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스는 금속 탄피와 구리 탄두를 탁자에 올려두고 이내 팔짱을 끼었다.
“거두절미하고. 특허는 팔 생각이 없습니다.”
“우리도 살 생각까지는 없네.”
“로열티를 받을 생각도 없습니다. 천 개당 1센트도 안 되는 돈은 있으나 마나 아닙니까.”
호레이스 스미스가 미간을 찌푸렸다.
금속 탄피의 마지막 완성인 구리 탄두는 반드시 손에 넣어야 했으니 말이다.
“하면 자네가 원하는 게 뭔가?”
“아시는지 모르겠는데, 제가 로렌스에 무기 제조 공장을 만들고 있습니다.”
“!”
“!”
스미스와 앨런의 부릅뜬 눈을 뒤로하고, 막스가 말을 이어갔다.
“앞으로 무기를 만들 생각인데, 그러려면 제가 스미스 씨의 특허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실린더와 금속 탄피의 특허 말인가?”
막스가 고개를 끄덕이자 스미스는 가당치도 않다며 코웃음 쳤다.
“구리 탄두는 없어도 그만이네. 비교할 걸 비교해야지.”
“물론 탄두 값어치와는 비교가 안 되긴 하죠. 다만.”
스미스의 눈이 가늘어졌다. 또 무슨 말이 튀어나올지 기대 반 걱정 반이다.
“만들어오신 림파이어 탄약이 운반 사고에 취약하다는 점, 프레임을 절삭해 접힐 수 있도록 만든 부분의 내구성이 취약하다는 점. 이런 걸 따져보면 손해 볼 건 없을 텐데요.”
‘이 인간이 대체 어디까지 아는 거지.’
스미스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방금 말한 막스의 의도는 명백하다.
탄두는 개선할 여지가 적지만, 나머지는 그렇지 않다는 걸 꼬집은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전 이미 두 가지의 단점을 극복할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스미스씨의 특허를 무력화 할 수 있는 것들이죠.”
“거짓말! 그게 사실이라면 왜 특허를 내지 않았나.”
“특허 담당 변호사를 얼마 전에야 구했거든요.”
“......?”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아무리 개선된 탄피와 총이 나와도 문제는 가격입니다. 전 그 시기를 따질 뿐이고.”
현재 장비의 수준으로는 공정이 복잡할수록 단가가 올라갈 수밖에 없다.
게다가 사용하는 사람들의 인식은 또 어떻고.
납알 탄이든, 풀 메탈 재킷이듯.
사람만 죽이면 그만이라 비싼 돈 주고 총알을 살 이유가 없었다. 그 인식이 바뀌는 건 전쟁에서 위력이 입증된 이후였다.
“그래서 자네가 원하는 게 뭔가.”
막스를 만난 뒤로 스미스의 동공이 여러 번 흔들린다. 안정이 될 만하면 이리저리 흔들어대니 스미스도 슬슬 지치기 시작했다.
“스미스 씨와 일대일로 특허 수만큼 공유하고 싶습니다. 두 개가 필요하면, 두 개를 드리겠다는 말이죠.”
“있지도 않은 특허로 거래를 하겠다고?”
“일단 하나는 있지 않습니까.”
구리 탄두 제조와 금속 탄피 제조권을 교환.
사실 이 두 개의 제조 단가가 워낙 크기 때문에, 막스는 있지도 않은 특허 하나를 끼워넣어 값을 보정했다.
사기꾼들이 흔히 하는 수법으로, 막스가 보여준 지식과 맞물려 호레이스 스미스에게 기대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럼에도 선뜻 대답하기엔 힘든 제안이었다.
“동업자인 웨슨과 이야기를 나눠보겠네.”
“당연히 그러셔야겠죠. 참고로, 새뮤엘 콜트도 구리 탄두에 관심을··· (보였으면 좋겠네요.)”
“새뮤엘 콜트?”
막스가 속삭인 건 다행히 들리지 않은 모양이다. 콜트라는 이름이 튀어나온 순간, 스미스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라이벌 새뮤엘 콜트가 구리 탄두를 손에 넣는 꼴을 어떻게 보겠는가.
스미스에게 없던 조바심마저 생겨났다.
“일단 오늘은 이 정도로 하지. 답변은 가능한 한 빨리 주도록 하겠네.”
“기다리겠습니다. 아, 그리고.”
막스는 품속에서 얇고 기다란 금속 막대기를 꺼냈다.
알프레도가 만든 스코프로, 처음에 만든 것과는 길이와 모양이 달랐다.
