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2화 (92/360)

산에는 곧은 나무가 있지만, 세상에는 곧은 사람이 없다(山中有直树,世上无直人).

사기꾼이 넘쳐나는 세상엔 속는 놈이 병신이다. 후팡은 중국의 오래된 속담을 떠올리며 자신의 현명함을 뿌듯해했다.

후팡은 광부들만 추려 그들의 거처를 도시 중심부에서 광산 근처인 서쪽으로 옮겼다. 

도심 중심부의 천막에는 여인들과 그들을 감시하는 최소 인원만 상주하게 되었다.

자연스레 두 그룹으로 쪼개진 것이다.

처음 광산에 들어간 후팡은 인디언들과 백인들로 이루어진 경비들을 볼 수 있었다.

‘웬만한 갱단들은 습격하기도 힘들겠네.’

삼엄한 경비에 혀를 내두른 후팡은 수하들을 이끌고 갱도에 들어가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하루의 일과가 끝났을 땐, 

라이언 홀드가 중국인들 앞에 등장했다.

“오늘 분량의 절반을 배분한다. 대신 이 일은 철저히 비밀에 부친다. 갱도도 마찬가지야.”

하루 동안 캔 금의 절반은 대략 70g.

금액으로 환산하면 40달러에 달했다.

실제로 금을 받은 후팡은 가슴이 터질 것 같은 짜릿함을 느꼈다.

‘이게 웬 횡재냐!’

천막으로 돌아온 후팡은 금을 천막 안, 땅을 파서 묻어두었다. 

그렇게 사흘이 지났을 즘.

막스는 히콕과 코디를 불러냈다.

“멕시코인들이 몰려있는 곳에 가서 은밀하게 소문을 퍼트려. 중국인들이 몰래 금을 캐고, 그걸 천막에 묻어놨다고.”

“오호, 히스패닉계 갱단을 골라내려고?”

막스의 입가에 사악한 미소가 번져갔다.

“둘 다. 한 번에 다 처리하는 거지.”

< 부끄러운 건 아는구나 > 끝

< 그래서 그냥 갱단이라는 거야 >

광산 회사가 직접 중국인을 죽이면 몇 가지 문제점이 발생한다.

첫째로는 이미지 타격이 불가피하고 이를 빌미로 회사의 광산, 도시 독점을 비난받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자칫 정치권과 대통령의 개입을 불러올 수도 있었다.

둘째로는 캘리포니아에서 몰려올 중국인들의 대응. 회사를 적으로 간주하고 공격을 가할 수도 있다.

마지막 셋째로는 문제점이라기 보단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광산에 고용된 경비들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어찌됐든, 막스의 궁극적인 목적은 미래에 걸림돌이 될 조직을 제거하는 것. 완벽하게 없애는 건 불가능하지만, 자신들의 울타리인 차이나타운 설립을 원천 차단하기 위해선 구심점을 무너뜨릴 필요가 있었다.

방법은 병법 삼십육계 중 제3계, 차도살인.

흑막은 절대 밝혀지지 않는 게 핵심이다.

막스는 이를 위해 멕시코계 갱단을 움직이려 했다.

콜로라도 준투 도시의 남쪽. 

보안관 배지를 단 히콕은 코디를 대동한 채 멕시코인들이 몰려있는 도시 남쪽을 어슬렁거렸다.

그리고는 은근 슬쩍 소문을 흘렸다.

“이거 진짜 비밀인데 코디 너니까 얘기해 주는 거다···. 글쎄 중국인이···.”

그날 밤.

한 캠프의 천막에도 이 소문이 전해졌다.

여러 명이 동시에 뿜어대는 연기 속.

포커를 즐기던 20대 초반의 남자가 카드에서 시선을 떼며 물었다.

“쿨리 새끼들이 금을 캔다고?”

콧수염을 기른 히스패닉 남자. 그는 ‘아이오스 마니라스’의 두목 치노 발레라스였다.

소문을 전한 남자가 말을 이었다.

“광산 회사에서 미리 파놓은 갱도가 있는데, 거기에 중국인들이 일한다고 하더라고. 중요한 건, 놈들이 대가로 금을 받는다는 거야.”

“금으로?”

