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기어리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정확히 인식하고 있었다.
쉐라드를 그냥 놔두자니 언제 총질할지 모르겠고, 먼저 죽이자니 이는 노예주에게 빌미를 제공하는 셈이었으니 말이다.
“결국, 놈들이 원하는 건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주지사를 앉히는 거겠지.”
존 기어리가 큰 한숨을 내쉬자, 막스는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제가 굳이 위장까지 해가면서 찾아온 이유가 뭐겠습니까. 주지사님과 무관하게 쉐라드를 제거하면 되는 일입니다.”
조금은 섬뜩한 이야기. 존 기어리는 막스의 눈을 쳐다보며 물었다.
“어떻게 해서든 나와 연관 짓지 않을까?”
“그렇게 안 만들면 됩니다. 언제까지 경호 인력을 이곳에 놔둘 수도 없고. 며칠 안에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그게 가능하다고?”
“노력해봐야죠.”
얼추 대화가 끝났지만 막스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이곳을 찾아온 이유가 단지 쉐라드를 죽이기 위해서만은 아니었으니까.
“한가지 궁금한 게 있습니다만.”
“궁금하면 물어봐야지. 뭐든지 물어보게.”
“만약, 캔자스 준주에서 금광이 발견되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눈을 크게 뜬 존 기어리는 막스를 쳐다보곤 이내 웃음을 터트렸다.
“막스, 자네도 그런 망상을 하나? 전혀 그렇게 안 봤는데 말야.”
“냇가에서 목욕하다 금덩이가 나올지. 누가 알겠습니까.”
존 기어리의 웃음이 그치질 않는다.
“내가 여기 오기 전에 뭘 했는지 아나?”
“글쎄요.”
“펜실베니아에서 광산을 운영했었네. 여기저기 금광이 있을까 싶어 탐사하다, 결국 석탄 광산을 발견하게 됐지.”
“석탄도 나쁘진 않죠.”
존 기어리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큰돈은 안 되네. 게다가 캘리포니아에 금광이 발견될 당시, 나는 그곳 우체국장이었네. 그리고 사람들이 골드러시로 몰려들 땐, 샌프란시스코의 알칼데였지.”
멕시코 전쟁 직후에 얻은 영토라, 알칼데는 스페인식 도시의 군수를 일컫는 말이었다.
“당시 금을 발견한 자들이 지금 어떻게 되었는지 알면 그런 헛된 망상은 안 할 걸세.”
“어떻게 됐습니까?”
워낙 유명한 이야기다. 막스도 당연히 알고 있었다.
“자신의 땅도 빼앗기고, 무법자들에게 가족까지 잃었지. 발견은 했지만, 지키기가 만만치 않은 일이거든.”
“그럼 주지사님께서 만약 금을 발견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생각만 해도 기쁜지 존 기어리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돈을 밝히지도, 나름 부유한 인물임에도 금이란 말 자체는 사람을 흥분되게 만드는 마력의 산물이었다.
“만약 나라면, 혼자 독점하지는 않을 거야. 금광을 지킬 수 있는 세력과 주 정부와도 협의를 해두겠지. 금이 발견되면 캠프가 세워질 테고, 채굴된 금을 처리하는 은행부터 시작해 마을 하나가 뚝딱 생겨버리거든.”
각지에서 몰려드는 수많은 인파. 그 속에 섞인 무법자들. 욕망이 뒤섞인 금광 촌은 그야말로 혼돈의 카오스.
“금 발견했다고 소리치다, 죽는 사람 여럿 봤어. 그만큼 위험한 곳이란 소리지.”
막스는 집요하게 질문을 던졌다.
“주 정부와 협의해서 뭘 얻는 겁니까?”
“금이 곧 주 정부의 세입원이잖은가. 그래서 금을 환전하는 차익이 중요하거든. 그런데 무법자들이 금을 강탈해서 다른 주에 팔면 어떻게 되겠어. 예를 들어 캔자스에서 캔 금을 미주리주에서 처리하면, 거기 좋은 일만 시키는 셈이라 이거지.”
“그럼 그걸 막기 위해서 주 정부는 뭘 해주는 겁니까?”
“주 방위군 병력 일부를 투입하겠지. 범위는 제한적이지만, 없는 것보다는 낫잖아?”
