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 똑.
“저, 알프레도에요!”
“들어와.”
덜컥.
신문에서 눈을 뗀 막스는, 나날이 몸이 우락부락해지는 알프레도를 쳐다봤다.
그런데 몸보다는 얼굴이 심각했다.
양 눈탱이가 붓고, 입술은 터져있었다.
“설마 누구한테 맞은 건 아니지?”
“왜 아니겠어요. 하마터면 다시는 못 볼 뻔했어요. 끌려갈 뻔했거든요.”
“누가 너를 끌고 가?”
알프레도는 대장간에서 필요한 물건을 사기위해 가끔 상점엘 들리곤 한다. 막스와의 관계를 알기 때문에 적어도 로렌스에서만큼은 알프레도를 건드릴 사람은 없었으니까.
문제는 존 기어리가 현상금을 내건 지 한 달이 지나자, 외부인들이 로렌스로 흘러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로렌스의 흑인은 알프레도 혼자만 있는 게 아니다. 자유주의 힘을 보태기 위해 자유 흑인들 역시 로렌스로 몰려왔으니까. 그 수가 열 명도 안 되지만, 문제의 흑인이 그 속에 있을 수도 있다는 추측은 해볼 수 있는 일이었다.
“제가 마틴, 브렛하고 흩어져서 상점을 돌아다녔거든요. 그런데 갑자기 한 무리가 술집에서 뛰쳐나오더니 저를 잡으려고 하지 뭐에요!”
아직도 두려움이 가시질 않는지 알프레도는 몸을 부들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는 종이를 내밀어 제 얼굴을 비교해보는 거예요. 그래서, 아, 최근에 핫한 미친 흑인을 쫓는구나 싶었죠. 그런데 갑자기, ‘찾았다, 이 도망 노예 새끼!’ 이러잖아요!”
‘도망 노예?’
“알았으니까, 흥분하지 말고 말해.”
알프레도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말을 이어갔다.
“아직도 가슴이 콩닥거려서요. 아무튼, 안 끌려가려고 발악하다가 일단 몇 대 맞았어요. 그런데 때마침 로어와 분대원들이 나타나서 간신히 빠져나올 수 있었죠.”
막스는 고개를 갸웃하며 다음 상황을 물었다.
“놈들이 쪽수가 달리는 걸 알았는지, 저를 쫓지는 않더라고요. 대신 술집에 다시 들어갔어요. 로어와 분대원들도.”
그러면서 로어는 알프레도에게 얼른 돌아가서 대장에게 알리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었어요. 로어가 끼어들 때, 놈들이 빌어먹을 보안관은 대체 어디 있냐고 하더라고요.”
막스 후임으로 온 조엘 그로버.
그는 신년을 맞아 휴가 중이다.
“그랬더니, 갑자기 놈들이. ‘시발, 아직 스프링필드에서 안 왔나?’라는 거에요.”
“음?”
순간 막스의 뇌리에 한 가지가 스쳐갔다.
“알프레도. 노예상인이 너를 사고 팔았다고 했지? 그 이름 기억해?”
“그럼요. 그걸 어떻게 잊어요. 쿨렌 베이커라는 백인인데, 저를 조지아에서 미주리주로 끌고 와 조지 클라크한테 팔았죠. 그 사이에 잠시 일리노이인가에서 머물렀었는데, 거기는 진짜 공포의 집이 따로 없었어요.”
“......”
복잡하게 보였던 게 한순간에 정리되었다.
현상금에 가려져 있었지만, 핵심은 다른 곳에 있었다.
놈들을 보낸 건 존 크렌쇼.
진정한 목표는 로렌스 보안관이었던 막스.
알프레도를 발견한 건 그저 우연에 불과했다.
그리고 조지 클라크가 죽고 노예가 사라졌으니 다시 회수하려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건 그렇고. 스트링필드 여정 내내 얼굴을 가렸음에도 존 크렌쇼는 어떻게 막스의 정체를 알았을까.
의심해볼 건 열차를 가드하던 핑커톤 요원들.
그중 하나가 앨런 핑커톤과 함께 있었으니 막스가 로렌스 보안관이라는 걸 알고 있을 터.
