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장!’
막스의 눈동자가 크게 출렁거렸다.
눈앞에 두고도 콴트릴을 못 알아봤다니.
뒤통수를 크게 후려 맞은 기분이다.
원 역사에서 콴트릴은 악명높은 남부 연합의 게릴라군 지도자다. 그가 이끈 부대는 전쟁 중에 많은 마을을 약탈하고 방화한다.
대표적인 건 남북전쟁 도중 벌어진 로렌스 대학살 사건.
로렌스의 건물 두 개를 제외하곤 프리스테이트 호텔을 포함해 깡그리 불태우고, 민간인 150여 명을 죽인 자다. 그중엔 어린 소년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고.
콴트릴이라는 인물을 신경 쓰긴 했지만, 막스는 그의 등장 시기를 남북전쟁 직전으로 예상했다. 이는 최소 3년 뒤의 일.
그전에는 유타 준주에 있던 걸로 알고 있었다.
이렇듯 이른 시간에 그것도 캔자스에서 만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런데 이름까지 말하고 왜 칼로 찔렀을까?’
이어지는 라이언 홀드의 말이 막스의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이름을 말하더니 갑자기 나를 쳐다보는 거야. 내가 또 싸움판에 잔뼈가 굵잖아. 느낌이 싸하더라고. 아니나 다를까.”
- 너··· 한 달 전에 로렌스 마을 왔었지?
갑자기 변한 콴트릴의 분위기에 라이언은 본능적으로 칼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 무슨 소리야?
- 마을 사람들한테 동양인에 관해 캐묻고 다니는 걸 내가 봤거든. 게다가···.
느닷없이 말을 끊은 콴트릴은 칼로 라이언의 배를 쑤셨다.
- 다시 여기 오자마자 동양인 새끼를 만난 이유가 뭐야? 나를 너무 우습게 봤어.
“정작 그 새끼도 나를 우습게 본 거지. 칼에 찔리고도 내가 반격하니까 깜짝 놀라더라고.”
콴트릴은 라이언의 목을 향해 칼을 휘둘렀다.
이를 피하는 대신 놈은 어깨와 팔을 내주었다.
“총을 꺼내려니까, 새끼가 쫄아서 도망을 치더라고.”
“소리가 날까 봐 자리를 피한 거겠지. 애초에 칼을 쓴 것도 그 이유 때문이고.”
“뭐가 됐든. 그 새끼 정체는 알아냈잖아···.”
“그때 바로 총을 쐈어야지.”
“이미··· 도망갔다니까.”
“총을 쐈으면 사람들이 몰려왔을 테고, 찰스 하트를 잡을 수도 있었겠지. 게다가 너를 좀 더 일찍 치료했을 거야.”
‘냉정한 놈.’
막스는 담담한 얼굴로 몰아붙였다.
라이언의 목소리에 힘이 빠졌다.
“...... 난 나름··· 최선을 다했다.”
과연 그런 걸까.
생각해보면 찰스 하트가 한 말이 사실인지도 정확하지 않다. 게다가 놈을 놓친데다 꼴사납게 칼에 찔려 버렸으니.
대체 지금까지 뭘 한 건지 자괴감이 들었다.
‘내가 일을 망친 건가.’
막스가 멍청한 자신을 동료로 받아줄까.
능력을 보여주기는커녕 무능함을 보였다.
덩달아 자신감은 바닥을 쳤다.
‘뭔가··· 서럽네.’
배에 통증과 함께 마음도 약해진 기분이다.
라이언의 눈가가 촉촉해질 때.
막스는 여전히 담담한 채 말을 건넸다.
“당분간 여기서 요양하고 있어. 치료비는 걱정하지 말고.”
“...... 그렇게 동정할 필요 없다.”
“동정? 난 그런 단어 모르는데. 아무튼, 후유증 안 생기려면 제대로 치료받아. 비실 비실거리면 같이 일이나 하겠냐?”
‘같이 일한다고?’
라이언의 고개가 슬며시 막스를 향한다.
