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2화 (62/360)

제임스는 막스가 대장간에 관심이 많다는 걸 이전부터 알고 있었다. 구리 탄두는 시험 삼아 만든 것일 터. 막스가 작심하고 만든다면 필시 대단한 게 나올 거라 확신하고 있었다.

“그런데 짐들이 크게 늘진 않았네요.”

막스는 마차 안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짐칸에 다 때려 넣을 수 있을 정도로 조촐하다. 오레곤 트레일에서 캔자스로 넘어올 당시와 비슷했다. 

“뭐, 거기도 우리 집은 아니었잖아.”

러셀이 마련해준 집은 월세로 이용하고 있었다. 처음엔 영구적으로 살 생각이었지만 리븐워스의 혼란한 상황과 노예제 옹호론자들이 득실거리는 곳은 정이 가질 않았다.

“그동안 낸 월세가 아깝긴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잘한 판단이지.”

“흠. 일단 저를 따라오세요. 4분대는 이만 돌아가서 쉬도록 해. 고생했다.”

“옛 썰!”

조 짐 주니어와 대원들은 우렁찬 대답과 함께 기지로 돌아갔다.

메리는 왜 따로 가는지 의아해하며 물었다.

“막스, 너도 막사에서 먹고 잔다면서?”

“저야 그렇지만, 아기를 그런 곳에서 지내게 할 수 있나요.”

막스가 제임스 가족을 데려간 곳은 프리스테이트 호텔. 흰 벽돌로 지어진 3층짜리 건물을 본 메리는 눈을 껌뻑거리고, 제임스는 부담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와··· 이게 뭐야.”

“우, 우리보고 여기서 지내라고?”

“적당한 집을 지을 때까지만요.”

이때 오너인 엘드릿지가 밖으로 나왔다.

“로렌스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제임스는 마부석에 내려서는 옷에 손바닥을 문질러 악수를 청했다.

“제임스 헤리스입니다.”

“호텔 오너 셸라 엘드릿지입니다. 앞으로 이곳에 정착하신다고요?”

“그렇게 될 것 같습니다.”

“우리 막스 보안··· 아니 대장? 자네 대체 직함이 뭐야. 아무튼, 이 친구의 귀한 손님이면 제게도 귀한 손님이죠.”

호텔 오너의 과한 친절에 제임스는 머리를 긁적거렸다. 

여기서 더 나아가 엘드릿지는 호텔 직원들을 불러 마차 짐을 정리하도록 했다.

“어차피 겨울은 이곳에 지내야 하니까, 내 집이라 생각하세요. 오, 귀여운 아기도 있었군요. 라이미!”

“예!”

“당장 가서 아이가 지내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물품하고 가구들을 체크 해봐.”

메리는 볼에 바람을 잔뜩 불어 넣고는 터져 나오는 기쁨을 억지로 참고 있었다. 

하지만 문득 막스를 본 뒤엔 볼에 넣은 바람이 급격히 빠져나갔다.

‘자기는 거지꼴이면서. 하여간···.’

막스가 입은 옷은 현상금 때문에 미주리주 잭슨 카운티의 여관에 있을 때 메리가 골라준 것이었다.

그것도 벌써 2년이 다 되어 간다. 

보안관 사무실에서 먹고 자고, 이제는 막사에서 생활하는 주제에 자신들은 호텔에서 지내게 하고 있으니.

울컥해진 메리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아기도 덩달아 눈물을 글썽거리며 이내 울음을 터트렸다.

“요새 감정이 풍부해졌나 봐요, 메리.”

“주책맞게 아기 낳고 더 그러네. 아무튼! 짐 정리하거든, 옷이나 사러 가자.”

“뜬금없이 뭔 옷이에요.”

막스는 됐다고 하고는 짐 정리를 도왔다.

코닐은 태어나서 처음 가보는 호텔이라 눈알을 굴리기에 바빴다.

고급스럽고 아늑한 방까지 확인한 가족들.

제임스는 갑자기 막스의 팔을 붙잡고는 조용히 복도로 끌고 갔다.

“그때 네가 나눠준 현상금이 그대로 있어. 그동안 일하면서 모은 돈도 있고. 한 1300달러 정도 되니까, 그거 써.”

“흠.”

“땅도 사고, 집과 대장간도 사려면 돈 필요할 거잖아.”

‘과연.’

땅은 어차피 공짜로 쓰고 있고, 집과 대장간은 유능한 부대원들과 공사하면 된다.

다만 대장간에 필요한 장비를 사는 일인데 러셀에게 장비 대부분을 인수하기로 했기 때문에 이 또한 큰돈이 필요하진 않았다.

