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잘해야 본전이지.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바로 비교당할 텐데?”
“후임이 누가 될지 가시방석이겠구만.”
막스의 보안관 사퇴로 마을이 술렁거렸다.
후임을 선출하기로 했지만, 선뜻 나서는 자들이 없었다. 여론이 이렇다 보니 보안관 선출은 시일이 걸릴 듯싶다.
‘너무 잘해도 문제구만.’
사람들은 막스를 볼 때마다 아쉬워했다.
특히 아이들이 적극적으로 만류했다.
“그냥 보안관 계속하면 안 돼요?”
“아빠가 그랬어요. 막스가 최고라고!”
“나도 알고 있어.”
“...... 우우우!”
사무실이 재건될 때까지 밤엔 호텔에서, 낮엔 훈련장 막사를 사용했다.
콜린은 훈련으로 땀을 흘리는 제이호커스를 보며 혀를 끌끌 찼다.
“젊은것들이 돈 벌 생각은 안 하고, 여기서 청춘을 날리는구나.”
“대신 먹여주고 재워주잖아요.”
콜린은 알프레도를 힐끔 쳐다봤다. 근심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행복한 얼굴이다.
“역시 사람은 밑바닥을 겪어봐야 걱정이 없구나.”
책상에서 노트에 끄적거리던 막스는 펜대를 놓으며 콜린의 말을 곱씹었다.
제이호커스들은 자원병이다.
그 때문에 자고 일어나면 갑자기 수십 명이 사라졌을 때도 있었다.
그만큼 인원이 들쑥날쑥 했다.
마을 재정상 월급은 기대할 수 없고, 그런 이유로 수 개월간 막스의 부대원들은 무일푼으로 봉사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신기하게 아무도 이탈하지 않았다.
‘80명에게 주급을 지급하면 주당 최소 800달러. 한 달이면 3200···.’
지금이야 캔자스를 자유주로 만들기 위한 자원봉사지만, 그 역할이 끝난 다음은?
보안관을 그만두기로 마음먹은 이후 막스는 돈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가진 재산이라곤 현금 423달러와 토피카의 땅이 전부. 미래를 생각하면 토피카의 부지는 큰돈이 되질 않았으니.
- 토피카가 곧 내 역사가 될 거야. 너와 함께 이 도시를 키운다면 의미가 클 것 같은데?
홀리데이의 말이 왜 그렇게 멋지게 들렸는지. 땅에 덜컥 투자해버린 것이다.
‘그날은 진짜 홀린 데이였지. 아무튼, 일 년만 버티자.’
막스는 밖으로 나가 서쪽을 바라봤다.
생각하는 곳은 토피카를 넘어 훨씬 서쪽.
지금은 캔자스 준주와 묶여버린 이름과 구획조차 확정되지 않은 곳.
미래의 콜로라도가 막스에겐 기회의 땅이었다.
*
새로운 사무실이 완공된 건 6월 중순.
나무판자가 아닌 벽돌로 지어져 시간이 늦어졌다.
그런데 사무실을 사용한 지 며칠 되지 않아, 막스의 후임이 선출되었다.
조엘 그로버.
NEEAC의 초기 정착민 중 2차 파티로 이곳에 도착한 30대 초반의 남자로 막스가 선발한 민병대 중 하나였다.
로렌스의 풍파를 온몸으로 겪어서 그런지. 처음의 어리숙함은 사라지고 단단한 남자가 되어있었다.
“그동안 고생했어, 막스 보안관.”
“이제 보안관이란 말은 빼야죠.”
“무슨. 나와 마을 사람들에게 자넨 영원한 로렌스 보안관이네.”
피치는 볼에 바람을 잔뜩 불어 넣고는 사무실을 이리저리 둘러본다.
새로 지어진 사무실에 추억이랄게 있을까.
불타버린 것이 못내 아쉬운 표정이었다.
조엘 그로버가 다시금 말을 이었다.
“막스 보안관, 그만뒀다고 모른 척 말고 아무 때나 찾아와. 잠도 여기서 자도 돼.”
“그러면 되겠습니까.”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자네가 있으면 얼마나 든든하겠어.”
“그럼 부담 없이 놀러 오겠습니다.”
“놀러 오든, 밥을 먹으러 오든. 난 언제나 환영이야.”
