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너 대령이 이끈 군대는 샤이엔과 전쟁 중이다. 그 첫 전투는 솔로몬 포크. 지금 있는 장소와 멀지 않은 솔로몬 강이 있는 곳이었다.
“난 엘 프에블로 교역소를 운영했던 조지 심슨이오! 오클라호마에 볼일이 있어 다시 돌아가는 길일 뿐, 절대 다른 뜻은 없소!”
콜린이 엘 프에블로를 아는지 막스에게 설명을 보탰다.
“멕시코 전쟁 때 본 적이 있었어. 엘 프에블로는 덫 사냥꾼들과 상인들이 인디언들과 거래하는 오래된 교역소거든. 요새도 하는지 모르겠지만.”
“엘 프에블로가 어디 있는 곳이에요?”
“우리가 가려는 로키산맥 남쪽인가, 그럴걸?”
‘그럼 그 부근은 빠삭하겠네.’
로키산맥은 알래스카 북에서 시작해 캐나다에서 미국 몬태나, 와이오밍, 콜로라도, 뉴멕시코에 이르는 광대한 산맥이다.
미국 역사에 빼놓을 수 없는 덫 사냥꾼, 탐험가들이 로키산맥을 오가며 수많은 전설을 써 내려간 곳이기도 했다.
그들이 닦아 놓은 길이 오늘날의 오레곤 트레일이 되고, 많은 사람을 캘리포니아와 네바다주로 이동할 수 있게 만들었다.
조지 심슨과 일행들은 덫 사냥꾼으로서 마지막 계보를 잇는 자들이기도 했다.
로키산맥 지리와 그곳 인디언에 대해서도 빠삭한 자들이었다.
“합류하는 거로 합시다.”
*
타닥, 타닥.
모닥불에 둘러앉아 고기를 뜯기 시작했다.
하루 내내 인디언의 추적을 따돌린 조지 심슨 일행은 걸신들린 것처럼 버팔로 고기로 허기를 채웠다.
조지 심슨은 동양인을 보고도 크게 놀라진 않았었다.
“몇 년 전 캘리포니아에 있었을 때, 중국인을 많이 봤었거든. 근데 조선이란 이름은 처음 들어 보는군.”
“많지 않을 겁니다.”
아예 없다고는 말 못 하겠다. 이막산처럼 중국인들과 몰래 섞여 왔을 수도 있으니까.
“근데 샤이엔 부족이 여기에 남아있는 겁니까? 전쟁 때문에 밀려났다고 들었는데.”
조지 심슨은 고기를 씹으며 말을 이었다.
“샤이엔은 총 여섯 개 부족이 있네. 그중 하나가 작년에 여행객들을 습격했고, 이번 전쟁은 그 부족을 타겟으로 한 것이지.”
워낙 광범위하게 퍼져있어 어디서 갑자기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다고도 했다.
“샤이엔 부족이 호전적이긴 해도 무턱대고 공격하진 않거든.”
“며칠 전에 백인 남자가 샤이엔 인디언 남자를 죽여서 그런 거라니까. 그걸 복수하려고 우리를 쫓은 게 확실해.”
조지 심슨 옆에 있는 인디언이 끼어들었다.
찰스 오토비라는 자로 조 짐 주니어의 아버지처럼 백인과 인디언의 피를 가진 복잡한 혈통의 남자였다.
그리고 그가 말한 인디언을 죽인 백인 남자가 윌리엄 콴트릴이라는 사실. 막스는 그 가능성을 살짝 의심해 보았으나 확인할 길이 없었다.
“그런데 다들 어디서 오는 길이야?”
“캔자스 로렌스요.”
“핫 플레이스에서 오셨구만. 요새 거기 엄청 시끄럽잖아. 근데 너도 혼혈이냐?”
오토비는 조 짐 주니어에게 흥미를 느꼈는지 둘만의 대화를 이어갔다.
심슨의 일행 중엔 오토비 말고 또 다른 인디언이 있다. 델라웨어 부족의 ‘떨어지는 낙엽’이라는 폴 리프라 불리는 인디언이었다.
한때 미 육군 소속의 정찰병으로 일했던 이력이 있는 자로, 먹는 데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그런데 자네들은 어디를 가는 길인가?”
“파이크스 피크 부근입니다.”
“......”
고기를 뜯던 움직임들이 정지되고 이내 불편한 침묵이 이어졌다. 조지 심슨은 일행들과 눈빛을 주고받았는데 묘한 긴장감과 경계심이 깃들어 있었다.
‘금광에 대해 뭔가 알고 있군.’