물론 뭐를 만드느냐에 따라 새로 사야 할 장비들은 있을 터.

“일단 그 돈은 잘 보관하고 있어요. 조만간 쓸 때가 있을 겁니다.”

“그래? 아무튼, 애초에 내 돈도 아니었으니까 필요한 곳에 마음 놓고 쓰라고.”

욕심 없는 제임스. 그러기에 막스가 더 챙겨주고 싶은 거고.

제임스 가족의 로렌스 이주가 끝나고, 막스는 민병대원들 중 노가다 십장으로 유능한 인력들을 차출 했다. 이 안에는 온갖 전문가들이 다 모여 있었다.

“자, 앞으로 우리가 이런 걸 만들 건데···.”

미리 그려둔 도면을 펼쳤다. 이걸 본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워, 스케일 봐라.”

“거의 조병창인데?”

막스는 우선 건물에 신경을 썼다. 로렌스의 임대부지를 캔자스강 유역으로 택한 건, 물을 당겨 쓰기도 편하고 물자 운반 역시 편리하기 때문이었다. 

“이제 여기서 만들 물건들이 동부로 퍼져나갈 겁니다.”

“대체 뭘 만들길래···.”

‘사람을 이롭게 하는 물건이라면 뭐든.’

그게 무기일 수도, 혹은 생활을 윤택하게 할 수 있는 발명품일 수도 있다.

‘그러려면 특허부터 신청해야 할 텐데.’

수십, 수백 개의 특허를 처리할 전문 변호사가 필요하다. 

로렌스에도 변호사들은 꽤 되지만, 죄다 정치에 관심을 두는 탓에 특허만 전문으로 처리할 사람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일단 이건 천천히 생각해보기로 하고.’

막스는 십장들과 대장간을 만들기 위한 세부적인 논의를 이어갔다.

*

막스의 예상대로 보더 러피안은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있다. 그들은 연전연패의 늪에 빠진 데다 새로운 주지사의 향방을 주시하고 있었다. 

섬너 사령관에게 호레이스 스미스와 약속을 정하고 며칠 뒤. 막스는 선착장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이번 일리노이 여정을 함께 할 동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피치와 콜린, 조 짐 주니어와 네이선 로어, 그리고 앤드류 리더를 호위할 때 함께했던 제이호커스 패트릭 다우니도 포함되었다.

“일리노이는 처음인데, 떨리네요.”

“캔자스 벗어난 것도 처음 아니야?”

로어의 말에 주니어는 입을 다물었다. 그의 말대로 조 짐은 어릴 적부터 토피카에서 반경 100km 이상을 벗어난 적이 없었다.

“이거 완전 촌놈이었네, 촌놈.”

“로어도 소똥 치우다 왔다면서요.”

“난 동부도 가봤거든? 여기서 너 빼고는 전부 가봤···.”

갑자기 말을 멈출 로어는 막스를 쳐다봤다. 일행들도 함께 시선이 막스를 향했다.

‘가봤을까?’

막스가 캘리포니아에서 노예로 끌려갈 뻔하다 탈출했다는 건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

“뭘 봐.”

“혹시 동부에 가···.”

“증기선 도착했다. 참고로 배 안에서 쓸데없는 말은 금지야.”

레콤프턴에서 출발한 증기선이 선착장에 다가온다. 모세 그린터를 시작으로 현재 캔자스강을 지나다니는 증기선은 4대까지 늘어났다. 

가끔 증기선이 터지는 사고가 벌어져 그리 안전하다고 할 순 없었지만 오레곤, 산타페 트레일과 같은 험난한 육로보다 서부 여행자와 이주민들의 이동 수단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게다가 캔자스강의 수로가 깊지 않고, 바닥은 모래라 커다란 증기선이 움직이기엔 무리가 있었다. 그 때문에 55년 미주리주의 세인트루이스 의원은 캔자스가 본질적으로 철도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어찌 됐든, 뒤쪽에 커다랗고 가로로 길쭉한 바퀴가 달린 ‘파 웨스트’ 외륜 증기선은 두 개의 큰 기둥에서 시커먼 연기를 내뿜으며 로렌스에 선착장에 도착했다.

함께 타는 마을 사람들은 막스를 알아보며 말을 건넸다.

“막스도 어디 가는 모양이네요?”

“예. 볼일이 좀 있어서요. 얼리씨는요?”

“작년 겨울이 너무 추워서, 올해는 부모님 집에서 보내려고요.”

