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수 없는 새끼. 지금 꼴이 딱 어울린다.’
손톱으로 바닥을 긁으며 찰스 하트의 어깨가 들썩거렸다.
신입들은 오레드 마운틴으로 구보를 떠났고, 남은 사람들이라곤 콜린과 피치, 그리고 코디뿐이다.
“총···. 총으로 하자.”
정신을 차린 히콕이 던진 말이다.
사람들은 어이없어했지만, 막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서부에선 말 보단 주먹, 아니 총이 앞섰으니 히콕의 요구도 무리는 아니었다.
“나도 궁금하던 참이었는데, 잘 됐다.”
서부영화에 트레이드 마크라 할 수 있는 일대일 대결. 이는 분명 과장된 것이다.
대부분은 뒤에서, 옆에서, 숨어서 쏘는 게 다반사였다.
삶과 죽음을 두고 누가 이런 미친 짓을 할까.
그런데 그 미친 짓을 히콕이 했다.
일명 패스트 드로우 결투는 1865년 히콕과 터트라는 자의 승부가 최초의 기록이었다.
이 대결에서 둘은 옆으로 비켜선 채 69m의 거리를 두고 결투를 벌였다.
그 결과 터트의 총알은 빗나가고, 히콕의 총알은 상대의 심장을 정확히 꿰뚫었다.
히콕이 서부 총잡이의 전설을 써 내려간 순간이었다.
“자, 그럼 둘이 똑같이 거리 벌려.”
콜린을 중심으로 막스와 히콕은 30m가랑 떨어져 마주봤다.
총싸움의 룰은 간단하다.
마주 본 상태에서 하늘을 향해 던진 깡통을 먼저 맞추는 쪽이 승자다.
총알로 깡통을 밀어내는 것으로 막스 쪽에 가깝게 깡통이 떨어지면, 이는 히콕의 승리였다.
“나 맞추면 안 되는 거 알지?”
콜린은 덜덜거리며 깡통을 하늘 높이 집어 던졌다.
곧바로 총성이 기관총처럼 울려 퍼졌다.
탕탕탕탕!
깡깡깡깡.
*
“하···.”
히콕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손에는 콜린이 집어 던진 깡통이 들려 있었다.
구멍은 여섯 개.
충격 적인 건, 깡통이 히콕 뒤에까지 밀려났다는 것이다.
“너무 실망하지 마. 그래도 그중에 히콕이 맞춘 것도 있을 거 아냐.”
“...... 없어.”
“음?”
코디는 히콕의 실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패스트 드로, 스핀, 재장전, 발사까지 히콕을 따라잡을 사람은 본 적이 없었다.
물론 코디의 11살 인생에서 봐야 얼마나 봤겠냐만은.
히콕은 자신이 아끼는 콜트 네이비 실린더에서 총알을 하나둘 빼내기 시작했다.
그 수가 다섯 개다.
첫발에 밀린 다음부턴 방아쇠를 당길 수 없었다.
소름이 돋은 코디는 입을 오물거리다 힘들게 말을 내뱉었다.
“...... 괜찮아. 그냥 괴물이라고 했잖아.”
움직이는 깡통에 여섯 발을 꽂았으니, 같은 인간으로 보기엔 무리가 있었다.
“앞으로 어떻게 할 거야, 히콕?”
“어떻게 하긴.”
자리를 털며 일어난 히콕이 손을 내밀었다.
이를 잡고 일어난 코디에게 그는 피식 웃으며 말을 건넸다.
“그 인간이 싸움에는 겁나 많은 게 필요하다잖아. 그럼 배워야지. 그리고 네 아버지 복수도 해야 하잖아.”
“오케이! 나도 열심히 배울 테니까, 가서 부탁해보자!”
나이 차이만큼 키 차이도 크다.
하지만 우정에는 차이가 없었다.
둘은 발을 놀려 막스의 사무실로 향했다.
“제이호커스가 되고 싶어?”
막스의 질문에 코디와 히콕은 고개를 끄덕였다.
“신념이야, 아니면 코디 아버지 때문이야?”
“둘 다. 너한테 배우고 싶은 것도 많고.”
히콕은 솔직하게 말했다.
“제이호커스가 목적이면 나는 별로 가르쳐주고 싶은 생각이 없는데.”
“어째서?”
“나는 함께 할 동료가 필요하지 제이호커스 훈련병이 필요한 게 아니거든.”
“동료······?”
막스는 퉁퉁 부은 히콕의 눈을 응시했다.
“전쟁이든 사업이든 함께할 동료. 서로 등을 맡길 수 있는 동료가 필요하다.”
“......”
“심심하진 않을 거야. 얻는 것도 많을 거고.”
“얻는 거라면······?”
히콕과 코디의 눈빛에 기대감이 서렸다.