막스는 슬쩍 떠보려 입을 열었다.
“거기에 괴물이라도 삽니까? 가면 큰일 날 것 같은 분위기네요.”
“그건 아니네만. 우리 목적지랑 비슷해서 놀란 것뿐일세.”
“놀라는 이유는요?”
“...... 그야 우연치곤 공교로워서 그렇지.”
막스는 말없이 조지 심슨의 눈을 응시했다.
눈동자에 맺힌 모닥불이 묘한 공포감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조지 심슨 역시 잔뼈가 굵은 남자다. 쉽게 동요하지 않으며 대충 넘어가려 했다. 그런데 막스가 또 한 번 그를 흔들었다.
“사실 금광을 탐사하러 가는 길입니다만.”
“금광?!”
조지 심슨의 눈이 크게 요동쳤다.
감춘 걸 들킨 듯한 반응이었다.
‘이자가 두 번째로 금을 발견한 사람이구나.’
콜로라도 금광은 50, 57, 58, 59년에 걸쳐 금이 발견된다. 그중 대량으로 발견된 건 59년.
심슨이 발견한 건 에피타이저에도 못 드는 하찮은 양에 불과했다.
묘한 긴장감이 흐르는 가운데, 조지 심슨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벌써 소문이 퍼진 모양이군. 뭐, 어차피 예상은 하고 있었네. 몇 개월 전에 우리가 냇가에서 사금을 발견했거든.”
“혹시, 거기가 체리 크릭인가요?”
그건 또 어떻게 알았냐며 조지 심슨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크릭은 시냇가라는 뜻으로 체리 크릭은 미래의 덴버시 중심에 있는 곳이다.
전생에 막스는 여행하던 중 그곳을 지나치기도 했었다.
‘마침 그곳에 땅을 사려던 참인데 잘되었다.’
대강의 위치는 알아도 천지개벽하기 전 자연 그대로의 체리 크릭을 찾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온 사람을 만나게 되었으니 일이 수월해진 것이다.
‘관계를 다져놔야겠어.’
“사실, 예전부터 인디언들 사이에서 소문이 돌던 곳이었네. 그동안 많은 사람이 금광을 찾아다녔지만 실패했지. 그런데 우연히 체리 크릭에서 발견했지 뭔가.”
“양은 별로 없었나 보네요.”
많았다면 이렇게 돌아다닐 여유가 있을까.
지키기도 급할 텐데.
막스의 추측대로, 조지 심슨은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냇가에는 많지 않았네. 해서 그 부근을 탐사하려고 이 친구를 데려가는 길이지.”
조지 심슨 옆에 있던 남자는 캘리포니아 금광에서 일했던 광산 전문가 바클레이라는 자다.
그는 최근까지 오클라호마주에서 있지도 않은 광산을 탐사하느라 삽질하고 있던 자였다.
막스는 조지 심슨의 경계를 풀기 위해 말을 건넸다.
“냇가에 있는 사금은 관심 없습니다. 게다가 광산을 탐사한다 해도 겹칠 일은 없을 거고, 새로운 정착지 마을을 만들려는 목적도 있거든요.”
“마을?”
“그렇습니다. 파이크스 피크 부근에 적당한 곳이 있으면 땅을 살 생각입니다.”
“NEEAC가 캔자스 곳곳에 마을을 설립한다고 들었는데, 거기까지 진출하려는 모양이군.”
조지 심슨은 썩 내키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로렌스 내부에 있다 보면 NEEAC라는 회사를 긍정적으로 보게 된다.
캔자스를 자유주로 만들기 위해 적당한 마을 부지를 매입하고 노예제 폐지론자들의 이주를 적극적으로 도왔으니 말이다.
그러나 조금만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면, NEEAC는 땅 투기 회사라고도 볼 수 있었다.
로렌스만 보더라도, 헐값에 매입한 땅의 가치가 지금은 몇 배로 뛴 상태였다.
새로운 이주민들이 땅을 살 때마다 그 차익이 생겨났고, 로렌스 위원회는 NEEAC에 되돌려주고 있다. 그들은 캔자스 곳곳에 이런 사업을 벌이고 있었다.
캔자스 노예제 갈등을 이용한 부동산 투기.
비판적으로 바라보면 틀린 말은 아니었다.
“NEEAC와는 상관없습니다. 이건 제가 구상하고 결정하는 거니까요.”
“동양인인 자네가?”
“주변에 도움은 받고 있지만, 모든 사업의 결정 권한은 제가 갖고 있습니다.”