로렌스 마을 사람들은 막스를 보며 한 마디씩 말을 건넸다. 그들의 목적지는 다양하다. 미주리주와, 일리노이, 아니면 그보다 먼 동부 해안가로 가는 사람도 있었다.

스카프로 얼굴을 가리고 모자를 눌러 쓴 막스는 일행과 함께 배에 올라탔다. 

그리고 그 모습을 배에 탄 남자들이 노려본다. 

거친 서부, 특히 애리조나, 뉴 멕시코, 텍사스에서 넘어온 자들은 동쪽으로 갈수록 자신들의 아래로 보는 경향이 있었다.

이는 유혈이 낭자한 캔자스를 잘 모르는 자들일수록 더욱 그랬다. 

“캔자스의 순둥이들이로군.”

“소똥 치우던 놈들이라 그런지 냄새가 고약해.”

이때 네이선 로어의 거구가 배에 올라타자 그들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모자와 스카프 사이로 드러난 막스의 눈은 빠르게 주변을 훑어갔다. 여관의 기도가 있듯, 배의 치안을 유지하기 위해 무장한 가드가 한 명. 자신들이야말로 상남자라며 기도를 뿜어대는 남자들이 다섯, 그리고 평범한 가족들과 구석에서 등을 돌려 잔뜩 웅크리고 있는 남자까지 눈에 담아 두었다.

배가 출발하고 로렌스에서 탄 사람들도 분위기에 눌려 다들 입을 닫고 있었다. 

배에선 내연 기관이 움직이고 물살을 가르는 소리만 들려왔다.

하지만 아이들 몇몇은 참기 힘들었는지 하나둘 입을 열기 시작했다. 이내 어른들이 말을 받아주면서 배 안에 활기가 찾아들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서부 더 먼 곳에서 온 상남자들은 노골적으로 막스 일행을 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죄다 얼굴은 왜 가린 거야?”

“꼴에 갱단이라도 되고 싶나 보지.”

“캔자스에 뭘 털 게 있다고. 병신들.”

그중 한 놈은 입만 가린 피치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음흉한 말을 내뱉었다.

“저년은 벗기기도 힘들게 뭔 바지를 입고 그래. 얼굴은 반반할 것 같은데.”

눈썹이 꿈틀거린 피치는 고개를 돌려 남자를 쏘아봤다. 그리고 시선을 옮겨 옆에 있는 가드의 표정을 살폈다. 가드도 분위기를 짐작했는지 총을 만지작거린다.

하지만 끼어들진 않을 것이다. 

혼자서 다섯을 어떻게 이긴단 말인가.

피치는 남자들에게 비웃음을 날리며 말했다.

“그냥 반반한 게 아니라 예쁜 거야, 병신아. 게다가 네깟 놈이 내 바지를 벗길 일이 있을 것 같아?”

“...... 뭐?”

“딱 보니까 평생 혼자 살게 생겼구만.”

“이년이 보자 보자 하니까.”

철컥.

남자가 다가오자 순식간에 막스를 제외한 일행이 총을 꺼내 든다. 그 신속함에 남자와 무리는 식겁한 표정을 지었다. 총싸움에서 가장 중요한 건 기세. 한 번 꺾이면 다시 세우긴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한 발자국만 움직여 봐.”

피치의 싸늘한 눈빛. 오던 발걸음을 멈춘 남자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더니 이내 뒤로 물러났다. 그런데 이때였다.

빠각!

피치가 느닷없이 다가가 남자의 면상을 발로 후려쳤다.

뒤로 퉁겨나간 남자를 무리가 떠받치고.

무리들은 왜 때린 건지 황당한 얼굴로 피치를 쳐다봤다.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말랬지.”

“씨, 씨발 미친··· 큭.”

피치는 다가가 총을 뽑으려는 남자의 이마에 총구를 겨눴다.

“어디서 왔어?”

“......”

“대답 안 해?”

머리에 맞닿은 리볼버. 이를 쳐다보는 남자의 눈동자가 미친 듯이 요동쳤다.

같이 어울렸던 가드는 슬금슬금 거리를 벌렸다.

그런데 이때.

타아아앙!

총성이 울리고 남자의 무리 중 하나의 손이 뒤로 튕기더니 이내 물속으로 총을 빠트렸다.

풍덩.

“후우우.”

콜린은 총구의 연기를 날리곤 말을 내뱉었다.

“어디서 온 게 뭐가 중요해.”

“혹시 보더 러피안인가 했죠.”

