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3화 (63/360)

“앞으로 뭐 하실 생각입니까?”

“그냥 조용히 처박혀 여생을 살겠네!”

“뛰어난 법조인께서 재능을 썩히면 안 되죠. 변호사로 개업할 생각 아니었습니까?”

‘그건 또 어떻게 알았지?’

섀넌은 겨울이 끝나면 다시 캔자스로 돌아올 생각이었다.

정치와 연을 끊고 레콤프턴 변호사로서 제2의 인생을 살고자 했다.

“로렌스에서 하실 생각이죠?”

“음?”

‘로렌스 아닌데.’

순간 섀넌의 머리가 복잡해졌다.

변호사 사무실로 쓸 건물도 미리 사두었지만, 그 장소는 레콤프턴이다. 죽은 사무엘 존스가 소유했던 건물로 갑자기 죽어버린 탓에 싸게 살 수 있었다.

실제로 섀넌이 로렌스로 이동한 건 남북전쟁 중이다. 하지만 막스는 섀넌이 ‘로렌스로 돌아와 변호사로 생을 마감했다’ 정도만 알고 있었다.

어찌 됐든, 막스는 당연하듯 물은 거지만 받아들이는 섀넌은 생각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저렇게 물어보는 저의가 뭘까. 레콤프턴으로 가면 죽이겠다, 이런 건가?’

섀넌은 막스가 자신이 건물을 산 것까지 알고 있다고 확신했다. 

몰래 빠져나가려던 계획도 귀신같이 알아냈으니 그 정도는 일도 아닐 터.

“... 당연히 로렌스에서 해야겠지···?”

“그럼 자리 잡는 걸 도와드리겠습니다.”

“...... 굳이 그렇게까지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데···.”

“아뇨, 신경이 쓰입니다.”

‘젠장.’

“그럼 계속 신경 써야지, 암.”

“대신 저한테는 뭘 해주실 겁니까.”

“음?”

“도와주면 오고 가는 게 있어야죠.”

‘이거 미친놈인가?’

대화의 전개가 이상하다.

바라지도 않은 도움을 주면서 생색을 내다니.

섀넌은 순간 눈앞의 동양인 머릿속을 파헤쳐보고 싶었다.

“로렌스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차리게 되면, 자네에겐 무료로 법률 서비스를 해주겠네.”

“뭐, 나쁘진 않군요.”

“나름 이쪽에선 실력이 있다고 자부하네.”

“특허 관련해서는 어떻습니까?”

“그건 또 내 전문이지. 오하이오주 변호사시절 15건, 검사였을 때 특허 분쟁 7건 경험도 해 봤네. 오하이오주 주지사였을 땐 특허 취득 장려를 위한 정책까지 만들었었지.”

막스가 갑자기 섀넌의 몸에 바짝 다가가 얼굴을 들이밀었다. 마음에 쏙 들어서 한 행동이지만, 섀넌은 식겁하며 몸을 뒤로 뺐다.

“로렌스엔 언제 올 겁니까?”

“내년 봄쯤 생각하고 있네만···.”

“늦군요.”

마음 같아선 더 늦추고 싶었다. 그런데 막스가 미간을 좁히는 순간 섀넌의 시간이 마법처럼 앞당겨졌다.

“.... 그래서 겨울이 가기 전엔 올 생각이네.”

“잘 생각하셨습니다. 그럼 로렌스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막스는 미련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일행들에게로 돌아갔다.

긴장이 풀어진 섀넌은 긴 한숨을 내쉬며 끌어안던 짐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대체 어디서 저런 동양인이 튀어나온 거야.’

주지사 기간 내내 들어온 로렌스 보안관. 레콤프턴 습격 사건과 뒤이은 제이호커스와 보더 러피안 전쟁은 섀넌의 머릿속에 동양인은 곧 두려운 존재라는 걸 각인시켰다. 

그자가 자신을 알아보고 어깨에 손을 얹었을 땐 이제 죽었다는 생각도 들었고.

