각한 표정으로 막스의 말을 곱씹었다.

현 대통령, 그리고 그가 임명한 캔자스 준주의 주지사부터 대법관에 의회 의장까지.

전부 노예제를 옹호하는 자들이 아닌가.

충분히 가능한 일이고, 자신이 애치슨이라면 써먹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지난번엔 제이콥 브랜슨을 구실로 공격했다 치고. 이번엔 무엇을 요구할까?”

‘많지. 특히 이 호텔.’

앞으로 이 프리스테이트 호텔은 두 번에 걸쳐 폐허가 될 예정이다.

가까운 시일에 한 번, 남북전쟁 때 한 번.

그러고도 미래까지 이어져 전생의 조유강이 이틀간 머무르기도 했었다.

‘이 정도면 불굴의 의지라고 봐야지.’

막스가 엘드릿지와 이렇게 대화를 나누는 이유이기도 하다.

제2라운드 로렌스 약탈은 말 그대로 건물을 파괴하고 신문사 3곳의 인쇄 기계를 파괴하고 불까지 지른다.

심지어 로렌스 핵심 수뇌부들의 연행까지.

막스가 일으킨 나비효과로 역사가 바뀔까?

아마도 핵심 수뇌부에 막스가 껴있다는 정도에 그칠 것이다.

고민되는 일이다.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반격하면 워싱턴을 적으로 돌리고 막스의 목엔 현상금이, 로렌스 마을에는 수많은 군이 들이닥칠 테니 말이다.

막스는 엘드릿지에게 작은 경고를 안겨주고 식사를 끝마쳤다.

*

피치가 아침 일찍부터 사무실에 와있다.

팔짱낀 피치는 침대에서 자고있는 알프레도를 내려보고 있었다.

“뭘 그렇게 심각하게 봐?”

“조지 클라크의 노예 맞지?”

정보를 수집해서 그런지 피치는 알프레도를 알고 있었다.

“맞아.”

“나도 못 누워본 네 침대에서 버젓이 자고 있네?”

“내가 자라고 했지.”

피치는 막스를 보며 물었다.

“근데 왜 데리고 온 거야?”

“앞으로 나와 할 일이 좀 있을 것 같거든.”

“오호. 특별한 기술이 있나 보네?”

“이젠 척하면 척이구나.”

“그럼, 누구 부보안관인데. 그나저나, 아침 안 먹었지? 내가 오랜만에 엄청난 요리를 해왔거든.”

피치의 요리 실력은 형편없다.

그런데도 가끔 음식을 만들어 온다.

“감동했어? 눈동자가 막 흔들리는데?”

“...... 어. 일단 먹자.”

식사가 끝날 즈음 분대장 7명이 사무실로 몰려왔다. 늘 그렇듯, 하루 일을 의논하기 위해서였다.

“너흰 아침 먹었어?”

“대충 먹고 왔죠.”

“좀 일찍 오지. 피치 분대장이 음식 장난 아니게 만들어왔거든.”

“..... 괜찮지 말입니다.”

“이것들이.”

피치가 분대원들과 옥신각신하는 사이,

막스는 알프레도를 깨우려 다가갔다.

막스가 흔들어 깨우려 손을 대자 알프레도는 본능처럼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막스를 빤히 쳐다본다.

눈을 비비더니 살짝 고개가 틀어진다.

“뭐야, 이 동양인 새... 흡!”

어느새 소파에서 일어난 콜린이 알프레도의 입을 틀어막았다.

“내가 니 목숨 두 번 구했다. 잘 봐 앞으로 너를 먹여주고 재워줄 사람이니까.”

‘흑인 노예가 동양인? 근데 보안관?’

알프레도의 머릿속은 그야말로 혼돈의 카오스. 뒤죽박죽이었다.

피치는 막스의 지시를 받고 알프레도를 끌고 훈련장으로 데려갔다.

스코프든 총기 개조든.

시작하기에 앞서 대원들의 노후화된 총기를 봐주기 위함이었다.

어쨌든 밥벌이는 해야 하니까.

*

정오가 되기 전.

막스에게 소식을 받은 찰스 주지사와 레인, 그리고 블러드와 미망인이 사무실을 찾아왔다.

“이 짧은 시간에 잡아 왔단 말인가?”

블러드가 감탄하며 막스를 쳐다봤다.

찰스와 레인은 별로 놀라지도 않는다.

막스가 막스처럼 행동한 것뿐이었으니.

레인이 입에 천이 물려진 조지 클라크를 보며 물었다.

“이곳에 있다는 건 우리만 알고 있는 사실인가?”

“안다 해도 심증뿐이겠죠.”

만약 사실이 알려지면 제이콥 브랜슨처럼 이 또한 엄청난 파장을 몰고올 일이었다.

“애초에 현상금을 내건 건 블러드와 마틸다 당신들 생각 아니었소?”

“맞습니다. 저자는 우리가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블러드의 말에 다들 이견이 없었다.

잠시 후, 밖에서 대기 중인 토마스 바버의 형제들이 사무실로 들어왔다.

그들은 발버둥 치는 조지 클라크의 머리를 사형수처럼 검은 천으로 뒤집어씌웠다.

그리고는 마차에 태워 미망인과 함께 어디론가 사라졌다. 섬뜩한 모습이지만 서부에는 종종 있는 일이었다.

현상금은 신속하게 집행되었다.

자금 집행자들이 전부 모여 있었기에 곧바로 2백 달러를 받을 수 있었다.

사무실에 콜린과 둘이 남게 되자, 막스는 그에게 현상금 절반을 떼어줬다.

“고생했어요.”

콜린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원래 이런 성격 아니잖아!?”

