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5화 (55/360)

“대포를 준비해! 호텔부터 박살 낸다!”

서쪽과 동쪽에 각각 대포 2문이 배치되어있다. 존스가 쏘면 맞은편에서 애치슨도 응할 것이다.

병사들이 수레와 연결된 대포를 끌고 왔다.

포신을 마을로 향한 채, 면봉처럼 생긴 크고 기다란 스틱으로 포구에 쑤셔 넣는다.

이리저리 휘저은 다음엔 6파운드(2.7kg) 포탄을 넣고, 후면의 구멍에 핀을 꽂았다.

한 병사가 이 핀과 연결된 긴 줄을 잡고는 뒤로 물러선다.

다들 귀를 막고 몸을 웅크릴 때. 

줄을 잡아당겼다.

퍼어어엉!

포구에 불꽃과 연기가 뿜어지며 목표지점에 포탄이 떨어졌다. 다만 그 위치가 로렌스의 텅 빈 길거리였다.

“에라이 병신들아! 그걸 못 맞추냐!”

누군가의 비아냥에 존스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이 쥐새끼 같은 놈···!?” 

퍼어어엉!

갑자기 오레드 산 요새에서 포탄이 날아온다.

존스는 식겁한 얼굴로 떨어지는 걸 멍하니 쳐다봤다. 다행히 병력이 없는 곳에 떨어졌지만, 이를 비웃을 틈이 없다.

‘이것들이 언제 대포를 손에 넣었지!’

퍼어어엉!

존스가 생각하는 때, 애치슨 진영에서도 대포를 발사했다. 이렇게 로렌스 약탈은 대포의 포문을 여는 것으로 시작했다.

“계속해서 쏴라! 놈들이 포를 날릴 시간을 주지 말란 말야!”

“예, 알겠습니다.”

애치슨이 위치한 동쪽 진영.

애치슨은 뒤로 빠져있고, 벤자민 스트링팰로우가 어느새 지휘에 나서는 중이다.

보더 러피안의 행동대장 격인 그는 포병들을 다그치고 재촉했다. 하지만 포구를 재장전하는 건 꽤 시간이 걸리는 일이었다.

“기필코 로렌스 새끼들을 잡아야만 한다.”

“발포 준비!”

“포탄 넣겠습니다!”

한편, 이 모습을 로렌스 마을이 아닌 사무엘 존스 뒤쪽에서 바라보는 이들이 있었으니. 정확히는 스코프를 통한 막스의 눈이었다.

“햇빛 들어오지 않게 똑바로 쳐.”

“옛썰!”

허리까지 오는 풀숲. 

듀들리는 풀로 뒤덮은 천막을 막대기에 꽂아 세우고, 막스는 그 아래에서 조잡하게 만든 삼각대 위에 총을 올려 적을 겨냥하고 있었다.

‘거리는 550m쯤.’

표적은 벤자민 스트링팰로.

막스의 철칙이 있다면 기회가 되면 지휘관의 대가리를 노린다는 거.

전쟁의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었다.

‘탄환이 가는 탄도는 변화무쌍한 공간. 중력은 물론 바람과 습도까지 영향을 미치는 공간이다.’

막스는 온 신경을 쏟아부어 방아쇠에 검지를 가져다 대었다.

벤자민을 향한 적개심은 뒤로하고, 

탄도가 뒤통수로 이어지길.

타아아앙!

푸슉.

동시에 벤자민의 몸이 한 차례 휘청였다. 맞은 곳은 벤자민의 뒤통수와 목 사이.

‘조금 빗맞았나.’

병사들이 벤자민을 둘러싸고, 일부는 막스가 있는 곳으로 고개를 돌린다.

막스는 스코프에서 눈을 떼며 말했다.

“자리 이동한다!”

“옛썰!”

적 지휘관을 제거하여 판을 흔들었다.

다음은 신중함이 빠진 병사들을 상대하는 일이었다.

*

“벤자민이 쓰러졌다!”

“적들이 우리 뒤에 있다!”

타아아앙!

또다시 총성이 들려오고 이번엔 애치슨 뒤에 있던 자가 쓰러졌다.

‘시벌, 저 자식이 갑자기 끼어들었어!’

콜린이 속으로 욕을 퍼부었다. 그리고는 이내 자리를 이동했다.

한편, 깜짝 놀란 애치슨은 병사들 틈에 숨어버리면서 일대 혼란이 찾아왔다.

순식간에 형을 잃은 로버트는 분노하며 소리쳤다.

“휘슬러는 후미를, 오르테는 마을로 진격한다! 로렌스를 박살 내버려!”

“가자!”

“벤자민의 복수를!”

애치슨 진영의 병력이 두 개로 분산되고.

그중 기병대는 무서운 속도로 로렌스 마을로 향했다.

‘방금 총소리가 뭐길래···.’

총소리가 들린 뒤 애치슨 진영에 급격한 변화가 찾아왔다.

존스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지시를 머뭇거렸다. 그 역시 벤자민 스트링팰로우의 지시에 움직이기 때문이었다.

도널드슨은 첫 대포 이후 멀찌감치 빠져있었고, 작금의 지휘는 존스의 몫이었다.