그런데 막상 아무 일이 없자 생각이 조금은 바뀌었다. 

‘죽이려고 마음먹었으면 진작에 날 죽였겠지.’

대신 로렌스에 오라는 말만 전하고 돌아갔다. 대답은 했지만 사실 마음을 정한 건 아니었다. 그런데 생각할수록 동양인의 제안은 고려할 가치가 있어 보인다.

자신에게 뭘 바라는지 모르나, 그에게 필요한 존재라는 느낌이 들었다.

하긴 레콤프턴으로 가 봐야 누가 반기겠는가.

양쪽 진영에서 어정쩡하게 있을 바엔 로렌스에 안착하는 게 나은 선택일 수도 있었다. 동양인의 후광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어처구니없지만 어쨌든 그는 로렌스에선 영웅이었으니. 

‘어차피 정치 생명도 끝난 이상 노예제가 뭔 상관인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자유주인 오하이오주에서 태어난 자신은 왜 남부 노예주를 동정했는지.

민주당에서 시작한 정치. 더 높이 오르기 위한 노력은 결국 노예주의 입맛에 맞는 인간이 되려는 얄팍한 몸부림이 아니었을까.

섀넌은 지난 과거와 현재, 미래를 생각하며 캔자스강이 끝나고 미주리강으로 바뀌는 걸 초점 없는 눈으로 응시했다.

*

미주리강을 지나가던 끝에 배는 글래스고라는 선착장에 정착했다.

연료를 선적하는 동안 두 시간의 여유가 생겨났다. 

막스와 일행은 배에서 내려 선착장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로렌스와는 확실히 다르네.’

미주리주는 1821년 주로 승격했다. 캔자스보다 30년이나 앞선 것이다. 이 시간의 차이는 건물과 인구에서부터 확연히 드러났다.

‘대한민국으로 치면 시골 읍내 정도구만.’

그럼에도 막스는 신기한 듯 이리저리 고개를 바삐 움직였다.

그걸 본 일행들이 뒤에서 수군거린다.

- 우리 중에서 제일 촌놈이 누군지 알겠지?

- 딱 봐도 촌놈처럼 구는 것 봐. 모든 게 신기한 거지.

- 나도 저 정도는 아니잖아요?

- 주니어 니가 백배 낫다. 아까 한 말 사과할게.

막스가 뒤를 쳐다보자 다들 입을 다물었다. 그리곤 뭐 먹을 거 없나 상점을 두리번거렸다.

“괜히 돌아다니다 말썽 생기면 곤란하니까, 이만 배로 돌아가자.”

“더 구경해도 돼.”

“볼 것도 없구만, 뭘.”

“얼.”

피치의 표정을 본 막스는 한심하다며 고개를 저었다. 콜린은 언제 샀는지 종이봉투에 담긴 빵을 가슴에 껴안고 있었다.

“배고파 죽겠는데 이거라도 먹어야지.”

배로 돌아온 일행은 빵을 먹으며 대화를 나눴다. 막스는 혼자 앉아있는 섀넌에게 빵을 건넸다.

“제가 인생의 행복을 가져왔습니다. 시장하실 텐데 좀 드시죠.”

“...... 고맙네.”

“그럼 로렌스에서 기다리겠습니다.”

“......”

막스가 돌아가고 섀넌의 입가엔 어이없는 실소가 흘러나왔다. 

잠시 빵을 물끄러미 본 뒤엔 손을 뻗었다.

‘행복이 내 손안에 들어왔군.’

빵을 손에 쥐곤 한입 베어 물었다. 동양인이 건넨 한 마디가 오랜 여운을 남겼다.

그렇게 입을 오물거리며 선착장을 바라보던 때. 거구의 남자를 본 섀넌은 눈을 크게 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자를 여기서 만나게 될 줄이야.”

섀넌은 시계를 쳐다봤다. 아직 한 시간의 여유가 있었다.

배에서 내리려던 그는 이내 발걸음을 막스에게로 향했다.

