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9화 (89/360)

“이름은?”

“차홍.”

“나는 광산의 보안관 콜린이다. 부상자는?”

차홍이 뒤를 돌아보며 중국말로 물었다.

다들 고갤 젓자 차홍이 다시금 입을 열었다.

“시신 두 구외에 부상자는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 리더가 누구야?”

“아, 리더라면.”

차홍의 시선이 뒤에 있는 남자로 향했다.

눈매가 날카로운 남자는, 영어를 못해 뒤로 빠져있는 듯했다.

“저자 이름은?”

“후팡이요.”

자신의 이름이 거론되자, 후팡의 눈매가 더욱 가늘어졌다.

“겨울이라 거처를 마련하기 쉽지 않을 테니, 안내하마.”

차홍이 후팡에게 콜린의 말을 전했다. 

잠시 고개를 갸웃한 후팡은 이내 일행들에게 짤막하게 지시를 내리고, 사람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마차에 올라탔다.

준비를 끝낼 때까지 지켜보던 콜린의 눈에 몸이 안 좋아 보이는 여인이 눈에 띄었다.

창백하고 입술을 파르르 떠는 게 당장이라도 숨이 끊어질 것처럼 보였다.

“많이 아픈 거 같은데?”

“몸을 좀 녹이면 괜찮아질 겁니다.”

“뭐, 여기서 얼마 안 머니까 잘 버티라고 해.”

콜린이 앞장서고 마차 행렬이 따랐다. 

대원들은 좌우를 호위하며 중국인들을 준투로 이끌었다.

*

깡! 깡!

드르륵, 드르륵.

“기둥 똑바로 잡아! 각도가 안 맞잖아!”

“바닥을 이상하게 다져놔서 그래! 거기 좀 더 파봐!”

마차 행렬은 공사 현장 속을 뚫고 준투의 심장부로 향했다. 짐칸에서 얼굴을 쓱 내밀어 풍경을 보던 여인들은 백인들과 눈을 마주치자 황급히 고개를 집어넣었다.

“시발, 저것들 동양인이잖아?”

“뭐야, 쿨리 새끼들이 벌써 몰려왔어?”

캘리포니아로 모여든 중국인들이 3만 명.

백인들이 경계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저것들 때문에 우리 몫이 또 줄겠네.”

“어차피 겨울 끝나면 어중이떠중이 다 모일 텐데 뭘.”

그 어중이떠중이 중 본인들도 포함되어있다는 건 자각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금광 대신 맨땅에 삽질하면서도 자신들은 다르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콜린은 중국인들을 커다란 천막으로 안내했다.

“공짜는 아니니까 너무 좋아하진 마.”

“어, 얼마를 내야 합니까? 우리도 천막을 준비해 왔습니다만.”

“천막 칠 장소가 있을 것 같아? 그리고 여기에 있어야 그나마 안전할 거야.”

“너무 중심이라, 눈에 띌 것 같은데요.”

차홍의 말마따나 공사하던 백인들의 이목이 중국인들에게 쏠렸다. 

눈빛만으로도 공격당하는 느낌이랄까.

콜린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물었다.

“미국엔 언제 왔어?”

“6년 됐습니다.”

“근데 아직도 감이 안 와? 보이는 데가 안전한 거야. 배려해주는 걸 고마워하라고.”

‘왜 이래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차홍은 그제야 모자를 벗어 허리를 숙였다.

이마가 훤히 드러나고 머리는 길게 뒤로 땋아 묶은 중국인 특유의 모습이었다.

“천막이 부족하면 옆에 치도록 해. 참고로 이 부근은 전부 광산회사 소유야. 특별한 일 있으면 보안관 사무실로 찾아오고.”

“......”

대원 두 명에게 지켜보라는 지시를 내린 콜린은 사무실로 돌아갔다.

차홍에게서 상황을 들은 후팡은 일행들을 향해 말했다.

“大家都把行李從馬車上卸下來。 暫時會住在這頂帳篷裏。(다들, 마차에서 짐 내려. 당분간 이 천막에서 생활하게 될 거야.)”

“你能相信他們嗎(저자들을 믿을 수 있겠어)?”