막스가 한쪽 끝을 잡아당기자 길이가 두 배로 늘어났다. 휴대성 외에 성능의 차이는 없었지만, 호기심을 끌기엔 충분한 물건이었다.
“한 번 만들어봤는데, 쓸만하더군요. 저격수에겐 큰 도움이 될 겁니다.”
“허, 이런 물건에도 관심이 있었나?”
“무기라면 뭐든 제 관심사죠. 아무튼, 가시는 길에 심심하진 않으실 겁니다.”
스코프를 준 건 스미스의 동업자 웨슨을 의식한 것 때문이었다.
막스가 눈빛, 억양, 대화 순서까지 고려한 화술을 펼쳐 스미스를 현혹했다면, 자리에 없는 웨슨은 냉정한 판단과 이성으로 계약의 형평성을 따지고 들 게 뻔하였으니.
스코프는 스미스를 위한 것이 아니라, 웨슨의 환심을 사려는 막스의 선물이었다.
호레이스 스미스가 사무실을 나가자, 막스는 그제야 앨런에게 관심을 두었다.
그는 꽤 생각이 복잡해 보였다.
막스가 앨런의 이중성을 의심한 건, 스코틀랜드 출신인 그가 미국으로 넘어오게 된 이유와도 연관이 있었다.
배럴 제조 견습공으로 노동자 운동에 참여한 앨런은 감옥에 갇힌 동료를 구출하려다 실패하여 수배령이 내려지게 된다.
노동자로서 노동운동을 하다 미국으로 건너온 앨런. 그런데 정작 그가 만든 핑커톤이 노동자를 탄압하는 조직이 되었으니, 극적인 변화라 할 수 있었다.
문득 막스가 질문을 던졌다.
“만약 내가 회사에서 파업을 주동하는 노동자를 잡아달라고 하면, 어떻게 할 겁니까? 물론 잡은 뒤엔 응징할 생각입니다만.”
뜬금없는 질문에도 앨런은 진지하게 되물었다.
“파업의 원인은?”
“임금 인상, 노동 시간, 복지, 근무 환경 등. 노동자들의 요구 사항을 모조리 거절했습니다.”
“회사 사정은?”
“매년 30% 이상 성장하고 있습니다.”
“악덕 고용주로군. 절대 자넬 돕지 않겠네.”
앨런의 입장은 단호했다.
나름의 확고한 기준이 있었다.
어쩌면 핑커톤의 변질은 창업주가 아닌 후임이 노선을 틀어버린 것일지도 모르겠다.
FBI, USS(미국 비밀 경호국), ACI(미 육군 방첩부대)의 단체 설립에도 크고 작은 영향을 끼친 앨런 핑커톤.
“저와 손잡을 생각 없습니까?”
막스와 앨런의 시선이 부딪혔다.
처음에 저 소리를 들었으면 앨런은 콧방귀를 뀌었을 터. 그런데 어느 순간 막스의 말에 실린 무게감이 달라졌다. 그렇다고 그가 만난 스미스가 대단한 인물이라서는 아니다.
총기 제작자가 어디 한둘인가.
오로지 막스 개인을 두고 내린 판단이었다.
전투 능력이 정점에 이른 자가, 무기를 제작하고 그 기술 또한 앞서간다면?
게다가 존 브라운과 캔자스의 핵심인물을 등에 업고, 제이호커스가 뒤를 바쳐준다면?
그리고 핑커톤이 함께한다면.
과연 이 남자는 무슨 일을 벌일까.
앨런의 팔뚝에 소름이 돋아난다.
눈앞에 있는 남자는 일개 동양인이 아닌, 거대한 가능성을 품고 있는 사내다.
물론 과대해석일 수도 있다.
냉정하게 말해 동양인으로서 갈 길이 멀고 험한 건 분명하니까.
그럼에도 이 남자는 극복할 것이다.
단기간에 보여준 행적이 이를 증명했다.
핑커톤이 사업을 확장해간 건 앨런의 감이 절대적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그 감이 막스를 잡으라 재촉하고 있었다.
“내가 뭘 도와주면 되겠나.”
*
- 사업을 크게 벌일 생각인데. 사람들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 무슨 사업이길래?
- 아직 언급하기엔 이릅니다만, 그때가 되면 핑커톤에게 보안 경비를 맡겨 볼 생각입니다. 가능하겠습니까?
- 당연히 가능하지.
- 인원이 꽤 많이 필요할 겁니다. 많게는 천명이 될 수도 있어요.
- 처, 천명?!
스프링필드에서 머무는 동안 막스와 앨런은 총 세 번의 만남은 가졌다.
