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개자식은 요즘도 바쁘게 일하는 모양이군. 도망 노예를 쫓는 모양인데.”
“음? 아는 사람이에요?”
“존 하트 크렌쇼라고, 아주 악질 노예 상인이지.”
같은 무리지만 막스와 콜린이 주목하는 대상이 다르다.
“존 하트 크렌쇼? 그럼 혹시 저 중에 쿨렌 베이커도 알아요?”
“넌 또 저놈 이름은 어떻게 알았어?”
잠시 눈을 크게 뜬 콜린은 뭔가 감이 왔는지 입술을 씰룩거렸다.
“혹시, 너를 캘리포니아에서 노예로 팔려 했던 게 저놈이었어?”
“......”
제이호커스라면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다.
전략과 전술에 능하고 일신의 전투 능력이 탈 인간에 버금간다는 막스. 그런 그가 남부의 노예 상인에게 끌려갈 뻔했다는 건 미스터리 중 미스터리였으니.
- 그땐 좀 모자랐었나?
- 왜 그랬냐고 물어보면 처맞겠지?
물어볼 용기가 나질 않아 저들끼리 추측만 할 뿐이다. 벼락이라도 맞아 각성했을지도 모른다면서.
아무튼, 콜린의 말을 들은 주니어는 미어캣처럼 귀를 가져다 대었다.
‘이막산이 싼 똥이 내 흑역사가 되었구만.’
막스는 실실 웃음을 흘리는 콜린을 노려보며 속삭였다.
“저 둘에 관해 말해봐요.”
건수라도 잡은 듯 비웃던 콜린, 살벌한 막스의 눈빛을 보곤 헛기침을 뱉으며 말했다.
“흠. 쿨렌 베이커는 저기 턱에만 수염 기른 존 크렌쇼의 오른팔이야. 내가 왜 저놈을 아냐 하면.”
콜린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저놈이 역 지하철도로 악명이 자자한 놈이거든.”
일명 역 지하철도(Reverse Underground railroad).
말 그대로 지하철도의 반대되는 조직이다.
탈출 노예는 물론 북부의 자유 흑인을 납치해 남부에 팔아 막대한 부를 축적하는 무리. 그중 존 크렌쇼는 일리노이에 거주하는 농장 지주로 소금 제조업자이자 노예 무역상이었다.
막스를 노예로 팔아먹으려던 쿨렌 베이커는 바로 존 크렌쇼의 하수인이었다.
“사는 곳 알아요?”
“...... 죽이게?”
콜린은 정색하며 막스를 쳐다봤다. 반대해서가 아니라, 누구보다 그걸 원했기 때문이었다.
지하철도의 훼방꾼, 흑인 노예를 물건처럼 취급하는 놈.
지금도 도망 노예를 찾으려는 건지 역을 들쑤시고 다니는 모습에 분노가 치밀었다.
“존 크렌쇼가 타겟이라면 적극적으로 도와주지. 내가 알기론 일리노이 남부의 갤러틴 카운티에 살고 있어. 유명 인사라 거기만 가도 다들 알 거야.”
막스는 존 크렌쇼와 쿨렌 베이커를 눈에 담아두었다. 하지만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게다가 다른 할 일도 있고.
“일단 킵해 둡시다.”
콜린은 아쉽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막스 성격상 자신을 노예로 팔아치우려는 놈을 놔둘 리가 있을까. 어차피 타깃에 들어온 이상 저놈들의 운명은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콜린과 조 짐 주니어가 기차표를 끊는 동안 막스는 역에서 주변을 살피며 서 있었다.
동양인의 존재가 워낙 희소성이 높아 벗는 순간 소란이 일게 빤하였다.
“곧 출발한대, 어서 가자고.”
세인트루이스는 서부로 향하는 관문. 미국 중서부의 철도가 이곳을 중심으로 모이게 된다. 막스가 가는 일리노이주의 스프링필드 역시 마찬가지였다.
기차표는 인당 1.3달러. 마일(1.6km)당 15센트로 당시 물가를 생각하면 싼 가격은 아니었다.
막스는 박물관과 영화에서나 봤던 검은 연기를 내뿜는 증기기관차에 몸을 실었다.
치이이익.
칙. 칙.