“어. 그걸 천막에 숨겨놨다는데. 천막이 수십 개도 아니고 고작해야 한두 개밖에 더 되겠어?”

“뭐야, 그냥 가서 털면 되는 거네?”

“다른 놈들이 선수 치기 전에 가자!”

남자의 말에 천막 안에 갱단 일원들이 흥분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때 두목 발레라스가 코웃음을 쳤다.

“역시 내 예상이 맞았군.”

“예상?”

손에 든 카드를 만지작거리며 발레라스가 말을 이었다.

“우리도 못 들어가는 도시 중심부에 쿨리 새끼들이 천막을 깔았어. 그런데 이제는 회사 갱도에서 일까지 해? 이게 뭐겠냐.”

플로레스는 장내의 시선들을 훑어봤다.

“파이브 호아킨스. 그 무리에타를 죽인 동양인 놈은 줄곧 캔자스에 처박혀 있었다. 그리고 지금 광산과 도시 역시 캔자스에서 만들어진 회사가 독점하고 있고. 이 말은, 그 동양인 새끼가 광산 회사에 속해서 동족의 뒤를 봐주고 있다는 얘기다.”

막스에게 죽은 호아킨 무리에타.

의외로 멕시코에선 갱단이 아닌 의적으로 칭송받는 자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은 멕시코 전쟁을 일으켜 땅을 빼앗은 적국. 그런 미국에서 깽판 치는 무리에타를 멕시코인들은 열혈 투사라 불렀다.

“하여간, 무리에타를 죽인 놈도 분명 놈들 중에 섞여 있을 거다.”

“그럼 좀 위험한 거 아닌가···.”

발레라스가 방금 말한 남자를 노려봤다.

“방금 뭐라고 했냐.”

“아, 아니. 내 말은···.”

총솜씨가 뛰어난 무리에타. 그를 죽일 정도면 상대는 더 뛰어나단 소리 아닌가.

실제로 멕시코 갱단 사이에선 동양인의 소문이 그런 식으로 퍼져있었다.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다. 이번 기회에 그걸 확인시켜주지.”

발레라스는 손에 쥔 카드를 움켜쥐었다.

구겨진 카드를 탁자에 버리자, 맞은 편에 있던 남자는 패를 확인하고는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발레라스는 판을 엎으며 물었다.

“쿨리 새끼들이 몇 명이지?”

“여자들이 대략 20, 남자가 25명 정도 되는 것 같은데.”

‘쪽수가 부족해.’

아이오스 마니라스 갱단은 고작해야 일곱.

턱을 매만지던 발레라스는 이윽고 천막 밖으로 나가며 말했다.

“산초에게 가봐야겠다.”

또 다른 무리를 이끄는 산초 리나레스.

갱단은 아니지만 그의 힘이 필요했다.

*

“중국인들을 죽이는데, 내 도움이 필요하다 이거냐?”

산초 리나레스는 피식 웃음을 터트리며 손을 휘이 저었다. 

둘은 같은 동네에서 자란 친구 사이.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운명이 엇갈렸다. 

발레라스는 갱단을 만들었고, 산초는 무리를 이끌고 일자리를 찾아다녔다.

“돌아가라. 그딴 짓 관심 없으니까.”

“금 절반을 주마.”

“호오, 웬일로 인심이 후하냐. 중국 여자들을 납치해다가 충당할 생각인가 보네.”

“당연히 전리품은 챙겨야지.”

산초는 스산한 눈빛으로 발레라스를 쏘아봤다.

“광산에 왔으면 금이나 캐. 쓸데없는 짓거리 말고.”

“어차피 겨울이야. 걸음마를 뗀 뒤론 너처럼 손가락만 빨고 있는 짓은 안 하거든. 게다가 갱단과는 어울리지도 않아.”

발레라스는 산초에게 얼굴을 가까이하며 말했다.

“무리에타를 죽인 놈이 거기에 있어.”

“또 소설 쓴다.”

“진짜라니까. 들어 봐봐.”

발레라스는 나름의 논리정연한 추측을 늘어놓았다. 그런데 기대와 달리 산초의 반응은 냉담했다.

“캘리포니아에서 무리에타가 죽인 중국인들이 몇 명인지 알아? 백인들은 무리에타를 괴롭히고 부인을 강간했으니까 복수라고 치자. 중국인들과는 무슨 원한이 맺혔는데?”