대통령 후보 연설 일정이 아니었다면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을 터. 그만큼 앨런은 막스와의 대화를 중요하게 여겼다.
스프링필드의 일이 마무리되고, 로렌스 3인방은 벌목공의 모습으로 세인트루이스행 열차에 올랐다.
“앨런 핑커톤과 대체 무슨 일을 꾸미는 건가?”
옆자리에 앉은 레인이 조용히 물어왔다.
“일을 꾸미다니요. 어떻게 하면 캔자스를 자유주로 만들까 고민을 나눴을 뿐입니다.”
“뭐, 그렇다 치고. 제이호커스를 지휘하는 동안 별문제는 없었나?”
“없었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레인은 이윽고 말을 꺼냈다.
“내가 돌아가도 지휘는 자네가 맡게.”
“알겠습니다.”
늘 그렇듯.
막스는 고민 없이 대답했다.
익숙해진 레인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천장으로 시선을 향했다.
“달리는 열차 지붕 위를 뛰어다니면, 기분이 어떤가?”
“낭만. 직접 느껴보시겠습니까?”
"..... 다음에 기회되면 해보겠네."
레인을 꼬셔보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 다음에 기회되면 > 끝
작가의말
핑커톤에 관해 어제 댓글을 달아주신 분이 계셨습니다.
말씀처럼 자유주인 북부는 산업화로 공장이 들어섰고,
이들이 곧 자본가라 할 수있습니다.
앨런이 자본가의 편에 서서 노동자를 탄압하는 건 크게 이상한 점이 없습니다.
이 부분에서 저도 부족함을 느끼고, 이를 보완하고자 원 역사에서 앨런 핑커톤이 노동운동을 하다 미국으로 건너온 점을 추가했습니다.
앞으로도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수정 혹은 첨가하도록하겠습니다
< 금전 치유가 필요한 자 >
막스 일행이 일리노이를 떠나는 날, 미주리주 화이트 헤븐에서 출발한 마차 행렬은 세인트루이스 항구로 향하고 있었다. 마차마다 짐칸에는 목재가 가득했다.
선두 마차의 마부석.
말 고삐를 쥔 30대 남자와 목재 상인 대화를 나누고 있다.
“군인이 농사 짓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더구나 자네가 깔고 있는 땅이 일단 뭘 심기에는 적당하지가 않아.”
“뭐, 내년엔 나아지지 않겠습니까.”
“땅을 경작하고 수확하려면 더 오랜 시간이 걸릴 걸세. 자네 웨스트포인트 출신이라며? 나 같으면 벌써 군대로 돌아갔겠구만.”
목재 상인의 말에 남자가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웨스트포인트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기병 장교다. 그런데 뜬금없이 보병으로 배치되질 않나 멕시코 전쟁에서는 병참 장교로 활약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이 전쟁에서 한 가지 깨달은 건 군인이 적성에 안 맞는다는 사실이었다.
부모님의 영향을 받아 어릴 적부터 노예제도를 혐오한 그는 멕시코 전쟁을 노예제 확대를 위한 영토 침략으로 규정짓고, 군인이라는 직업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다.
이때부터였을 거다. 군 이후의 삶을 위해 여러 사업에 손을 대고 실패한 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사업 파트너가 그의 돈 800달러를 가지고 도주하는 일까지 벌어져 그야말로 쫄딱 망해버렸다.
거듭되는 실패.
술에 빠져 살던 그는 마침내 군을 그만두고 처가가 있는 세인트루이스의 화이트헤븐에 정착하게 된다.
하지만 농부로서의 삶도 호락호락하진 않았다.
“근데 말야. 아무리 생각해도 그 여자가 자네한테 관심 있는 게 분명하단 말이지.”
“저 유부남입니다. 게다가 길거리에서 장작이나 파는 사람한테 무슨 관심이 있겠습니까.”
“그럼 왜 하필 자네한테 목재를 사겠다고 생떼를 써? 이 부근에 목재상이 어디 한둘이야?”
“...... 아무튼, 그런 건 아닐 겁니다.”
남자는 고개를 저었지만, 그렇다고 다른 이유는 딱히 생각나지 않았다.
사흘 전, 갑자기 나타난 여자가 자신에게 목재를 구해다 달라고 요구했다. 그것도 중개 수수료까지 주면서.
농사는 망하고 장작을 팔아 가족들 입에 겨우 풀칠하며 살던 남자에게 그녀가 제안한 중개 수수로 10달러는 꽤 큰 금액이었다.