“저 혼자 먹고 욕심 많은 그런 놈 아닙니다. 같이 일했으면 같이 나눠야죠.

콩 한 쪽도 나눠 먹는 게 접니다.”

“와, 진짜 사람이 달라 보이네.”

“뭘 새삼스레.”

막스는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손은 왜? 뭔데?”

“그런 의미에서 도박에서 딴 것도 나눠야죠.”

“...... 시벌.”

*

크리스마스가 끝나고, 마침내 토피카 헌법이 공표됐다.

캔자스를 자유주로 선포하고, 선거권을 백인 성인 남성과 백인들의 습관과 문명화된 인디언에게 부여한다는 게 주 골자였다. 흑인과 여성을 누락시킨 아쉬움이 있는 법안이었다.

어찌 됐든 토피카 헌법은 대통령을 거쳐 미국 상원, 하원에게 올라가고, 투표에 따라 채택 여부가 결정될 것이다.

토피카-로렌스 시계와는 달리,

새해가 다가오자 예상대로 캔자스 준주의 주지사 윌슨 섀넌은 레콤프턴을 주도로 선포했다.

그리고 대통령은 자신이 임명한 윌슨 섀넌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 캔자스 내의 이중 정부는 혼란을 부추기고 갈등을 초래한다. 누가 합법적인지는 지난 투표 결과에서 만천하에 드러난바.

1월 24일, 마침내 대통령 프랭클린 피어스는 로렌스를 폭도로 선언했다.

이는 자유주의 상원, 하원들의 극심한 반대를 불러왔고 정치권을 뒤흔드는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대통령의 말대로면 지난 선거가 공정했는지부터 정확히 살펴야 하지 않겠는가.

자유주 의원들은 이점을 파고들어 대통령 피어슨을 공격했다.

워싱턴 정계가 캔자스로 뜨거워지는 동안,

막스는 로렌스의 마을 곳곳에 추가 요새 건설을 요청했다.

엘드릿지에게 말한 것처럼 와카루사 전쟁이 끝이 아님을 대부분 인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2월을 앞둔 시점에서, 포트 리븐워스의 군인이 막스를 찾아왔다.

섬너 사령관이 보자는 것이었다.

*

“와카루사 일로 대통령이 날 어떻게 좌천시킬지 고민이 많다더군.”

섬너 사령관은 웃으며 지난 이야기를 끄집어냈다.

“고민만 하다, 말 겁니다.”

“확실한가?”

“세상에 확실한 게 어디 있겠습니까.”

헛웃음을 터트린 섬너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어차피 포트 리븐워스는 1년 단위로 사령관이 바뀌네. 좌천이든 어디든 움직일 수밖에. 그러니 언제 또 자네를 볼지 누가 알겠나.”

과연 떠나기 전, 얼굴이나 한번 보자고 불렀을까. 막스가 어서 말해보라며 섬너 대령의 입을 쳐다봤다.

그런데 그 입에서 전혀 예상 밖의 주제가 튀어나왔다.

“포트 리븐워스에서 신기한 탄알들이 자네 작품이라고 들었네만.”

‘뜬금없이 총알 이야기로 빠지네.’

“사용해 보셨습니까?”

“매일같이 쏘고 있네. 몇 가지 테스트도 해봤는데 관통력이 뛰어나고 총기 고장도 덜하더군.”

“마음에 드셨다니 다행이군요.”

“나만 마음에 든 게 아니라, 자네를 만나고 싶어 하는 친구도 있네.”

군인의 친구라면 같은 군인일까.

“특허권이 제임스 헤리스라는 이름으로 되어있더군.”

“제 신분이 온전치가 않거든요.”

“그럼 대리인이라 봐도 무방하겠군.”

구리 탄두가 마음에 든다고 특허권부터 조사하는 인물이 과연 누구일까.

이어지는 섬너의 말은 예상대로였다.

다만 그 이름을 듣는 순간 막스의 정신이 번쩍 들었다.

“호레이스 스미스라고, 그 친구가 자네를 만나고 싶어 하네.”

‘호레이스 스미스!?’

미래까지 총기 제조사로 이름을 떨칠 회사.

콜트와 라이벌인 스미스&웨슨의 그 스미스!

‘근데 나를 만나고 싶다고?’

막스의 머리가 빠르게 움직인다.

그동안 막혀있고 흩어졌던 퍼즐들이 일부 맞춰지기 시작했다.

그 일부엔 알프레도가 있었다.

‘판이 제대로 깔리는구나.’

  촌극

1856년.

현시점에서 스미스&웨슨이라는 이름의 총기회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창업주인 호레이스 스미스와 대니얼 웨슨이 만든 회사는 볼캐닉 리피팅 암즈.

미국의 수많은 총기회사 중 하나였다.

문제는 이들이 얼마 전 파산했다는 거.

미친 듯이 총기 관련 특허를 사들이더니 결국 재정난으로 망해버렸다.

“자네도 신문을 봤구만. 맞네, 회사를 최대주주였던 자가 인수 했지.”

그자가 누구인지 막스도 알고 있다.

그 이름도 유명한 올리버 윈체스터니까.

가까운 미래에 서부를 평정한 명기라는 찬사를 듣게 되는, 윈체스터 M1873 라이플을 만들어 낼 자였다.

‘그건 아직 먼 이야기고.’

어찌 됐든, 동부 해안가에 있을 호레이스 스미스가 막스의 구리 탄두에 관심을 가질 줄은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어떤가? 원한다면 다리를 놔주고 싶은데.”

“거절할 이유가 없죠. 다만.”

“다만?”

막스가 조건을 붙이려 하자 섬너의 미간이 좁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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