막스는 짙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가 말하면 다 믿을 거야? 그게 아니면 직접 생각하고 느껴야지. 동료의 기본은 신뢰야. 그걸 말로 쌓을 순 없는 거라고.”
막스의 말을 곱씹은 히콕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말 보단 행동. 그 속에서 진심이 전해지고 사이를 더욱 깊이 있게 만드는 법이니까.
“당분간 훈련에 참가해. 필수 훈련을 빼면 나머지 시간은 대장간에서 일하고. 주급은 십 달러다.”
“시, 십 달러? 저도요?”
코디의 말에 막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8달러.”
“근데 왜 고개를···.”
“미안. 대신 잘하면 올려 줄게.”
시무룩해진 코디의 얼굴이 이내 환해졌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가세가 급격히 기울고.
가족은 각자도생의 길로 들어갔다. 어린 코디 역시 돈을 벌어야 먹고 살 수 있는 처지였다.
“조만간 일곱 명을 뽑아서 캔자스 서부로 갈 생각인데, 보수도 짭짤할 거야.”
“저는요? 나이 따지는 건 아니죠?”
“코디, 네 역할도 있지 않을까.”
막스의 말에 코디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히콕도 덩달아 기분 좋은 표정을 지었다.
다음 날.
코디와 히콕은 제이호커스 훈련에 참가했다.
어린 코디는 조 짐 주니어가 전담해서 가르쳤다. 그리고 히콕은.
“뭘 봐, 병신아.”
“아직 덜 맞았냐?”
찰스 하트와 신경전을 벌이며 훈련에 참가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히콕은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찰스 하트가 뱀과 개구리, 그 외 동물들을 나무에 걸어두고 칼을 휘두르고 총 쏘는 연습을 목격한 것이다.
그 모습이 꽤 소름 끼쳤다.
“이 새끼 돌아이였네.”
“크크큭. 어여 비켜라. 칼 맞기 전에.”
찰스 하트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만의 훈련을 해나갔다.
제이호커스의 훈련 기간은 두 달.
그 시간이 끝날 즈음, 피치는 막스에게 서류를 내밀었다. 훈련병들의 능력을 수치화한 것인데, 히콕과 찰스 하트가 압도적이었다.
“캔자스 서부로 갈 때 찰스 하트도 넣을까?”
막스의 질문에 피치는 바로 답하지 않았다.
“그 자식 뭔가 이상해.”
“왜?”
“뭐랄까. 겉과 속이 달라 보인다고 할까. 어쩔 땐 과하게 친절하고 어쩔 땐 소름 끼치게 만드는 구석이 있어. 최근엔 일부 훈련병들 물건들이 없어졌는데, 다들 찰스 하트를 의심하고 있거든.”
막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친하게 지내는 사람은?”
“있겠어?”
“...... 싫어하는 사람은?”
“많지. 특히 히콕.”
그날 저녁, 막스 사무실을 찾아온 히콕은 찰스 하트에 관해 긴 이야기를 풀어놨다.
그렇게 들어본 끝에 내린 결론은.
‘사이코패스였네.’
히콕이 나가고, 막스는 그동안 틈틈이 기록해두었던 수첩들을 꺼냈다.
그 속에서 찰스 하트라는 이름과 비슷한 사이코패스들을 뒤적거렸다.
< 그 자식 뭔가 이상해 > 끝
작가의말
본 소설은 대체 역사지만 일부는 허구의 인물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중 찰스 하트는 실존 인물입니다.
캔자스 로렌스에 들어온 시기, 선생님이라는 설정도
원 역사와 똑같습니다.
다만 성격적인 측면은 제 주관적입니다.
문득 찰스 하트에 관해 궁금증을 댓글로 다신 독자님들이
계셔서 돌발 이벤트를 진행할까 합니다.
내일 연재시간 전까지, 찰스 하트의 실제 이름과 정체를
맞춰주신 분께 5천 골드를 쏘도록 하겠습니다!
가장 먼저 정답으로 댓글 다신 분께 증정하며,
중복 댓글은 금지입니다. 하나만 부탁드립니다;;;;
발표는 찰스 하트의 정체가 밝혀질 때 하도록 하겠습니다.
< 야밤에 뭐가 급해서 >
책상에 놓인 막스의 메모리 노트들.
틈틈이 생각나는 걸 적었더니 어느새 다섯 권 분량을 채워간다.
초반에는 쓸 것들이 넘쳐났으나, 최근에는 가뭄에 콩나듯 적고 있다. 이런 식이면 앞으로는 읽는 용도로만 쓰이지 않을까 싶다.
마지막 노트를 덮은 막스는 몸을 젖히며 천장을 응시했다.
‘도저히 모르겠다.’
단서는 로렌스, 제이호커스, 선생님, 그리고 사이코패스.
이 조합에서 잘못된 게 있는 걸까.
