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6화 (76/360)

뻑.

머리가 휘청거린 헤인즈는 오른손을 뻗은 자세 그대로 땅에 철퍼덕 쓰러졌다. 

회복력이 뛰어난 건지 이내 머리를 흔들며 몸을 일으키려 했다.

“왓더···. 내가 방심···했네.”

손을 딛고 일어나려 하지만 온몸에 힘이 풀려버렸다. 

“어어.”

털썩.

병든 소처럼 다시 쓰러지길 반복했다.

자신이 생각해도 웃긴지 헤인즈는 실실 웃음까지 흘리고 있었다.

“......”

충격과 경악이 장내를 삼켜버렸다. 

침묵 속에 헤인즈의 실없는 웃음만 퍼져나갔다. 조금 전 싸움을 이긴, 승자의 모습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한편, 헤인즈의 동료들은 입을 쩍 벌린 채 막스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설마···.’

아니겠지. 어째 체형과 코트에 조끼를 입은 스타일이 비슷하긴 하다.

그런데 자신들이 생각한 그 남자가 이곳 세인트루이스 뒷골목에 나타날 이유가 있을까.

그들은 세차게 고개를 저으며 최악의 생각을 떨쳐냈다. 

“이, 일단 헤인즈부터 끌고 오자.”

말과 함께 동료 한 명이 중앙으로 튀어나왔다.

사경을 헤매는 헤인즈를 부축할 즈음. 

막스가 그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속삭인다.

- 2소대 2분대. 제이미 헌트.

- !

꼬리뼈를 타고 퍼져나가는 전율. 

머리카락마저 쭈뼛거릴 때, 또다시 소름끼치는 목소리가 고막을 파고든다.

- 라이언 홀드를 도발해서 참가시켜.

- 예, 옛····썰.

척척.

막스가 뒤로 물러서자, 제이미는 서둘러 헤인즈를 일으켰다. 약에 취한 듯 헤인즈는 횡설수설하고 있었다.

“이거··· 안 놔? 내가 방심해서 그런 거지. 저딴 놈은 한 방····”

“닥쳐, 새끼야.”

제이미는 헤인즈의 뒤통수를 후려치며 밖으로 끌고 갔다.

첫 도전자의 처참한 패배. 막스는 장내를 둘러보지만 다들 멀뚱거리기만 할 뿐, 쉽사리 나서질 않는다. 

그만큼 막스의 실력이 터무니없었다.

이때 소심한 목소리가 조용한 장내를 비집고 들려왔다.

“여, 역시 믿을 건 라이언 홀드뿐인가.”

막스의 지령을 받은 제이미. 

목소리는 작지만, 모두가 들을 수 있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한 곳으로 향한다. 

라이언 홀드는 콧수염을 만지작대더니 코웃음을 쳤다.

“다들 병신들만 모였나. 그깟 스카프 벗기는데 나까지 나서게 만드네.”

“역시, 라이언 홀드. 그 자신감이면 충분히 벗길 수 있을 거야.”

라이언이 제이미를 흘겨봤다.

“넌 갑자기 왜 친한 척이야? 외지에서 온 새끼가 언제 봤다고, 주둥이를 놀려.”

“...... 아무튼, 파이팅.”

제이미는 웃음을 지으며 응원까지 보탰다. 

욕을 하든 말든, 어차피 대장에게 박살 날 게 분명하기에 기분이 상하지도 않았다.

‘내 노력이 대장에게 닿기를.’

이에 응답하듯 라이언 홀드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모자를 벗고 수염을 다듬으며 중심으로 걸어 나왔다. 휘적휘적.

‘제이미 덕분에 시간은 줄어들었네.’

나머지는 어떻게 저놈을 요리하는가였다.

스카프속 막스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서로의 간격은 3미터 내외.

키는 둘이 비슷하다. 다만 막스가 균형 잡힌 몸이라면, 라이언은 유독 상체 근육이 발달한 몸이었다. 

대치한 라이언이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말을 건넸다.

“어디서 온 새낀지 모르겠는데. 스카프뿐 아니라 옷까지 홀딱 벗겨주마. 미친놈처럼 길거리를 돌아다니게 될 거니까, 각오 단단히 해.”

“알았으니까, 덤벼.”

“...... 미친놈. 네 놈의 오만함을 끝내주마.”

레슬링이라도 했는지, 라이언이 허리를 숙여 자세를 낮췄다. 

양손을 넓게 벌려선 막스를 노려본다.

그리고는 괴성을 내지르며 맹렬한 기세로 돌진했다. 황소의 모습이 따로 없었다.

‘잡히면 네놈도 끝이다.’

라이언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막스의 허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런데 의외로 별다른 저항을 안 한다.

허리를 휘어잡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 새끼, 별거 아니었구만.’

양손으로 깍지까지 끼고 들어 올리려 할 때. 

갑자기 등판에 강렬한 충격과 고통이 전해졌다.

“윽.”

막스가 팔꿈치로 등판을 잇달아 내려찍었다. 

깍지 낀 손을 풀기 위해, 이번에는 무릎으로 가슴을 찍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고개 숙인 라이언의 눈에 핏발이 선다. 