“그렇군요.”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땅 주인 스스로 금광을 지키는 거거든. 특히, 고용한 자들을 어떻게 관리하는 지가 관건이지. 땅 주인 혼자서 금을 캘 순 없잖아?”
“근데, 아까보단 목소리에 힘이 넘치시네요.”
“복잡한 정치 얘기보단 금 얘기가 훨 낫지.”
존 기어리는 웃음을 터트리며 대화를 이어갔다.
‘내가 금광을 발견했다면?’이라는 주제는 쉽게 끝날 이야기가 아니었다.
*
“뭐 하느라 이렇게 늦게 왔어? 기다리느라 목 빠지는 줄 알았잖아.”
레콤프턴의 여관.
오른쪽 눈가에 점을 찍은 피치가 막스를 흘겨봤다. 둘만이라면 분위기가 야릇했겠지만, 옆에는 분대원 셋이 더 있었다.
막스는 시무룩한 얼굴로 그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
“주지사가 말이 많더라. 아무튼, 우리의 목표는 윌리엄 쉐라드로 정해졌다. 내일부터 정보를 수집할 수 있도록.”
“옛 썰!”
다음 날.
막스는 피치의 흑인 노예가 되어 레콤프턴 곳곳을 돌아다녔다. 크리스마스가 코앞이라 상점들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더러는 피치에게 관심을 보인 남자들이 있었는데, 괜히 다가와 찝쩍거리며 돈 자랑 힘 자랑을 하기도 했다.
둘이 되었을 때, 피치는 뒤에서 묵묵히 따라오는 막스를 쳐다봤다.
“내가 이 정도야. 남자들 꼬이는 거 봤지?”
“어. 봤어.”
“뭐, 느끼는 건 없고? 위기의식이라던가.”
“총을 들어야 위기의식을 느끼지.”
“...... 됐다.”
그날 밤.
요원들이 모여 정보를 취합 했다.
“해가 지면 랩튼 바에서 술 처먹고, 도박하는 단순한 패턴. 역시 사무엘 존스 후임답구나. 거사는 내일. 나와 피치 빼고는 약속된 장소에서 대기할 수 있도록.”
“옛 썰!”
크리스마스이브 저녁.
피치는 바지가 아닌 치마를 입고 술집엘 들어갔다. 그동안 막스는 마구간에 들어가 추위를 피했다.
‘딱, 일 년 만이구만.’
그때와 똑같은 상황이다.
바뀐 게 있다면, 마구간에 알프레도와 같은 노예가 없다는 것. 랩튼 술집 바운서가 바뀌었다는 정도였다.
막스는 마구간 입구에 서서, 술집 입구를 쳐다봤다. 콜린이 조지 클라크를 밖으로 꼬이는 데 4시간이 걸렸다면, 피치는.
‘!!’
들어간 지 10분 만에 한 남자와 팔짱을 끼고 있었다.
당연히 그 남자는 윌리엄 쉐라드였다.
벌겋게 달아오른 놈은 눈을 피치에게서 떼질 못하고 있다.
- 우리 밖으로 나가요.
- 지, 지금?
- 네. 여긴 보는 눈이 너무 많잖아요.
- 헛! 오케이!
피치가 쉐라드를 데리고 나올 즈음.
말에 올라탄 막스는 코웃음 치며 천천히 마구간 밖으로 향했다.
삐걱.
피치와 쉐라드가 밖으로 나올 때, 막스는 술집 앞에 말을 멈춰선 채 쉐라드를 쳐다봤다.
“뭐야, 저 깜둥이 새낀. 어디서 눈깔을, 건방지게!”
피치가 슬쩍 쉐라드와 거리를 벌린다.
술집 안에서도 말을 탄 흑인 노예를 볼 수 있었다. 일부는 기가 막힌 표정을 짓지만, 일부는 흠칫하며 홀스터에 손을 뻗는다.
그런데 이때.
타앙!
어느새 흑인 노예의 손에 총이 들려 있고, 이마에 구멍이 뚫린 쉐라드는 스윙도어를 밀고 바닥에 쓰러진다.
테라스에 발을 걸치고 의자에 앉아있던 바운서. 그가 물고 있던 시거가 바닥에 떨어지는 동안, 막스는 술집을 향해 총을 난사했다.
탕! 탕!