자발적이거나 혹은 고문당해 정보를 불었을 가능성이 크다.
‘오기 전에 확실히 처리할 걸 그랬나.’
율리시스 그랜트와 로렌스 3인방 신경 쓰느라 훗날로 미룬 게 지금 터져버렸다.
자리에서 일어난 막스는 무장 상태를 점검하곤 외투를 걸쳤다.
사무실을 나가기 전, 바가지에 담긴 달걀 한 개를 알프레도에게 건네줬다.
“이걸로 멍든 데 문지르고 있어.”
“먹는 건데요?”
“어. 참고로, 문지른 달걀은 먹는 거 아니다.”
알프레도의 얼굴이 시무룩해졌다.
“갔다 올 테니까, 여기서 꼼짝 말고 있어.”
“옛 썰!”
*
로렌스 초기에 만들어진 허치슨 바는 갈수록 규모가 커져, 현재는 작은 여관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입구에는 제이호커스로 왔다가 아예 눌러앉은 스테디라는 이름의 나이든 바운서가 술집 치안을 유지한다.
그런데 오늘은 뭔가 불안한 듯 스테디는 심각한 얼굴로 술집 입구를 서성거린다.
그러다 다가오는 한 남자를 발견하곤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오 막스, 드디어 자네가 등장했구만.”
“안은 어때요?”
“패거리가 더 늘었어. 지금 10명 정도 되는데, 분위기가 아주 살얼음판이야.”
두꺼운 외투와 스카프를 얼굴로 칭칭 감은 막스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곤 술집 안으로 들어섰다.
삐걱.
스윙도어를 밀고 들어서자, 장내의 이목이 일제히 막스에게 쏠린다.
침묵 속.
막스의 눈동자가 장내를 훑어 내렸다.
안쪽엔 로어와 제이호커스 열댓 명이 자리에서 일어나 막스에게 고개를 숙이고.
창가 곁엔 갱단인지 노예 사냥꾼인지 모를 놈들이 담배 연기를 뿜어대며 막스를 노려본다.
“오, 막스!”
허치슨이 헐레벌떡 다가왔다. 한때 민병대원이었던 터라, 막스를 남달리 생각하는 남자다.
하지만 그전에 술집 오너이기도 했다.
“미안하지만, 술집 안에서는 좀···.”
“걱정하지 마세요.”
“자네만 믿을게.”
막스는 허치슨의 어깨를 두드리며, 이내 외투와 스카프를 벗었다. 재빨리 다가온 대원 하나가 이를 받아들고, 막스는 현상금 사냥꾼 무리에게 성큼 다가갔다.
“워, 시발. 진짜 동양인 쿨리 새끼네.”
“로렌스 이거 맛 간 동네 아냐? 할 사람이 없어서 저딴 놈에게 보안관을 맡기냐. 어휴.”
로어가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입 안 닥쳐? 여기가 어디라고 기어들와서 지랄들이야. 병신들, 너넨 오늘 사람 잘못 골랐어.”
“계집애들처럼 말로만 에베베베. 크크크크.”
놈들의 조롱에 제이호커스들이 분노하지만, 섣불리 행동으로 옮기진 않았다.
이는 평소 막스의 지시사항 때문이었다.
보더 러피안이 아니면 폭력을 쓰지 말라는 것.
원 역사에서 제이호커스와 보더 러피안은 민간인 학살과 같은 만행을 저지른다. 무턱대고 사람을 죽이다 보니 일부는 신념보단 그 자체를 즐기게 된 것이다.
해서 막스는 좋은 취지에서 ‘임무가 아닌 쓸데없는 폭력은 사용하지 말자’라는 말을 자주 했었다.
‘그렇다고 이런 상황에서 참으라는 얘긴 아니지, 새끼들아.’
막스는 고개를 절레 저으며 걸음을 옮겼다.
상대가 보더 러피안이 아닌 건 확실해 보인다.
미치지 않고서야 로렌스 한복판에서 막스에게 이런 말 할 놈들은 없을 테니까.
막스는 걸음을 멈춘 채 놈들을 훑어봤다.
“대가리가 누구냐.”
