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파호족은 금광의 발견이 가져올 파장을 이미 알고 있는 듯했다.
동양인에 대한 호기심, 원망과 불신, 경계의 복잡한 눈빛이 담겨 있었다.
막스가 인디언들을 보며 다소 뜬금없는 말을 내뱉었다.
“우리가 어떻게 공기를 사고팔 수 있겠습니까. 대지의 따뜻함을 어떻게 사고팔 수 있겠습니까.”
“......?”
폴 리프가 멍한 얼굴로 막스를 쳐다봤다.
‘이 친구, 이거.’
막스가 한 말은 워싱턴에 정착했던 인디언 추장 시애틀이 땅을 팔라고 요구한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의 첫 도입부다.
설마 그 문구가 동양인의 입에서 튀어나올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통역해주세요.”
“아, 알았네.”
막스는 다시 말을 이었고, 이를 폴 리프가 통역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대지의 부분이며 대지는 우리의 일부분입니다.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이 땅은 조상들의 육신과 같은 것이요, 대지가 풍요로울 때 우리의 삶도 풍요로운 법이죠.”
폴 리프가 통역을 이어갈 때마다 인디언들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해갔다.
“이 땅은 조상이 물려준 게 아닌, 후손들에게 빌려 쓰는 땅입니다. 고로 저는 여러분들과 공생의 관계를 꿈꿔보고자 합니다. 후손들에게 제대로 돌려주기 위해.”
“......”
인디언들의 표정이 묻고 있다.
대체 넌 어디서 온 놈이냐고.
< 역시 밤에 봐야 하는구나 > 끝
< 어서들 오시게! >
시애틀 추장의 감동적인 편지에도 불구하고, 인디언 부족은 고향인 워싱턴을 떠나게 된다.
그들이 남긴 건 시애틀이라는 도시의 이름.
편지에 감동한 대통령이 붙여준 이름이었다.
그리고 그 대통령은 재선에서 떨어진 프랭클린 피어스였다.
“말로만 떠드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는데···.”
폴 리프는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
몇 마디 문장으로 인디언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게 가능했다면 세상에 싸울 일이 어디 있을까.
막스는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신뢰를 말로 쌓을 순 없죠. 단지 시애틀 추장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는 걸 말한 것뿐입니다. 내 조상들이 그러했고, 내가 태어난 나라 역시 수많은 침략에 맞서 싸운 곳이었으니까요.”
폴 리프의 통역에 추장 ‘작은 갈까마귀’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막스를 쳐다봤다.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부족원들을 향해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듯했다.
일부는 피식거리고 일부는 고개를 끄덕였다.
피치는 곁눈질하며 콜린에게 속삭였다.
- 어떤 것 같아요?
- 글쎄. 일단 우리 머리 가죽에는 관심이 없어 보이는데?
- 다행이네요. 그나저나, 막스를 보면 오늘만 살다 갈 것처럼 보이지 않아요? 어후, 불안해 죽겠어요.
- 글쎄. 난 다르게 보이는데.
- 어떻게요?
- 그냥, 말 잘하는 미친··· 놈?
추장이 폴 리프에게 짧게 말하고, 곧바로 통역이 이루어졌다.
“공존이라는 게 무엇인지 듣고 싶다는군.”
들을 준비가 되었다는 건 긍정적인 신호였다.
막스는 담담하게 추장을 쳐다보며 말했다.
“금광을 지키기 위한 인력이 부족합니다. 회사에서 고용하고 싶은데 어떻습니까.”
막스가 콜로라도 금광을 떠올렸을 때, 가장 고심했던 부분이 바로 경비 인력이었다.
광범위한 금광을 무법자와 마구잡이로 난입한 광부들을 막기 위해선 철통 경비가 필수였다.
그리고 이를 인디언과 함께 지킬 셈이었다.
예상치 못한 막스의 제안에 조지 심슨과 폴 리프의 눈이 커졌다.
“진심이야? 아니지, 그게 가능은 한 일이야?”
“물론입니다.”
폴 리프는 시선은 그대로 둔 채 고개만 슬쩍 돌려 추장에게 막스의 말을 전했다.
곧이어 인디언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어이없거나, 혹은 비웃거나.
막스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1인당 월 40달러. 돈은 필요 없을 테니, 그에 상응하는 물품으로 지급하겠습니다.”
“...... 그걸 어떻게 믿냐는데?”
