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콤프턴에서 부정선거 조사위원회가 머무르고 있는 상황에서 존스가 일을 벌였네. 아직 공권력이라기엔 뭔가 부족한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나?”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대통령은 움직이지 않을 것 같습니다.”
“만약 부정선거라는 결과가 나오면?”
“글쎄요. 과연 인정할까요.”
‘결과를 인정할 거였으면 애초에 로렌스를 폭도로 선언하지도 않았겠지.’
조사위원회의 결과에 상관없이 대통령의 답은 정해졌다. 그리고 이는 명분 따위가 필요 없는 난타전을 불러올 것이다.
“대통령이 군을 동원하지 않는다면, 마찬가지로 중재 또한 바라기 힘들겠군.”
“그렇다고 봐야죠. 이번에도 제이호커스와 보더 러피안의 싸움이 아닐까 싶네요.”
폭도로 규정된 이상 섬너 사령관이 도울 일은 없을 것이다.
로렌스를 로렌스 스스로 지켜야 하는 싸움이었다.
그 후 긴급회의가 소집되었고, 결정은 신속히 내려졌다.
건물은 무너져도 사람만 있으면 얼마든지 재건할 수 있지 않은가. 고심 끝에 여자와 아이들은 토피카로 이주시키기로 했다.
회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이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찰스 의장이 기쁜 소식을 알렸다.
“며칠 후에 대포가 도착한다고 합니다.”
“오오, 자유주에서 보낸 겁니까?”
“와카루사 전쟁에서 애치슨이 강탈한 대포를 기금으로 사버렸다는군요.”
섬너 사령관은 애치슨에게 대포를 압수한 뒤 이를 원래 있던 미주리주 군 무기고로 돌려보냈다.
그런데 이 올드 새크라멘토 캐넌을 노예제 폐지론자들이 모은 기금으로 숫제 사버린 것이다.
“이번에는 기필코 노예주 새끼들을 박살 냅시다!”
“로렌스에 들어오면 어떻게 되는지 똑똑히 보여주자구요!”
대포로 인해 사기가 오른 의원들이 의지를 불태운다. 그들의 직업은 다양하지만 지금은 오직 하나다.
모두 로렌스의 민병대였다.
*
막스가 연일 회의에 불려갈 때.
존 브라운이 보안관 사무실을 들렀다.
“당분간만 있겠다더니 꽤 시간이 흐른 것 같은데, 콜린?”
“그러게요. 시간이 참 빠르네요.”
하라는 지하철도 차장 일은 뒷전으로 놔두고 사무실에서 있는 모습이라니.
존 브라운은 고개를 절레 저으며 말했다.
“뭐, 새로운 차장이 자네 일을 대신하고 있으니 그건 그렇다 치고. 평화를 지향하는 보안관이랑 죽이 잘 맞는 모양이군.”
“누가요, 막스가요?”
콜린이 말도 안 된다며 눈을 껌뻑거렸다.
존 브라운 입장에서 막스는 평화주의자다.
인질을 구출할 때도 그렇고, 군을 끌어들여 중재하는 노력을 보면 그런 오해를 할 만도 했다.
“존, 그거 잘못 알고 있는 거예요. 뭔가 계획이 있어서 그런 거지, 막스는 절대 평화주의자가 아닙니다.”
“내가 모르는 부분이 많은 모양이군.”
“양파 같은 인간이라 모를 수밖···.”
“양파 등장이요.”
스윙도어를 밀고 들어온 인물을 보곤 콜린이 입을 틀어막았다.
막스는 코웃음 치며 존 브라운 앞에 앉았다. 동부에 일이 있다더니, 아직 안 간 모양이다.
“내일 떠날 생각이네. 이러다 전쟁이 벌어지기 전에 도착이나 할는지 모르겠군.”
“꼭 도착하셔야 합니다.”
원 역사대로라면 로렌스 약탈 당시 자리에 없던 존 브라운은 보복으로 노예제 옹호론자 일가족을 잔인하게 살해한다.
일명 포토와토미 대학살.
이 일은 자유주에서도 엄청난 비난을 불러일으켰고, 존 브라운의 평가가 엇갈리는 계기가 된다.
“그런데 이번엔 특별한 계획이 없는 건가?”
“잘 싸우고 잘 막는 게 계획입니다만.”