유리창이 깨지고, 술병과 유리컵 파편이 튀기며 아수라장이 펼쳐졌다.
“야이 미친 새끼야! 크리스마스이브 때면 왜 자꾸 찾아오는 건데!”
화가 난 술집 주인은 총탄에도 소리를 치며 밖으로 뛰쳐나갔다. 하지만 이미 막스는 멀리 달아나고 보이질 않았다.
흑인 노예 새끼가 2년째 자기 술집만 찾아와서 지랄하니.
크리스마스의 악몽이다.
“아악, 개새끼!”
탕! 탕!
술집 주인은 하늘을 향해 분노의 총질을 해댔다.
< 왜 여기만 오는 건데 > 끝
< 추적자들 >
[또다시 찾아온 공포의 흑인, 그 정체는?]
[“꼭 그렇게, 총을 쏴야만 속이 시원하냐!” 랩튼 바 사장의 절규.]
[윌리엄 쉐라드, 크리스마스이브 악몽의 유일한 희생자가 되다.]
캔자스 신문사들이 앞다퉈 기사들을 쏟아냈다.
눈여겨볼 건, 윌리엄 쉐라드.
재수 없게 흑인의 총질에 희생당한 인물로 묘사했다. 인과 관계를 찾아볼 수 없기에 당연한 결과였다.
날카로운 기자 몇 명은 쉐라드와 함께 있던 여인을 수소문하기도 했다. 하지만 겁먹고 마을을 떠났다는 소문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레콤프턴의 캐피톨 힐, 주지사 집무실.
“이게 그 흑인 얼굴이랍니다.”
비서 스튜어트가 존 기어리에게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이걸 유심히 쳐다본 존 기어리는 스튜어트에게 물었다.
“누군지 알겠어?”
“...... 흑인이라는 것 말고는 도저히 모르겠는데요.”
“내 말이. 특징이라곤 얼굴 윤곽 뿐이구만.”
“목격자들은 많은데 어두운 밤이었고, 보이는 건 흰자위밖에 없었다더군요.”
존 기어리는 웃음을 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신이 아닌 이상 그림만으로 막스를 잡기란 불가능했다.
“현상금 2천 달러 내걸어. 집행은 캔자스 준주 주지사인 내 이름으로.”
“너, 너무 많은 거 아닙니까?”
“이 정도는 해야, 노예주에서도 내 진심을 알아줄 거 아냐. 이번 일은 절대 용서할 수 없다는 텐션을 유지하자고.”
‘어차피 잡지도 못 할 거.’
노예주의 마음을 달랠 절호의 기회가 아닌가.
지금 윌리엄 쉐라드의 죽음과 그를 연관 짓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파격적인 현상금과 철저한 수사를 지시한다면?
자유주와 노예주의 중립자로서 존 기어리의 이미지를 세탁할 좋은 기회였다.
단순히 제거한 것뿐 아니라 막스는 이를 이용할 방법까지 마련해준 것이다.
‘알면 알수록 대단한 친구야.’
사무엘 존스, 스트링팰로우 형제. 그리고 이번 사건을 통해 존 기어리는 조지 클라크까지 막스가 제거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 적으로 두기엔 너무 위험한 친구일세. 앞선 주지사 두 명이 뭘 하고 있는지 지켜보면, 막스의 무서움을 알게 될 거네.
섬너 대령의 말처럼, 앤드류 리더는 로렌스에서 적극적인 노예제 폐지론 활동을 이어가고 있고, 윌슨 섀넌은 숫제 막스와 손을 잡고 일하고 있다.
죽이는 것보다 어려운 건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는 것. 협박과 회유가 아닌 마음을 움직이는 건 더더욱 어려운 일이 아닌가.
물론 존 기어리는 그들과 다르다.
주지사를 그만두면 고향 펜실베니아의 농장으로 돌아갈 계획도 세워두었고, 노예제 폐지론 역시 뚜렷한 신념을 가지고 있지 않았으니까.
‘일단 이곳에 있는 동안이라도 그 친구를 자주 만나봐야겠군.’
불확실성으로 가득 찬 캔자스. 존 기어리는 막스를 통해 이 국면을 타개할 생각이었다.
*
크리스마스가 끝나고 새롭게 맞이한 57년.
혹한의 추위는 여전하지만, 로렌스 대장간만큼은 후끈한 열기로 가득했다.