숨까지 턱턱 막혀올 때, 막스가 머리채를 잡아챘다. 등판과 가슴을 잇달아 가격당한 라이언.

정신이 혼미한지, 막스의 손에 따라 고개가 들려졌다.

“스카프 벗기는데 뭔 허리까지 잡아.”

빠각.

막스가 주먹으로 얼굴을 후려치고, 두어 걸음 밀려나며 휘청거린다. 물론 이대로 끝낼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서류의 행방을 알아내려면 기절해선 곤란하다.

필요한 건 놈에게 두려움을 심는 것이었다.

막스는 라이언의 몸이 움직이는 곳마다 주먹과 다리를 이용해 고통을 주었다.

압도적인 실력 차이. 게다가 막스는 상상하지도 못한 방법으로 라이언을 몰아 부쳤다.

얼굴에 친 가드를 비집고 손바닥으로 턱을 가격. 라이언의 얼굴을 떠받치듯 들어 올리고는, 손가락 두 개로 두 눈을 찔렀다.

실전에 최적화된 격투 기술이었다.

“으악!”

강렬한 고통에 눈을 감싼 라이언. 막스는 그의 목을 움켜잡고 다리를 걷어찼다.

땅으로 처박은 뒤에도 여전히 손은 라이언의 목을 움켜잡고 있었다.

“어어. 저거 내가 쓰던 기술인데!”

이제야 정신차린 데니스 헤인즈지만 여전히 헛소리를 늘어 놓는다. 제이미는 한심하다며 고개를 절레 저었다.

“케겍. 윽.”

라이언의 눈은 시뻘겋게 충혈되었고, 목을 조여오는 막스의 팔을 떼어내려 했다.

하지만 꿈쩍도 하지 않는다.

머릿속에 죽음이 떠오른 라이언은 필사적으로 입을 열었다.

“살···려···줘.”

그 소리는 비록 작았지만, 충격에 빠진 사람들 귀에 똑똑히 들려왔다. 입구를 지키던 살덩이까지 경악으로 얼굴을 푸들거렸다.

막스가 허우적거리는 라이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 얼마 전 타이거를 보냈더니, 이젠 라이언을 보내게 생겼네.

- ......?

- 오늘 훔친 물건 중에 철도 관련된 서류가 있을 거다. 죽기 싫으면 가져와.

살기가 뚝뚝 흐르는 눈빛. 그제야 상대가 자신과는 전혀 다른 부류라는 걸 깨달았다.

라이언은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시간은 10분 준다.

순식간에 목을 압박하던 힘이 사라졌다.

누운 채 켁켁 거리던 라이언. 그의 몸에 막스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가쁜 숨을 몰아쉬던 라이언은 자신을 내려다보는 막스의 시선을 피해 자신의 부하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켈리, 그··· 서류 가져와.”

“어? 무, 무슨 서류?”

“우리가 팔아넘기려던 철도 서류!”

라이언은 서류의 가치를 알고 있던 모양이다.

다행히 켈리라는 수하는 가방을 뒤적거려 수십 페이지에 달하는 서류를 가져왔다.

“이, 이벤트는···”

“끝났어, 인마.”

막스는 살덩어리에게 1달러 동전을 쥐어주고는 미련 없이 장내를 벗어났다. 그 모습을 라이언과 관중들이 멍하니 쳐다보고만 있었다.

*

[피츠버그 앤 이리 호 철도(P & LE) 기획안]

불과 26살의 나이에 홀리데이는 피츠버그와 인근 철도를 연결짓는 구상을 생각해내고, 이에 대한 기획안과 법적 절차까지 완성된 문서를 작성한다. 그리고 이 서류의 원본을 철도 사업자에게 2만 달러에 팔아 치웠다.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홀리데이는 이를 계기로 자본을 축적하고 그해 메리와 결혼까지 하게 된다. 그가 로렌스와 토피카에 이주한 건, 단순히 노예제 폐지론 때문만은 아니었다.

직접 새로운 철도를 건설하기 위해서였다.

지금은 비록 전 재산을 로렌스와 토피카에 쏟아부었지만, 이는 철도 사업으로 홀리데이에게 막대한 부를 안겨줄 것이다. 디즈니 랜드에 그를 기념하는 기차가 있을 정도로.

‘보기와 달리 은근 천재란 말야.’

골목을 벗어날 즈음.

막스가 갑자기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뒤를 향했다.

뒤따라오던 제이호커스 넷이 화들짝 놀라고, 특히 얼굴 한쪽이 비대칭적으로 커진 헤인즈가 쭈뼛거리며 다가왔다.

“여기서 뭐 하냐, 집에 간다면서.”

“그게···. 돈이 좀 필요해서요.”

“흠.”

막스는 품에서 작은 꾸러미를 꺼내 내밀었다.

토디는 흥미로운 눈빛으로 이를 지켜봤다.

“200달러다.”

“헉, 이 큰돈을?! 이유도 말 안 했는데···.”

“나중에 갚아. 그리고.”