막스가 피치와 콜린, 알프레도를 보며 고갯짓을 했다. 그러자 다들 짐 꾸러미들을 들고 밖으로 향했다.
“그럼 튼튼한 사무실을 넘겨준 거로, 인수인계는 끝내겠습니다.”
막스는 웃으며 스윙도어를 밀고 나갔다.
그런데 사무실 밖에 많은 사람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일부는 나무판자를 흔들고 있었는데, ‘영원한 우리의 보안관 막스’라 쓰여 있었다.
“그동안 수고했어, 막스 보안관!”
“죽을 때까지 로렌스 보안관인 거 절대 잊지 마!”
그동안 헛짓거리한 건 아닌가 보다.
일부 여성 팬들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다만, 대부분 유부녀라는 거.
짝짝짝짝.
막스는 허리를 숙여 감사를 전하고, 사람들 사이를 헤치며 거주지로 향했다.
그리고 새롭게 시작된 생활.
“작업할 땐 입 다물고 허리 펴지 않는다!”
“옛썰!”
- 어떤 새끼가, 대장 보안관 그만둬서 좋다고 했냐.
- 난 하루 죙일 붙어있으니까 숨 막혀 죽을 것 같아.
- 시발, 어딜 가질 않네.
“방금 노가리 깐 셋. 삽 내려놓고 튀어나온다 실시.”
“실시!”
“작업으로 지친 전우를 위해 강에서 물을 퍼온다 실시.”
“실시!”
로렌스 시에서 무상 제공한 부지.
지난 보름간 하루도 빠짐없이 작업한 덕분에 돌밭이던 땅에 돌들이 안 보인다.
현재 막스는 보안관이 아닌.
84명의 대원을 이끄는 로렌스 민병대 1연대 1중대의 중대장.
민병대 인원과 관계없이 언제나 고정적이라는 의미에서 레인이 조직한 중대다.
더불어 독립중대라 실질적 지휘자는 막스였다.
현재 작업은 막사를 짓기 위한 기초작업.
“다들, 손은 쉬지 않고 귀만 연다. 저녁 식사 후엔 여러분이 좋아하는 전술 교육이 있을 예정이다.”
- 아오.
“내용은 게릴라 전술에 임하는 자세 및 기본 전술. 그리고 효율적 운용에 관한 것으로 굉장히 중요한 교육이다.”
“......”
“끝나면 항상 그렇듯 시험을 치른다. 50점 이하 대원은 내일 오전에 처형식을 거행할 예정이다. 기대하도록. 알겠나.”
“옛 썰···.”
막스가 중대원들과 군사 기지를 건설하고 있는 동안, 찰스 주지사는 의원들과 캔자스 주의 밑그림을 그려나갔다.
작년 12월에 상정한 토피카 법안은 국회에서 표류하고, 레콤프턴의 또 다른 입법부는 자신들만의 헌법을 만들고 있었다.
6월이 끝날 즈음.
레콤프턴에서 부정선거를 조사하던 조사위원회가 피어슨 대통령에게 보고서를 내밀었다.
내용은 명백한 부정선거라는 게 핵심이었다. 보고서엔 당시 보더 러피안의 투표소 점거 및 협박한 사건이 낱낱이 기록되어 있었다.
그런데 프랭클린 피어슨은 조사위원회의 결과를 무시하고 혼란을 자초했다.
- 거짓으로 꾸며진 보고서는 인정할 수 없다.
그리고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 토피카에서 가짜 입법부를 해산하고 핵심인물들을 검거하라.
피어슨 대통령의 명령을 받은 건, 포트 리븐워스의 섬너 사령관.
결국, 그는 인근 요새 두 곳의 병력을 동원해 토피카를 둘러쌌다.
불과 두 달 전, 조카인 찰스 섬너가 노예주 하원에게 폭행을 당했음에도 자신은 노예주 편이 되어 토피카의 입법부를 강제 해산시키고 있는 개탄스러운 현실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로렌스가 지금까지 보였던 저항이 없었다는 점이었다.
아니, 오히려 찰스 주지사는 섬너 사령관을 위로하는 듯한 말을 건넸다.
“아무도 사령관을 탓하지 않습니다. 너무 마음에 담아두진 마십시오.”