출발 전 들려오는 엄청난 소음. 막스는 미간을 찌푸리며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때 추노 쿨렌 베이커가 부하 세 명을 이끌고 뒤늦게 기차에 올라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존 크렌쇼는 보이질 않았다.
함께 창문을 보던 콜린은 거칠게 말을 내뱉었다.
“저 새끼들, 도망 노예 찾는다고 기차까지 타버렸네.”
기차 안에는 흑인들도 몇 명 타고 있었다.
대부분은 누군가의 노예였다.
그런데 그중 탈주 노예가 섞여 있다면.
“나와 같은 차장이 있을 게 분명해.”
콜린은 노예들을 탈출시켜주는 지하철도 차장이었다. 그 방법을 잘 아는 탓에 콜린은 객실 내부를 두리번거렸다.
“대담하게 여길 태웠으면 노예는 한 명이라는 소리일 거고. 만약 놈들이 객실을 수색한다면 뒷돈을 주겠지.”
“누구한테요?”
“핑커톤.”
‘!’
막스는 빠르게 머리를 굴려 핑커톤의 정보를 끄집어냈다. 앨런 핑커톤이 탐정 사무소를 만든 이후, 두 번째로 확장했던 사업이 바로 기차 보안 경비였다.
역마차의 운송 서비스를 기차가 대신했기 때문에, 앞칸에는 고객들의 귀중품이 보관되어있는 금고가 별도로 존재했다.
하지만 고가의 물건이 많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도난당하는 사례가 빈번했다.
이 점에 착안해 사업수완이 좋은 앨런 핑커톤은 기차 회사와 계약을 맺고 경비 용역을 파견한다. 이렇듯 하나하나 사업을 늘리다 보니 어느새 PMC가 되어버린 게 바로 핑커톤이었다.
막스는 턱을 매만지며 콜린에게 물었다.
“놈들이 수색하면 탈주 노예도 잡힐 텐데요.”
“노노. 그 전에 뛰어내리겠지.”
“내리다 죽겠는데.”
“그래도 붙잡히는 것보단 낫지. 나는 이쪽 담당이 아니라 모르지만, 애초에 계획된 지점이 있을 거야. 저놈들이 수색할 것도 예상했을 거고.”
꼬리 칸부터 수색해온다고 가정하면 아직은 시간이 있다. 게다가 곧 있으면 미주리를 넘어 일리노이주로 진입한다. 거기서 뛰어내리면 어쨌든 자유주로 도망치는 건 성공한 셈이었다.
“문제는 막스 너야. 쿨렌 베이커가 네 얼굴 알 거 아냐?”
“알겠죠.”
“분명 얼굴 확인하려 할 텐데.”
“감히?”
막스가 이번엔 또 무슨 수를 쓰려는지 잔뜩 기대되었다. 말하는 거로 봐선 도움이 필요해 보이진 않았다.
잠시 후.
뒤에서 한 백인 남자와 흑인 여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백인은 객실 통로를 느긋하게 걸어가고, 흑인 노예는 고개를 숙인 채 뒤를 따라갔다.
콜린이 막스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봤지? 차장(노예 해방자)이 짐(노예)을 운반하고 있는 거야. 지금이 뛰어내릴 타이밍인가 보···.”
덜컥.
객실 뒷문이 열리며 한 무리가 나타났다. 핑커톤 경비 요원들과 쿨렌 베이커 무리가 뒤섞여 있었다. 그들은 이제 막 빠져나가려는 백인 남자와 흑인 여자를 보곤 소리쳤다.
“거기! 멈춰!”
객실에 있던 승객들의 시선이 앞서간 백인 남자와 흑인 여자에게 쏠렸다.
하지만 백인 남자는 잠시 멈추는가 싶더니, 이내 문을 열고 사라졌다.
“탈주 노예를 돕는 자다!”
“어서 쫓아! 너희들은 이곳 객실마저 확인해!”
좁은 객실을 달려가는 무리는 막스와 콜린을 그대로 지나쳤다. 그중엔 쿨렌 베이커도 있었다.
뒤에 남은 두 놈은 신경질적으로 승객들의 얼굴을 확인했다.
- 주니어와 콜린은 최악의 상황에만 끼어들어요.
- 옛 썰.
막스는 통로쪽으로 자리를 바꿔 앉았다.
마침내 그의 차례가 되었을 때.
