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5화 (65/360)

현재 미국은 15대 대통령을 선출하는 대선 정국이다. 막스가 로렌스 3인방을 오늘 데려오기로 한 건 오늘이 공화당 후보가 스프링필드에서 유세하는 날이라서였다.

로렌스 3인방은 캔자스의 노예제 문제를 대선 쟁점으로 삼으려 했을 터. 후보가 유세하는 날까진 스프링필드에 머물 거라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여기엔 막스의 개인적인 목적도 포함되어 있다.

무기 제작자인 호레이스 스미스와의 만남.

세인트루이스와 일리노이에 있을 미국 역사에 굵직한 발자취를 남긴 거물들. 그리고 앨런 핑커톤까지 만나볼 생각이었다. 

물론 약속이 정해진 스미스 외엔 만날 확률이 높진 않았다. 그런데 방금, 앨런 핑커톤을 만날 확률이 늘어났다.

‘핑커톤을 알리기에 대선 만큼 좋은 기회는 없겠지.’

미래의 대통령을 돕는 길이 사업 확장의 지름길이라는 걸 앨런 핑커톤은 잘 알고 있을 터. 설사 대선에 패배했더라도, 지금 만들어 놓은 연줄은 미래를 이끌어줄 강력한 힘이 될 테니 말이다.

캔자스 준주에 머무른 막스와 미연방을 상대로 뻗어가는 앨런 핑커톤.

‘이 차이를 좁히지 않으면 잡아먹히는 건 나다.’

막스가 요원들에게 말했다.

“내가 그렇게 모난 사람은 아니니까, 앨런에겐 비밀로 해줄게.”

총구를 겨누고도 막스는 고압적인 자세를 취하지 않는다. 오히려 같은 핑커톤의 동료처럼 둘의 잘못을 덮어주었다.

짧은 고민끝에 요원들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곤 객실 안으로 사라졌다.

‘자 그럼, 이막산의 복수를 끝내볼까.’

막스는 다시금 객실 지붕 위로 올라갔다.

다리와 허리에 총을 맞은 쿨렌 베이커. 

아무리 꿈틀거려도 지붕 위를 벗어나긴 힘들어 보인다.

이미 이막산의 기억이 겹쳐진 막스의 가슴에는 분노가 들끓고 있었다.

조선의 노비가 우여곡절 끝에 캘리포니아에 왔지만, 희망은커녕 악몽의 시작이었다.

무법자, 인종차별, 그리고 노예 상인. 

특히 이 쿨렌 베이커란 놈은 달콤한 말로 동양인들을 꼬드겨, 수하들과 함께 여인들을 강간하고 몸이 성하지 못한 중국인들은 재미 삼아 죽이기까지 했던 놈이었다.

당시 즐거워하던 놈의 얼굴은 이막산의 기억에 또렷이 남아 막스에게 전해졌다.

모자는 바람에 날려 보이질 않고, 바닥에 엎드린 쿨렌은 몸을 부들거리고 있었다.

지금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사내에게 벗어나려는지 손톱으로 지붕을 긁어댔다.

‘개새끼, 나한테 무슨 원한이 있는 거냐!’

막스의 얼굴에 비릿한 조소가 맺혔다.

쿨렌의 몸에 그림자를 드리운 막스는 스카프로 가린 얼굴을 그의 눈앞에 가져다 대었다. 그리고는 조용히 속삭였다.

“그동안 실컷 즐겼으면, 이런 날도 있어야지. 안 그래?”

“개··· 자식. 깜둥이도 아니면서 나한테 이러는 이유가 뭐냐···”

“이 몸이 복수를 원하거든.”

막스가 스카프를 내리자 쿨렌 베이커의 눈동자가 요동쳤다.

“...... 주, 죽은 줄 알았는데···!”

“눈으로 확인하기 전엔 확신하면 안 되지. 아무튼, 그때 작성한 계약서 어딨어?”

쿨렌 베이커가 한쪽 입꼬리를 씰룩거리렸다. 

“크크. 그걸 노린 거였나··· 네 놈은··· 절대 못 찾을 거야···.”

막스는 보위 나이프를 꺼내 쿨렌 베이커의 다리에 칼날을 쑤셔 넣었다. 

“으아아악!”

총상을 입은 상처를 쑤셔대자 그 고통이 어찌나 심한지 쿨렌은 파닥거리는 활어처럼 몸을 비틀었다.