“...... 눈에 거슬렸겠지.”

“그래서 그냥 갱단이라는 거야. 멕시코 민족 영웅은 개뿔.”

“후, 한때나마 친구라서 참는다. 다른 놈들이 그렇게 말했으면 대가리에 구멍 냈을 거야.”

발레라스가 날카롭게 쏘아보자 산초도 밀리지 않았다.

“누가 먼저 대가리 구멍 낼지 해볼래?”

잠시간 살기등등한 시선이 교차하고,

이내 발레라스가 몸을 젖히며 말을 내뱉었다.

“개새끼.”

“니가 개새끼지. 참고로 무리에타를 포함해 파이브 호아킨스 셋을 죽인 동양인이다. 나도 한때나마 친구라서 충고하는데, 굳이 무덤을 찾아서 들어가진 마. 인생 창창하잖냐.”

“겁쟁이 새끼. 어차피 사람은 죽는다. 너처럼 남 밑에서 비루하게 일하다 죽을 바엔 화끈하게 살다 가는 게 나아.”

“그럼 혼자 화끈하게 살던가. 애꿎은 사람들은 왜 죽이냐.”

“그냥 목사나 해라, 새끼야. 괜히 찾아왔네.”

자리에서 일어난 발레라스는 바닥에 침을 크게 뱉고는 등을 돌렸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그 동양인의 목을 들고 오마.”

산초는 팔짱을 끼며 천막을 벗어나는 발레라스의 등을 바라봤다.

‘무리에타를 죽인 동양인이라.’

발레라스의 말을 곱씹던 산초는 이내 생각을 떨쳐냈다.

*

- 이렇게 된 이상 우리끼리 한다.

산초를 끌어들이는 데 실패한 발레라스는 중국 광부들이 작업을 나간 대낮에 일을 벌이기로 했다.

하지만 막스가 누구인가. 그가 원하는 건 양측이 전면전을 벌여 궤멸하는 것이었다.

“짜증 나게 갑자기 뭔 대기를 하라는 거야!”

흥분한 후팡에게 차홍이 상황을 설명했다.

“갱도가 무너질까 봐 보수 작업을 한대. 참, 누군가 우리를 노릴 수도 있으니까 조심하라고 하더라.”

차홍의 말에 후팡은 땅에 묻어둔 금이 신경 쓰였다. 천막이 철로 만들어지지 않은 이상, 자다가 날아오는 총알을 막을 재간이 없었다.

“안 되겠다. 위치도 옮기고 주변에 뭐라도 쌓아야겠어.”

천막을 커다란 바위에 바짝 붙여 옮기고, 돌과 나무를 엮어 담장을 만들었다. 허술하지만 갑자기 날아오는 총알은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때론 야간에도 작업을 불려 나가는 등, 작업 시간이 들쑥날쑥하는 동안 후팡은 천막 방어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발레리스 진영.

“날이 갈수록 천막 주변에 뭐가 자꾸 생기는데요?”

“젠장. 놈들도 위험하다는 걸 아는 거지.”

갱단 일원들을 풀어 정탐한 끝에 발레라스는 계획을 전면 수정했다.

이대로 시간을 끌다 다른 갱단에게 빼앗기느니, 습격을 감행하기로 한 것이다.

다만 수적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 신뢰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다른 멕시코 갱단 하나를 끌어들이게 되었다. 

뒤통수는 간질거리지만, 계획에 실패하는 것보다야 낫지 않은가.

산초가 신중한 건, 무리에타를 죽인 동양인이 있을 거라는 막연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어찌 됐든 두 갱단이 합쳐져 인원은 17명이 되었다. 쪽수가 대등해지자 산초는 기다릴 이유가 없었다.

- 오늘 밤 자정에 습격한다.

밤 하늘에 뜬 둥근 달이 대지를 훤히 비추고.

도시 남쪽에서 출발한 두 갱단은 흩어졌다가 목적지 지점에서 뭉치기로 했다.

그리고 스코프로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자들이 있었으니, 막스의 정보부대원들이다.

- 드디어 움직였다. 도착하려면 2시간 반은 걸릴 거야.