“그 정도로 심각하다는 얘기로군.”
존 브라운을 팔짱을 끼며 말했다.
“솔직히 난, 노예제 옹호론자들에게 끌려만 다니는 게 불만이네. 공격하면 막는 게 전부니 놈들이 우습게 볼만도 하지.”
“지금까진 그랬겠죠.”
“앞으론 달라진다 이건가?”
막스는 존 브라운의 눈을 응시했다.
그의 눈빛 속엔 잠재된 분노가 꿈틀거리고 있을 터.
“우리가 참는 동안 노예주는 자신들의 폭력성을 여실히 드러냈습니다. 덕분에 자유주는 더욱 결집하게 되고, 폭력에 반대하는 자들도 그 필요성을 깨달았으니, 존이 원하는 대로 된 거 아닙니까?”
“내가 원하는 거라··· 만약 우리가 먼저 공격하는 건 어떤가?”
“그 대상에 따라 달라지겠죠. 하지만 잃는 게 더 많을 겁니다.”
애꿎은 민간인을 죽여서 무얼 얻겠는가.
지지세력을 등을 돌리고 적대 세력은 오히려 결집을 강화할 것이다.
그러니 존 브라운이 생각하는 공격대상을 민간인이 아닌 핵심인물들로 바꿀 필요가 있었다.
“일단 동부에 다녀와서 다시 얘기하세나.”
*
와카루사 전쟁 후, 반년도 채 되지 않아 또다시 마을 곳곳에 진지가 구축되었다.
제이호커스는 민병대로 통합되어 조직화 되었다.
막스는 홀리데이 대령과 함께 이전과 마찬가지로 젊은 제이호커스 80명을 이끄는 독립 지휘권을 얻었다.
막스는 전술 훈련과 더불어 알프레도에게 한 장의 도면을 전해주었다.
“이게 말씀하시던 스코프에요?”
“만들다 보면 원리를 이해하게 될 거야.”
사실 스코프라기엔 민망한, 라이플에 장착한 망원경 수준이었다.
‘마음 같아선 제대로 된 걸 만들고 싶었지만.’
첨단 광학 기술 없이 이 정도면 만족할 만하다.
스코프의 필수라 할 수 있는 조준경의 십자선은 공정이 불가능하지만, 대물렌즈와 접안렌즈 사이의 거리를 조정하는 것으로 오차를 줄여나가면 된다.
당장은 남북전쟁에서나 사용되는 총열 길이에 버금가는 스코프를 벗어나기 힘들었다.
물론 이 시기에 막스가 생각한 스코프가 있긴 하지만, 영국에서 만들어진 거라 구하기가 힘들다.
그렇기에 막스는 차선을 최선으로 바꾸고자 홀리데이를 찾았다.
“홀리데이 대령님?”
“말하세요, 막스 보안관.”
“여기 알프레도한테 스코프 만드는 데 필요한 재료와 대장간을 이용할 수 있게 해줘요.”
로렌스에도 대장간은 있다.
네이선 로어 분대가 보유한 전투 방패도 이곳에서 만든 것이었다.
“그거야 어렵지 않지.”
홀리데이 대령은 와카루사 전쟁처럼 민병대 보급물자를 담당한다.
막스는 도면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알프레도에게 말했다.
“급하게 만들 필요는 없어. 전쟁이 끝나고 다 뒤진 다음에 줘도 되고.”
“......”
막스는 힘내라며 알프레도의 어깨를 토닥거렸다.
곧 들이닥칠 전쟁 대비로 분주했던 4월이 끝나고 5월에 접어들 때쯤.
“막스, 요원들이 정보를 보내왔어.”
피치의 정보팀은 여전히 가동 중이고, 정보요원들은 속속들이 정보를 보내왔다.
먼저 미주리주에서 날아온 정보로는.
[캔자스-미주리주 경계에 앨라배마와 조지아에서 모여든 400여 명의 보더 러피안이 집결]
그다음은 레콤프턴.
[사무엘 존스가 멀쩡히 캔자스 준주 대법관과 주방위군 사령관을 만났음.]
[대법관 사무엘 레콩트가 로렌스 핵심 인사와 프리스테이트 호텔과 신문사들의 철거 명령을 지시했음.]
“아니, 내 호텔을 왜?”
