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6화 (86/360)

수많은 광부를 콜로라도 광산으로 끌어들인 골드러시. 그 시작을 2년이나 앞당긴 사건이었다.

< 어여 땅이나 파 > 끝

< 역시 밤에 봐야 하는구나 >

막스는 네이선 로어를 격하게 끌어안았다.

“네 이름은 역사에 기록될 거다. 아주 큰 일을 해낸 거야!”

“내가 금을 발견하다니···. 어흑.”

로어가 울먹거리는 사이 히콕은 바위 주변을 곡괭이로 내리찍었다.

깡, 깡!

바위가 갈라지고 그 틈에 섞인 금맥은 나무줄기처럼 이어져 있었다.

“와씨, 진짜 금맥이네. 대체 어떻게 안 거야?!”

“조선인들은 기본적으로 촉이 있어.”

“그놈의 만능 조선설.”

“아무튼, 그만 파고 여기에 표식 남겨.”

일행은 온갖 것들을 동원해 바위를 감췄다.

이곳은 파이크스 피크에서 북쪽으로 140km 떨어진 산기슭이었다.

*

금광이 발견되자, 막스는 또다시 머릿속 구석에 밀어두었던 딜레마에 빠지게 되었다.

‘하, 인디언이 문제네 진짜.’

무시하고 내버려 두기엔 인디언에 관한 지식이 너무 많다. 대부분은 그들의 끔찍한 미래였다.

노예 해방 역사를 부르짖는 백인은 많지만, 정작 인디언에 관해선 침묵하는 게 현실이다. 

이는 백 수십 년이 지나도 바뀌지 않는다.

‘바꿀 것인가, 역사의 흐름에 순응할 것인가.’

금광의 발견은 막스에게 이 갈림길의 선택을 강요하고 있었다.

막스와 일행은 조지 심슨이 있는 체리 크릭의 오두막으로 돌아왔다.

무려 한 달만이었다.

“어이구, 저 양반들 아주 열심이네.”

심슨과 동료들은 오늘도 시냇가에 쭈그려 앉아 사금을 채취하고 있었다.

“뒷모습 보니까 짠하다.”

“저렇게 앉아있으면 무릎 엄청 아플 텐데.”

얼마 전까지만 해도 냇가에서 사금이나 캐자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지금은 눈시울까지 붉히며 남을 동정하고 있었다.

“저런 거 보면 먹고살기 참 힘들어, 그치?”

“어떻게, 우리가 캔 거 냇가에 조금 풀까요?”

“나쁘지 않은 생각이야.”

막스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피치와 로어를 쳐다봤다. 로어는 의외로 정도 많고 동정심도 많은 남자였다.

“쓸데없는 오지랖 그만 떨고. 다들 표정 관리하는 거 잊지 마.”

서슬 퍼런 막스의 눈빛이 일행을 훑자,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입꼬리를 내렸다.

“어떻게 소득은 좀 있었나?”

조지 심슨은 구슬땀을 훔치며 말을 건넸다.

“금광이 그렇게 쉽게 발견되겠습니까.”

“그야 그렇지만. 그래도 안타깝구먼. 차라리 자네들도 여기서 사금이나 채취하는 건 어떤가? 보게나, 오늘도 이만큼이나 얻었거든.”

새끼손톱 정도의 양이었다. 

“어흑.”

로어가 주먹으로 입을 틀어막으며 고개를 돌렸다. 눈이 가늘어진 막스가 히콕을 바라보자, 이내 로어를 어딘가로 끌고 갔다.

“며칠 머물 생각인데, 괜찮겠습니까?”

“좋을 대로 하게. 우리끼리 노닥거리는 것도 지겨웠던 참이거든. 오늘 일진이 좋았으니, 저녁도 거하게 한 번 먹자고.”

심슨과 동료들은 껄껄거리며 오두막으로 향했다. 오늘의 성과가 만족스러운지 마음만큼은 한없이 풍요로웠다.

오토비와 폴 리프는 사냥을 나갔다. 

코디와 히콕, 조 짐 주니어가 따라가고 얼마 되지 않아 사냥감을 끌고 왔다.

“오늘은 버팔로 고기다!”

막스는 신나게 해체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코디에게 물었다.

“사냥 재미있었어?” 

“전 그냥 지켜보기만 했죠. 두 분 사냥 솜씨가 장난 아니더라고요.”

