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로, 이번 원정 작전은 극비라네. 젭 스튜어트가 외부와 접촉할 일은 없을 걸세.”
섬너는 짙은 미소를 지었다.
극비라는 구실로 젭 스튜어트의 눈과 귀를 막아둔 것이다.
‘이 양반,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드네.’
에드윈 보스 섬너.
북부군 최초의 장군으로 임명될 자.
주목해야 할 건 그의 집안이다.
현재 장교로 복무하는 두 아들 역시 남북전쟁 이후 장군이 될 사람이었다.
‘아무튼, 인연을 쭈욱 이어가자고.’
*
“잠시 들를 데가 있어.”
섬너와 헤어진 막스는 로렌스로 돌아가는 대신 리븐워스의 제임스 가족이 사는 집으로 발길을 옮겼다.
함께 온 분대는 조 짐 주니어가 이끄는 1소대 4분대원 10명이었다.
“와, 이게 얼마 만이야!”
코닐이 소란을 떨며 막스를 반긴다.
“그동안 좀 큰 것 같네.”
“당연하지. 좀 있으면 막스보다 더 클걸?”
“그래 꿈은 크게 가져야지.”
입을 삐죽 내미는 코닐은 뒤에 서 있는 자들을 발견하곤 흠칫하며 뒷걸음질 쳤다.
각 잡고 서 있는 열 명. 하나같이 맹수와 같은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오우, 쉣!’
“다들 들어가지.”
“옛 썰!”
코닐이 침을 꿀꺽 삼킬 때, 막스는 대원들과 함께 집 안으로 들어갔다.
걷는 자세에도 각이 제대로 잡혀있었다.
‘막스는 어떻게 저런 자들을 지휘하냐.’
처음엔 저러지 않았다는 걸 코닐은 모르고 있었다.
한편, 거실에선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메리가 막스에게 눈으로 인사를 했다.
뒤에 시커먼 남자들이 우르르 몰려들지만, 막스 때문인지 전혀 놀라지 않았다.
아니면 모성애 넘치는 어머니의 침착함이던지.
안정된 생활 덕분에 기다리던 코닐의 여동생이 생겼다. 태어난 지, 칠 개월 된 아기의 이름은 릴리 헤리스.
코닐이 막스에게 입을 삐죽 내밀며 말했다.
“쟤는 맨날 먹고 자는 게 일이야.”
“아기는 원래 그런 거야.”
“난 좀 특별하지 않았을까.”
“그럼 지금도 특별해야겠지?”
할 말이 없는 코닐은 주방에서 삶은 감자를 가져왔다.
“이것들 좀 드세요.”
인디언인 조 짐 주니어에게 호기심이 일었지만, 물어볼 엄두가 나질 않는다.
얼마 후, 잠든 릴리를 요람에 눕힌 메리가 막스에게 다가와 포옹했다.
“정말 얼굴 보기 힘들다니까.”
“일자리가 없으면 자주 보겠죠.”
“...... 못 봐도 좋으니까 부지런히 일해.”
“역시 엄마한텐 돈이 최고라니까.”
메리는 고개를 젓는 코닐에게 눈을 흘겼다.
막스는 요람으로 다가가 잠든 아기를 쳐다봤다. 오밀조밀 메리를 쏙 빼다 박았다.
‘험난한 세상에 태어났구나. 그래도 행복하고 건강하게 자라렴. 삼촌이 도와줄게.’
막스는 미소를 지으며 릴리에게 시선을 떼었다.
“제임스는 요즘 어때요?”
“별로 안 좋아. 러셀이 대장간보다 다른 곳에 신경을 쏟고 있거든.”
“뭘 하는데요?”
“아이작 코디라는 사람하고 제이호커슨지 뭔지 모집하러 다니고 있어. 그래서 얼마 전엔 철물점이 노예제 옹호론자들한테 공격까지 받았지 뭐야.”
열성 노예제 폐지론자들은 행동으로써 신념을 드러낸다. 옹호론자들도 마찬가지고.
캔자스 준주가 자유주든 노예주든. 한쪽으로 결판이 날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나저나, 아이작 코디랑 다니면 위험할 텐데.’
리븐워스가 아닌 북부의 자유주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그나마 피해가 없을 뿐.
노예제 옹호론자들이 눈에 불을 켜고 그를 죽이려 하고 있었다.
“제임스도 거기에 동참하는 건 아니죠?”
메리는 감자를 오물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막스가 말을 해줘서 다행이지. 안 그랬으면 제임스도 러셀과 함께했을 거야.”
색깔을 드러내지 않고 여전히 중립을 유지하고 있다는 말이다. 다만.
“요즘 여기저기 벌어지는 일 때문에 제임스도 꽤 동요하는 것 같아. 그러니까 막스가 말 좀 잘해줘. 갓난아기 두고 위험한 짓 하면 안 되잖아.”
앞으로 그럴 일은 없을 터.
막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대장간에 들러서 제임스랑 같이 퇴근해야겠네요. 4분대는 여길 지키도록.”
“옛 썰!”