“선지급 조건입니다. 마음에 안 들면 언제라도 그만두면 됩니다.”
추장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분명 백인들과 마찰이 생길 거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부족에게 돌아갈 거래. 자신들을 보호해주지도 못할 거고, 이용당하는 게 빤한 위험한 일을 왜 하냐는데?”
추장이 막스를 노려본다. 일말의 기대감이 사라진, 실망과 분노가 담긴 표정이었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오히려 위험한 겁니다. 밀려드는 백인들은 당신들을 방해꾼으로 여겨 쫓아내려 할 거고, 저항하면 군대를 동원하겠죠. 그다음은 말 안 해도 알 겁니다. 그런데 만약 백인들이 만든 회사에서 고용했다면, 상황이 다르지 않겠습니까.”
물론 문제가 없을 순 없다.
곳곳에 마찰이 일어나고 싸움이 벌어질 것이며 누군가는 죽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금광에서 벌어지는 흔한 사건 중 하나. 인디언을 훼방꾼으로 여기며 쫓아내는 것과는 결이 다른 일이었다.
“회사에서 고용된다면, 이곳에 있을 명분을 갖게 되는 겁니다.”
막스의 뜻을 이해했는지, 추장은 옆에 있는 자들과 의견을 나누었다. 말이 오고 가는 걸 보면 생각할 여지가 있다는 것으로 보였다.
한참의 토론 끝에 폴 리프가 통역을 이어갔다.
“주에서 허락할지 의문이래. 네가 그걸 할 수 있을지, 회사의 능력이 되는지도 의문이고.”
막스는 기다렸다는 듯 손을 뻗었다.
피치가 서둘러 가방에서 서류를 꺼내 손 위에 올려놓았다.
“이걸 보시면 알 겁니다.”
조지 심슨과 폴 리프가 서류를 훑어보았다.
믿어지지 않는 듯, 재차 확인해서 읽었다.
[광산 탐사 및 채굴권을 획득한 ‘미네랄 익스플로러’는 캔자스 준주의 이익을 위해 해당 광산의 경비 및 보호를 위한 일체의 법적 권한을 갖는다.
인디언 경비 고용을 인정 및 권한을 보장하며, 유사시 주 방위군을 동원해 광산을 지키는 데 캔자스 준주는 적극적으로 협조한다.
기간은 광산 채굴이 끝나는 시점으로 하며, 본 협약은 캔자스가 주로 승격되어도 유효하다.
해당 지역이 분리 독립될 시 일방적 수정은 불가하며, 피치 못 할 사정으로 본 협약의 수정을 원할 시엔 반드시 캔자스와 조율을 거쳐 협의를 수정해야 한다.
서명 캔자스 준주 주지사 존 화이트 기어리.]
처음 막스가 만든 계약서를 보았을 때, 존 기어리는 꽤 당황해했다.
인디언을 끼워 넣는 이유를 이해하기 힘들다며 부정적이었다.
그렇다고 그를 설득하기 위해 인디언의 아픈 역사를 들먹여봐야 씨알도 안 먹힌다.
인디언과의 공존은 마음속에 숨기고, 현실적인 말로 존 기어리의 사인을 끌어냈다.
- 금 보기를 돌같이 보는 인디언들입니다. 광산 주변에 그런 인디언들이 널렸는데, 굳이 멀리서 경비를 찾을 이유가 있습니까.
게다가 인디언들 경비들은 막스의 직원들인 백인들과 조를 이루게 될 것이다.
인디언을 향한 공격은 곧 백인을 향한 공격인 셈이다.
- 물론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인디언이 나서면 골치 아파질 겁니다. 백인들이 공격하면 백인들로 처리하면 될 일이죠. 회사에 고용된 경비를 공격하면 어떻게 되는지 그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하면 됩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러운 풍경이 되겠죠.
존 기어리는 고심 끝에 계약서에 서명했다.
훗날 후임으로 올 주지사들이 수정과 번복을 못하도록 하고, 이 계약서 외에도 몇 건의 이중 장치를 마련했다.
그렇다 한들, 시대를 감안하면 손바닥 뒤집듯 바뀌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 그럴 땐 소송으로 시간을 버텨야죠. 조금이라도 금은 더 캐지 않겠습니까.
- ......
- 그러니 오래오래 주지사 자리에 있으세요. 제가 날마다 기도하고 있으니까.
- 종교 없다며.
- 주지사님 만난 뒤로 생겼습니다.