“不相信的話怎麼辦。(못 믿으면 어떻게 할 건데)?我到現在還放過你,現在只要你吐槽我的話,我就不客氣了。(지금까지는 봐줬지만, 이제부터 내 말에 토 달면 가만 안 둬.)”

후팡의 말에 움찔한 일행들은 시선을 피하며 마차로 향했다. 

짐을 내리고 천막으로 옮기는 동안, 후팡은 20대 후반의 여자를 불러냈다.

“楊燕你管好你自己吧,死了你也會陪你一起過,我知道。(너는 양옌이나 신경 써. 죽게 되면 너도 같이 보내줄 테니까, 그리 알아.)”

여인은 짜증 난 얼굴을 하고는 이내 천막으로 사라졌다.

뒷모습을 노려본 후팡은 코웃음 치며 고개를 서쪽으로 향했다.

길게 이어진 산등선과 우뚝 솟은 봉우리.

파이크스 피크 광산에 도착한 건 꼬박 한 달하고도 이십일 만이다. 

떠날 땐 50여 명이었지만, 오는 도중 다섯이 죽고 그중엔 여자 한 명도 있었다.

‘아깝긴 해도 이 정도면 선방한 거다.’

쓴웃음을 지은 후팡은 이내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이곳 광산과 땅을 지배하는 회사와 어떻게 연줄을 댈 것인가.

‘천막과 거처까지 내준 걸 보면 뭔가 원하는 게 있다는 얘긴데.’

캘리포니아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 

당장은 이들이 중국인에게 호의적인 이유를 파악하기 힘들었다.

콜로라도 준투에 머문 지 사흘째 되는 날.

누군가 중국인들이 머문 천막을 찾아왔다.

입구에 있던 인상 더러운 남자들은 입을 쩍 벌린 채 눈을 부릅떴다.

“有什麼好驚訝的(뭘 그렇게 놀라). 你們是從廣東過來的嗎(너희들 광동에서 넘어왔냐)?”

“你,你是誰(너, 너 누구야?!)”

“我嗎(나)?”

밖의 소리를 들었는지 천막 안에서 후팡과 차홍이 튀어나왔다.

‘우리보다 더 빨리 왔다고!?’

갑자기 나타난 동양인. 

둘의 눈빛이 크게 출렁거렸다.

이때 상대가 한발 다가와 말했다.

“朝鮮的李幕山。(조선의 이막산이다.)”

“朝鮮(조선)??!!”

막스는 경악하는 둘을 보며 짙은 미소를 지었다. 어디서 구한 건지 허름한 옷차림과 때 구정물 잔뜩 낀 얼굴은 허드렛일이나 하는 노예처럼 보이기도 했다.

정신을 차린 차홍은 이내 막산의 팔을 잡아끌며 중국어로 말했다.

“이리 와서 얘기 좀 해.”

“이름이?”

“차홍.”

‘영어를 할 줄 안다는 자군.’

콜린의 말을 떠올린 막스는 차홍의 손에 이끌려 천막 안으로 향했다. 그런데 흥분한 차홍 앞을 한 남자가 가로막으며 말했다.

“넌 네 볼일이나 봐.”

차홍이 시무룩하게 물러나고, 후팡은 막스를 커다란 천막 뒤에 가려진 조금은 작은 천막으로 안내했다.

‘이 자가 리더 후팡이라는 자구나.’

“여기가 조용하니까 들어와.”

천막 안은 사무실처럼 꾸며졌다.

막스의 시선은 빠르게 주변을 훑어갔다.

자리에 앉은 후팡이 중국어로 물었다.

“조선인이 여기엔 어떻게 왔어?”

“콜로라도? 아니면 미국?”

“여기 이름이 콜로라도였군. 아무튼, 둘 다.”

“배 타고 넘어왔고, 말 타고 달려왔다.”

“시발, 그걸 말이라고 해? 하여간 조선 새··· 아무튼, 너 여기서 하는 일이 뭐야?”

후팡은 화를 가라앉히며 물었다.

“광산회사에서 일하고 있지.”

“백인 밑에서 어떻게 일하게 됐어?”

“인연이 조금 있었거든.”

“그럼, 여기 실세가 누군지도 알겠네?”

볼을 긁적거리며 막스가 대답했다.