찰스 주지사뿐 아니라 제임스 레인, 그리고 앤드류 리더 조차 눈빛이 담담하다.
이쯤 되니 섬너 사령관은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무슨 계획이 있나 봅니다. 저항도 없이 지금까지와는 너무 다르지 않습니까.”
“누가 그러더군요. 소나기는 피할 수 없으면 그냥 맞으라고.”
섬너는 순간 한 사람을 떠올리며 헛웃음을 지었다.
“...... 그 친구 보안관 그만두었다더니 여전하군요.”
“로렌스에서 아주 잘 지내고 있습니다.”
“흠. 혹 다른 말은 안 합니까?”
“이왕이면 레콤프턴으로 압송되었으면 좋겠다고 하더군요.”
“레콤프턴?”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던 섬너는 이내 묘한 미소를 지으며 턱을 매만졌다.
압송 지역을 선택하는 건 사령관 권한이다.
‘그렇지 않아도 어디로 데려갈지 고민이었는데, 내게 답을 알려주는구나.’
노예제 폐지론자들의 공격이 빤히 예상되는 상황에서 군의 요새로 데려가기엔 꽤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그런데 레콤프턴으로 이송한다면?
이후론 무슨 일이 벌어지든 자신의 손을 떠난 일이 아닌가. 자유주와 대통령에게 비난받을 이유도 없었다.
이미 사태를 예견하고 해법까지 제시했으니.
‘동양인의 머릿속이 궁금하구나.’
뇌 구조가 백인과 다른 건 아닌지 들여다보고 싶을 정도다.
괴로웠던 마음은 사라지고 섬너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그럼 레콤프턴으로 갑시다.”
*
두 달 전 노예주 하원이 자유주 상원을 폭행한 일이 중요한 건.
이때를 기점으로 남북전쟁의 정치적 분리가 시작되었다는 것이었다.
노예주 의원들은 폭행을 찬양하고, 심지어 당시 구타에 사용됐던 부러진 지팡이를 조각내 기념품으로 들고 다니기까지 했다.
여기에 또다시 피어슨 대통령이 자유주를 건드렸다.
조사위원회의 보고 결과 무시.
토피카 주요 인물 구금과 입법부 해산.
이는 노예제 폐지론자들의 폭력이 정당화되는 명분을 만들어냈다.
“중대 집합!”
“집합!”
막스는 장내에 모인 대원들을 날카롭게 훑어봤다.
“오늘 우리가 갈 곳을 알고 있나.”
“옛 썰!”
“뭘 해야 할지 알고 있나.”
“옛 썰!”
막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외쳤다.
“그럼 지금부터 작전을 시행한다!”
중대를 이끌고 막스는 레콤프턴으로 향했다.
< 월급이 적어서 그런가 > 끝
< 오사와토미 >
반년 만에 다시 찾아가는 레콤프턴.
처음은 살인범을 납치했고, 지금은 대통령이 인정한 폭도들을 구출하기 위해서 가는 중이다.
캔자스강을 따라 도착한 곳은 레콤프턴에서 4km 떨어진 곳. 막스는 대원들을 불러 모아 작전을 점검했다.
“헛간에 불을 질러 집을 터는 게 이번 작전의 핵심이다. 교전은 전면전이 아닌 치고 빠지는 식으로 시간을 끈다.”
“옛 썰!”
“그런데 존 브라운은?”
콜린의 말에 막스의 미간이 좁아졌다.
합류하기로 한 존 브라운이 오질 않았다.
그의 성격상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30분을 기다렸는데, 오지 않은 걸 보면 일이 생긴 것 같습니다. 이번 작전에서 존 브라운의 역할은 구출한 인원을 빼돌리는 것. 그 일은 우리가 할 수 있습니다.”
‘어차피 대원들을 중심으로 세운 작전.’
존 브라운은 없어도 그만이었다.
게다가 미주리 잭슨 카운티에 보더 러피안들이 집결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들이 레콤프턴으로 합류하면 구출 작전은 더더욱 힘들어지기에 서둘러야 했다.
하지만 마음은 영 찜찜하다.
로렌스 주요 인사들과 존 브라운. 이 두 가지 상황을 두고 선택하는 느낌이랄까.