그리고 이때,

타아아앙!

자신의 후미에서도 한 발의 총성이 들려왔다.

이번엔 피치의 작품.

포구를 쑤시던 병사가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뒤, 뒤다!”

존스는 애치슨 진영과 마찬가지로, 병력 절반씩을 나눠 적진을 향하도록 했다.

그사이 조 짐 주니어가 쏜 총알에 또 한 명이 쓰러졌다.

말에 탄 채 이리저리 산만하게 움직이던 존스는 문득 적들의 대포가 멈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대체 뭔 짓거리를 꾸민 거냐.’

병사 하나가 달려오며 소리쳤다.

“마을이 텅 비었다!”

충격적인 소식에 존스가 경악하며 뒤를 돌아볼 때, 후미에서 다수의 총성이 울렸다.

‘당했구나!’

존스가 깨달았을 땐 이미 후방에선 제이호커스들이 일방적인 학살을 펼치고 있었다.

800여 명의 병력을 반으로 쪼개고, 거기서 또다시 반으로 쪼갰으니. 갑자기 풀밭에서 일어난 병력에 변변한 대응조차 할 수 없었다. 실제로 총소리가 난 곳보다 훨씬 가까이 있었으니 말이다.

“1열 빠지고, 2열 앞으로!”

레인은 리볼버로 무장한 병력을, 비교적 높은 위치에 있는 라이플 병력은 존 브라운의 지휘 아래 적들을 처리해 나갔다.

“쓰레기 같은 노예제 옹호론자들은 자비도 사치스러운 놈들이다! 1열 재장전 끝났으면 3열과 교대!”

원 역사라면 이곳에 없어야 할 존 브라운이 전쟁에 합류했다. 이 또한 커다란 변화 중 하나였다.

막스는 자리를 이동해가며 핵심 인원들을 제거해 나갔다.

스트링팰로우 두 형제를 저세상에 보내고, 다음 지휘를 잡은 한 명 역시 싸늘한 시체로 만들었다. 접근하는 적들은 매복해있던 분대원들이 처리했다.

“듀들리.”

“넵!”

“천막은 치우자. 그렇다고 버리진 말고.”

버리려던 듀들리가 멈칫하며 크게 말기 시작했다. 

이때 피치의 분대원 하나가 뛰어왔다.

적진을 관찰하던 정보요원이었다.

“존스가 병력을 이끌고 마을로 들어갔습니다.”

“미친놈.”

막스는 미간을 찌푸리며 주변에 소리쳤다.

“1소대 집합! 2소대와 합류한다!”

4개 분대를 묶어서 소대로 만들었다. 나머지 2소대는 콜린의 지휘하에 있다.

곧이어 병력이 합류하고, 막스는 새로운 지시를 내렸다.

“존스가 마을로 향했다. 이번엔 마을을 사수한다.”

“옛썰!”

“옛···썰.”

얼떨결에 대답한 콜린은 자신이 생각해도 웃긴지 피식거렸다.

막스는 동쪽을 크게 돌아 이번엔 로렌스 마을 중심으로 향했다.

후미를 막았기 때문에 후퇴하기도 어려운 상황. 놈들은 이를 타개하기 위해 사렁관 도널드슨을 내세워 타협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는 동안 사무엘 존스는 마을을 철저히 부술 생각이었다.

마을로 다가갈수록 매케한 냄새가 코를 찌르고 연기가 보이기 시작했다. 곧이어 막스는 집들을 약탈하고 불을 지르는 놈들을 볼 수 있었다. 보더 러피안들은 텅빈 마을에 자신들의 분노를 쏟아내고 있었다.

‘정신병자들.’

말에서 내린 막스는 얼굴을 스카프로 감은 채 소대원들에게 말했다.

“다들 나를 참고하도록.”

막스는 마을에서 분탕질치는 보더 러피안들 사이로 뛰어들었다. 대원들이 경악할 때, 막스는 보더 러피안과 함께 소리치고 뛰어다녔다.

“와씨.”

“저게 주주장창 떠들던 깡인가.”

‘내가 감당하긴 참 벅찬 인간이야.’

콜린과 대원들이 숨어서 눈을 껌뻑일 때, 막스는 보안관 사무실을 자연스럽게 뛰어갔다.

연기가 마을에 퍼지고 광기에 가득찬 놈들에겐 막스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놈들의 머릿속에 이곳은 텅.빈.마.을.일 뿐이니까.’

스카프 속 막스가 비웃으며 사무실에 도착했을 때.

‘아···.’

두 번째다. 보안관 사무실이 불에 탄 게.

활활 타오르는 불길을 보며 막스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그 앞에서 미친 듯이 깔깔거리는 남자에게 다가갔다.

‘사무엘 존스. 네 놈의 기록을 여기서 끝내주마.’

막스가 느릿느릿 사무엘 존스의 뒤로 다가간다. 불을 계속 보면 미칠 수 있다더니, 존스가 광기를 입으로 내뱉었다.

