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이때.
타아아앙!
멀리에서 총성이 울려 퍼졌다.
레인은 벌떡 일어나 리더를 밀어내고 창밖을 쳐다봤다.
이후 몇 발의 총성이 더 이어졌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감옥을 지키던 자들의 움직임이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주지사 집무실로 총알이 날아왔다!”
“입법부 의회실도 마찬가지야!”
‘주지사와 입법부를?’
레인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런 전략을 구사할 사람은 오직 한 사람뿐이다.
“이곳은 20명만 남기고, 나머지는 두 곳을 지원해!”
주지사와 입법부를 노릴 정도면 필시 대규모 병력일 터. 지시를 내리는 존스 후임 셰라드의 목소리가 점점 멀어져갔다.
“마, 막스 보안관일까요?”
“이제는 막스 중대장이겠죠.”
앤드류 리더의 말에 레인의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그가 아니면 누가 이런 짓을 벌인단 말인가.
*
막스 중대의 2소대 소대장 콜린.
저격으로 주지사 윌슨 섀넌의 집무실 유리를 박살 낸 직후. 같은 소대 1분대장 피치와 2분대장 조 짐 주니어가 흰 건물로 지어진 3층 입법 회관에도 총격을가했다.
두 곳의 거리는 불과 50m 내외.
순식간에 건물 안은 아수라장이 되고, 레콤프턴에 있던 민병대들이 허겁지겁 두 곳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1, 2분대가 교전하는 동안 3, 4분대는 위치를 이동. 적의 허리를 자른다.”
“옛 썰!”
콜린의 지시에 은밀하고 신속한 움직임이 이루어졌다.
“건물 뒤쪽이다! 놈들에게 총을 쏴!”
그런데 한창 교전이 일어날 때, 다른 쪽에서도 총탄이 날아왔다.
탕! 탕!
“서쪽 건물 뒤다!!”
그렇게 적들이 우르르 몰려들면.
탕! 탕!
“도, 동쪽에도 있다!”
적들이 우왕좌왕하는 동안 가장 중요한 일은 감옥에서 벌어졌다.
20명이 지키고 있지만 이들을 처리하는 건 문제도 아니었다. 이때만큼은 적보다 수가 많았으니까.
철컥!
두 배에 가까운 적들이 갑자기 튀어나와 총을 겨눈다. 감옥을 지키던 보더 러피안들은 기겁하며 눈알을 굴렸다.
“얼굴 가린다고 모를 줄 아냐, 이 망할 제이호커스 놈들아!”
“주지사와 입법부를 공격하고도 무사할 줄 알아!?”
“닥치고, 무기나 바닥에 던져.”
“흥. 문 열쇠는 우리한테 없으니까 재주껏 열어...!”
파직!
쿵!
네이선 로어가 전투 방패를 앞세워 문을 부쉈다. 그리고 이내 천으로 얼굴을 가린 막스가 감옥 안으로 들어갔다.
“오오, 역시 막···.”
막스가 검지로 입을 다물라는 시늉을 하고.
손으로 입을 막은 앤드류 리더는 그새 초췌해진 얼굴로 눈물까지 글썽거렸다.
찰스는 웃음을 레인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막스에게 다가왔다.
“좀 늦었습니다. 가시죠.”
적들을 감옥 안으로 처넣고, 네이선 로어의 분대원은 전투 방패를 앞세워 요인들을 엄호했다.
“1분대는 나를 따라오고, 나머지는 우리가 빠져나간 직후 접선지역으로 간다.”
“옛 썰!”
찰스와 레인, 앤드류 리더는 대원과 함께 말을 탔다. 막스를 따라 이동한 곳은 북쪽 캔자스강의 선착장.
“이걸로 옷을 갈아입어요.”
막스가 건네준 건 벌목공들이 입는 작업복.
도끼와 톱자루까지 챙겨주는 세심함도 잊지 않았다. 원 역사에서 대통령의 체포 명령이 떨어진 앤드류 리더가 캔자스를 벗어날 때 실제로 사용했던 방법이었다.
“자유주인 일리노이로 가셨다가 잠잠해지면 오십시오.”
범죄자를 빼내기 위해 막스는 주지사와 입법 의원까지 저격했다.