- 나는 대장에게 보고하러 간다. 너는 라이언 홀드, 너는 피치에게 가. 나머진 구간마다 확인해서 전파하고.

- 오케이.

말을 가장 잘 타는 터커가 막스에게로 달려가고, 대원들은 구간마다 추적하며 상황을 전달했다.

요새 안 막스 사무실.

급하게 문을 열고 들어온 터커가 숨을 헐떡거렸다.

“시, 시작됐습니다.”

막스는 리볼버 두 자루와 라이플 한정을 챙겼다. 그리고 금고에서 뭔가를 꺼냈다.

‘드디어 써먹을 때가 왔구만.’

알프레도와 비밀리에 제작한 총알이 오십 발.

센터파이어 방식의 풀메탈자켓으로 완벽한 금속 탄피였다. 이미 몇 번의 테스트는 거쳤지만, 실전에선 처음이다.

두꺼운 코트를 입은 막스는 터커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그럼 가 볼까.”

자정이 될 즈음.

차홍과 몇몇 인원은 갑자기 야간작업이 있다며 차출되어나갔다.

남은 인원은 15명. 교대로 천막 주변에서 불침번을 서고 있었다.

“그놈의 금 때문에 개고생하는구먼.”

“누가 아니래. 그냥 아편하고 계집장사나 하면 좀 좋아.”

“오늘따라 칭리 고년이 생각나네. 내일은 봐서 여자들한테 가 볼까.”

“후팡이 허락하겠냐. 언제 갱도에 들어갈지 모르는데.”

남자가 입맛을 다실 때였다. 

어디선가 횃불들이 천막을 향해 날아왔다.

“스, 습격이다!”

다급한 외침이 밤의 정적을 깨트렸다.

멀리서 지켜보던 막스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저 병신들은 뭔 생각으로 횃불을 던진 거야.”

혹한의 겨울철, 꽝꽝 얼어붙은 천막이다. 

횃불은 천막에 튕겨 주변에 떨어지고 이내 눈에 묻혀 불빛을 잃어버렸다.

오히려 상대측 경계심만 일깨운 셈이니, 멕시코 리더가 누구인지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냥 총이나 쏴, 바보들아.”

막스의 말을 듣기라도 했는지, 곧 총성이 울려 퍼졌다. 

타앙! 타앙!

타앙! 타앙!

흑색화약이 곳곳에서 터지고 천막과 주변 일대에 찰나의 불빛들이 번쩍거렸다.

밤에 울려 퍼진 총성들은 꽤 멀리까지 가지만, 이 일대에 캠프라곤 중국인뿐이다.

구경꾼도 도와줄 사람도 없었다.

“Matadlos a todos(다 죽여버려)!”

“墨西哥的傢伙們(멕시코 새끼들이었어)?”

캘리포니아에서 파이브 호아킨스에게 죽은 중국인들이 28명. 멕시코인이라면 이를 가는 터라 증오심이 더해졌다.

탕! 탕!

그런데 어느 순간. 

격렬하게 들리던 총성이 멈추었다.

재장전 타임.

양 진영에서 철컥철컥 금속 소리가 들리고, 욕설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손과 입을 바쁘게 움직여댔다.

그리고 누군가 웃으며 먼저 총을 쏘기 시작했다. 그렇게 또다시 총격전이 벌어졌다.

이 모습을 막스와 대원들은 몇 군데에 집결한 채 지켜보고 있었고, 일부는 팝콘을 먹으면서 자기들끼리 의견을 나누기도 했다.

- 저러다 날 새겠는데.

- 총알 떨어지면 육탄전도 벌일까?

- 그냥 후퇴한다에 한표. 나 같으면 차라리 천막으로 쳐들어갔을 텐데.

- 그건 미련한 방법이고. 차라리 처음에 총이 아니라 칼을 들고 은밀하게 접근했어야지.

- 어, 그거 막스 대장 수법인데!?

이 말을 시작으로 저마다 ‘내가 막스 대장이었다면’을 주제로 활발한 토론이 이어졌다.

- 불침번 섰던 놈은 총 세 명. 대장이었으면 포복으로 접근한 다음, 한 놈을 뒤에서 목 한번 스윽 긋겠지.

- 그 소리에 놀란 놈과 눈이 마주쳤을 때, 칼을 던지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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