“저기 키 큰 남자 보이나?”

“아시는 분입니까?”

빵을 먹고 있던 막스는 진작에 남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솟아있는 남자를 쳐다보고 있었다. 섀넌이 다시금 말을 이었다.

“곧 캔자스 준주의 주지사가 될 사람이네.”

“오오.”

막스의 일행이 탄성을 지르며 키 큰 남자를 쳐다봤다.

“존 기어리라고 군 출신이자 샌프란시스코 시장을 했던 자네. 내 저 자를 좀 만나고 와야겠어.”

인수인계라도 할 모양이다. 그 내용이 뭔지 모르지만, 섀넌은 발걸음을 빨리하여 존 기어리를 찾아갔다.

둘이 인사 나누는 걸 지켜본 피치가 막스에게 물었다.

“가서 로렌스를 부숴버리라고 말하는 거 아냐? 좋게 말할 것 같지는 않은데.”

“글쎄. 두고 보면 알겠지.”

*

존 화이트 기어리는 2미터에 가까운 장신에 몸무게는 120킬로그램의 피지컬을 가진 자다. 단정하게 기른 턱수염이 양 입꼬리에 닿아 뭔가 고집스러운 인상도 풍겼다.

파면당한 주지사는 후임에게 면목이 없는지 씁쓸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제가 잘 해결했어야 했는데, 짐을 떠넘긴 것 같아 마음이 무겁습니다.”

섀넌의 말에 기어리는 고개를 저었다.

“캔자스를 혼란으로 몰아넣은 건 섀넌 주지사님의 잘못이 아닙니다. 리더 전 주지사도 그렇고, 아직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영토를 장악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니까요.”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는요. 사실인걸요.”

존 기어리는 갑작스럽게 임명된 탓에 캔자스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비록 실패한 주지사라도 섀넌의 생각을 듣고자 했다.

그는 현재 상황과 맞물려 그동안의 일을 설명했다. 특히 와카루사 전쟁은 존 기어리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섬너 사령관의 개입을 이끈 사람이 따로 있다고요?”

섀넌은 배가 있는 곳을 힐끔 쳐다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캔자스 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자가 있습니다. 군 개입을 이끌고 보더 러피안을 연전연패로 몰아넣은 자.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가 동양인이라는 겁니다.”

“!”

막스는 캔자스 내에만 그 이름이 알려졌다. 동양인의 명성이 높아질수록 노예주뿐 아니라 자유주에게 반감을 살 우려가 있기에 의도적으로 축소한 결과였다.

흑인, 혹은 히스패닉계였어도 마찬가지다. 백인들끼리 벌이는 전쟁에 유색 인종이 주목받는 건 어느 쪽에서도 환영받지 못했다.

존 기어리가 동양인이라는 말에 놀라는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싫든 좋든. 주지사로 있는 동안 그와 마주칠 일이 있을 겁니다. 되도록 적으로 마주치는 건 피하는 게 좋을 겁니다.”

“그만큼 위험한 인물이란 말입니까?”

섀넌은 존 기어리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위험하죠. 하지만 같은 편이라면 누구보다 든든할 겁니다.”

앤드류 리더만 보더라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똥을 잔뜩 싸질러 놓은 주지사를 로렌스로 데려가고, 심지어 구출까지 했으니 리더 입장에서 막스는 가장 든든한 뒷배라 할 수 있었다.

섀넌은 존 기어리에게 막스에 관한 호기심과 흥미를 남김으로써 주지사 인수인계를 끝마쳤다. 우연한 만남이었지만 그 의미가 작지 않았다. 

주지사 업무를 시작하기 전, 포트 리븐워스의 섬너 사령관을 만나러 갈 존 기어리는 거기서 또 한 번 동양인에 대해 듣게 될 테니 말이다.

출발하기 직전 섀넌이 배로 돌아왔다. 그는 막스에게 다가와 말을 건넸다.

“새로 부임할 주지사와 말을 나누었네.”