조지 심슨은 막스 일행을 훑어봤다.
조 짐 주니어를 빼면 전부 백인이다.
그들은 막스의 말에 힘을 실어주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대단한 친구로군. 아무튼, 좋은 결실이 있길 바라네.”
그날 밤. 불침번을 정해 야간 경계를 섰다.
심슨의 말마따나 쪽수가 늘어나서인지 인디언이 습격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
로렌스를 떠난 지 보름.
마침내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봉우리가 눈에 들어왔다.
“저기가 파이크스 피크라네.”
일행은 심슨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말을 내달렸다. 로키산맥의 동쪽. 나무와 들판을 가로지르는 막스는 내심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전혀 모르겠네.’
전생에 여행했던 고층 빌딩이 빼곡히 늘어선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 광활한 땅과 숲, 드문드문 보이는 호수가 전부였다.
막스의 시선은 파이크스 피크가 아닌 좀 더 북쪽에 있는 산들을 향했다.
훗날 콜로라도 금광을 파이크스 피크 골드러시라 불렀으나, 실제로 금광이 발견된 곳은 다른 곳이었다.
그런데도 이름이 파이크스 피크라 불린 건, 골드러시를 따라 동쪽에서 몰려온 사람들의 눈에 가장 먼저 보이는 봉우리였기 때문이었다.
일종의 나침판 역할도 했고.
그러나 막상 눈에 보여도 거리는 꽤 멀었다.
체리 크릭으로 향하는 길.
풀숲을 지나 아름다운 호수를 지나며 막스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딜레마에 빠졌다.
빼어난 경관을 보고 있으면 찝찝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이걸 파괴하는 선봉장 노릇을 하는구나.”
“무슨 소리야. 언제부터 그런 것 신경 썼냐? 보면 금광을 손에 들고 있는 것 같아. 자신감 하나는 진짜 부럽다니까.”
피치가 입을 삐죽일 때,
막스의 머릿속엔 금광의 발견으로 촉발된 일련의 사건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골드러시로 몰려드는 백인들은 곳곳에 캠프를 짓고 마을이 들어서며 벌목한 나무들은 이곳을 황폐하게 할 것이다.
게다가 석영에 섞인 금을 조금이라도 캐려 화학 물질을 사용해 땅과 물을 오염시킨다.
그리고 저항하는 인디언을 몰아내려 학살이 벌어질 것이다.
한 폭의 지옥도가 막스의 머릿속에 그려졌다.
길게 한숨을 내쉰 막스는 애써 찝찝한 마음을 떨쳐냈다.
‘어차피 누군가에게 발견될 거. 내가 먼저 하는 것뿐이야.’
일행은 얼마 되지 않아 체리 크릭에 도착했다.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시냇가. 그 주변에 덩그러니 만들어진 오두막집은 아름다운 자연과 어울려 나름 운치가 있었다.
“몇 개월 전에 만든 집이네. 뭐, 집이라기보단 작업실이라고 봐야지.”
오두막 주변에는 사금을 채굴하기 위한 도구들이 어지러이 널려있었다.
“오늘 움직이지 않을 거면, 여기서 묵고 가게. 도움을 받았으면 우리도 뭔가 해야지 않겠나.”
“그럼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 땅은 주인이 있습니까?”
“딱히 없네. 인디언들은 자기들이 머무는 곳이 따로 있고, 그냥 말뚝 박으면 그게 자기 땅이지 뭐.”
캔자스 준주의 토지 측량담당자가 건네준 지도에도 이곳은 인디언의 거주 영역으로 묶인 공유지였다.
현재 미국 토지법에 따르면 4년을 거주하고, 그 땅을 경작하면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다.
물론 공짜는 아니다.
에이커당 1.25달러로 1인당 최소 80에이커(9만 7천 평)에서 320에이커(39만 평)까지 매입 가능했다.
막스는 심슨을 쳐다보며 물었다.
“여기에서 살 겁니까?”
“......”
심슨의 가족은 남쪽으로 150km 떨어진 푸에블로에서 살고 있었으니 말이다.
금광 때문에 잠깐 머무른 것 뿐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막스가 물어보는 순간 사야 할 것 같은 조급함이 생겨났다.
“잠시만 기다리게.”
심슨은 오토비와 폴리프, 그리고 바클레이와 회의에 들어갔다. 핵심은 이곳에서 금이 발견되었을 경우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로 넘쳐날 테고 땅값이 오를 게 분명했다.
장고의 숙고를 거듭한 끝에 심슨이 말했다.
“우린 이쪽에 160에이커를 갖기로 했네.”