프리스테이트 호텔 오너 엘드릿지는 황당한 얼굴로 막스를 쳐다봤다.
뜬금없이 호텔이 표적이 되었으니 놀랄 만도 하지 않은가.
“와카루사 전쟁 때 지휘소로 활용되어서 그런가 봐요. 이번에도 마찬가지고.”
“보안관이 일전에 내게 경고한 게 현실이 되었네.”
“중요한 물건들은 토피카로 옮겼죠?”
“옮겼지. 마음 같아선 객실에 있는 가구까지 전부 옮기고 싶고. 하지만.”
엘드릿지는 죽을상을 지으면서도 전쟁 지휘소의 역할은 포기하지 않았다.
비록 물품들은 아깝지만 신념의 값어치와 비교할 건 아니었다.
“부수면 또 지으면 되지. 망할 놈들!”
막스는 모르고 있었지만 원 역사라면 엘드릿지는 존스와 주방위군 사령관을 초대해 접대한다. 성대한 식사를 제공하고 회유하려 하지만, 노력이 무색하게 호텔은 무너지고 만다.
그런 엘드릿지에게 변화가 일어났다.
그의 머릿속에 회유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았다.
드러나진 않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막스다.
절망과 패배감으로 몸부림쳐야 할 로렌스 마을 사람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이왕 온 거 식사나 하고 가, 막스 보안관. 호텔 무너지기 전에 전망 좋은 곳에서 밥이나 먹지, 뭐.”
“다 끝나면 그때 먹읍시다.”
“바닥에서 먹어도 난 모른다.”
“그건 그것대로 맛있을지 누가 압니까.”
“맛없다는 거에 내 양손 걸지.”
엘드릿지는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지금껏 막스가 벽돌처럼 쌓아 올린 성과는.
바로 엘드릿지의 가슴을 채운 강인함과 여유에 스며있었다.
‘그나저나, 프리스테이트 호텔을 부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대포일 텐데.’
수비 입장에선 적들의 진지나 막사를 공격할 것이고, 반대로 공격하는 대포는 로렌스 마을의 건물을 부술 것이다.
마을의 피해를 줄이려면 대포부터 무력화시키는 게 관건이었다.
전쟁이 벌어지기 며칠 전.
훈련장 막사로 알프레도가 허겁지겁 달려왔다. 손에는 천으로 휘감은 물건들이 놓여 있었다.
“설마, 벌써?”
“죄송스럽게도 네 개밖에 못 만들었어요.”
“네 개나!?”
막스가 눈을 동그랗게 뜨자 알프레도는 천을 벗겨내 다섯 개의 길쭉한 스코프를 내밀었다.
“원래 몇 개 만들려고 했는데?”
“쪽수 맞추는 거 아녔어요? 83개?”
“미친. 전부 저격수가 말이 되니.”
“나야 모르죠.”
‘그치. 내가 말을 안 했지.’
막스는 스코프 하나를 집어 망원경처럼 오른쪽 눈을 가져다 대었다.
옆에선 긴장한 알프레도가 중얼거렸다.
“일단, 제가 보기엔 괜찮은 것 같긴 한데. 주인님은 어떨지. 그리고 홀리데이 대령이 구해준 렌즈가 좀 별로라, 기능이 그것밖에는···.”
막스가 손을 들자 알프레도가 입을 닫았다.
‘십자선이 아쉽긴 하지만 이 정도면 충분하다.’
막스는 망원경을 내려놓고는 꿀 떨어지는 눈으로 알프레도를 쳐다봤다.
“고생했어, 알프레도.”
“마음에 드십니까요?”
“내가 기대한 것 이상이야.”
알프레도는 어깨를 들썩거리며 기쁨을 참았다.
자신을 때리고 욕하는 사람들은 사라졌다.
숙식 해결은 물론 원하던 대장간에서 일도 했다. 게다가 동양인 주인이 기뻐해 주니, 알프레도에겐 지금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그럼 이제 감을 익혀야지.”
막스는 사격 훈련에 앞서 세 명을 따로 불렀다. 피치, 조 짐 주니어, 그리고 콜린.
“오, 이게 그 스코프라는 거구나.”
“샤프 라이플만 맞으니까, 거기에 장착하고. 일단 거리는 400야드(365m)를 기준으로 감을 잡아보자고.”
각자 식별 가능한 표적을 세워두고, 사격 연습을 이어갔다.