죽은 사람이 없더라도 사건이 일파만파 커질 것은 자명한 사실. 자신들과 로렌스를 보호하려면 일리노이에서 조용할 때까지 숨어 있는 게 최선이었다.
“2분대장은 대원 넷을 추려 캔자스 영토를 벗어날 때까지 엄호하도록.”
“옛 썰!”
“이 일은 절대 잊지 않겠네.”
“로렌스에서 보세나.”
찰스와 앤드류 리더, 레인과 악수를 나누고. 7명은 나룻배를 타고 북으로 건너갔다.
구출 작전은 성공적으로 끝마쳤지만 막스의 얼굴은 그리 밝지 못했다.
대원들이 걱정되고 존 브라운도 신경 쓰였다.
집결지에 모인 막스는 부상당한 대원을 보며 얼굴을 찌푸렸다.
“총상 환자가 셋. 그 외 심각하지 않은 부상자가 다섯입니다.”
듀들리의 보고에 막스는 부상자들을 쳐다봤다. 그러자 다들 시선을 바닥으로 떨군다. 얼굴을 찡그렸던 막스는 아차 싶었는지 이내 미소를 지었다.
안타까움이었지 그들을 탓하는 게 아니었으니 말이다.
“전투가 발생하면 부상자가 나오는 건 어쩔 수 없다. 훈련을 게을리한 것도 아니고, 그저 오늘 운이 조금 안 좋았던 것뿐이야. 덕분에 작전을 성공적으로 끝냈으니 치료에만 전념하도록.”
“옛 썰!”
부상자를 말에 태우고 로렌스로 향하던 중.
존 브라운의 상황을 살피고 온 터커의 분대원이 달려왔다.
‘역시. 일이 터지긴 터졌구나.’
별일 아니었으면 혼자 올 이유가 없을 테니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오사와토미 마을에서 교전이 일어났습니다!”
존 브라운의 부대와 보더 러피안들이 전투를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로렌스 민병대가 지키고 있어서, 상대적으로 취약한 오사와토미를 노린 건가. 그것도 하필 오늘?”
콜린이 인상을 찡그렸다. 그의 말마따나 사건이 일어난 타이밍을 보면 의도된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정보를 이용하는 것도 이전과 다른 점이었다.
‘누가 판을 짰는지, 존스와 스트링팰로우보다 까다로운 놈이다.’
“가는 길에 부상자와 듀들리는 로렌스에 남고, 나머지는 오사와토미로 향한다.”
“옛 썰!”
*
타앙! 타앙!
마을 곳곳은 불길에 휩싸이고, 오사와토미 인근 숲에선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마을에 가까이 다가갈 즈음.
콜린이 막스에게 말을 건넸다. 그는 오사와토미 지리를 꽤 잘 알고 있었다.
“마을에서 교전을 벌이다 숲으로 퇴각한 모양이야.”
“거긴 어떤가요?”
“적은 인원으로 버티긴 괜찮은 곳이지. 인디언들과 관계가 좋은 존이라면 그들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을 거고.”
오사와토미에 거주하는 인디언들은 포타와토미족과 오세이지 족. 하지만 백인들에게 밀려 이곳에 거주하는 자들은 많지 않았다.
이윽고 콜린과 작전을 세운 막스는 곧 대원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마을부터 되찾는다. 2소대는 숲과 마을 사이에 매복하고, 1소대는 나와 함께 마을에서 날뛰는 적들을 소탕한다.”
“옛 썰!”
콜린은 2소대를 이끌고 숲과 마을 사이의 풀숲에서 진을 치고, 막스는 4개의 분대를 이끌고 진입을 시도했다.
“이번 작전은 물레방아다. 순서는 1, 3, 4분대. 2분대는 나와 함께 움직인다.”
1분대는 과감하게 마을로 들어서며 빠르게 리볼버 여섯 발을 소진했다. 그럼 다음 뒤로 빠지면, 이어서 이후 3분대, 다음은 4분대가 쏘는 식이었다.
재장전의 여유도 생기고, 위치를 수시로 바뀌는 바람에 적들의 혼란을 유도할 수 있었다. 물론 압도적인 전력 차이에선 불가능한 전술이었다.