혹은 애초에 역사 기록에도 없는 인물이거나.
찰스 하트 같은 유형은 화술이 뛰어나고, 잔머리에 능하며 눈치도 빠른 타입이다.
접근하는 데 신중할 필요가 있었다.
‘물어본다고 대답할 인간이 아니지.’
현재 찰스 하트를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는 인물은 히콕. 적대적인 관계라 찰스 하트를 자극하면 본색을 드러내지 않을까도 싶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때, 네이선 로어가 문을 두드렸다.
“대장님, 누가 찾아왔습니다!”
잠시 후.
막스는 사무실로 들어온 남자를 쳐다보며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용기가 대단하네.”
세인트루이스의 도둑.
라이언 홀드가 막스를 찾아왔다.
드레드 스콧의 이야기를 듣고 올 거라고 예상은 했었다. 그게 오늘일 줄은 몰랐지만.
막스와 시선을 마주친 라이언 홀드의 눈동자가 걷잡을 수 없이 흔들렸다.
그날 세인트루이스 뒷골목에서 된통 깨진 날.
라이언은 핑커톤 사무실을 찾아갔었다.
물론 잔뜩 화가 난 채로였다.
수석 탐정인 토디는 같은 아일랜드계로 한때는 가깝게 지냈던 사이였다.
그는 분노한 라이언에게 이런 조언을 했다.
- 목숨 건진 걸 다행으로 여겨.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괴물이니까, 그냥 깨끗이 잊어라.
- 미친 새끼. 남 일이라고 쉽게 말하네.
- 널 위해 하는 얘기야. 그리고 이제 정신 좀 차리고 살아. 우리가 무시당하고 차별받는 게 억울하다고 그랬지? 너 그 사람 보면 그런 말 절대 못 한다.
- 왜? 시발, 설마 깜둥이야? 스카프 가린 거 그것 때문이었어?
- ...... 더이상 자세한 건 말 못 해. 괜히 입 잘못 놀리면 나도 위험해, 새끼야.
- 시발, 대체 정체가 뭐냐고!
시작은 분노였지만, 사실 라이언은 그자를 다시 만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싸움으로 돈을 벌던 파이터를 아이 다루듯 한 인물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호승심은 경외감으로 변해가고, 그 후로 몇 번이나 핑커톤 사무실을 찾아갔다.
그때마다 라이언의 태도 역시 변해갔다.
- 제발 누군지 좀 알려주라. 어? 술 사줄게.
- 누구 돈 훔쳐서 사주려고?
- 시발! 손 씻었다니까!
언젠가는 미니 포터와 다른 직원들도 만날 수 있었다.
- 어우, 말도 마. 같이 임무 나갔다가 몇 번 지렸는지 몰라. 좆나 냉정하더라고.
- 너 맞았다며? 그걸로 끝난 게 다행인 줄 알아라.
반응들을 보면 그자는 괴물이었다.
참다못한 라이언은 드레드 스콧을 찾아가 사정하기까지 했다.
- 진짜 복수하러 온 거 아냐. 그 사람 어디 있는지만 알려주면 돼. 그냥 대충 마을 이름만이라도!
그렇게 로렌스라는 이름을 듣게 되었다.
이곳에 오기 전, 라이언은 로렌스에 들어와 막스에 관한 정보를 수집했다.
외부에선 얻기 힘든 정보가 마을 사람들의 입에서 술술 나오기 시작하는데.
역시나 믿기 힘든 엄청난 업적들이었다.
가장 충격적인 건 동양인이라는 사실.
제이호커스뿐 아니라 자신의 사업을 하면서 동료를 모으고 있다는 것도 알아냈다.
- 동양인이면 어떻고, 흑인이면 어떠냐.
막스에게 빠져든 라이언은 마음을 추스르고 로렌스로 오길 결심했다.
그런데 막상 마주치니 듣는 것과 보는 것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스카프 없이 얼굴을 드러낸 동양인 막스.
그를 본 순간 라이언 홀드는 준비한 말들이 기억나지 않았다.
“왔으면 말을 해.”
“......”
몸이 굳어버린 라이언은 입술만 꿈틀거렸다.
“찾아온 이유는?”
“어? 어····. 제, 제이호커스에 들어가고 싶다.”
“미친놈.”
욕을 들어서인지, 점차 라이언의 얼굴이 평온을 되찾아갔다.
‘음? 변태야 뭐야.’
“제이호커스에 들어가고 싶으면 내가 아니라, 제임스 헨리 레인을 찾아가. 난 그냥 훈련만 시키고 있으니까. 참고로 난 도둑놈은 가르칠 생각은 없다.”
“나도 나름 사정은 있었다.”
“네가 훔친 물건의 주인들도 사정은 다 있다.”
“넌 아일랜드인이 무시당하고 멸시받는 걸 못 겪어봐서 그래!”
막스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