원 역사에선 로렌스 약탈 직후 존 브라운은 포토와토미 대학살을 벌인다.
그리고 이 사건으로 블랙 잭이란 마을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뒤이어 보더 러피안은 존 브라운이 사는 마을 오사와토미에 대대적인 공습을 강행한다.
하지만 분명 역사는 바뀌었다.
로렌스 약탈에서 오히려 승리를 거두고 존 브라운은 포토와토미를 공격하지 않았다.
따라서 그가 사는 오사와토미 또한 공격받을 이유가 전혀 없었다.
‘내가 뭐를 놓쳤지.’
스트링팰로우 형제와 사무엘 존스가 죽으면서 애치슨은 보더 러피안을 이끄는 리더를 새로 내세웠을 것이다. 그게 누군지는 모르나, 지금 상황을 의도적으로 노린 거라면 꽤 성가신 상대였다.
“터커. 분대원들을 이끌고 존 브라운이 있는 오사와토미 상황을 파악하도록 해. 나머지는 계획대로 작전을 펼친다.”
터커는 5시 방향으로 향하고, 막스는 대원들과 함께 레콤프턴 마을로 이동했다.
섬너 사령관이 토피카의 가짜 입법부를 체포하고 레콤프턴에 넘긴 지도 사흘째가 되었다.
다른 의원들은 찰스, 레인 앤드류 리더의 구금과 입법부 해산을 조건으로 풀려났다.
그렇게 감옥에 있는 전 주지사 리더는 오늘도 비난을 성토했다.
“가짜가 진짜를 억압하는 빌어먹을 세상! 부정선거를 했음에도 창피한 줄 모르니, 뻔뻔한 놈들만 늘어가는 이 나라가 어떻게 될지 심히 걱정되는구나! 양심이 있다면 당장 풀어주어라!”
“양심이 있었으면 이런 짓을 하겠습니까.”
찰스는 부질없다며 고개를 젓고, 레인은 진작 주지사였을 때 잘하지 그랬냐며 눈빛으로 리더를 쳐다본다.
“대체 언제까지 우릴 여기에 가둘 거냐고!”
텅.
리더의 말이 듣기 싫은지 한 남자가 다가와 발로 문을 걷어찼다.
“거, 조용 좀 하쇼. 재판이 열리고 결과가 나올 때까지 나갈 일은 없을 테니까.”
“이보게 쉐라드. 내가 주지사였을 때 당신한테 섭섭하게 한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언제 적 얘기를 하는 거야.”
윌리엄 쉐라드.
죽은 사무엘 존스의 후임으로 더글라스 카운티의 보안관이 된 자다.
당연히 노예제 옹호론자였으며 노예주의 지지를 받아 선출된, 제2의 존스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인물이었다.
“하여간 입 다물지 않으면 저녁밥 없는 줄 아쇼.”
셰라드는 이죽거리며 문에서 멀어졌다.
레콤프턴에는 제대로 된 감옥이 존재하지 않는다.
벽돌로 지어진 20평 남짓한 건물은 본래 레콤프턴의 민주당 본부로 사용하는 곳이었다.
그런데 이곳을 임시 구금소로 내줬다?
새로 창당한 캔자스 자유당을 조롱한 것이라 볼 수 있었다.
“그나저나, 우리 막스 보안관은 얼마나 멋지게 등장하려고 뜸을 들이는지 모르겠네요. 이러다 피 말려 죽은 다음에 오는 건 아닌지 원.”
앤드류 리더는 창밖을 보며 긴 한숨을 내쉬고. 찰스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레콤프턴에만 200명 넘게 진을 치고 있어요. 말이 캔자스 민병대지 미주리에서 넘어온 놈들이 절반은 넘을 겁니다.”
“만약 막스가 온다 해도 우릴 빼내긴 쉽지 않을 거요. 더구나 로렌스를 비워두고 제이호커스 전부를 이끌고 구출하러 오기엔 리스크도 만만치 않습니다. 막스 보안관도 신중할 수밖에 없겠죠.”
레인의 말마따나, 로렌스를 지키고 있을 4백여 명의 민병대는 쉽게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다. 비어있는 마을을 노린다면 더 큰 참사가 벌어질 테니.
찰스와 리더의 입에서 또다시 한숨이 흘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