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4화 (94/360)

‘근데 그게 조선인 이막산이었다니.’

멕시코의 영웅 무리에타를 죽인 막스. 

아이러니하게도 중국인에겐 영웅으로 불리는 모양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막스는 대답 대신 산초 리나레스를 생각하고 있었다.

‘복수하려면 이런 식으로 물어보진 않았을 테고. 그냥 호기심인가?’

책상을 두드리던 막스는 화제를 바꾸어 말했다.

“아무튼, 일은 숙소가 마무리되는 대로 하게 될 테니까, 서둘러야 할 거야.”

“그 숙소 말인데···. 꼭 갈라져야 하는 거야? 지금 상황이 좀····.”

어려운 말을 꺼낸 듯 차홍이 입술을 깨문다.

그러자 막스의 차가운 시선이 그를 향했다.

“같은 말 두 번 하게 하지 마. 지금이 딱 갈라져야 할 좋은 때니까.”

막스는 차이나타운은 꿈도 못 꾸게 중국인들의 숙소를 찢어놓기로 했다. 전에 말할 땐 알았다고 끄덕이더니, 왜 또 묻는단 말인가.

“사기 치는 것도 붙어있고 말이 통하니까 치는 거야. 그 나라에 왔으면 언어부터 배우고,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릴 생각부터 해야지? 장담하는데, 너처럼 같이 붙어있을 생각이면 또 이용당할걸?”

“... 차홍도 알고 있을 거야. 사람들이 혼란스럽고 두려워해서, 그냥 걱정돼서 말한 것뿐이야. 다들 상황을 모르니까···.”

양옌이 조심스럽게 차홍의 편을 들고,

막스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내뱉었다.

“내가 주는 기회는 단 한 번뿐이다. 다음에 도착하는 무리와 동조하고 휘말리면 똑같이 취급할 거니까 그렇게 알아.”

“아, 알았어.”

차홍과 양옌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절대 그냥 한 말은 아닐 것이다.

이곳의 실세인 막스가 무섭도록 치밀하고 냉정하다는 건 둘의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다.

어디 그뿐인가. 새롭게 추가된 파이브 호아킨스를 죽인 동양인 영웅. 

눈앞의 이막산이라는 걸 확신하고 있었다.

‘그냥 새로운 삶을 시작하면 되는 거야.’

행복을 얻을 방법은 이렇듯 단순하다.

그런데 쓸데없는 오지랖을 부리는 놈이 있다.

사무실을 나온 양옌은 답답하다는 듯 차홍을 노려봤다.

“병신같이 아직도 모르겠어? 네가 영어를 하니까 다들 너한테 기대려고 하잖아. 앞으로 어떻게 책임질 건데?”

“책임은 무슨. 그냥, 같이 있으면서 영어나 가르쳐 주려고 했지···.”

“퍽이나. 그런 생각이었으면 지금까진 왜 안 가르쳐 줬는데?”

후팡 때문에? 조직 때문에?

아니, 아무도 차홍에게 영어를 가르쳐달라고 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막산의 말이 맞아.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려면 그들과 섞여 살 각오를 해야 해. 네 도움은 오히려 그걸 막을 뿐이라고.”

“알았어. 알았다고.”

그럼에도 양옌은 혼자의 길을, 차홍은 막스의 방법을 따르면서도 중국인들을 규합할 생각을 고민했다.

한편, 사무실에 홀로 남은 막스는 산초 리나레스를 생각하고 있었다.

‘산초라는 놈이 나를 찾은 건 멕시코 갱단 사건이 결정적인 이유였을 거고. 근데, 파이브 호아킨스 사건이랑은 또 무슨 연관이 있지?’

4년 가까이 된 사건이 다시 튀어나왔으니 묘한 기분이 들지 않겠는가. 

막스는 피치를 불러 산초의 뒷조사를 지시했다. 그리고 지금은 깨닫지 못하지만, 파이브 호아킨스 사건과 맞물려 막스를 영웅으로 생각하는 집단은 또 있었다.

‘헐벗고 굶주린 몰몬교도들에게 버팔로 고기를 제공한 오레곤 트레일의 동양인 성자.’

영웅을 넘어 몰몬교 사이에서 막스는 성자로 소문이 퍼져있었다.

< 죽은 무리에타의 망령 > 끝

작가의말

부족한 글임에도 지난 주 목요일 추천글 올려주신

허브맛댕댕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실망시키지 않도록 열심히 쓰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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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작중 시기를 감안해 몰몬교에 관해 짧게 써볼까 합니다.