뭔가 찝찝한 거래지만 거부하기엔 돈이 아쉬웠다.
목재상 주인은 미심쩍은 표정으로 말을 건넸다.
“그 여자와 일행이 전부 무장했다고 그랬나?”
“평범해 보이진 않더군요.”
“혹시, 캔자스에서 오진 않았겠지?”
“설마 거기서 여기까지 올까요.”
목재상 주인은 모르는 소리 말라며 말을 이었다.
“캔자스가 죄다 평야잖아. 나무 구하기도 쉽지 않은 데다, 요새 미주리주랑 사이가 안 좋아서 물류 수송도 힘들다고 들었거든.”
한때 보더 러피안이 증기선 선박을 점거해 물류를 끊었다는 소식이 미주리주에 펴진 적이 있다. 이후 어떻게 되었는지는 신문사에서 제대로 다루지 않았으니, 목재상은 여전히 같은 상황이 아닐까 생각했다.
“만약 캔자스, 특히 로렌스에서 온 놈들이라면 이 목재는 절대 줄 수 없어.”
“...... 아닐 겁니다.”
“하여간, 그건 확실히 하고 넘어가야 해. 절대 노예제 폐지론자 놈들에겐 줄 수 없으니까.”
남자는 대답 대신 말을 채근하며 마차 속도를 높였다.
‘노예도 없으면서 대체 그놈의 노예제는 왜 옹호하는 거야.’
남자는 노예제 폐지론자다.
그래서인지 목재상, 아니 대부분의 미주리 주민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이런 성향을 감추고 처가가 사는 미주리주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었다.
비겁한 일이지만 당장 그에겐 먹고사는 문제가 가장 중요했다.
‘하늘에서 금덩이가 우박처럼 떨어졌으면 좋겠구만.’
돈만 있으면 세상에 걱정할 일이 뭐가 있을까.
남자는 자신의 인생을 한탄하며 세인트루이스 항구로 향했다.
*
같은 시각. 피치와 다우니, 로어는 아침부터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 항구에 나와 있었다.
항구에는 배로 물건을 상하차하는 인부들로 북적거렸다.
가을이라 아침 기온이 제법 쌀쌀하지만, 다우니와 로어는 한 귀퉁이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다.
그런 둘의 몸에서 피어오른 술과 싸구려 화장품 냄새가 피치의 코를 자극했다.
“아주 살판 났구만. 어젠 또 어디 갔었어?”
“.....여관 밑에서 술 마셨지.”
“퍽이나 술만 마셨겠다. 향수가 옷에 배었구만!”
눈치를 살피며 말하는 로어와 달리 다우니는 뻔뻔했다.
“잘 생겨도 피곤하더라. 자꾸 달라붙는데 난들 어쩌겠어.”
“거짓말도 그럴듯하게 해야 믿지. 둘이 도박해서 돈 땄지?!”
피치의 날카로운 질문에 로어는 당황하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어, 어젠 게임이 좀 됐거든.”
“에휴, 병신. 그걸 또 말하네.”
다우니가 로어를 한심한 듯 노려봤다.
덩치에 안 맞게 로어는 여자에게 약한 모습을 보였다. 피치의 경우엔 약하다기보다 은근 어려워하기까지 했다.
어찌 됐든, 모처럼 번화가에 온 둘은 밤마다 바에 내려가 포커 게임을 즐겼다. 한창 피 끓는 청춘이 어디 그것만 즐겼겠는가.
물론 피치는 그걸 탓할 생각이 없다.
이 시대 서부 남자들의 흔한 일상이었으니.
중요한 건 돈이었다.
“그래서 얼마 땄는데?”
“...... 15달러.”
“쳇, 여자가 꼬일만 했네. 그래서 아침은 둘이 사는 거지?”
“...... 엉. 살게.”
멍청하게 금액까지 말했냐며 다우니가 로어를 타박할 때였다. 마차 행렬이 다가오자, 로어가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흔들었다.
“진짜 목재를 구해 온 모양이네.”
다우니가 중얼거리고, 피치는 선두 마차의 마부석을 유심히 쳐다봤다.
그녀의 시선은 마부 옆에 앉아 방향을 일러주는 남자를 향했다.
‘보기엔 평범해 보이는데.’
막스는 왜 저 남자를 콕 짚어 찾으라 했을까.
사흘 전, 막스와 헤어진 뒤 피치는 곧바로 그자의 행방을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그런 끝에 겨우 찾아냈지만, 정작 남자는 목재상이 아닌 장작을 내다 파는 사람이었다.
‘뭐, 찾으라는 데는 다 이유가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