“야 이 동양인 개새끼야! 내가 이대로 그냥 갈 줄 알았냐! 활활 타올라라! 곧 네 놈의 몸뚱아리도 불태워...읍!”

등 뒤에서 누군가 자신의 입을 틀어막는다.

동시에.

푸욱.

날카로운 게 옆구리를 뚫고 들어왔다.

존스가 사력을 다해 고개를 돌리려 할 땐,

꿈에도 나타나던 그놈의 목소리가 속삭이듯 들려왔다.

- 스스로 화장터를 준비했구나.

“!”

푸욱, 푸욱.

막스는 연거푸 칼로 존스의 몸을 쑤셨다.

그리고는 활활 타오르는 불길을 향해 놈을 끌고 갔다.

- 겨울이었으면 따뜻했을 텐데.

존스의 홀스터에서 총을 빼앗은 뒤.

퍽.

발로 존스를 불구덩이 속으로 밀어 넣었다.

이미 칼에 찔려 치명상을 입은 존스는 허우적대지만 이내 화마에 휩쓸려버리고 말았다.

등을 돌린 막스는 홀스터에서 총을 뽑았다.

그리고는 약탈하느라 미친놈처럼 돌아다니는 보더 러피안에게 총구를 겨눴다.

탕! 탕!

이를 시작으로 곳곳에서 총성이 들려왔다.

“대가리는 떨어졌다! 쓸어버려!”

“옛 썰!”

그 외침에 막스의 대원들이 일순 적들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 로렌스 약탈은 잊어 > 끝

< 사무실을 벽돌로 지어야 하나 >

보더 러피안 사상자 275명.

그중 사망자는 152명이며 벤자민과 로버트 스트링팰로우 형제 그리고 사무엘 제퍼슨 존스가 끼어있다.

이에 반해 로렌스는 사망자 없이 37명의 부상자가 발생. 일방적인 승리였다.

원 역사에선 사무엘 존스의 부하 한 명이 죽는 것으로 끝난다. 그렇다고 총에 맞은 건 아니고, 어이없게도 프리스테이트 호텔을 부수다 그 벽돌에 깔려 죽는다.

이유야 어찌 됐든, 막스의 개입으로 역사는 바뀌었고 이는 자유주와 노예제 투쟁의 변곡점을 만들어냈다.

로렌스를 둘러싼 전쟁의 종식을 위해, 찰스 주지사와 레인은 라이스와 도널드슨에게 다음과 같은 협정을 제시했다.

[이번 일로 발생한 피해 보상은 요구하지 않는다. 더불어 미주리주와의 평화를 10년간 지속한다.]

원래 이 문장은 와카루사 전쟁을 무마시키기 위해 찰스 주지사가 울분을 삼키며 써야 했던 내용이다.

하지만 역사는 ‘로렌스 약탈’에서 ‘로렌스 반격’으로 바뀌고 이제는 애치슨이 울분을 삼키며 협정에 서명하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로렌스를 위협하는 모든 병력이 철수하자 사람들이 소리쳤다.

“로렌스가 승리했다!”

“자유주! 노예제 폐지론자의 승리다!”

정착민, 제이호커스들로 구성된 민병대원들의 함성이 평원에 울려 퍼진다.

신념을 지키기 위한 용기는 여전히 유효하며 쟁취한 승리는 이들을 한층 뜨겁고 단단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승리의 기쁨은 잠시일 뿐.

마을 곳곳에 피어오른 연기는 사람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어차피 각오한 것 아닌가! 건물은 또 지으면 되는 일. 당장 해야 할 일이 많으니 정신 똑바로 차리도록!”

제임스 레인의 말에 사람들의 움직임이 분주해졌다.

그의 말마따나 전후 처리가 만만치 않다. 

부상자들을 마차로 실어 나르고, 시신들의 무기를 챙기고 매장을 위해 땅을 팠다.

존 브라운은 아들들과 함께 전장이 펼쳐졌던 곳을 걸었다. 전쟁은 끝났지만, 상황을 복기하며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그 끝은 이 모든 전략을 세운 막스로 귀결되었다.

“오늘 전쟁에서 많은 걸 깨닫게 되는구나. 한 사람이 미치는 영향이 어마어마하다는 걸 말이다.”

“정말 대단한 자에요. 솔직히 그 동양인이 태어났던 나라까지 궁금할 지경입니다.”

총상에서 완전히 회복한 큰아들 오웬 브라운이 말했다. 다른 형제들 또한 이제는 막스의 개인 신상까지 궁금할 정도였다.

“나라도 나라지만, 사람 자체가 특별한 거겠지. 앞으로 그자가 어떤 변화를 몰고 올 지 기대가 되는구나.”

존 브라운의 말에 양아들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본인이 가장 많이 변했다는 걸 모르시는구나.’

정확히는 막스를 만난 이후다. 

뭔가에 쫓기듯 서두르던 모습에 여유가 생겨난 게. 

그리고 지금 존 브라운의 눈은 더 먼 곳을 향해있다. 

오웬과 형제들은 그런 변화를 확실히 체감하고 있었다.

마을로 들어선 레인은 한창 재를 치우는 막스를 볼 수 있었다. 

“또 타버렸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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