섀넌은 막스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은 소리로 말을 이었다.

“주지사 임무를 맡기 전에 포트 리븐워스와 포트 스콧, 포트 라일리부터 들린다더군.”

“미리 군부터 알아둔다 이거군요.”

“맞네. 존 기어리 주지사는 앞으로 모든 분쟁에 군을 개입시킬 것이네.”

섀넌 역시 와카루사 전쟁을 통해 깨달은 게 있었다. 군 개입이 양 세력 간 충돌을 막을 수 있다는 걸 말이다.

“다만 대통령이 어떻게 나올지는 두고 봐야겠지. 피어슨 대통령은 군 개입을 좋아하지 않았거든.”

유효기간 세 달짜리. 게다가 레임덕에 허덕이는 대통령의 의중이 과연 먹힐까.

“아무튼, 존 기어리는 나처럼 자네에게 방해가 되진 않을 거네.”

“그럼···.”

“로렌스에서 보세나.”

막스가 할 말을 섀넌은 웃으며 대신했다. 자리로 돌아간 섀넌은 한 가지 고민이 해결되었는지 먹다 남은 빵을 다시금 맛있게 오물거리기 시작했다.

< 윌슨 섀넌 > 끝

< 집 밖은 위험해 >

로렌스에서 다시 만나기로 하고.

윌슨 섀넌과는 세인트루이스 항구에서 헤어졌다.

미주리주에서 가장 큰 도시이자 미주리강, 일리노이강이 미시시피강으로 합류하는 곳. 

미국 초기부터 인디언들과 모피 무역이 성행했으며 이후 서부 개척이 이루어지면서 세인트루이스는 서부로 향하는 관문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와, 엄청 복잡한 동네네요.”

“골드러시, 서부 개척자와 여행자들이 모이고 흩어지는 곳이니까 그렇지.”

조 짐 주니어의 말에 콜린이 답했다. 미주리주를 잘 아는 콜린은 일행의 가이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막스와 일행이 배에서 내려 넓지만 혼잡한 광장을 지날 때였다. 귀에 익은 목소리가 귀에 들려왔다.

“오늘도 탈주한 노예가 이곳 어딘가에 숨어있다는 소문을 들으셨을 겁니다. 최근 탈출한 노예들은 일리노이를 통해 북부로 도망치고 있는데, 그들이 누구 재산입니까?”

“우리 미주리주 재산이지!”

시민들이 맞장구 치자 연설자는 더욱 목소리를 높였다.

“그렇습니다! 자유주는 우리 노예주의 재산을 빼앗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습니다! 흑인들의 인권은 자신들의 이익을 감추려는 것일 뿐, 진짜로 원하는 건 값싼 노동력일 뿐이죠! 그런데! 우리는 가장 중요한 갈림길인 캔자스에서 악전고투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저주받은 로렌스에 자유주의 힘이 뭉치는 동안 언제까지 구경만 하고 있을 겁니까! 모두 캔자스로 달려갑시다! 우리의 정당한 권리를 지키기 위해 총과 칼을 듭시다!”

“싸워서 우리의 권리를 되찾자!”

연설자는 다름 아닌 헨리 클레이 페이트와 미주리주 하원 존 리드. 그들은 많은 사람을 모아두고 선동에 앞장서고 있었다.

발걸음을 멈춘 콜린은 기가 찬 표정으로 말했다.

“어디 처박혀있나 했더니 여기서 저지랄 하고 있었네.”

“그러게요. 입에 총알을 박아주고 싶네요.”

“여기서 그랬다간, 그 순간 공공의 적이야.”

피치의 말에 모자를 눌러쓴 막스는 페이트에겐 신경을 끊고 일행을 쳐다봤다.

“이제 쪼개질 시간이다.”

일리노이에서 찰스와 레인, 앤드류 리더를 데려와 로렌스까지 가려면 평범한 방법으론 불가능하다. 미리 계획해둔 대로 각자 임무를 나눠야 했다.

막스가 피치에게 말을 건넸다.