눈시울은 그사이 더욱 벌게져 있었다.
“고생했다. 네가 많은 사람을 구한 거야.”
“그, 그 정도까지는 아니잖아···?”
“원래 그런 미친놈이 제일 위험한 거다. 라이언, 네가 큰일 한 거야.”
막스의 말은 진심이었다.
실제로 남북전쟁 직전, 콴트릴은 제이호커스에 들어와 첩자 노릇을 한다.
작전을 보더 러피안에게 흘리고, 동료들을 죽음으로 내몬 뒤엔 유유히 미주리로 넘어가 남부 연합의 게릴라 지도자가 된 인물이었다.
그렇게 미래의 화근이 될 콴트릴의 정체를 알아냈으니, 큰일을 해냈다는 표현은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비록 뒤처리가 아쉽지만, 칼에 찔리고 반격까지 했으면 라이언의 말대로 최선을 다한 것이라 볼 수 있었다.
“몸 괜찮아지기 전까진 나 찾아오지 마. 와도 일거리 안 줄 거니까.”
“...... 알았다.”
병실을 빠져나온 막스는 듀들리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을 건넸다.
“우리 동료니까 잘 챙겨. 필요한 거 있으면 언제든 말하고.”
“옛 썰.”
병실에 누워있는 라이언은 밖에서 들리는 소리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콴트릴. 다음에 만나면 네 놈 목을 따 주마.’
*
‘개자식. 다음에 만나면 머리 가죽을 벗겨주마. 후. 내가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다.’
윌리엄 콴트릴은 이를 악물고 몸에 난 상처를 응시했다. 말이 움직일 때마다 칼에 찔린 상처에선 피를 꾸역꾸역 토해냈다.
이대론 도망치다 죽을 듯싶다.
윌리엄 콴트릴은 말에 매달린 가방을 뒤적거렸다.
천 쪼가리를 꺼낸 뒤엔 어깨와 팔을 천으로 휘감아 압박했다.
고통이 전해질수록 정신은 또렷해졌다.
‘동양인 새끼라면 이런 실수는 안 했겠지.’
오히려 자신의 정체를 파악하려 라이언 홀드를 접근하도록 만든 놈이다. 왜 그렇게까지 했는지는 의문이지만.
처음 악수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더러운 오물을 만진 것처럼 동양인에 치를 떨었었다.
그런데 놈에 관한 정보를 모으면 모을수록 콴트릴의 생각은 바뀌어 갔다.
무시할 존재가 아닌 탐구의 대상으로서 동양인을 파헤치게 되었다.
보안관을 했을 당시 드러낸 개인 능력.
제이호커스 집단을 지휘하며 보여준 전술과 전략은 콴트릴에겐 신선한 충격이었다.
동시에 한 가지 의문도 들었다.
왜 동양인이 본인과는 상관도 없는 노예 폐지론자들을 위해 싸우는가.
이에 대한 답은 훈련병으로 있으면서 얻을 수 있었다.
한때 지휘했던 제이호커스가 지금은 동양인의 수족이 되었다는 것. 이는 로렌스에서 자신의 기반을 만들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였다.
백인 천하에서 동양인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
막스의 행적에서 깨달음을 얻은 콴트릴.
그의 머릿속엔 한 가지 열망이 싹트게 된다.
한낱 동양인이 하는 걸 자신이 못 할 이유가 없다는 것.
그렇게 ‘자신만의 세력’을 만들어 세상을 움직이고자 하는 열망이 콴트릴의 마음속에 꿈틀거렸다.
응급처치를 끝낸 콴트릴의 시선이 하늘로 향했다. 떨어지는 빗방울이 제법 굵어졌고, 몰아치는 바람도 심상치 않았다.
무턱대고 강으로 왔지만, 밤이 깊어 나룻배는 운영하지 않았다.
콴트릴은 강을 따라 서쪽으로 이동했다.
‘내가 세력을 일굴 수 있는 판이 어딜까.’
가장 먼저 떠오른 건 보더 러피안.