코닐은 불안함을 느꼈지만 메리는 크게 상관하지 않았다. 막스가 신뢰하는 자라면 일단 믿고 보는 메리였다.
Black Smith.
쇠를 달구는 화로의 열기. 대장장이들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 올라있다.
캉, 캉, 캉.
모루 위의 쇠를 두드리던 제임스가 말발굽 소리에 망치를 멈췄다.
마틴과 브렛, 홀렌도 굽혔던 허리를 펴며 다가오는 사내를 쳐다봤다.
“제이호커스 리더다.”
“와, 진짜.”
말에서 내린 막스에게 직원들이 몰려가고, 장갑을 벗은 제임스가 손을 내밀었다.
맞잡은 손에는 땀이 흥건했다.
“제가 방해한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방해는 무슨.”
“그 유명한 제이호커스 리더를 이렇게 보게 될 줄이야.”
“막스님 소문은 항상 챙겨 듣고 있습니다!”
과한 행동으로 허리를 굽실거리질 않나, 수줍게 악수를 청하기도 한다.
“나 놀리는 거지?”
“어이구. 저희가 어찌 감히!”
“리더 아니고. 그냥 임시로 맡은 거야.”
“임시는 아무나 합니까요. 하여튼, 일 끝나고 보자고!”
그 일이란 게 많지 않아 금방 끝내버렸다.
보통 그날 만든 것들은 한쪽에 늘어놓기 마련인데, 오늘은 곡괭이 두 자루 뿐이었다.
“내가 오기 직전에 일을 시작했나 보네요.”
“이 삽을 만들기 위해 힘을 비축했거든.”
다른 사람도 아닌 제임스 입에서 흘러나온 말이다. 안 본 사이 뻔뻔함이 는 것 같다.
일이 끝난 뒤엔 같지도 않은 농담을 주고받았다.
“오늘도 다들 고생했어.”
“날이 갈수록 일이 힘들어지네요.”
“내일은 더 힘들 거야. 각오들 하라고.”
서로 낄낄대는 게 자기들만의 위로 방식인 듯싶다. 일거리 없는 한가함을 저런 식으로 한탄하고 있었다.
“오늘은 우리 집에 가서 한잔하지.”
“괜찮겠어요? 부인께서 화내실 것 같은데.”
“무슨 소리야. 막스가 왔잖아.”
제임스는 막스를 방패 삼아 직원들을 이끌고 집으로 데려갔다.
메리는 제임스를 노려봤지만, 이내 웃으며 그들을 반겼다.
무사히 넘겼다 싶었을 땐, 집 뒤뜰에서 음식을 나르는 시커먼 남자들을 볼 수 있었다. 다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을 때.
“제 분대원들입니다.”
막스는 조 짐 주니어와 대원들을 소개해주었다.
말만 들었지, 실제로 제이호커스들을 이끄는 모습은 처음 아닌가.
대장간 직원들은 홀린 듯 그들을 쳐다봤다.
음식 나르는 모습도, 고기를 굽기 위해 불을 피우는 모습도 뭔가 멋져 보인다.
‘이참에 대장간 때려치울까.’
하지만 그들은 모르고 있었다.
한때는 이들 역시 자신들과 같은 평범한 청년들이었음을. 막스와 함께 구르면서 흘린 땀이 젊은 제이호커스를 완성 시켰음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음식이 준비되는 동안 막스는 집 주변을 거닐며 제임스와 대화를 나누었다.
“철물점이 공격당했다면서요?”
“공격까지는 아니고. 일종의 낙인이 찍혔다고나 할까. 노예제 옹호론자들이 가게 벽에 낙서하고, 협박했거든.”
“러셀은 뭐래요?”
제임스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보고 대장간과 철물점을 대신 맡아달라더군. 월 40달러를 주는 조건으로.”
“아예 마음이 떴나 보네요.”
제임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에 따르면 러셀은 일찍이 노예제 옹호론자들의 타겟이었다고 했다.
리븐워스 초기 정착민이지만, 캔자스 노예제 갈등이 번지면서 기존에 드러냈던 성향으로 인해 공격당했다는 것이다.
“얼마나 분했으면 일리노이까지 가서 사람들을 모으겠어. 그 마음 나는 이해해.”
막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본론을 꺼내었다.
젭 스튜어트의 편지를 상세한 내용은 빼고 핵심만 전했다.
“우, 우리 가족을 노릴 수 있다고?”
제임스의 눈가가 파르르 떨린다.
막스는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차라리 잘 됐습니다. 러셀도 대장간에 마음이 떴으니, 이참에 옮기세요.”
“..... 어, 어디로?”
이어진 막스의 말은 복잡한 제임스의 머리를 말끔히 정리해버렸다.
“로렌스요.”
*
저녁 식사 도중 제임스가 폭탄선언을 했다.
“우리 내일 로렌스로 이사 간다.”
이미 내용을 알고 있는지 릴리를 품에 안은 메리와 코닐의 입가엔 미소가 걸려있었다.
당황한 건 대장간 직원들이었다.
“우, 우리는요 제임스? 막스?”