캉, 캉.
치이이익.
용광로 속의 흐물거리는 쇳물을 넓적한 틀에 붓고, 적당한 온도가 되었을 땐 위에서 원통을 내리눌러 깊이 파인 원형 통을 만든다.
완전히 식은 다음엔 구멍을 뚫고 몇 가지 부품과 뚜껑을 연결하면 하나의 제품이 완성된다.
손을 안 대고 열 수 있는 일명 페달 쓰레기통.
미래의 세련되고 감각적인 디자인은 아니지만, 시대를 앞서간 혁신적인 제품이었다.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은 막스는 제임스와 제품에 관한 대화를 나눴다.
헤어질 즈음에는 주변을 둘러보며 물었다.
“그런데 몇 명 안 보이네요?”
“다들 물건들 좀 사러 상점에 갔어. 곧 올 건데, 왜. 볼 일 있어?”
“알프레도한테 뭐 만들어오라고 시킨 게 있거든요. 급한 건 아니에요.”
“오면 전해줄게.”
막스는 완성된 쓰레기통을 들고 사무실로 가져왔다.
한가하게 신문을 보는 피치.
소파와 또다시 한 몸이 된 콜린.
이 얼마나 한심스러운 모습인가.
이때 막스의 눈이 반짝였다.
탕탕.
끌어안은 쓰레기통을 두드리자 둘이 고개를 돌려 쳐다본다. 이내 호기심이 들었는지 어슬렁거리며 한량처럼 다가왔다.
“이건 또 뭐래.”
“뭐긴, 세상을 뒤엎을 혁명적인 제품이지.”
“그거 쓰레기통 아냐? 그까짓 게 뭔 세상을 뒤엎어. 하여간 구라는.”
콜린은 개소리하지 말라며 코웃음 치고.
막스는 가소롭다며 콧방귀를 뀌었다.
“이게 어디 보통 쓰레기통인 줄 아나.”
텅.
쓰레기통을 바닥에 내려놓은 막스는 그대로 선 채 양 손바닥을 펼쳤다. 그리고는 허공에서 쓰레기통 뚜껑을 향해 부르르 떨며 읊조렸다.
“아브라카타브라.”
“뭐하냐.”
피치가 고개를 절레 저을 때였다.
탁, 탁.
“!”
뚜껑이 들썩거렸다.
분명 손을 대지 않았음에도 움직인 것이다.
피치와 콜린의 눈이 부릅떠질 때, 막스가 한 번 더 아브라카타브라를 외쳤다.
하지만 힘에 부치는지.
“혼자는 역시 힘들군. 하나둘 셋 하면 다 같이 외치는 거야! 하나, 둘, 셋!”
“아, 아브라카타브라!”
“..... 브라···?”
덜컹!
쓰레기통 뚜껑이 열렸다.
“왓더!”
“오우, 지저스!”
그렇게 10여 분 동안 농락당한 뒤에야 둘은 쓰레기통 원리를 알게 되었다.
“... 잠깐 빌려줘 봐.”
“대원들한테 갈 거면 같이 가요!”
쓰레기통을 든 콜린과 피치는 막스에게 당한 분을 풀기 위해 농락할 대상을 찾아 사무실을 뛰쳐나갔다.
홀리데이까지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게도 한 달 전 가족을 데리러 가기 위해 고향 펜실베니아로 가버렸다.
어찌 됐든.
“간만에 스트레스가 확 풀리는구만.”
막스는 휘파람을 불며 피치가 보던 신문을 들어 난로가 옆에 있는 의자에 걸터앉았다.
“이놈의 흑인 총질 기사는 아직도 나오네.”
한 달이 지났건만, 대중의 관심은 식을 줄 모른다. 아니 오히려 더 증폭되고 있었다.
가장 큰 원인은 존 기어리가 내건 현상금.
갱단도 아니고, 단일 범죄자에게 2천 달러는 파격적인 금액이었다.
‘너무 가긴 했지.’
그렇다고 존 기어리를 탓하진 않는다.
어차피 안 잡힐 거, 막 질렀을 테니까.
오히려 노예주의 화를 잠재우고 이미지 세탁을 하라며 권유하기까지 했으니, 존 기어리는 이를 이용한 것뿐이었으니까.
그런데 문제는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불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