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은 힘들 것 같습니다.”
“자네가 원하는 시간과 장소를 말하면 맞춰줄 걸세. 스미스 그 친구야, 남는게 시간이거든.”
섬너는 스미스에게 전하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엘드릿지처럼 막스는 섬너에게 앞으로 벌어질 일을 이야기했다.
“공권력이라. 사실 나도 그 부분을 걱정하고 있었네. 지금 기류라면 워싱턴에서 로렌스를 그냥 내버려 두진 않을 걸세.”
“충분히 가능한 일이죠.”
“이러다 내 손으로 로렌스 핵심 인사들을 잡아야 할지도 모르겠군. 자네도 예외는 없을 텐데, 그런 일이 벌어져도 나를 미워하진 말게나.”
섬너는 웃으며 말하지만, 그게 현실이 되었을 땐 과연 어떤 표정을 지을까.
포트 리븐워스를 나선 막스.
대장간에 있을 제임스를 찾아가려다 이내 말머리를 로렌스로 돌렸다.
노예제 옹호론자와 폐지론자의 갈등.
게다가 적이 많은 막스가 제임스를 찾아가는 건 썩 좋은 생각이 아니었다.
‘그나저나 구리 탄두의 특허로 거래가 될까.’
스미스와 웨슨이 특허에 접근하는 데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사버리거나, 혹은 로열티를 지불하거나.
그런데 망해버린 스미스에게 과연 돈이 있을까. 결국, 로열티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그 또한 막스가 바라는 게 아니다.
스미스와 웨슨은 여러 개의 총기 관련 특허를 사들였다.
대부분 중요한 것들이지만, 당장 막스가 눈여겨볼 것은 총알에 관련한 특허다.
총기 역사에 한 획을 긋는 금속 탄피인 림파이어. 금속 탄피 후면의 테두리(Rim)를 쳐서 격발하는, 획기적인 방식의 특허를 스미스와 웨슨이 가지고 있었다.
만약 여기에 더해 막스가 가진 구리 탄두와 합쳐진다면?
비로소 풀메탈재킷의 완성이다.
호레이스 스미스는 정확히 총알의 미래를 꿰뚫어 보고 있었다.
그리고 막스는 그를, 아니 스미스&웨슨을 손에 넣기 위해 거래를 할 생각이다.
‘그건 그거고, 일단 급한 불부터 끄자.’
로렌스를 둘러싼 제2라운드가 얼마 남지 않았다.
마을에 도착한 막스는 사무실 앞에서 서성거리는 알프레도를 볼 수 있었다.
“엇! 주인님 오셨습니까!”
막스는 질겁하며 주변을 둘러봤다.
다행히 근처엔 마을 사람이 없었다.
“미쳤냐? 여기 로렌스야 로렌스. 노예제 폐지론자의 심장!”
“아, 제가 또 실수했네요.”
“너 이제 자유인이라고, 인마.”
“정확히는 도망노예죠.아무튼, 먹여주고 재워주면 저한텐 주인님이에요.”
알프레도의 나이는 22살.
걸음마를 뗄 때부터 낳아준 부모와 강제로 헤어지고, 줄곧 몸에 밴 노예습관을 하루아침에 버리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동양인한테 그러고 싶냐.”
“그게, 자꾸 보니까 주인님 얼굴도 하얗더만요.”
“..... 추워서 창백한 거야.”
“아하.”
막스는 알프레도와 함께 사무실로 들어갔다. 신문을 읽고 있던 피치는 둘의 대화를 들었는지 고개를 절레 저었다.
“알프레도는 가만히 있으면 불안하대. 절대 내가 쫓아낸 거 아냐.”
“누가 뭐래. 그래서 글공부는?”
“아까 두 시간 했어.”
피치는 알프레도에게 글을 가르치고 있다.
막스는 책을 손에 들며 흔들었다.
“내가 분명 3개월 안에 이 책 못 읽으면 쫓아낸다고 말했다.”
“알고 있습니다!”
“표정 좋아.”
알프레도는 비장한 표정으로 책을 쳐다봤다. 제목은 톰 아저씨의 오두막.