“어차피 존 크렌쇼를 찾아갈 거야. 그러니 계약서가 어디 있는지, 거짓말이라도 해봐.”

“이, 악마 새끼. 끄아악!”

쿨렌은 끔찍한 고문 속에서도 세 번의 말을 바꾸었다. 그중 하나는 진짜일 수도, 혹은 전부 거짓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무턱대고 찾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는가.

드르륵. 쿵. 

드르륵. 텅텅.

지붕 위 비명이 객실까지 들리진 않는다. 하지만 승객들은 신경을 곤두세우며 쿨렌이 발버둥치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창밖으로 누군가 떨어지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드디어··· 우리 요원이 도둑을 처리했나 보군요. 다들 안심하고··· 즐거운 여행 되시기 바랍니다.”

사건을 축소하기 위해 쿨렌 베이커를 좀도둑으로 둔갑시키고, 요원 둘은 첫 칸부터 꼬리 칸까지 돌아다니며 승객들을 안심시켰다.

자리로 돌아온 막스의 몸에 피 냄새가 짙게 배어 있다. 건너편 자리에 앉아있던 조 짐 주니어가 물었다. 

“요원들이 수습하러 돌아다니던데. 고생하셨어요, 대장.”

“어. 근데.”

막스는 태평하게 얼굴을 모자로 덮은 채 처자고 있는 콜린을 쳐다봤다.

슬쩍 모자를 들어 올리니 입가에 침을 흘리기까지 한다.

‘이 인간도 참 별종이란 말야.’

코웃음 친 막스는 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기절한 놈들은?”

“콜린이 대충 치우자고 해서요···.”

열차 밖으로 던졌단다.

*

일리노이주의 주도 스프링필드.

역에 도착함과 동시에 임무를 끝낸 핑커톤 요원들은 기차에서 내리는 막스를 노려보며 속닥거렸다. 화두는 그의 정체였다.

“대체 뭐 하는 놈이냐···.”

“혼자서 다섯을 처치했어. 총 뽑는 실력도 그렇고. 내가 보기엔···.”

“보기엔?”

키 큰 요원은 막스를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텍사스 레인저스 아니면, 군인 출신인 건 분명해.”

“캘리포니아 레인저스일 수도 있고?”

“그렇지. 그런데 앨런하고 친분이 있다? 이게 뭘 뜻하겠어. 조만간 핑커톤에 들어올 사람이라는 거지.”

“오. 그 생각을 못 했네.”

가뜩이나 구인광고에 열을 올리는 앨런 핑커톤이다. 다섯 명을 여유롭게 처리할 실력자라면 파격적인 급여를 줘서라도 채용할 만했다.

“아무래도 우리가 먼저 앨런을 찾아가는 게 낫겠어.”

“가서 뭐라고 하게?”

“아무리 승객들 입단속 해봐야, 열차 회사와 앨런도 알게 될 거야. 그러니 사실대로 보고해야지. 다만 쿨렌 베이커 그 자식과의 관계는 절대 부인해야 해. 저 남자가 이 일을 덮어준다고 했잖아.”

“흠. 그럼 열차 회사엔 내가 보고서를 작성할 테니까, 앨런에겐 네가 가서 말해.”

역할 분담을 끝내고, 키 큰 요원은 역마차에서 말을 빌려 앨런 핑커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스프링필드 기차역에서 빠져나온 막스 일행은 목적지인 공화당 컨벤션 홀을 찾아갔다.

도시의 모습은 로렌스의 미래. 커다란 대로에는 마차와 말들이 오고 가고, 단층보단 2~3층 높이의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근데 열차에서는 몰랐는데, 둘이 그러고 다니니까 진짜 수상해 보이는 거 알지?”

“......”

모자를 눌러쓰고 스카프로 얼굴을 가린 막스와 주니어. 

이를 위아래로 훑어본 콜린이 혀를 찼다.

“막스야 희귀종이니까 그렇다쳐도, 주니어··· 너도 마찬가지구나.”

일리노이는 인디언인 일리노이가 살았던 곳. 그러나 인디언 부족 간 전쟁과 백인들에 밀려 다른 곳으로 피신했다. 그렇게 일리노이 인디언은 일리노이란 이름만 남겨두었다.

어찌 됐든, 이곳 스프링필드에서도 막스와 주니어는 냇가에서 사금이 나올 만큼 보기 드문 인종인 건 분명했다.