“그렇구나. 오늘도 배가 고파서 사냥한 거다.”

“......?”

막스는 코디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곤 사라졌다. 코디가 옆에 있는 히콕에게 물었다.

“왜 나만 보면 저 말을 하는 거야?”

“그거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질문인데. 내가 저 인간 머릿속을 어떻게 알겠어.”

“하긴.”

모닥불에 고기가 노릇노릇 구워지고, 산속에서 대충 끼니를 때우던 일행은 미친 듯이 고기를 뜯기 시작했다.

심슨은 흐뭇하게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산을 다니다 보면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픈 법이지. 우리가 한창 덫 사냥꾼으로 이름을 날릴 땐 입에 뭔가를 항상 쑤셔 넣고 다녔거든.”

덫 사냥꾼은 말 그대로 덫을 놓아 동물을 사냥하는 사냥꾼이다. 그들은 주로 모피를 얻으려 비버를 사냥했으나, 어느 순간 유럽에서 실크가 대세로 떠오르자 수입도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되었다.

이번엔 오토비가 끼어들었다.

“어디 산뿐인가. 힐라 강 유역에서 덫사냥할 때도 난 항상 배가 고팠네. 이거 말하다 보니까, 갑자기 부드럽게 끓인 비버 꼬리 스프가

생각나는구먼.”

“그때가 좋았지. 비버 사냥 배운다고 카슨 뒤를 졸졸 따라다녔던 게 어제 같은데 말야.”

“그 친구는 요즘 어떻게 지내?”

광산 전문가지만 지금은 사금을 채취하는 바클레이가 물었다.

“카슨이야 뭐. 아직도 연방 인디언 에이전트로 일하고 있지.”

“카슨이면, 혹시 키트 카슨을 말하는 겁니까?”

막스가 멍한 얼굴로 묻자, 심슨과 동료들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키트 카슨 아니면 누가 또 있겠어. 예전엔 같이 허드슨 베이 회사에서 일했었거든.”

‘결국, 키트 카슨과 연결고리가 생기는 건가.’

키트 카슨은 미연방 최초의 인디언 에이전트.

덫 사냥꾼, 야생 가이드, 미 육군 장교로 서부 개척 역사에선 빼놓을 수 없는 전설적인 인물이었다. 

“진짜 키트 카슨하고 같이 일했어요?”

“기마 실력이 그렇게 뛰어났다면서요?”

히콕과 코디를 비롯해 로어와 조 짐 주니어까지 키트 카슨이라는 이름에 열광했다.

그만큼 카슨의 명성은 현재 진행형으로, 숱한 영웅담이 소설 및 기사화되어 존 브라운을 능가하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카슨은 노예제 옹호론자와 폐지론자 구분 없이 골고루 인기가 많았던 인물이었다.

하지만 막스에게 명성 따위는 흥밋거리가 아니었다.

‘카슨을 통해 인디언들과 가까워질 수 있을까.’

“만약에 말입니다. 이곳에 금광이 발견되면 인디언들은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캘리포니아처럼 될까요?”

막스의 질문에 순간 침묵이 감돌았다.

조지 심슨과 동료들은 곰곰이 생각하더니, 이내 인디언 혼혈인 오토비가 입을 열었다.

“자네 말대로 캘리포니아 전철을 밟겠지. 땅을 빼앗기고, 저항하면 죽게 될 걸세. 그런데 이 이상 밀려나면 그들이 갈 곳은 황무지뿐이네. 그러니 필사적으로 저항하겠지?”

“공존하는 방법은 없습니까?”

“공존?”

오토비 옆에 있던 델라웨어 인디언 폴 리프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는 투박한 영어로 입을 열었다.

“공존하는 방법이 있으면, 이렇게까지 되진 않았겠지. 인디언과 백인들은 문화와 사고방식이 너무 다르거든.”

“자네가 말한 공존은 오래전 우리끼리도 많은 대화를 나눈 주제일세. 허나 수십 년째 답을 못 찾았네.”

그 답은 미래에도 찾지 못할 것이다.

다양한 국가, 인종의 용광로인 미국이지만 정작 그 속에 인디언은 빠져있었다.

전생에 미국을 여행하던 조유강은 인디언 보호구역도 방문한 적이 있었다.

대륙의 주인이었던 인디언이 머무는 땅은 전체 국토의 2.3%. 