“이 새낀 그냥 봐도 수상한데?”
“스카프랑 모자 벗어봐.”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 막스는 두 놈을 향해 몸을 틀었다.
그리고는 두꺼운 스카프를 벗는 척.
빠각!
한 놈의 면상을 후려치고, 뒤로 밀려난 놈을 발로 차 뒤에 서 있던 놈까지 중심을 무너트렸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두 놈에게 연속으로 주먹으로 가격한 뒤엔 스카프로 두 놈의 목을 휘감아 잡아당겼다.
질식시킨 뒤엔.
“갔다 올 테니까, 조용히 자리 지켜요.”
콜린과 주니어에게 한 말지만, 승객들은 쥐죽은 듯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이때, 창문 밖에선 백인 남자와 흑인 여자가 땅을 구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
막스가 문고리에 손을 잡고 문을 열자.
덜컥.
덜컥.
동시에 반대쪽 문도 열렸다.
“저, 저건 뭐야!”
“쫓아!”
막스는 힐끔 뒤를 돌아보곤, 문을 열고 재빨리 몸을 날렸다.
무식하게 기차 밖으로 몸을 던지진 않고, 대신 기차 지붕 위로 올라갔다.
시원한 바람이 뺨을 때리고, 옷이 펄럭이며 날아가지 않게 모자를 꼭 눌러썼다. 그리고는.
‘꼭 한번 해보고 싶었다.’
기차 뒤 칸을 향해 미친 듯 지붕 위를 달렸다.
< 집 밖은 위험해 > 끝
< 도망가고 싶다 >
쿵쿵쿵.
천장에서 울리는 소리. 승객들의 고개가 자연스레 위로 향한다.
곧이어 덜컥 문이 열리고, 무장한 남자 다섯이 좁은 복도를 내달렸다.
“개자식! 저건 대체 뭐 하는 놈이야!”
이들이 지붕 위를 달리는 자를 쫓는다는 건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다음 칸이 마지막이다. 제깟 놈이 도망쳐봐야 별수 있겠어!”
승객들은 침을 꿀꺽 삼키며 객실을 벗어나는 자들을 지켜봤다.
그런데 그들이 마지막 칸으로 사라진 직후.
또다시 천장에서 쿵쿵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젠 앞칸으로 도망치나 보네···.’
승객들의 시선이 또다시 천장의 발소리를 따라 움직인다.
그리고 잠시 후.
문이 열리고, 쫓던 자들이 재등장했다.
지붕 위를 달리는 자에게 농락당해서인지 얼굴들이 시뻘겋게 달아올라있다.
화가 난 쿨렌 베이커는 의자 등받이를 움켜쥐며 핑커톤 요원에게 소리쳤다.
“우리는 지붕으로 올라갈 테니, 당신들은 밑에서 따라붙으쇼!”
‘지붕...?’
수하들의 얼굴이 미세하게 일그러졌다.
영화에서 보던 장면들은 먼 훗날에 벌어지는 거고. 이 시기에 열차 지붕 위를 달리는 건 흔치 않은 일이었다.
미국 역사에서 첫 열차 강도는 남북전쟁 이후인 1866년. 복면을 쓴 3인조 강도가 오하이오&미시시피 기차에서 금고 두 개를 탈취한 게 첫 열차 강도 사례다.
철도의 대중화와 그 중요성이 부각되지 않은 시기. 금고에서 사라진 돈들은 철도회사 내부자 소행이 대부분이었고, 그 외에는 손님들의 물건을 슬쩍하는 좀도둑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니 지붕 위를 달리는 전문적인 열차 강도가 나오기엔 꽤 이른 시간이었다.
‘내가 유행을 선도하는 건가.’
막스는 지붕 위를 달리는 틈틈이 뒤를 돌아봤다. 그러던 어느 순간, 한 놈의 머리가 빼꼼히 솟아오르는 게 눈에 들어온다.
총을 꺼내려던 막스는 생각을 고쳐먹고 기어이 열차 앞부분까지 달려갔다.
객실과 가장 가까운 기관차 구동부엔 물탱크와 석탄 더미가 쌓인 위가 개방된 석탄고(창고)가 존재한다. 이곳은 지붕보다 낮아 막스가 몸을 웅크리면 놈들은 볼 수 없는 위치였다.