컨벤션 홀에 다가갈수록 피켓과 구호를 외치는 자들이 눈에 띈다. 일부는 공화당 대선 캠페인 슬로건을 외쳐댔다.

“자유 토양! 자유 노동! 자유 언론! 자유인인 프레몬트!”

공화당에 비해 민주당은 단순 명료하다.

제임스 뷰캐넌 후보의 슬로건은 ‘이번에도 우리는 승리한다’였다.

현 대통령 프랭클린 피어스가 싸질러 놓은 똥은 아랑곳하지 않는 민주당의 자신감, 혹은 오만함이었다.

흥미로운 건 자유주인 일리노이주도 민주당 지지자들이 많다는 사실. 

휘그당과 민주당에서 탈당한 자들이 만든 공화당은 짧은 역사만큼이나 인기가 많지 않았다.

막스 일행이 컨벤션 홀에 도착할 즈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파렴치한 노예주는 보더 러피안을 내세워 캔자스를 피로 물들이고 있습니다! 그들의 패악질을 응징하려면, 기필코 이번 대선에서 승리해야 합니다! 우리의 올바르고 명백하며, 가치 있는 신념을 투표로써 보여줍시다!”

얼마나 연설을 많이 했는지, 앤드류 리더의 목소리엔 쉰 소리가 섞여 있었다.

그러나 들어주는 사람이 많아서인지 어느 때보다 열정적인 모습이었다.

콜린은 어처구니없다며 투덜거렸다.

“숨어 있어도 부족할 판에 단상에 떡하니 올라가 있네. 보더 러피안 놈들이 보면 아주 군침을 질질 흘리겠어. 이건 뭐, 빨리 총 쏘라고 꼬시는 건가?”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 안 보이네요.”

주니어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찰스 주지사와 레인 의원이 보이질 않았다.

“둘은 끝나거든 리더 의원 좀 데려와요.”

“알았어.”

콜린과 주니어는 미리 인파를 비집고 들어가 리더 근처에 자리를 잡았다.

홀로 남은 막스는 한쪽 구석에서 팔짱을 낀 채 연설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그를 지켜보던 한 중년 남자가 복슬복슬 한 턱수염을 만지며 입을 열었다.

“혼자 노예 사냥꾼 다섯을 해치웠다, 이거지?”

“예. 그런데··· 모르는 잡니까?”

“스카프로 얼굴을 저리 칭칭 둘렀는데, 내가 어떻게 알겠나. 이름도 모른다며?”

“...... 네.”

열차 요원인 남자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 감당하지 못할 요구는 하는 게 아니야.

- 장담하는데, 나보다 그를 잘 아는 사람은 없을 거야.

‘저거 순 사기꾼 새끼였네.’

요원이 내심 욕을 퍼부을 때.

“싸우는 걸 직접 봤나?”

“...... 아니요. 그건 못 봤습니다. 다만, 총 뽑는 솜씨 하나는 기가 막히더군요. 

“흠. 어찌 됐든, 저 친구가 나를 찾는다 이거지.”

시카고 최초의 형사 앨런 핑커톤. 

그는 정체 모를 남자에게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 

다만.

‘그냥 운으로 이긴 건지. 아니면 열차 지붕에 환장한 미친놈인지, 확인은 해봐야겠지.’

게다가 무슨 의도로 자신에게 접근하는지도 알아내려 했다.

앨런은 요원 셋을 불러들였다.

그리고는 한 가지를 지시했다.

“저 남자의 스카프를 벗긴 자에게 10달러를 주겠네. 단, 총과 칼은 절대 사용하면 안 되고, 우리의 정체 또한 드러내면 안 되네.”

“알겠습니다!”

‘든든하구먼.’

멀어지는 요원들의 듬직한 뒷모습을 쳐다보며 앨런 핑커톤은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 미소가 경악으로 바뀌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내가 방금 뭐를 본 거지!’

발과 손이 몇 번 휘적거리더니 순식간에 세 명이 나가떨어졌다. 게다가 스카프를 벗기랬더니, 요원들은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져 있었다.

더욱 당황한 일은. 

등에 총이라도 댄 건지 요원 한 명을 앞세워 앨런을 향해 오고 있다는 사실.

'......'

처음 있는 일이다.

어딘가로 도망가고 싶은 적은···.

앨런 핑커톤은 멍하니 선 채 다가오는 남자를 쳐다봤다. 