탕! 탕!
막스가 마을에서 분탕치는 놈들을 처치하는 동안. 존 브라운을 잡기 위해 숲으로 들어갔던 보더 러피안들이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놈들의 지원군이 도착한 모양이다. 목적은 달성했으니, 뒤로 빠진다!”
죽은 스트링팰로우 대신 보더 러피안을 이끄는 새로운 두 명의 지휘관이 있다.
미주리주 잭슨 카운티의 하원인 존 윌리엄 리더. 그리고 작가와 신문 편집장이자 한때 군인이었던 헨리 클레이 페이트란 자가 스트링팰로우 형제를 대신했다.
오늘의 중심은 헨리 클레이 페이트.
그가 이끄는 보더 러피안들이 몇 명의 남자들을 포박한 채 숲에서 나왔다.
매복한 채 지켜보던 콜린은 그를 알아보곤 눈을 찡그렸다.
‘젠장, 프레데릭이 잡혔구나.’
포로로 잡힌 건 존 브라운의 셋째 양아들.
총에 맞은건지 어깨 부근에 피를 흘리며 비틀거렸다. 그 외에도 존 브라운을 따르는 남자 넷도 놈들의 수중에 떨어졌다.
페이트는 소리를 질러 마을에 있는 보더 러피안들을 합류하도록 지시했다.
곧이어 그들이 페이트와 합쳐지자 병력은 대략 백 오십이 넘어갔다. 수도 만만치 않았지만, 인질까지 데리고 있어 쉽게 공격하기 힘들었다.
뒤로 물러서는 페이트가 큰소리로 외쳤다.
“존 브라운! 더는 영웅 놀이 그만하고 캔자스를 떠나라! 오사와토미 마을이 이렇게 된 건 결국 당신이 주제넘게 끼어든 것 때문이니까!”
강성 노예제 옹호론자인 페이트는 평소 존 브라운을 경멸하던 자였다.
그가 발행하는 신문 <웨스트포트 보더(국경) 스타>는 줄곧 존 브라운의 노예 해방 운동을 비판해 왔으며, 특히 그를 중심으로 모이는 자유주의 기금이 무장하는 데 사용된다는 걸 알고는 반드시 제거해야 할 인물로 여기고 있었다.
‘제거를 못 하면, 기세라도 꺾어야지.’
존 리드와 페이트는 인질과 함께 미주리로 물러나려 했다.
이때 숲에서 존 브라운의 외침이 들려왔다.
“네놈들이 무슨 짓을 하더라도, 내 신념은 변치 않는다!”
페이트는 코웃음 치며 대꾸했다.
“아들과 동료들이 잡혀가든 말든. 정작 본인은 목숨이 아까워 숨어서 지껄이고 있구나! 이 얼마나 싸구려 신념인가!”
“원래 말만 번지르르 한 놈들이 그렇지.”
보더 러피안들이 페이트의 말에 맞장구치며 비아냥거렸다. 명백한 도발이었다.
싸구려 신념이라.
과연 존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도발에 넘어가는 대신 복수를 다짐하겠지.’
포토와토미 대학살을 막아놨더니, 이런 식으로 존 브라운의 분노를 만들어내고 있다.
마을을 정리한 막스는 대원들을 이끌고 콜린과 합류했다.
“내가 총 쏘기 전에 대치상황을 만들어요.”
“쪽수가 부족한데.”
“언제 많았던 적 있었어요?”
“...... 없었지.”
막스는 한 분대를 이끌고 그리 멀지 않은, 언덕으로 올라갔다.
잠시 후.
얼굴을 천으로 감싼 콜린과 대원들은 몸을 일으키며 소리쳤다.
“페이트! 개소리 말고 인질이나 내놔.”
보더 러피안들은 순식간에 늘어난 병력을 보며 움찔했다. 분명 많은 숫자는 아니다.
하지만 숲속에서 언제 튀어나올지 모를 존 브라운의 병력을 생각하면 안심할 순 없는 상황이었다.
페이트는 싸움 대신 물러나는 걸 택했다.
“다가오면 인질들이 죽는다는 걸 명심해! 섣불리 움직일 생각 마!”
막스와 페이트의 거리는 불과 200m 내외.