대부분은 열악한 황무지였다.

장작을 구하기 위해 19km를 걸어야 했고,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한답시고 미연방은 인디언 보호구역에 카지노를 건립했다.

어디 이뿐인가. 인디언 여성에게 불임을 조장해 인구를 제한하고, 청소년의 자살률이 높은 건 불행한 현실과 앞이 확실히 보이는 암담한 미래 탓이었다.

앞으로 미연방은 원주민 기숙사를 지어 강제로 아이들을 가족들과 분리해 백인문화 동화정책을 펼치려 할 것이다. 이곳에선 구타와 성폭행이 만연하게 되는데, 그 주범들은 주로 목사들이었다.

훗날 캐나다 원주민 기숙학교마다 아이들 유골이 수천 구씩 발견되는 것처럼, 이는 정부 차원에서 자행한 명백한 ‘인종청소’의 증거였다.

밝혀지지 않았을 뿐 미국은 더하지 않았을까.

‘생각만 해도 가슴이 답답해지네.’

멀리 갈 필요 없이 일제 강점기를 떠올리면 된다. 

조선인 이막산, 그 후에 태어난 대한민국 조유강의 집합체인 막스라 인디언들이 느끼는 분노와 슬픔을 유독 공감하는지도 모른다.

조지 심슨이 말했다.

“만약 우리가 광산을 발견한다면, 우리는 바로 매각할 걸세. 욕심이 크면 화가 미치는 법이거든. 매장량을 가늠해서 가장 비싸게 부르는 곳에 팔면 얼마나 편한가.”

“그 회사가 이 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들면요? 인디언을 죽이던가, 쫓아낼 텐데요.”

“... 그건누가 막을 수 있는 일이 아니네. 가장 좋은 방법은 인디언과 협상을 하는 건데, 그렇게까지 할 백인들이 있을까 싶네. 일단 서로를 신뢰하지 않거든.”

결국 채굴권을 사들인 회사는 주에 병력을 요청하고, 군을 동원해 인디언을 쫓아낼 거라는 게 오토비의 말이었다. 이는 캘리포니아의 전철을 그대로 밟는 것이었다.

“협상이면 어떤 협상입니까?”

“뭐, 필요한 물건을 주는 거지. 말, 가죽, 식량, 무기 같은 거.”

“근데 인디언은 금이 필요 없어요?”

어린 코디가 끼어들며 물었다. 

조지 심슨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인디언에게 금은 별 가치가 없지. 오히려 금을 가지는 순간 타겟이 되어 버리거든. 행운이 아닌 화근인 셈이지.”

“듣고 보니 그러네요.”

식사는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조지 심슨과 동료들은 오두막 안에서, 막스 일행은 바깥에서 잠을 자야 했다. 

한여름이라 가능한 일이었다.

누워서 밤하늘을 보던 중.

피치가 막스 옆에 누워 말을 건넸다.

“인디언이 신경 쓰여? 여기 올 때부터 그러더니만. 의외네.”

“피치. 넌 인디언을 어떻게 생각해?”

“별생각 없는데.”

“그게 문제야.”

피치가 입을 삐죽 내밀며 막스를 쳐다봤다.

“너 그거 알아? 처음 이 땅을 밟은 영국인이 어떻게 살게 되었는지.”

“메이플라워호 얘기하는 거야?”

최초 잉글랜드 출신 이민자들 102명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미국 땅을 밟았다. 선원을 뺀 대부분은 종교 박해를 피해 영국을 탈출한 이들이었다.

매사추세츠 폴리머스에 정착을 시도한 그들은 혹독한 환경을 버티지 못하고 절반이 죽어나간다. 그런 백인들에게 인디언들은 옥수수 재배법과 혹독한 추위를 버틸 수 있는 꿀팁까지 전수해준다. 이는 백인이 대륙에서 살아갈 방법을 알려준 것이었다.

“그 작은 호의가 인디언들을 이렇게 만든 거야. 호의가 계속되니까 권리인 줄 아는 거지.”

“......”

“다들 노예제엔 신념을 불태우면서 정작 인디언에겐 관심들도 없더라.”

로렌스에 있는 자들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그 유명한 링컨은 어떨까? 

그는 인디언 학살을 방조하거나 오히려 지시를 내리기까지 했다. 남북전쟁이 끝나면 그다음 전쟁의 대상은 인디언이었다.