석탄고로 뛰어든 막스는 머리를 내밀어 달려오는 놈들을 응시했다.
‘병신들, 나 같으면 기차가 멈추면 잡겠구만.’
주먹보다 작은 석탄 덩어리 대여섯 개를 손에 쥔 막스는 놈들이 어느 정도까지 다가오길 기다렸다.
그런 다음, 놈들을 향해 석탄들을 집어 던졌다.
퍼억!
“악!”
한 놈이 짧은 비명과 함께 다리를 감싸고, 쿨렌과 옆에 있던 놈은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막스는 또다시 석탄들을 집어 던졌다.
휘이이잉.
빠각.
“끄아아악!”
다리에 이어 가슴에 석탄을 맞은 놈은 이내 지붕에서 떨어졌다.
운 좋게 피했지만 쿨렌과 부하는 땅을 구르는 동료를 보며 식겁한 표정을 지었다.
‘저 개자식! 올라온 게 실수구나.’
쿨렌은 이를 갈며 몸을 일으켰다.
다시 아래로 내려가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그냥 놔둘 막스가 아니다.
석탄 대신 총을 꺼내들어 부하를 겨누었다.
타앙!
푸슉.
등에 총을 맞은 부하가 중심을 잃고 열차에서 떨어진다. 다급해진 쿨렌은 아래로 내려가기 위해 지붕 위를 질주했다. 그걸 본 막스는 비웃음을 머금으며 쿨렌의 발을 겨누었다.
타앙!
타앙!
“끅.”
두 발의 총성에 쿨렌의 무릎이 꺾였다.
세 발째엔 놈의 허리를 맞춰 몸을 무너트렸다.
이막산의 원한이 남아서인지, 막스의 입가에 잔인한 미소가 걸쳐졌다.
‘곱게 죽으면 안 되지.’
석탄고에서 나와 객실 지붕 위로 넘어가려 할 때였다.
문이 열리고 그 안에서 핑커톤 요원 두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서로 시선이 마주치고. 당황한 둘은 재빨리 홀스터에 손을 뻗지만, 이미 막스의 총구가 그들을 향해 있었다.
‘뭔, 속도가···.’
긴장한 탓인지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힌다. 입이 타는 갈증에 침을 삼켰다. 이때 막스가 담담히 말을 건넸다.
“핑커톤엔 별다른 감정 없으니까, 모른 척해.”
“이 짓을 했는데 모른 척하라는 게 말이...”
“앨런 핑커톤에게는 내가 직접 이야기하마.”
“앨런을 잘 아는 것처럼 말하는군.”
막스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장담하는데, 나보다 그를 잘 아는 사람은 없을 거야.”
“......”
‘그래서 친하다는 거야, 뭐야?’
당당한 막스의 태도에 요원들은 정체를 파악하려 머리를 굴렸다. 하지만 스카프로 얼굴을 가린 탓에 정체를 알 수 없었다.
“일단 그 스카프부터 벗지그래.”
“감당하지 못할 요구는 하는 게 아니야. 그나저나, 열차 회사가 탈출 노예나 잡으라고 니들을 고용했어? 게다가 노예 사냥꾼과 사이좋은 것 같던데, 앨런도 이 사실을 아나?”
요원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막스가 둘의 약점을 정확히 파고든 것이다.
앨런 핑커톤은 지하철도에 봉사한 노예제 폐지론자.
이를 알고 있던 막스는 쿨렌 베이커와 사이좋게 열차를 수색할 때부터 이들이 핑커톤의 부정부패한 직원이라는 걸 짐작하고 있었다.
“앨런은 지금 어디 있지? 오늘 일은 비밀로 해줄게.”
“......”
“뭐, 말 안 해줘도 상관없어. 어차피 앨런을 만나게 될 테니까. 다만 그땐 내 마음이 변할지도 몰라.”
요원들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갈등했다. 사실 앨런의 위치를 알려줘도 딱히 문제가 될 것 같지는 않았다. 어차피 그가 있는 곳은 대중들에게 노출된 장소였으니까.
요원 중 비교적 키가 큰 남자가 한숨을 내쉬었다.
“앨런은 지금 일리노이주의 스트링필드에 있다. 대통령 선거 유세를 돕고 있거든.”
‘역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