“이 새끼들 눈빛 봐. 아무것도 모르잖아. 그냥 어디 황야에서 병신 짓 하다 쫓겨난 놈들일 거야. 맞아, 아니야?”

“......”

“맞네. 무기 내놔 새끼들아.”

콜린과 피치, 조 짐 주니어와 로어는 놈들의 무기를 빼앗았다. 콜린은 이어 배의 치안을 유지하는 남자를 노려봤다.

“가드 똑바로 해 새끼야. 술집 바운서만도 못해.”

“...... 죄송합니다.”

콜린이 눈을 흘기자 가드가 고개를 숙였다.

‘이거 내가 나설 틈이 없구만.’

스카프 속, 막스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그려졌다. 

그린터 플레이스 선착장에 도착할 즈음. 놈들은 쭈뼛거리며 내릴 준비를 했다. 

“여기가 목적지가 아닌 것 같은데?”

“...... 맞아요. 여기 내리려고 했습니다.”

원래 미주리까지 가야 했지만, 도저히 이 배에 맘 편히 타고 있을 수가 없었다. 

무기를 빼앗겼다는 건, 발가벗은 것과 같은 정신적 불안을 불러왔으니까.

그린터 플레이스에서 놈들이 내리고.

막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피치는 헹하며 입을 열었다.

“다 끝났는데, 지금 일어나네.”

“내가 나섰으면 놈들이 흘린 피에 배가 가라앉을걸.”

“...... 앉아서 멘트 준비했어? 그래서 가만히 있던 거야?”

어깨를 들썩거리던 로어와 주니어는 막스와 눈이 마주치자 재빨리 시선을 돌렸다.

막스는 고개를 저으며 한 곳을 향해 걸어갔다. 

시종일관 구석에서 웅크리고 있는 남자.

‘아까부터 이상하다 싶었는데. 이런 우연이 다 있나.’

막스가 다가가자 그 어깨의 떨림이 더욱 심해진다.

그리고 그 떨림을 멈추기 위해 막스가 어깨에 손을 얹었다.

“헉!”

거짓말처럼 떨림이 멈추고 대신 공포가 담긴 눈빛이 막스를 향했다.

주지사 생활 동안 귀가 따갑게 들어왔던 로렌스의 동양인 보안관.

얼마 전 레콤프턴을 습격하고, 지금의 보더 러피안에게 연전연패를 안겨준 인물.

“윌슨 섀넌 주지사님. 아까부터 불편하게 왜 이러고 계십니까.”

레콤프턴에서 저격당한 트라우마. 파면당한 준주의 주지사 섀넌은 몰래 캔자스를 벗어나려 했었다. 현재 그는 노예제 옹호론자와 폐지론자 양쪽에서 욕을 쳐먹고 있는 상황이었으니.

하지만 막스는 윌슨 섀넌을 남들과는 다른 시선으로 보고 있었다.

법학도이자 변호사로 일했던 섀넌. 

원 역사라면 주지사를 그만두고 얼마 안 되어 로렌스로 되돌아온다. 

그리고 버젓이 변호사를 개업한다.

이는 그의 노예제에 관한 신념이 뚜렷하지 않다는 걸 의미했으니.

‘내 특허 전문 변호사로 만들까.’

막스가 쳐다볼수록 윌슨의 눈동자는 더 크게 요동치고 있었다.

< 일리노이로 가는 길 > 끝

작가의말

실제로 윌슨 섀넌은 몰래 캔자스를 빠져나가려 배를 이용합니다.

그러다 우연히 누구를 만나게 됩니다.

윌슨 섀넌은 민주당 소속이지만 생각보다 노예제에 관심이 덜 한 인물이었습니다.

임기가 끝나고 로렌스로 돌아온 것도 그렇고, 원 역사에서 와카루사 전쟁을 섬너 장군과 함께 원만히 해결한 공도 있었으니까요.

오늘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윌슨 섀넌 >

잔뜩 겁먹은 섀넌은 짐을 방패처럼 가슴에 꼭 끌어안았다.

그리고는 자신을 쳐다보는 막스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왜··· 그렇게 쳐다보나?”

생각을 멈춘 막스는 천천히 시선을 아래로 내려 섀넌의 목을 쳐다봤다.

“타이 스카프가 멋지군요.”

나비넥타이처럼 양쪽으로 묶은 스카프. 

비단인지 번들거리는 재질이 꽤 고급스러워 보인다. 하지만 주지사다운 옷의 품격에 비해 이미 얼굴은 잿빛으로 변해있었다. 

당장이라도 목에 칼날이라도 날아올까 두려운지 섀넌의 목이 움츠러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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