“그래서 너라도 인디언에 관심을 둬야겠다, 뭐 이런 거야?”

“그건 결국 내 문제이기도 하거든. 토피카 헌법 내용 알지? 백인 성인 남성에게 참정권을 주겠다는 거. 시간이 흐르면 흑인이 추가되고, 여자도 추가되겠지. 근데 동양인과 인디언은 없을걸?”

피치의 입에서 작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지금까지 이런 이야기가 처음이라, 생각이 복잡했다. 

그래서 막스가 원하는 게 무엇일까.

‘설마···.’

“체제 전복이라도 노리는 건 아니지?”

“하면 도와줄래?”

피치가 고개를 돌려 막스를 쳐다봤다.

웃음기 쏙 빠진 얼굴이 사람 헷갈리게 한다.

피치도 사뭇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

“도와줄게.”

“고마워.”

“대신 부탁이 있어.”

“말해.”

“그런 거 하지 마.”

“...... 설마 하겠냐.”

피치는 대답이 마음에 드는지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하늘로 시선을 옮긴 그녀의 마음은 무거웠다.

극강의 전투력을 지닌 막스가 지금까지 훈련 시킨 것처럼 병사들을 만들어내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짐작조차 안 갔다.

‘갑자기 막스의 눈이 되고 싶네.’

동양인의 시선이 어디로 향하는지. 

무엇을 보고 무엇을 생각하는지 미치도록 궁금했다.

피치는 다시금 고개를 돌려 막스를 쳐다봤다.

둘의 시선이 마주치자, 막스가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넌 역시 밤에 봐야 하는구나.”

“...... 디질래? 그거 무슨 의미야?”

“아니, 분위기가····.”

“낮에는 더럽게 못생겼다는 거 아냐!?”

피치는 막스를 발로 밀어낸 뒤 벌떡 일어나 자신의 자리로 이동했다.

로어는 주먹으로 입을 막은 채 끙끙거리고, 

히콕과 코디, 조 짐 주니어는 한심한 눈으로 막스를 쳐다봤다.

그나마 콜린의 반응이 괜찮았다. 코를 골고 자고 있었으니까.

다음 날.

막스는 히콕과 코디, 로어를 로렌스로 보냈다.

존 기어리와 홀리데이에게 줄 서신과 함께.

“쟤들은 어딜 가는 거야?”

조지 심슨이 물었다. 

“금광을 발견했거든요. 소식을 알려야죠.”

“!”

심슨과 동료들의 입이 쩍 벌어졌다. 

“네 분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아라파호족 추장을 만나게 해주십시오.”

“......”

“대가로 채굴에 참여시켜드리겠습니다.”

조지 심슨과 동료들은 눈만 껌뻑거릴 뿐 말을 잇지 못했다. 금광을 발견했다는 것부터 일단 믿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막스가 주먹만 한 금을 내밀자 의심은 눈 녹듯이 사라졌다.

“아수라장이 펼쳐지기 전에 정리부터 하고 가야죠. 가능한 한 서둘러주셨으면 합니다.”

조지 심슨은 동료들과 회의한 끝에 고개를 끄덕였다.

“대화가 쉽진 않을 걸세. 일이 틀어질 경우를 대비해 키트 카슨이 필요하네. 그 친구도 채굴에 포함한다면 이 일에 나서줄 거네.”

“바라던 바입니다.”

“그것과는 별개로, 만남은 주선해 보겠네.”

오토비와 바클레이는 키트 카슨을 데리러 가고, 조지 심슨과 폴 리프는 아라파호족 인디언 추장을 만나러 갔다.

“나도 로렌스로 갈걸.”

“보자마자 머리가죽부터 벗기면 진짜, 어휴.”

피치와 콜린이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보름 뒤.

오두막 주위로 수십의 인디언들이 몰려들었다.

얼굴에 짙은 녹색을 칠하고 이마와 볼에 얇은 노란색 선을 그린 아라파호족의 전사들. 그들의 위압감에 콜린과 피치, 조 짐 주니어는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수틀리면 빠져나갈 구멍도 없어 보였다.

“제가 찾아갔어야 했는데, 번거롭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막스 조입니다.”

막스는 담담하게 앞으로 나서며 말을 건넸다.

통역은 델라웨어 인디언 폴 리프가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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