제이호커스들의 눈을 일일이 마주치며 말을 이었다.

“조만간 이런 짓 안 해도 돈 벌 수 있게 해 줄 테니까, 그때까지 참아라.”

“......”

“꽃피는 봄이 오면, 그때 보자고.”

막스는 손을 흔들며 골목을 빠져나갔다. 

잠시 후, 골목에선 대장을 부르짖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 나중에 갚아 > 끝

작가의말

원 역사에서 홀리데이의 집이 어땠는지는

자료가 없더군요.

해서 제 기준에 홀리데이는 뛰어난 젊은 사업가며,

있는 재산 역시 토피카와 새로운 철도 사업에 쏟아 붓느라

현재는 부자가 아니라는 설정으로 잡았습니다.

중간 중간, 막스가 홀리데이를 부자라고 여긴 점은

2만 달러 때문이라고 생각해주시면 되겠습니다.

< 아는 사이였어? >

세인트루이스의 핑커톤 사무실로 향하는 길.

토디가 막스에게 물었다.

“아까 그 친구들은 제이호커스들이었죠?”

“맞습니다.”

“역시 그랬군요.”

‘보면 볼수록 신기한 사람이야.’

토디는 내심 감탄을 할 수밖에 없었다.

제이호커스들은 막스를 상관 대하듯 행동했다.

이 말은 백인뿐인 조직에서 막스의 위치가 상당하다는 걸 의미한다.

‘괴물 같은 싸움 실력 때문인가.’

앨런 국장도 이를 알고 막스를 특별하게 여긴 걸까. 생각할수록 막스에 대한 궁금증이 넘쳐난다. 하지만 토디의 질문은 평범한 수준에 머물렀다.

“그런데 그 친구들 오늘 횡재했네요.”

“횡재라뇨, 라이언 홀드가 선뜻 안 나섰으면 쉽게 끝나진 않았을 겁니다. 그러니 제가 도움을 받은 셈이죠.”

“그렇긴 하네요. 어쨌든 아무리 같은 조직의 상관이라 해도, 200달러를 주는 게 어디 쉬운 일입니까. 더구나 받기도 힘들어 보이던데.”

“글쎄요. 돈은 돌고 도는 거 아니겠습니까.”

막스는 토디를 슬쩍 바라보며 짙은 미소를 지었다.

‘나이도 안 많아 보이는데.’

말하는 걸 보면 애늙은이같이 느껴진다.

이건 이것대로 흥미롭다며 막스에 관한 토디의 관심은 그칠 줄 몰랐다.

마침내 핑커톤 사무실에 도착.

막스는 바로 휴게실을 찾아갔다. 문을 열자 홀리데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 어떻게 됐어?”

막스가 품속에서 서류를 꺼내 내밀자 홀리데이의 얼굴에 웃음꽃이 만개했다. 그리고 이내 눈물을 글썽거렸다.

막스는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찾는데 200달러 들었습니다.”

“......음?”

“설마 아까운 건 아니겠죠?”

“그럴 리가. 200달러쯤이야···.”

‘돈이 돌고 돈다는 게 이런 의미였군.’

토디는 눈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때 홀리데이가 막스 뒤를 훑어보며 물었다.

“근데 서류만 찾은 거지?”

“왜, 또 뭐가 있었어요?”

“아니, 그냥. 짐 가방에 애들 옷이 있었거든.”

홀리데이가 입맛을 다시자, 부인 메리가 끼어들었다.

“애들은 금방 자라요. 옷은 제가 다시 만들면 되는데, 왜 괜한 부담을 주고 그래요. 신경쓰지 말아요, 막스. 서류 되찾아준 거 정말 감사해요.”

“앞으론 부인과 대화해야겠네요.”

메리는 미소를 짓고, 홀리데이는 민망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그나저나, 옷을 직접 만들다니 의외네.’

귀티 나는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막스는 힐끔 릴리의 옷을 바라봤다.

상당히 고급스러워 보였다. 직접 만들었다면 상당한 수준이었다.

“항구까진 제가 모셔다드리죠. 마차를 준비해 놓을 테니 준비되면 밖으로 나오세요.”

토디가 뜻밖의 친절을 베푼다.

물론 그 속엔 감춰진 의도가 있었다.

그는 막스든 홀리데이든 잠재적인 핑커톤의 주요 고객임을 확신했다. 그 때문에 이 정도의 친절은 절대 과하지 않았다.

토디의 이런 판단 덕분에 핑커톤은 좋은 이미지로 홀리데이 머릿속에 남게 되었다.

세인트루이스 항구.

그린터 플레이스로 향하는 배에 오르기 전, 막스는 드레드 스콧을 부탁한다며 토디와 작별 인사를 나눴다.

“기회 되면 로렌스에 한 번 들리세요.”

“안 그래도 꼭 가볼 생각입니다. 그럼 그때 뵙도록 하죠, 막스. 홀리데이 씨도 즐거운 여정 되시길 바라구요.”

“오늘 여러모로 감사했습니다.”

서류를 되찾은 홀리데이는 기분 좋게 토디와 인사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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