그러나 썩 좋은 선택은 아니다.
머리가 아닌 꼬리로서, 멍청한 리더 밑에서 제이호커스와 부딪히기엔 부담이 컸다.
더욱이 자신이 보더 러피안에 있는 걸 안다면, 동양인의 성격상 보고만 있진 않을 것이다.
‘이거야 원, 마음속 두려움부터 없애야겠군.’
히콕을 아이처럼 다룬 미친 싸움 실력.
게다가 이후 벌어진 깡통을 가지고 벌인 총싸움까지 콴트릴은 몰래 훔쳐봤었다.
패스트 드로우에 이은 패닝.
미친 정확도와 속사 실력은 두려움을 넘어 전율마저 느낄 정도였다.
‘자신감이 생길 때까지는 부딪히지 말아야지.’
콴트릴은 비를 맞으며 강둑을 따라갔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귓가에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그 수가 꽤 많았다.
‘추격자인가.’
강가에 멈춘 자들은 캔자스강 동쪽과 서쪽으로 나눠 살피기 시작했다.
이때 누군가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놈은 서쪽으로 이동했다. 절반은 말을 타고, 나머진 말에서 내려 훑어간다.”
비 때문에 선명해진 말발굽이 콴트릴의 이동 방향을 알려준 것이다.
추적자들이 따라오자 다급해진 콴트릴이 말 허리를 찼다.
속도를 올리지만, 한 놈이 미친 듯한 속도로 따라붙고 있었다. 막스 휘하의 대원중 가장 말을 잘 타는 통신분대장 터커였다.
‘젠장.’
콴트릴은 궁리 끝에 필요한 물품만 챙긴 채 말을 버리기로 했다. 고삐를 풀러 이를 후려쳤다. 말이 앞으로 나아가고, 콴트릴은 강가로 달려갔다.
폭풍우가 몰아쳐 물살이 거세다.
콴트릴은 강가에 붙어 자란 나무를 향해갔다.
말 고삐를 칼로 잘라 나뭇가지에 묶고, 반대쪽은 자신의 팔을 휘감았다. 빠른 유속을 버티기 위함이었다.
콜린과 대원들이 강가를 훑어가지만, 물속에 머리를 처박은 콴트릴을 발견할 순 없었다.
물 밖으로 나온 건 한 시간이 지난 뒤.
되돌아오는 것까지 확인하고서였다.
척, 척.
물가로 나온 콴트릴은 천천히 한 방향을 응시했다.
‘캔자스 서쪽으로 가야겠군.’
인디언 부족 샤이엔과의 전쟁이 한창인 곳.
군대는 정규군 외에 수시로 자원 병사를 채우는 게 빈번하다.
훈련병으로 있는 동안 배운 것들을 체화시켜 개인 능력을 키운다. 더불어 인디언과 전쟁을 치르며 경험을 쌓고, 몰몬교로 시끄러운 유타에서 동료를 모을 생각이었다.
‘이번엔 무슨 이름으로 바꿀까. 크큭.’
*
다음 날 오전.
콴트릴을 잡아 오겠다던 콜린과 대원들이 고개를 숙인 채 기지로 돌아왔다.
비에 흠뻑 젖은 모습에 막스는 짧게 ‘고생했다’라는 말만 전했다.
착잡한 콜린은 밖에서 담배만 뻑뻑 피워대고.
그걸 본 피치는 고개를 절레 저으며 말을 건넸다.
“콜린답지 않네요. 사이코라 잡기가 쉽진 않았을 거예요.”
“사이코라···. 위로가 되네. 근데 그건 뭐야?”
“사이코 방에서 가져온 거요. 보면 놀랄걸요?”
담배를 서둘러 끈 콜린은 피치를 따라 막스의 사무실로 들어갔다.
“이 노트 봐봐. 이 자식이 너를 사랑했나 봐. 아니면 이럴 수가 없거든.”
막스는 뭔 개소리냐며 피치가 내민 노트를 받아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첫 페이지부터 막스 얼굴이 떡하니 그려져 있었다.