“알겠습니다. 그럼 이 부근을 제외하고 가져가도록 하죠.”
심슨의 말에 따르면 반경 20km 내외엔 정착민들이 없다고 했다. 그걸로 충분하다.
막스는 일행을 쳐다보며 말했다.
“말뚝 만들자.”
“몇 개요?”
“네 개면 되지 뭐. 말뚝 위에 M자 꼭 새겨라.”
“알겠어요.”
조 짐 주니어가 대답하고, 일행들은 나무를 구하러 갔다.
‘직원들을 전부 이곳으로 이주시켜야겠다.’
막스가 떠올린 직원들은 물론 라이언을 포함한 젊은 제이호커스다. 그 수가 82명.
320에이커를 기준으로 총 25,600에이커(3,000만 평)에 달한다.
‘여의도가 90만 평에서 조금 빠지니까.’
33배에 달하는 면적이다.
최소 4년간 이곳에서 지지고 볶을 테니 조건을 충족시키는 건 문제가 안 된다.
문제는 돈인데, 이 나라는 편리하게도 4년에 걸쳐 총 네 번을 나눠서 지급할 수 있었다.
지급이 연체되면 토지는 당연히 환수되고.
즉, 에이커당 1.25달러씩 25,600에이커를 사려면 총 32,000달러가 필요하고, 올해는 1/4인 8,000달러만 지급하면 된다는 말이었다.
‘존 크렌쇼가 땅까지 사주는구나.’
조금 부족하나 올해는 넘어갈 수 있다.
어차피 내년에는 금을 팔면 되니까.
이미 존 기어리 주지사와 협의는 끝낸 상태.
광산만 발견되면, 이곳은 사람들로 북적일 것이고 모든 사업을 독점할 생각이었다.
말뚝이 만들어지자, 막스는 피치와 일행들을 이끌고 말을 내달렸다.
그러다 이내 막스가 손을 들어 정지시켰다.
“안 되겠다. 말뚝은 천천히 박자.”
가로세로 각각 96km.
생각해보니 말뚝 박기도 먼 거리였다.
다음날.
일행은 흩어져서 네 개의 말뚝을 박았다.
그 속에 들어간 조지 심슨의 땅은 마치 알박기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훗날 노른자 땅이 되겠지만, 그것까지 욕심낼 필요는 없었다.
아니, 오히려 조지 심슨을 끌어들인 건 신의 한 수라 할 수 있었다.
특히 인디언과 관련해서 심슨과 일행은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었다. 무늬만 인디언인 조 짐 주니어가 오히려 배울 정도였으니까.
앞으로 인디언과의 거래를 위해 막스는 이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생각이었다.
*
로렌스를 떠나온 지 한 달 보름.
막스와 일행은 오늘도 로키산맥 동쪽 부근에서 열심히 곡괭이질을 하고 있었다.
깡! 깡!
푹, 푹.
“시발, 어후 힘들어! 날씨는 또 더럽게 더워요.”
“촉이 왔습니다. 좀 더 파봐요!”
“그놈의 촉은. 진짜 욕 나온다.”
콜린에 이어 히콕도 분노를 터트렸다.
“시발것, 차라리 내가 금을 사줄게!”
“돈도 없는 게 허세는. 개소리 말고 어여 땅이나 파.”
피치도 지쳤는지 터벅거리며 다가왔다.
“체리 크릭에서 금이 발견됐으면, 그 근처를 뒤져야지. 안 그래?”
“어, 안 그래.”
“쳇. 맨날 여기가 확실해, 그러다. 어? 여기가 아닌가 보네. 어후, 이것도 하루 이틀이지, 벌써 한달이 넘었다고. 근데 막스야···.”
짜증 내던 피치가 조울증 환자처럼 은근한 미소로 말을 건넸다. 조금은 섬뜩했다.
“금광이고 뭐고 난 다 필요 없다. 넌 이미 땅을 가진 어엿한 서부의 남자잖아? 말만 해. 난 준비됐으니까.”
“개소리 말고 어여 곡괭이 들어.”
“아오오오!”
피치가 씩씩거리며 곡괭이로 땅을 후려쳤다.
이때 묵묵히 곡괭이질을 하던 네이선 로어가 미친놈처럼 몸을 부르르 떨었다.
“어머, 너 지금 오줌 싸는 거야?”
피치가 로어도 마침내 맛이 갔다며 혀를 찼다.
그리고 이때.
네이선 로어는 희번덕거리는 눈으로 소리쳤다.
“금이다!”
바위에 박힌 금덩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