서류를 본 조지 심슨은 믿기 힘들다며 물었다.
“이거···. 진짜 주지사 사인이 맞는 거야?”
“어차피 들킬 거, 거짓말을 왜 하겠습니까.”
보여줘도 읽지 못하겠지만, 폴 리프는 서류를 추장에게 들이밀며 내용을 설명했다.
막스는 인디언들의 표정 변화를 지켜봤다.
점점 커지는 눈, 흔들리는 눈동자.
이내 웅성거림도 커져간다.
잠시 후.
추장이 막스를 응시하며 물었다.
폴 리프가 통역하길.
“이렇게까지 하는 건, 자네 말대로 공존을 위한 거냐고 묻는데?”
추장과 인디언들의 시선이 막스의 얼굴에 집중되었다.
여전히 미래는 불안하고, 알 수 없다.
그러나 당장은 막스의 제안을 호의로 여기는 듯했다.
막스는 시선을 마주하며 입을 열었다.
“이 정도밖에 생각하지 못한 게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제가 말한 공존. 지금은 미약하지만, 분명 길이 보일 겁니다.”
폴 리프가 통역하자, 추장 작은 갈까마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상의 없이 폴 리프에게 말을 건넸다.
“제, 제안을 받아들이겠다는데?”
아라파호족이 돌아가자 조지 심슨이 물었다.
“다른 부족들은 어떻게 할 셈이야?”
“지켜보면 답이 나오겠죠. 선택지가 없는 상황에서 제가 한 가지를 만들어 준 거니까요. 아라파호족을 통해 다른 부족 역시 동참하길 바라고 있습니다.”
“자넬 보면 진심인 것 같은데···. 인디언들도 여러 부류가 있네. 아라파호족은 그중에서도 온순한 편이거든.”
막스는 내심 피식하며 말을 이었다.
“백인들도 여러 부류가 있습니다. 동양인들도 마찬가지고요. 누구든 뜻이 맞으면 함께 가고 아니면 등을 지는 일도 생기겠죠.”
“..... 자네가 너무 희망적으로만 보는 것 같아서 한 말이네.”
“희망이 있으니까 그나마 행동하는 겁니다.”
막스의 말에 조지 심슨은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하긴 내가 여길 찾아온 것도 희망 때문이지.’
금광을 발견해 일확천금을 얻겠다는 희망.
조지 심슨의 발걸음을 체리 크릭으로 향하게 한 것도, 바로 그 희망 때문이었다.
“그나저나, 요샌 경제 사정이 좋아서 캘리포니아처럼 사람들이 몰려들지 모르겠구먼. 그땐 진짜 엄청 났거든.”
“음? 그러고 보니 오늘이 며칠이지?”
“9월 1일.”
막스의 말에 피치가 대답했다.
‘슬슬 좋았던 경제가 박살 날 때가 됐구나.’
*
캘리포니아 골드러시로 세계 최대의 금 생산국이 된 미국.
금 공급량의 증가로 화폐 발행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시장에 풀린 현금 유동성은 철도 주식의 주가 상승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캘리포니아의 금광 열기가 식어가고, 더 이상 금의 생산량이 늘지 않을 즈음.
크림반도에서 일어난 크림 전쟁이 끝나면서 유럽 내에 농산물 수출이 재개되고, 이는 상대적으로 미국의 농산물 수요 감소를 불러왔다.
1857년 8월.
오하이오 생명보험&신탁회사 뉴욕 지부가 파산했다. 총부채 규모는 700만 달러.
은행들이 줄줄이 파산하자 투자자들은 자신들이 보유한 철도 회사 주식의 재정 상태를 의심했다.
그리고 이때, 커다란 충격파를 던질 사건이 일어나는데.
1857년 9월.
노스캐롤라이나 앞바다에서 허리케인에 의해 센트럴 아메리카호가 침몰했다.
캘리포니아에서 출발한 이 배에는 약 3만 파운드(14톤)의 금과 승객 477명이 타고 있었다.
골드러시로 한몫 잡은 투자자와 광부들이 동부로 금의환향하는 길이었다.
과거에는 늦게 퍼져나갔던 소식이, 사무엘 모스의 전신 발명 이후 빠른 속도로 미 전역에 퍼져나갔다. 사람들은 패닉 상태에 빠지고, 이는 곧 미국의 경제 대공황을 불러왔다.
레콤프턴 주지사 집무실.