“이런 미친 새끼!”
그림을 발로 그렸는지, 막스의 입이 눈에 붙어 있었다.
중요한 건 다음 페이지부터다.
막스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도 해놨다.
‘제이호커스를 혐오하면서 훈련병에 자원한 이유를 이제야 알겠군.’
마찬가지로 동양인을 혐오하면서도 막스에 관한 관심과 애증은 콴트릴의 낙서 곳곳에서 드러났다.
노트 한 권은 숫제 막스를 은밀하게 스토킹한 관찰일지였다.
“돈이나 다른 짐은 가져갔는데, 이런 건 놔두고 갔어. 무슨 의미일까.”
“보라고 한 거겠지.”
“뭐를? 너를 닮고 싶어 한다는 마음을?”
피치는 소름 끼치는지 양팔을 손바닥으로 비벼댔다.
“닭살 돋는 소리 그만하고. 그냥, 동양인한테 지기 싫은 거야. 자기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 거지.”
“이대로 놔두기엔 위험한 놈 같아. 별도로 추격조를 만들어서 잡아야 하는 거 아냐?”
피치의 말에 콜린이 움찔하며 그녀를 빤히 쳐다봤다. 방금 그 추격조가 실패했고, 그 추격조를 지휘한 게 자신이었으니.
‘나 엿 먹이는 거?’
피치가 커다랗게 X 표시를 하며, 절대 그런 뜻이 아니라고 극구 부인했다.
콜린의 얼굴이 시무룩해지고, 막스는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콴트릴의 추격은 놔둬. 어차피 만나게 될 거야. 쫓는다고 쉽게 잡힐 놈도 아니고.”
‘남북전쟁 이전에 놈이 있던 곳은 유타다.’
콴트릴에 관한 막스의 기억을 추려 보면.
몰몬교 전쟁과 맞물려 콴트릴은 유타에서 도박과 절도, 살인을 저지른다. 그랬던 놈이 막스로 인해 움직임이 달라졌을까?
‘어찌 됐든, 유타 준주면 내가 가려는 캔자스 서쪽, 콜로라도와 인접한 주잖아.’
동쪽에서 서쪽으로 캔자스-콜로라도-유타 순이다. 어차피 가는 길 지도를 보면, 만날 가능성도 있었다.
“며칠 내, 캔자스 서부로 떠날 거야. 기간은 최소 3개월. 피치는 이동 경로를 알아봐 줘. 콜린은 여정에 필요한 물건 준비해주고요.”
“오케이!”
남부군 게릴라 리더 콴트릴이 생각보다 빨리 각성해버렸다. 이는 막스가 일으킨 나비효과 중 현재로선 가장 커다란 변화였다.
< 나는 최선을 다했다 > 끝
작가의말
아베신죠님께서 윌리엄 클라크 콴트릴을 가장 먼저 맞춰주셨습니다.
그 전에 한 분이 댓글 다셨는데, 삭제를 하셨더군요;;
골드는 아베신죠님께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선물 수락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돌발 이벤트 참여해주신 독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오늘은 콴트릴에 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인터넷 자료마다 정보가 조금씩은 다르더군요.
특히 캔자스와 유타에서 무엇을 했는지 정보가 엇갈렸습니다.
그중 콴트릴을 사이코패스로 설정한 건 다음의 이유였습니다.
아버지에게 학대를 당하면서 자랐다는 점,
어려서부터 동물을 잔인하게 죽이고
성인이 되어선 사람 역시 마찬가지였다는 점 때문이였습니다.
다만, 무턱대고 죽이는 미치광이는 아니었습니다.
로렌스 대학살에서 소년(12세 이상이 아닐까 싶습니다)은 죽였지만,
여인들과 어린 아이들은 건드리지 않았다고 되어있더군요.
물론 이 이유만으로 사이코패스라고 보기엔 과한 면이 있습니다.
소설의 흥미를 위한 설정이라고 여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초반 등장은 개인 위주로 행동했지만, 집단을 이끌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