“사이러스 홀리데이, 그자가 실세야.”

“사이러스라 이거지.”

“보통은 홀리데이라고 불러.”

“시발, 서양 놈들은 이름이 좆나 복잡해. 근본이 없어, 근본이.”

화를 내는 후팡을 막스는 담담하게 쳐다봤다.

굳이 위장까지 하면서 접근하는 데는 몇 가지 목적이 있다. 그중 하나는 콜로라도를 찾아온 중국인들의 인원 구성.

막스가 넌지시 물었다.

“근데 여긴 왜 온 거야? 여자들이 많던데.”

“뭐, 여자들 데려온 거야 빤하지. 그나저나, 홀리데이라는 자, 나이가 많아?”

“올해 서른둘일걸.”

“그 나이에 실세라 이거지. 젊으니까 여자는 좀 밝힐 수도 있겠군. 뭐, 나이 떠나서 백인 놈들은 어린 동양인 보면 사족을 못 쓰긴 하지.”

후팡은 비아냥거리며 이미 홀리데이를 손에 넣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꽤 은밀한 이야기 같지만, 이 시대에 매춘은 광범위하게 벌어지는 일들이다. 딱히 비밀이랄 게 없다고 여겼는지 후팡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말들이 가관이었다.

“너 홀리데이를 여기로 데려올 수 있어?”

“왜?”

“왜긴. 비즈니스 때문이지. 만약 성공하면 너한테도 괜찮은 애 붙여주마.”

“그 비즈니스가 매음굴인 거지? 나도 캘리포니아에서 봤거든.”

막스가 웃으며 말하자 후팡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노력은 해볼게. 종종 만나기도 하니까.”

“흠. 아편은 어때? 여기서 통할 것 같아? 캘리포니아에서 하도 지랄들을 해서 말야.”

“글쎄. 아무도 시도한 적이 없어서 모르겠네.”

‘감히 여기서 매춘에 아편까지 판다 이거지.’

막스의 눈빛이 깊이 가라앉았다.

아무래도 후팡은 중국 조직에서 선발대로 보내진 것 같다. 콜로라도 광산 분위기를 파악하고, 거주할 공간과 인맥을 쌓기 위해.

그런데 캘리포니아에 중국 조직이 어디 한 둘인가? 

막스는 복잡한 차이나타운까지 관심을 두진 않았었다. 아는 거라곤 단편적인 정보와 이막산의 지식이 보태진 정도였다.

골드러시로 중국인들의 인구가 늘어나면서 샌프란시스코엔 자연히 차이나타운이 형성되고.

이때 중국 특유의 회관(會館)을 중심으로 광둥성에서 온 사업가들이 최초로 콩 차우(Kong Chow)라는 회사를 설립한다.

후에 회사는 두 개로 쪼개지고 추가로 회사들이 생겨난다. 이렇게 생긴 여섯 개의 회사가 현재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을 이끄는 통칭 ‘중국 통합 자선협회’라 불리는 조직이다.

표면상 중국인의 인권과 폭력, 차별을 막고 권리를 보호받기 위해 만들어진 단체지만, 분명 흑사회에 연관된 어두운 면도 있는 조직일 것이다.

막스는 이자를 보낸 게 그중 하나인지, 아니면 전혀 다른 조직인지 알아내려 했다.

“혹시 사람 안 필요하냐? 해가 지면 공사를 못 하거든.”

“그래서 밤일이 필요하다?”

“원래 일은 밤에 하는 거잖아?”

막스의 말에 후팡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잘 아는구나. 그런데 지금은 할 일이 많지 않은데···.”

“생각보다 내가 이곳을 잘 알아. 어차피 선발대로 온 거면 정보가 필요할 텐데.”

후팡은 표정을 굳히며 막스를 응시했다.

얼굴을 가까이 가져와서는 낮은 톤으로 말을 내뱉었다.

“백인들 틈에 있으니까 조선 놈이 분수를 모르는구나. 말투, 눈빛, 다 거슬려. 감히 나와 거래를 해?”

“그래서 그냥 가라고?”

잠시간의 침묵이 이어졌다. 머리를 굴린 후팡의 입에서 실소가 새어 나왔다.