“허허. 내가 종이 쪼가리에 투자했구나.”
철도 투자자였던 존 기어리는 창밖을 보며 허허로운 웃음을 터트렸다.
책상에는 구겨진 신문이 놓여 있다.
내용도 읽기 힘들지만, 헤드라인에 침몰, 파산이라는 글자만큼은 눈에 띄었다.
창문을 열어 밖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무더운 여름이 가고, 시원한 가을바람이 느껴졌다.
집무실은 3층.
아래를 내려다보니 문득 뛰어내리고 싶어진다.
그런데 이때.
‘저자들은?’
막스와 함께 광산 탐사를 떠났던···.
눈시울을 붉힌 존 기어리가 코디, 히콕, 로어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어서들 오시게에에에!”
같은 상황은 로렌스에서도 벌어졌다.
홀리데이가 퀭한 눈으로 벽을 쳐다보고 있다.
철도 기획안으로 투자금을 모으던 중, 투자자들이 모조리 회수하는 바람에 사업이 무산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침묵의 한 시간.
홀리데이의 입에서 실소가 흘러 나왔다.
‘그나마 막스가 말려서 다행이지. 철도 노선 확보한답시고 애치슨 마을에 손댔으면 홀라당 말아먹을 뻔했네.’
이런 상황이 올 걸 예측이라도 한 걸까?
자신과 포메로이를 살린 막스는 로렌스 시장 밥콕도 살렸다.
그는 막스 덕분에 마을에 은행을 설립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 마을에 막스 동상이라도 세워야지 않겠습니까. 껄껄.
하지만 밥콕의 웃음도 잠시.
개인 파산 위기는 피했으나, 로렌스 마을에 드리운 경기 침체는 시장의 주름살을 늘려간다.
일거리가 줄어들고 소비가 위축되었다.
다가올 겨울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마을 전체, 아니 캔자스와 미 전역에 짙은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그리고 이때.
석양을 등지고 나타난 삼인방이 있었으니.
존 기어리를 만나고 온 히콕과 로어, 코디였다.
“금광을 발견했다고!?”
거무죽죽했던 홀리데이의 얼굴이 흥분으로 푸들거리고, 히콕이 건넨 편지를 읽은 뒤엔 숫제 울부짖기까지 했다.
“막스으으!”
금광 기사가 터진 건 그로부터 한 달 뒤다.
[캔자스 서부, 파이크스 피크에서 금광 발견!]
캘리포니아 골드러시의 시대가 저물어갈 즈음 터진 기사로 미 전역이 들끓었다.
경제 대공황으로 허덕이던 사람들이 또다시 ‘Go! Go! West!’를 외치며 캔자스 서부로 향했다.
특이한 점은 동부에서 몰려온 사람들이 일차로 모인 곳은 로렌스라는 거.
채굴권을 획득한 ‘미네랄 익스플로러’에서 개인 채굴권 라이센스를 발급해준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금광은 시작부터 끝까지 직선거리로 250km에 달했고, 가장 많이 매장된 곳은 로어가 처음 발견한 곳이다.
막스가 취한 방식은 세가지.
일부는 독점을 일부는 개인에게 채굴권 라이센스를 팔고 나머지는 민간인에게 전면 개방하는 것이었다.
물론 반대하는 주주들도 있었다.
막스는 몇 가지 이유를 들어 그들의 입을 다물게 했다.
- 첫째, 애초에 광산으로 몰려드는 사람들을 막을 수 없다는 겁니다.
- 둘째, 병력에 공백이 생긴 로렌스에서 채굴권 라이센스를 발급하면 몰려든 사람들 덕분에 보더 러피안이 공격하지 못한다는 거죠.
막스 기지는 텅 비어있고, 제이호커스들 다수가 금광으로 향하게 될 터. 이는 병력의 공백으로 이어져, 로렌스 마을의 방어를 취약하게 만든다.
- 셋째, 몰려든 사람들은 로렌스에서 돈을 쓰게 될 겁니다. 그러니 라이센스는 최소 사흘의 여유를 두고 발급해주세요.
막스의 말대로 로렌스의 호텔과 상점들은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경제 대공황을 피해갔을 뿐만 아니라, 로렌스 마을을 도시로 탈바꿈하는 계기가 된다.
물론 모든 상황이 좋은 것만은 아니다.
캔자스 파이크스 피크 골드러시를 향한 어둠의 그림자.
무법자들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