스코프 없이도 저격이 가능한 거리다.
하지만 좀 더 미세하게 맞추기로 했다.
‘네놈들 전부가 내 인질이다.’
막스 뒤에는 분대원들이 8자루의 라이플을 들고 대기중이다. 재장전하는 걸 감안해도, 최소 30명은 잡을 수 있었다.
스코프의 중심이 페이트의 얼굴에서 살짝 오른쪽으로 이동했다.
타아앙!
페이트의 귓볼이 떨어져 나갔다.
“끄윽. 이, 이게 무슨...!”
타아앙!
또다시 들려온 총성과 함께 페이트 옆에 있는 자가 쓰러졌다. 문득 스트링팰로우 형제가 죽은 상황이 떠오른다. 당시 옆에 있던 페이트는 그 순간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의 눈이 공포로 잠식될 때, 언덕 너머에서 막스가 피식거렸다.
‘이런 작전을 벌인 놈치곤 모자란 것 같은데.’
스트링팰로우나 존스보다 특출날 건 없어 보인다.
그런데 이때.
‘어떻게 알고 여길 나타났지?’
그것도 지금 타이밍에.
섬너 사령관이 소수의 병력을 이끌고 나타났다.
< 오사와토미 > 끝
< 저 사람은 누굽니까 >
“헨리 클레이 페이트! 당장 포로들을 놓아주시오!”
뜬금없이 등장한 섬너 사령관은 포로를 데리고 있는 보더 러피안을 향해 소리쳤다.
귓불이 날아간 페이트는 수하가 건네준 솜을 귀에 대며 이를 갈았다.
“난 분명 물러나려 했소! 그런데 갑자기 어떤 새끼가 나를 쐈소! 섬너 대령도 눈이 있으면 내 귀 상태가 보일 것 아니오!”
“마을에 불을 지르고 포로까지 잡아가는 마당에, 머리에 안 쏜 게 천만다행인 것 같은데. 안 그렇습니까?”
페이트는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었다.
“섬너 대령! 당신이 폭도들을 요새로 데려가지 않고 레콤프턴에 놔둔 바람에 놈들이 도망을 가지 않았소! 지금 말하는 것도 그렇고 당신은 대통령의 명령을 무시한 데다, 명백히 자유주 편을 들고 있는 것이오!”
‘레콤프턴 소식을 벌써 알고 있다 이건가.’
언덕에 누워 턱을 괸 막스는 스코프로 페이트와 섬너 장군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상처가 덧나기 전에 귀 치료나 하는 게 어떻겠소. 내 사상이 재단 당하는 것 같아 기분 좋진 않구려.”
섬너 사령관은 담담하지만 날카로운 눈빛으로 페이트를 쏘아봤다.
하지만 총을 맞아서 그런지 페이트는 인질들을 풀어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페이트, 정 내 말을 못 듣겠다면 중재가 아닌 적극적 개입을 하게 될 거요.”
그런데 이때, 섬너 사령관 옆에 있던 자가 끼어들었다.
“미주리주의 주지사께서 우리에게 중재를 요청했습니다. 그러니 포로는 놔주고 이쯤에서 물러나시지요.”
‘미주리주 주지사?’
스털링 프라이스라는 자로 담배를 재배하는 농장주이자 노예 소유주이다.
데이비드 라이스 애치슨의 군 무기고 탈취사건을 눈감아 주고, 보더 러피안의 로렌스 습격에도 응원을 보내던 자가 왜 중재를 부탁했을까.
이와 더불어 또 하나의 의문이 생긴다.
감히 사령관의 대화에 끼어든 남자였다.
‘계급이 중위인 것 같은데.’
섬너 사령관은 굳은 얼굴로 입을 다물고 있다. 그런데 남자의 말이 효과가 있었는지, 페이트는 흥분을 가라앉히며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미주리 주지사께서 그리 말씀하셨다니 따를 수밖에요. 허나 포로를 놔줬다가, 존 브라운이 다른 마음을 먹으면 어떡합니까?”
포로를 돌려준 순간 공격하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한 확답이 없다면 쉽게 따를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때.
“페이트!”
숲에 숨어 있던 존 브라운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뒤로는 50여 명의 제이호커스들이 함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