자유 흑인으로서 앞으로 도움이 되려면 글 정도는 읽고 써야하니 말이다.
막스가 피치에게 물었다.
“오늘은 무슨 일 없었어?”
“너무 평화로워서 낮잠이 쏟아질 정도야. 하긴 벌써 자는 사람도 있지 참.”
소파를 쳐다보는 막스의 눈이 가늘어졌다.
싸한 느낌이 들었는지 콜린이 튕기듯 일어났다.
“오오, 막스 보안관. 언제 온 거야?”
“됐습니다. 전 찰스 주지사한테 갔다 올게요.”
*
찰스는 로렌스의 핵심 인사들과 회의중이다.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막스를 회의에 참석시켰다.
“마침 우리 보안관이 왔으니 대책을 논의하도록 합시다.”
찰스는 현 상황을 심각하게 여기고 있었다.
“대통령이 우리를 폭도로 선언하는 바람에 정치권이 요동치고 있습니다. 우선 자유주 의원들이 지난 선거의 공정성 조사를 요구하고 있으니 결과를 지켜봐야지요. 허나, 그것과는 별개로 우리 나름대로 준비는 해야 합니다.”
회의가 이어지는 동안 막스는 머릿속을 정리해나갔다.
가능한 시나리오는 두 가지.
원 역사대로 가느냐, 아니면 전혀 다르게 움직이느냐.
만약 원 역사대로라면 첫 움직임은 사무엘 존스가 로렌스를 찾아오는 것이다.
목적은 반란자들의 체포.
그 와중에 사무엘 존스는 누군가에게 총을 맞게 되고.
다들 죽었다고 생각했을 때 분노한 존스는 이를 빌미로 새로 임명된 캔자스 준주의 원수(주 방위군 사령관)와 병력을 이끌고 호텔을 부수고 마을을 약탈한다.
일명 ‘로렌스 약탈’ 이었다.
막스의 의문은 과연 존스를 누가 쐈는가다.
정식으로 임명된 보안관을, 그것도 갈등이 격화된 이 시점에 총을 쏜다는 게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리고 생각끝에 막스는 자작극에 무게를 두고 있었다.
지난 와카루사 전쟁부터 역사가 뒤틀렸다.
이렇듯 확신을 갖기 힘들 때.
정보를 수집으로 움직임을 살펴야한다.
회의는 별다른 내용 없이 끝이 나고.
묵묵히 듣고 있던 막스는 찰스 주지사에게 은밀한 회의를 제안했다.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선 정보가 필요합니다. 주지사와 사무엘 존스, 애치슨까지 행동을 감시할 사람이요.”
“정보요원을 말하는 건가?”
“맞습니다.”
막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찰스 주지사는 다가올 사건의 크기를 짐작한 듯 요청을 수락했다.
“이 일은 극소수만 아는 거로 하죠. 그리고 요원 선발은 제이호커스 전체를 대상으로 물색하겠습니다.”
“그 권한도 위임하겠네.”
로렌스를 위해선 뭐든지 하겠다는 비장한 눈빛. 찰스 주지사는 막스를 의지하여 난관을 극복하려 했다.
사무실로 돌아온 막스는 정보요원을 만들기 위해 피치와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다.
“지금부터 로렌스 정보부 요원을 뽑을 거야. 대상은 북부 출신이나, 얼굴이 덜 알려진 제이호커스. 다만 신분이 확실해야 해.”
“인원은?”
“서로 모르게 다섯 명씩 레콤프턴, 리븐워스, 그리고 미주리 잭슨 카운티로 보내. 그리고 최대한 이동은 적게 해야 하려면 중간 인원도 배치해야겠지.”
“보고 간격은?”
“보름. 특별한 일이 생기면 즉시.”
피치를 중심으로 정보요원들이 만들어졌다. 그들이 가져온 정보는 피치가 수집하고 막스에게 보고했다.
그렇게 혹독한 겨울이 끝나고 로렌스에 봄이 찾아왔다. 한창 새싹이 돋을 시기지만 레콤프턴에선 음모가 싹트고 있었다.