5월 19일.
노예주의 병력들이 로렌스로 행군을 시작했다. 선두에는 “남부의 권리”라 쓰인 붉은 색 바탕에 흰색 별이 중앙에 그려진 깃발을 들고 있었다.
서북쪽인 레콤프턴과 동쪽의 미주리주.
이전과 다른 점은 와카루사 강을 이미 건너서 왔다는 점이었다.
마을의 남쪽 4km 지점.
막스는 로렌스 마을과 동떨어진 장소에서 진을 치고 있었다.
“전쟁이 시작되면 2개 소대로 쪼개진다. 타겟은 적 포병부대. 모두 은신하고 샤프 슈터를 보호한다.”
“옛썰!”
중재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
어느 한쪽이 포기하거나 궤멸해야 끝나는 전쟁이었다.
< 전쟁준비 > 끝
< 로렌스 약탈은 잊어 >
로렌스 약탈을 위해 애치슨은 대포 4문과 천여 명을 동원했다.
와카루사 전쟁보다 적은 수. 하지만 모두 무장한 자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반면 로렌스를 사수하는 민병대는 5백여 명에 못 미쳤다.
와카루사 전쟁에 비하면 오히려 더 줄어든 것이다.
대통령이 로렌스를 폭도로 선언한 영향일까.
게다가 캔자스 준주의 대법관과 주방위군 사령관까지 나섰으니.
제이호커스라도 웬만큼 강심장이 아니면 로렌스로 달려오긴 어려웠을 것이다.
5월 21일.
와카루사 전쟁의 주역들이 다시금 대치상황을 이루었다. 그런데 이전과는 다르게 로렌스 사람들은 건물 안에 틀어박혀 있다.
‘이게 무슨.’
노예주의 병력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이때 마을에서 비아냥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사무엘 존스가 유령이 돼서 나타났구나!”
“어이구 무서워라. 총알도 이제 소용없겠네!”
‘쥐새끼들이 숨어서 잘도 지껄이는구나.’
일전에는 인간 벽을 치더니, 지금은 숨어서 방어를 준비하고 있다. 이는 존스도 원하는 바였다.
“갱단들의 말을 들어줄 이유가 있습니까. 바로 시작하시죠, 사령관님.”
사무엘 존스는 옆에 서 있는 도널드슨에게 말을 건넸다.
섬너가 미연방의 군인이라면 도널드슨은 캔자스 준주의 자체 방위군 사령관이다.
포트 리븐워스와는 근본이 달랐다.
“캔자스 준주의 대법관 사무엘 레콩트께서 폭도 무리를 체포하고, 폭도들의 선동 도구로 전락한 신문사와 집회 장소인 호텔의 철거를 명령했소. 나 주방위군 사령관 도널드슨은 평화적으로 절차를 이행하려 하니. 불필요한 저항은 용납하지 않을 것이오!”
이때였다.
타아아앙!
로렌스 마을에서 총성이 울렸다.
총을 쏜 자는 다름 아닌 찰스 주지사였다.
“거절하오! 또한, 부정선거로 쌓아 올린 당신들의 모든 걸 부정하오!”
“옳소!”
“올 테면 와 봐라!”
도널드슨은 생각보다 강경한 자세에 멍한 표정을 지었다. 사무엘 존스 역시 조금은 당황한 얼굴이었다.
‘이것들이 단체로 약을 먹었나.’
대포들과 끌고 온 병력을 모르는 걸까.
아니면 자신이 모르는 뭔가 있거나.
그날 정보원만 잡히지 않았다면 손바닥 보듯 훤히 알 수 있었을 텐데.
존스의 분노는 곧 한 사람을 향했다.
총 맞은 것처럼, 연기했던 그날.
동양인의 비아냥이 귓가에서 떠나질 않는다. 얼굴이 두껍다 한들, 그날의 치욕은 얼굴을 붉게 만들고 자괴감마저 불러왔다.
‘동양인 새끼. 오늘은 반드시 죽이고 만다.’
존스는 도널드슨을 보며 음산하게 말을 내뱉었다.
“사령관님은 뒤로 빠지시죠. 어차피 말로 해서 될 놈들이 아닙니다.”
사령관의 대답은 듣지도 않은 채 존스는 뒤를 향해 손짓하며 소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