마틴은 말까지 더듬으며 둘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대장간은 그들의 유일한 생계 수단이 아닌가.
오너인 러셀에 이어 제임스까지 떠나면 문을 닫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막스는 불안해하는 마틴과 브렛, 홀렌을 보며 말했다.
“로렌스에 새로운 대장간을 만들 거야. 앞으로 차원이 다른 물건들을 만들 텐데. 너희도 함께하는 건 어때?”
“.....!”
“진짜 우리까지 가도 되는 거야?”
셋의 반응이 뜨거웠다.
집이나 땅 걱정은 안 되는 모양이다.
“가능하면 빨리 움직였으면 좋겠는데.”
“물론이지! 가져갈 짐도 없는데 뭘.”
다들 가족이 있지만, 사는 게 워낙 힘들어 살림살이도 많지 않다. 마차 하나에 다 때려 박아도 공간이 남을 만큼 조촐했다.
막스는 저녁 식사를 끝내고 홀로 로렌스로 돌아왔다. 조 짐 주니어와 분대원은 만약을 위해 남겨두었다.
*
다음날, 아침 일찍 막스는 수뇌부와 회의를 열었다.
찰스와 레인이 없는 지금, 로렌스 민병대의 주축은 초기 정착민이자 마을 위원들, 그리고 존 브라운이다.
다들 새로운 주지사의 성향이 파악되기 전까지, 휴식기가 이어질 거라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막스는 장내를 둘러보며 중요한 사실을 전했다.
“현재 찰스 주지사와 레인, 앤드류 리더 의원이 일리노이에 있다고 하더군요. 그곳에서 자유주의 지지를 끌어내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벌이는 모양입니다.”
“허, 그러다 적들에게 공격당하면 어쩌려고?”
“하여간 용기들이 대단하다니까.”
무사하다는 것에 안도하는 한편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이때 존 브라운은 이마를 찌푸리며 말했다.
“주지사가 바뀌는 지금이 복귀할 타이밍일 것 같은데. 일리노이가 자유주라 해도, 노예제 옹호론자도 많은 곳이네. 게다가 바로 옆이 미주리주 아닌가.”
막스는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그래서 제가 직접 데려올 생각입니다.”
물론 이는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
막스는 이번 기회에 로렌스를 벗어나 개인적인 일을 처리할 생각이다.
스미스&웨슨의 창업주와의 만남.
일리노이 시카고에 있는 핑커톤 사무실의 방문.
‘이제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해야지.’
영주권이 나오기까지 두 달 남았다.
< 대장간 때려치울까 > 끝
< 일리노이로 가는 길 >
제임스 가족은 조 짐 주니어와 대원들의 도움으로 반나절 만에 짐을 꾸렸다.
리븐워스에서 로렌스로 향하는 길.
덜커덩, 덜커덩.
“우리 아가는 이사 가는 거 처음이지? 마차가 재미있어? 얘 신났네, 신났어.”
마차가 흔들릴 때마다 릴리는 까르르 손을 휘저으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네 오빠도 처음엔 이렇게 잘 웃더니, 이젠 웃질 않네.”
“열두 번 이사해봐요. 웃음이 나오나.”
“우리가 그렇게나 많이 했었나?”
메리는 머릿속으로 숫자를 헤아려봤다.
그러다 본인도 놀랐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다가 이내 웃음을 터트렸다.
“너 낳기 전까지 하면 엄마는 25번이나 이사했어. 그래도 이렇게 웃잖니.”
메리는 아일랜드 감자 대기근으로 이곳저곳 옮기다 결국 미국 땅까지 밟게 되었다.
부모님과 형제들 손에 이끌려 동부에 정착하기 위해 온갖 고생은 다 하고, 아일랜드 거지라며 따돌림당하고 무시당한 일도 비일비재했다.
“그런데 그때, 네 아빠가 딱 하고 나타나서 애들을 혼내줬지!”
“이사보다 더 많이 들었네요, 그 얘긴.”
“릴리한테 말한 거거든?”
제임스는 미소를 지으며 모자간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잠시 후 메리는 옆에 따라오는 조 짐 주니어에게 물었다.
“근데 가면 우리가 머물 곳은 있을까요? 상황이 갑작스러워서 집은 당연히 없을 텐데.”
“글쎄요. 당장 어디서 지내게 될 건지는 저도 못 들어서요.”
“그렇군요.”
다 큰 코닐이야 상관없지만, 메리는 아기가 신경 쓰였다. 어렵게 둘째를 가진 데다 온갖 질병에 척박한 환경 탓인지 이 당시엔 죽는 아이들이 많았으니 말이다.
그렇게 메리가 걱정 반 기대 반으로 로렌스에 도착했을 때, 나루터 선착장에 막스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 옆엔 거구의 흑인이 함께 서 있다.
“알프레도라고 앞으로 대장간에 함께 일할 거에요.”
“잘 부탁드립니다!”
“나야말로 잘 부탁하네.”
전날 막스는 솜씨 뛰어난 흑인이 있다고 제임스에게 말해두었다.
‘앞으로 평범한 물건은 안 만들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