4월이 들어서고, 레콤프턴에 있던 정보요원에게 한 가지 소식이 들려왔다.
- 사무엘 존스가 로렌스의 주요 인물들을 체포하겠답니다.
역사대로 사무엘 존스는 더글라스 카운티 보안관의 권력을 사용하려 했다.
막스는 찰스 주지사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이내 긴급회의가 소집되었다.
“지금 레콤프턴에는 지난 선거 조사위원들이 파견 나와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존스가 왜 우리를 잡아간단 말입니까.”
프랭클린 피어스는 부정선거 의혹을 조사하라는 자유주 의원들의 요청을 마지못해 수락했다.
찰스 주지사가 장내를 훑어보며 말을 이었다.
“존스의 의도야 빤합니다. 부정선거 결과가 나오기 전에 우릴 자극해서 빌미를 잡으려 하겠지요. 여기에 휘말리면 안 됩니다. 존스를 쫓아내더라도 절대 폭력을 사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른 의원들도 의견에 동조하며 대응 방안이 정해졌다.
인간 벽을 만들어 존스의 의도를 원천 차단하기로.
이와는 별개로 막스는 분대원들을 모아두고 은밀한 지시를 내렸다.
원 역사에서 총을 쏜 자는 말 그대로 ‘누군가’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첩자가 아닐까?
“명령을 어기고 존스를 쏘려는 자가 있다면, 그자는 첩자다. 무조건 그 자리에서 생포해.”
“옛썰!”
1856년 4월 23일.
사무엘 존스는 50명을 이끌고 로렌스 마을로 진격했다.
미리 소식을 접한 존 브라운과 제이호커스, 그리고 정착민들이 존스의 마을 진입을 저지하려 했다.
막스를 따르는 대원들은 오히려 혹시 모를 첩자를 색출하기 위해 주변에 퍼져 숨어 있었다.
찰스를 비롯한 핵심 인물들에게도 첩자의 가능성은 말해두었다.
그러기에 더더욱 다른 이들의 돌발 행동은 막아야 했다.
잠시 후.
도착한 사무엘 존스의 눈이 향한 곳은 막스. 이글거리는 눈빛은 어느새 조롱이 섞이고 입가엔 비웃음을 머금는다.
존스는 자신의 신분을 이용해 소리쳤다.
“더글라스 카운티의 합법적인 보안관, 나 사무엘 존스는 폭도들을 체포하기 위해 왔다! 캔자스에서 반란을 꾸민 자들은 자진해서 앞으로 나와!”
“웃기는 소리! 부정선거로 얻은 놈들이 염치도 없구나!”
사람들의 저항이 시작되고 존스는 더욱 목소리를 높였다.
“이런 짓을 하니까 폭도란 거다! 집행을 방해한다면 마을 사람 전부를 체포할테다!”
“꺼지라고 했지!”
“여긴 한 발자국도 못 들어올 거다!”
사무엘 존스는 당황하기는커녕, 여전히 비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막스는 날카로운 눈으로 그를 응시했다.
‘누군가 쏘길 기다린다 이건데.’
웃으면서 총알이 날아오길 기다린다면, 쏘는 자와 약속이 되어있다는 말.
막스가 이렇게 결론지을 때였다.
타아아앙!
막스가 있는 로렌스 진영에서 총성이 울리고,
존스가 말에서 떨어졌다.
“보, 보안관이 총에 맞았다!”
약속이나 한 듯 수하들이 존스를 감쌌다.
“폭도들이 보안관을 쐈다!”
“법 집행 방해에 총까지 쏘다니!”
일련의 사태는 마을 사람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대체 이게 무슨 일입니까. 절대 총은 쏘지 말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존스가 죽으면 그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요.”
“누가 쐈습니까! 얼른 나와요!”
사람들의 목소리가 높아져 갈 때.
한쪽에서 네이선 로어와 그의 분대원들이 발버둥 치는 한 남자를 끌고 왔다.
마을 사람들은 불만 가득한 얼굴로 그를 탓했다. 그들은 단순한 돌발행동으로 여기고 있었다.
“대체 왜 쏜 거야!?”