한 놈이 느긋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이는 30대 중반. 얼굴 사선으로 상처를 꿰맨 거칠게 생긴 남자였다.
“타이거 샘 스미스다.”
“그래서, 여기 온 목적은?”
숨이 막힐 듯한 침묵 속.
타이거가 가죽 재킷을 뒤로 젖히며 허리춤의 권총을 내보였다. 그리곤 한 걸음 다가가 막스의 눈을 빤히 쳐다본다.
“네놈을··· 잡으러 왔지.”
시간이 정지된 듯 시선이 부딪히고.
막스와 타이거가 빠르게 홀스터로 손을 뻗었다.
< 추적자들 > 끝
작가의말
페달 밟아서 여는 쓰레기통은
1930년대에 발명 되었더군요.
올드 블랙 조의 작곡가 스티븐 포스터는
시기상 뉴욕에 거주하는 듯합니다.
혹시라도 오다가다 만나게 되면,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 공조 >
18세기 사용되던 플린트락과 머스킷 권총은 재장전 시간이 길고 단발이라 허리나 어깨에 가죽띠를 둘러 총을 소지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총이 흔하지 않았고 홀스터 역시 드물게 사용된 장비였다.
작금의 형태를 갖춘 건 불과 몇 년 전으로.
콜트 리볼버와 여러 형태의 권총들이 등장, 서부 개척과 맞물려 본격적인 민수시장이 열리면서 홀스터의 형태가 갖춰지기 시작했다.
다만, 보관에만 초점을 둔 초기형태는 똑딱이로 잠가버리는 경우가 많았는데.
본격적인 패스트 드로우의 중요성이 대두된 된 건 남북전쟁 이후 갱단들이 득실거릴 때였다.
처음 홀스터를 갖게 된 막스는 이후 몇 번에 걸쳐 업그레이드를 강행했다.
목표는 오로지 패스트 드로우.
이에 최적화된 홀스터를 가진 막스와 타이거 샘 스미스는 속도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다.
철컥.
번개 같은 속도로 튀어나온 리볼버. 해머를 젖혀 코킹까지 마친 총구가 상대의 이마에서 날름거린다.
타이거는 아직 총을 뽑지도 못한 상태.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미친 속도에 두 눈을 부릅떴다.
부하들 또한 숨을 삼킨 채 굳어있었다.
‘대장 실력 봐. 진짜 돌았네, 돌았어.’
제이호커스들 역시 이런 식으로 막스의 실력을 목격한 건 처음이었다.
그들은 터져 나오는 탄성을 삼키며 막스의 흔들림 없는 총구를 응시했다.
극도의 공포와 두려움이 타이거의 숨통을 조여온다. 무표정한 막스는 그를 겨눈 채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타이거의 이마에 식은땀이 턱을 타고 흘러내렸다.
‘여기서 총 뽑으면 죽는다.’
리볼버의 손잡이는 잡았으나, 빼려는 순간 총알이 날아올 것이다.
‘이 일을 사주한 존 크렌쇼의 정보를 넘겨주자. 그 조건으로 시간을 끈 다음, 적당한 틈에 놈의 뒤통수를····.
타앙!
‘이 개색···.’
타이거의 눈이 튀어나올듯 커진다. 고통이 퍼지고 가슴에 손을 대자 피가 꾸역꾸역 솟아났다.
몸이 휘청거릴 때, 막스는 움직임이 들어오는 놈들을 향해 잇달아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탕!
패닝으로 두 놈을 날린 뒤엔 타이거에게 바짝 붙어 놈의 몸뚱이를 방패로 삼는다.
현상금 사냥꾼, 노예 사냥꾼들이 더는 로렌스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스는 한 놈도 살려두지 않을 생각이었다.
뒤늦게 타이거의 수하들이 총을 뽑지만, 제이호커스들의 총구가 그들을 향했다.
막스와의 훈련 덕분에 어디 가서 꿀리지 않을 솜씨였다.
철컥, 철컥, 철컥.
일제히 코킹하는 소리에 이어 총탄을 내뿜었다.
탕! 탕! 탕!