“돈 대신 아편으로 주마. 일주일에 한 번 여자도 제공해주지. 대신 너는 이곳 정보를 가져와야 해.”

“파격적이구만. 이참에 광산 때려칠까.”

막스는 너스레를 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내일 밤부터 일하도록 하지.”

천막을 나온 막스는 쭈뼛거리며 서 있는 차홍과 눈이 마주쳤다. 그는 궁금한 게 많아 보이지만 입만 오물거릴 뿐, 말을 건네지 않았다.

막스가 먼저 다가가 아는 체를 했다.

“너 영어 잘한다며?”

“어? 잘하는 건 아니고. 그냥 간단한 정도만.”

“앞으로 같이 일하게 됐으니까, 잘 부탁해.”

“일?”

밤에만 한다는 소리에 차홍은 이해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후팡 보다는 차홍 이놈한테 정보를 뜯어내야겠구나.’

막스가 생각하는 때, 천막 안에서 곧 죽을 것 같은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 몸이 아픈 여자가 있던데, 치료나 제대로 받을지 모르겠네.

콜린의 말을 떠올린 막스는 차홍 뒤에 서 있는 후팡에게 물었다.

“아픈 사람이 있지?”

“계집애가 몸이 좀 약해. 흠. 마침 잘됐다. 혹시 아는 의사 있어?”

막스는 커다란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희미한 등잔불 주변으로 이십여 명의 여인들이 웅크린 채 앉아 있었다. 막스를 힐끔 쳐다보더니 꼬질꼬질한 몰골 탓인지 더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병원비 비싸면 그냥 데려와. 증상만 확인하면 되니까.”

후팡의 지시로 한 남자가 누워있던 양옌이라는 여인을 번쩍 안아 막스에게 넘겨줬다.

의식이 없는지, 몸이 축 늘어져 있었다.

원체 마른 몸이라 등에 업어도 무게가 가볍게 느껴졌다.

“이 여잔 내게 맡겨. 그럼 내일 보자고.”

천막을 벗어나 요새로 향하는 길.

여자를 업고 가기엔 거리가 제법 멀었다.

그런데 마침 길을 가던 중 네이선 로어과 마주쳤다.

“어.”

눈을 크게 뜬 로어는 입을 달싹거리더니, 이내 무시하며 옆을 스쳐 지나갔다.

발걸음을 멈춘 막스가 고개를 곁눈질하며 속삭였다.

- 그냥 가냐?

- 아는 척하면 죽인다면서요.

- 그럼 내가 이렇게 어? 여자를 업고 요새까지 가야겠어?

- ...... 여자요?

- 핀트는 여자가 아니잖아?

결국 네이선 로어는 막스 대신 양옌을 업고 요새로 향했다.

“근데 여자들은 원래 이렇게 가벼워요?”

“설마 처음이냐?”

“......”

“진짜네. 심각하다, 로어. 나보다 더해.”

“비슷한 것 같은데요. 솔직히 피치 아니면 뭐, 없잖아요?”

“...... 얼른 가자.”

요새엔 두 명의 의사가 있다. 아직 병원이 지어지지 않아 임시로 머무는 자들로 라이언 홀드를 수술했던 닥트 브라이스와 듀들리였다.

둘에게 양옌을 맡기고 숙소 겸 사무실로 돌아온 막스. 책상에 앉아서는 노트를 펼쳐 단어들을 끄적거렸다.

중국인, 차이나타운, 철도 노동자. 

중국인 이민 배제법, 식스 컴파니. 

그리고.

‘삼합회.’

일명 트라이어드(Triad)라 불리는 중국 이민 사회에 빠지지 않는 조직.

이 시기의 캘리포니아는 트라이어드라기보다는 '통(Tong)'이라는 집회장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지만 구성원들의 상당수가 삼합회 출신이었다. 

식스 컴파니와 통, 그리고 트라이어드를 구분하기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그 때문에 막스는 결국 그들이 한 몸이라 여기고 있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 보다 확실한 정보가 필요했다.

콜로라도로 몰려올 중국인들은 캘리포니아에서 하던 짓거리를 하려 한다.

차이나타운을 만들고 매음굴과 아편으로 도시를 오염시킬 것이다.

'더러운 싹은 미리미리 제거해야지.’

< 조선인 이막산이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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