“나, 난 그냥 화가 나서 그런 것 뿐이라고!”
로어가 남자를 무릎 꿇리자, 그를 알아 본 레인이 미간을 찌푸렸다.
“너는 한 달 전에 제이호커스로 들어온 자가 아니냐.”
“저, 전 그냥 존스가 미워서 그런 것뿐입니다.”
“쏘지 말라는 명령을 무시한 건가?”
“.....”
제이호커스의 사령관 레인은 막스를 쳐다봤다.
"이 자를 첩자로 생각하나?"
"지금부터 알아봐야죠.”
당연히 남자는 부인할 것이다.
홀스터에서 총을 꺼낸 막스는 천천히 해머를 코킹 하고는 머리를 겨눴다.
“누가 시켰어.”
“.... 아, 아무도 안 시...”
타아앙!
“끄아악!”
남자가 팔을 부여잡으며 비명을 질렀다.
과한 행동일지 모르나 첩자든 아니든 남자의 잘못은 있었다.
"첩자가 아니어도 명령을 어겼으니 합당한 처삽니다."
막스는 다시 한번 머리에 총구를 겨눴다.
그리고 시선은 존스의 무리를 향하며 다시 한 번 말했다.
"누가 시켰어."
눈물과 콧물 범벅된 남자는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 사무엘··· 존스···.”
“안 들려.”
“사무엘 존스라고!”
모든 걸 포기한 남자의 외침.
마을 사람들이 술렁거리고, 제이호커스들도 꽤 큰 충격을 받은 듯했다.
막스는 존스 무리를 향해 말했다.
“존스. 네 덕분에 첩자도 알아냈으니, 언제 밥이라도 사야겠어.”
“뭔 헛소리냐!”
“이건 전부 네놈들이 다 꾸며낸 짓이다!”
존스의 수하들이 일갈하고, 일부는 존스를 말에 태웠다.
진짜 총에 맞았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갑자기 서두르는 모습은 확실히 어설펐다.
엄청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웃지 못할 촌극이라니.
‘사무엘 존스. 네놈의 역할도 다음이 끝이다.’
연극이든 뭐든.
첩자를 증인으로 내세워도 노예주는 공격을 멈추지 않을 터.
전쟁은 피할 수 없었다.
'이번엔 더 치열하겠군.'
< 전쟁준비 >
사무엘 존스가 돌아간 뒤.
노예주의 신문사들은 일제히 이 사건을 헤드라인으로 내세웠다.
그런데 그 내용이 꽤 자극적이었다.
[사무엘 존스가 노예제 폐지론자들의 총에 맞아 사망?]
[합법적인 보안관의 법집행을 총으로 응수한 폭도들을 두고만 볼 것인가]
[깨어나라 노예제 옹호론자들이여! 지금 이 순간에도 자유주는 자신들의 배를 불리기 위해 우리의 재산을 빼앗으려 하고 있다!]
한편, 자유주 진영의 로렌스의 신문사 세 곳도 이에 맞불을 놓았다. 노예주의 파렴치한 계획을 폭로했다.
[명분을 얻기 위해 무리한 체포를 강행]
[첩자까지 심어 자작극을 벌인 사무엘 존스. 정의를 위장한 대사기극]
[찰스 의장, 사무엘 존스의 죽음보다 흑인이 주지사가 되었다는 말이 차라리 신빙성 있어 보이지 않는가?]
[레인 의원, 자유주의 힘이 로렌스에 모이는 날. 노예주는 후회의 눈물을 흘리게 될 것이다.]
자유주와 노예주의 첨예한 갈등 속.
로렌스의 보안관은 존스가 심어놓은 첩자를 통해 추가로 세 명을 더 밝혀냈다.
공통점은 제이호커스라는 것. 이들은 낌새를 차리고 이미 마을을 떠난 뒤였다.
각지에서 몰려드는 신원 불분명한 제이호커스들은 세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
“앞으로 유입되는 제이호커스들은 특별한 관리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동의하네. 마을의 사정을 모르도록 장소를 분리하는 게 낫겠지.”
막스의 말에 레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턱을 만지던 그는 다시 말을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