그는 여전히 스카프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 도망가고 싶다 > 끝

< 아직은 때가 아닌가 >

앞세운 인질의 척추엔 뾰족한 보위 나이트 칼끝이 척추에 닿아 있다. 그 촉감은 끔찍한 상상을 자극하며 인질의 행동을 컨트롤하는 데 효과적이었다. 

‘앨런 핑커톤, 나를 시험했다 이거지.’

막스는 입을 반쯤 벌리고 있는 앨런을 노려보며 다가갔다.

핑커톤은 양면성을 지닌 조직.

남북전쟁까지는 그 노선이 나쁘진 않다.

자유주인 북부군에서 싸웠으며, 노예 해방에도 적극적이었으니까. 

문제는 남북전쟁 이후다. 

벤더빌트, 록펠러, 카네기, 모건과 같은 도금시대에 핑커톤은 그들 편에 서서 노동자들을 탄압하는 데 앞장서게 된다.

상반된 역사적 평가에서 의심해볼 건, 앨런 핑커톤이라는 인물의 진면목이다.

그가 기회주의자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둥글둥글한 얼굴, 이마가 훤히 벗겨진 머리카락과 덥수룩한 수염. 

흑백이 칼라로 바뀐 차이일 뿐, 핑커톤에 관심이 많았던 막스는 당연히 앨런 핑커톤의 얼굴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막스는 짐짓 모르는 척 말을 건넸다.

“당신이 시킨 건가?”

“...... 일단 우리 직원부터 풀어주게.”

“직원?”

앨런이 인상을 찡그리며 입을 열었다.

“내가 앨런 핑커톤일세.”

“...... 오!”

놀란 듯 눈을 크게 뜨지만, 스카프에 가려진 막스의 입가엔 짙은 미소가 걸려있다.

보위 나이프를 회수한 막스는 정중하게 인질을 풀어주었다.

“자네의 정체가 궁금해서 벌인 건데··· 미안하게 되었네.”

“오히려 제가 미안하네요. 핑커톤 직원인 줄 알았으면 적당히 했을 텐데.”

‘적당히?’

앨런의 눈가에 작은 경련이 일어났다.

하지만 화가 나기보단 상대의 정체가 미치도록 궁금했다. 

그런데 이때.

“여긴 대체 어떻게 알고 찾아온 거야!?”

앤드류 리더가 인파를 뚫고 막스에게 달려온다. 헤어진 가족 상봉이라도 한 듯 눈가도 어느새 촉촉해 있었다.

“이게 얼마 만이야! 안 그래도 돌아가려고 했는데, 뭘 힘들게 여기까지 찾아왔어. 막스 보안관!”

보안관 그만둔지가 언젠데 아직도 저러고 있다.

앤드류 리더는 덥석 손을 잡으며 반가움을 드러냈다. 그리고 이를 지켜보던 앨런 핑커톤의 동공이 흔들렸다.

‘막스 보안관? 설마, 그 로렌스 보안관인가?’

탐정 에이전시 수장답게, 앨런은 범죄에 관련된 신문을 스크랩하여 데이터를 구축하고 있었다.

로렌스 보안관을 눈여겨본 건 미국당 당원으로 가장한 일당의 살인사건이 결정적이었다.

[로렌스 보안관, 델라웨어와 볼드윈 마을의 살인사건 해결. 범인들은 미국당과 자유토지당 당원을 행세한 미주리주 청년들로 밝혀져.]

이 사건이 흥미로운 건, 범인들의 치밀함이다.

당 홍보를 위해 당원 행세로 가장. 

마을의 구조를 파악해 표적물을 물색. 

범행에 앞서 길게는 일주일 이상의 텀을 두어 의심을 피함.

이런 용의주도한 범인을 잡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몇 번의 동일한 패턴이 나오지 않는다면, 윤곽조차 나오지 않을 사건이었다.

흥미를 느낀 앨런은 범인을 잡은 로렌스 보안관과 관련된 기사를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캔자스의 굵직한 사건마다 개입되었으면서도 정보가 단편적이었다. 갈증을 느낀 앨런은 직원 한 명에게 정보 수집을 지시했다.

말이 수집이지 뒤를 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 직원은 불과 보름 전, 믿기 힘든 보고서를 내밀었다.

[이름 : 막스 조.

직업 : 로렌스 최초의 보안관이었으나, 그만둔 다음엔 제이호커스 지휘자로 등극.

경력 : 파이브 호아킨스 갱단 사살.

보더 러피안 12명 사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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