“내가 말해준 거 기억하지?”

“근데 꼭 그 사람을 찾아야 하는 거야? 근처에 제재소 이용하면 안 되고?”

“이왕이면 그 자에게 사고 싶어. 그런데 정 못 찾겠다 싶으면,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해.”

“내 성격 몰라서 그래? 에휴. 아니 여기엔 와본 적도 없으면서 화이트 헤이븐에 사는 자의 이름은 대체 어떻게 아는 거야?”

“아무튼, 나한테는 매우, 아주, 굉장히 중요한 사람이라 그래.”

막스는 피치에게 한 사람을 찾아내 목재를 구매하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그가 세인트루이스 항구에 목재를 쌓아두면, 벌목공 차림으로 떠난 찰스 일행은 일꾼이 되어 목재를 싣고 로렌스로 향할 계획을 세워두었다.

중요한 건 이 나무를 파는 사람이 건설 목재를 파는지 그냥 조경 나무를 파는지 기억이 정확하지 않다는 거. 아무튼, 이 시기에 세인트루이스에서 나무를 파는 건 확실했다.

로렌스에만 처박혀 있다 나온 막스는 세인트루이스와 일리노이에서 역사적인 두 인물을 만나길 기대하고 있었다.

“그럼 사흘 뒤에 보자고.”

피치는 로어와 패트릭 다우니를 데리고 사라지고 막스는 콜린, 주니어와 함께 기차역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콜린은 지식을 뽐내기라도 하듯 일리노이에 관한 정보를 쏟아냈다.

“일리노이는 북부와 남부의 온도 차이가 큰 곳이지.”

“오, 북부가 겨울이면 남부는 여름이에요?”

콜린이 조 짐 주니어를 병신 보듯 쳐다본다.

“인만, 노예제를 말하는 거잖아. 북쪽은 자유주에 가깝고 남쪽은 노예주에 가깝거든. 뭐, 현 상황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이거지.”

“그래도 자유주는 자유주잖아요.”

“그건 그런데, 법이 좀 골 때리거든.”

일리노이주 흑인법은 주 외부에서 온 흑인이 10일 이상 주에 머무는 것을 금지한다. 더불어 10일 이상 남아 있는 흑인 이민자는 체포 구금, 50달러의 벌금 또는 추방을 당해야 했다.

도망 노예 법 시행에 따라 탈출을 돕는 자에게도 죄를 물었다.

듣고 있던 주니어도 뭔가 생각났는지 입을 열었다.

“일리노이 남부에는 노예 상인도 있다고 들은 것 같아요.”

“오, 너 아는구나. 거기 몇 명이 살고 있긴 하지. 그중에 가장 유명한 놈이···· 응?”

말하던 콜린이 발걸음을 멈추며 눈을 크게 떴다. 뭔가 싶어 일행들은 콜린의 시선이 향하는 곳을 따라갔다.

그런데 막스의 눈동자 역시 이내 크게 출렁거렸다.

‘저놈을 여기서 만나다니.’

기차역 앞에 모여있는 무리.

그중 한 남자에 막스의 시선이 고정되었다.

끈질긴 인연이랄까.

이막산의 기억에 강렬하게 자리잡혀있는, 자신을 남부의 노예로 팔아넘기려 했던 남자.

‘쿨렌 베이커.’

막스가 줄곧 저자의 얼굴과 이름을 잊지 않은 이유가 있다.

이막산이 멋도 모르고 사인한 서류. 노예는 아니지만, 그에 따르는 노동 계약서가 저놈의 손에 들려 있었다.

조만간 이민권이 나올 텐데, 만약 저놈이 그걸 들이민다면? 

복잡한 법률문제가 얽히고 얽혀, 도망자의 신세가 될 수도 있다.

‘서류부터 없애야 하나. 역시 집 밖은 위험하다니까.’

특히 동양인에겐···.

막스가 쿨렌 베이커를 노려보던 때, 콜린이 음산한 목소리를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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