바 뒤에 몸을 숨긴 주인 허치슨은 눈만 빼꼼히 내밀어 장내를 지켜봤다.
적들이 의자, 탁자와 한 몸이 되어 쓰러진다. 막스가 방패로 삼던 타이거의 등짝에는 총탄들이 박히며 피를 튀겼다. 그리고 어느 순간.
총소리가 잠잠해지고 막스는 쓸모 없어진 타이거 시신에 손을 뗐다.
쿵!
상황의 종료를 알리듯 타이거의 몸이 바닥에 고꾸라졌다.
막스는 제이호커스들을 훑어보며 물었다.
“다친 사람?”
“없습니다!”
“다들 고생했다. 여기 정리한 뒤에 실컷 마셔보자고.”
“옛 썰!”
환호하는 제이호커스를 보는 허치슨. 그의 눈가가 파르르 떨려온다.
난장판이 된 광경에는 어깨가 축 늘어졌다.
부서진 탁자와 의자.
바닥을 적신 핏물과 역한 냄새.
그러다 문득 시선을 창가로 돌렸다.
놀랍게도 유리 창문들이 멀쩡했다.
수십 발의 총격이 있었음에도, 창문을 등진 적을 정확히 노리고 쐈다는 증거였다.
막스야 그렇다 쳐도, 허치슨은 감탄어린 시선으로 젊은 제이호커스를 바라봤다.
‘민병대 수준을 넘어섰구만.’
훈련의 효과인가. 조금은 부럽기도 하다.
로렌스 초기, 막스 보안관을 도와 민병대의 일원이었던 허치슨. 하지만 이들과 합류하기엔 지켜야 할 가족이 생겨났고 막스의 무지막지한 훈련을 버틸 용기도 나지 않았다.
‘사람마다 각자의 길이 있는 거지, 뭐.’
마을을 지키느라 한 일인데, 고작 의자 부서진 게 대수인가.
허치슨은 오늘 밤, 이 뛰어난 젊은이들에게 제대로 된 안주라도 대접할 생각이었다.
그게 자신이 잘하는 일이었으니까.
허치슨의 입가에 저절로 웃음이 흘러나왔다.
막스가 보기엔 실성한 사람처럼 실실 웃는 거로 보였다. 술집 꼬라지가 그랬으니.
“무섭게 왜 그래요.”
막스는 허치슨에게 주먹만 한 자루를 쥐여줬다.
“얘들한테서 나온 돈이에요. 부서진 물건들이랑 오늘 술값은 될 겁니다.”
“워워, 무슨 돈이야. 그냥 넣어 둬.”
“가게가 이 꼴이 났는데, 그럼 되나요.”
“그게 어디 막스 탓인가. 그리고, 이유 없이 흑인한테 총질 당한 술집보단 백배 낫잖아?”
“...... 이유가 있었겠죠.”
막스는 한사코 사양하는 허치슨에게 그럼 절반이라도 받으라며 건네줬다.
사건을 축소하기 위해 막스는 제이호커스 둘을 주지사에게 보내고, 신문 기자들에게는 기사 방향을 짚어줬다.
“로렌스에 하루살이들 꼬이지 않게 써주세요. 참고로 이놈들 이거 노예 사냥꾼들이었습니다. 자유 흑인들을 납치할 생각이었죠.”
“헐, 이런 미친놈들을 봤나.”
조지 브라운과 밀러 등 편집자들은 막스의 의도대로 기사를 뽑아냈다.
*
사흘 뒤.
- 진짜 혼자 가려고?
- 나도 같이 좀 가자. 존 크렌쇼 그 자식 죽는 것 좀 봐야 속이 후련할 것 같단 말이야.
- 우르르 몰려갈 필요 있습니까. 여기나 잘 지키고 있어요.
막스는 피치와 콜린을 놔눈 채 홀로 길을 나섰다.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 카운티의 중심가.
스카프로 얼굴을 가리고 모자를 눌러쓴 막스는 2층 건물 앞에 발걸음을 멈췄다.
잠시 건물을 위아래로 훑어본 뒤엔 1층 초록색 문고리를 잡아당겼다.
“어서 오세요. 세인트루이스 핑커톤 사무실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