몰몬교와의 갈등은 1820년대 초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몰몬교도는 자신들만의 세상을 건설하기 위해 이웃과의 갈등을 피하기 위해 서부로 이주했고, 일리노이와 미주리가 한때 그들의 거주지였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몰몬교의 창시자 조셉 스미스가 암살 당하고, 이들은 또다시 서쪽으로 이주하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정착한 곳이 솔트레이크 시티이고, 현재까지도 몰몬교의 총단이 있는 곳입니다. 작중 시기는 암살당한 조셉 스미스 이후 2번 째 회장이 된 브리검 영이 스스로 솔트레이크 시티의 주지사가 된 상황입니다. 때문에 유타 준주는 몰몬교의 교리인 일부다처제인 준주였습니다. 어메이징하죠.

때문에 연방에선 이를 눈엣가시로 여겼으나 군대가 가기 힘든 지역이라 전임 대통령인 프랭클린 피어스는 이를 방조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1857년 9월.

마운틴 메도우스 대학살이 몰몬교도들에 의해 벌어지면서 제임스 뷰캐넌이 원정대를 꾸려 보내게 됩니다. 일명 ‘몰몬 전쟁’으로 불리는 사건입니다.

이 원정대는 샤이엔과 전쟁을 치른 섬너 대령에 이어 캔자스 리븐워스에 머물렀던 병력들입니다. 그런데 9월에 마운틴 메도우스 대학살이 벌어지고, 이에 원정대를 파견했으니 그 시기는 아무리 빨라도 11월이었습니다.

그러나 제대로 된 전쟁이 시작되기도 전에 겨울이 찾아왔고 보급품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결국 원정대는 퇴각하게 됩니다.

이 와중에 서로 포로들이 생기고, 대학살 당시 살아남은 17명의 아이들은 몰몬교에 붙잡혀 비참한 생활을 하게 됩니다.

여기까지가 현재 유타주, 몰몬교의 정세였습니다.

** 참고로 넷플릭스 ‘그 땅에는 신이 없다’라는 영화에서 흑풍대처럼 수십명을 이끌고 다니는 잔혹한 갱단 두목(프랭크인가 이름이 헷갈리네요)이 바로 이 마운틴 메도우스 대학살에서 살아남은 꼬마 아이입니다. 밤마다 악몽에 시달리는데, 가족들이 백인들(몰몬교)과 인디언에게 학살당하는 장면입니다.

지난 화들을 돌이켜보면, 독자님들이 바라시는 서부 시대 컨셉에 맞지 않는

부분이 진입장벽이 되지 않았나 고민이 되었습니다.

해서 정치 부분이 나오면 복잡하고 루즈해지진 않았나 고민되던 찰나.

이번엔 종교가 튀어나왔습니다!

스킵할까도 심각하게 고민했습니다만.

초반 막스가 몰몬교도들에게 버팔로 고기를 줄 때부터 이 부분을 염두해 둔 거라 에피소드를 다루기로 했습니다.

아무쪼록 즐겁게 읽어주시길 바라며,

뒤에 벌어질 사건들이 너무 많기에 몰몬교 에피는 짧고 간결하게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 성자 막스 조 >

산초의 정보를 알아보라고 한 지 이틀.

피치가 막스의 사무실을 찾아왔다.

“산초 리나레스. 멕시코계 미국인으로 나이 25살. 캘리포니아, 뉴멕시코, 유타 등지에서 제재소, 목장, 대장간, 운송, 역마차 등 닥치는 대로 일하다 현재는 동료들과 준투 남쪽에서 천막생활을 하고 있음.”

“일자리를 자주 바꿨네.”

“특이해서 알아봤더니, 동료 중 한 명이 그만두거나 잘리면 자신도 그만뒀대. 주변을 잘 챙겨서 그런지 추종자들이 꽤 되더라고.”

‘무슨 노동 조합장인가.’

조금은 어이가 없지만, 한편으론 산초의 성격을 단번에 파악할 수 있었다.

피치가 손에 쥔 종이를 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거. 얼마 전 죽은 갱단 두목과는 어릴 적부터 친구였대.”

“뭐야. 그럼 복수라도 할 생각인 거야?”

피치는 고개를 저었다.

“자기가 말렸는데도, 병신이 고집 피우다 죽은 걸 왜 복수하냐더라. 그냥 무리에타를 죽인 동양인이 궁금했을 뿐이래. 가능하면 너랑 붙어보고 싶다고 하던데?”

막스는 넌지시 피치를 바라봤다.

“그냥 알아만 본 게 아니라, 직접 만나서 대화까지 한 거 같은데?”

“응?”

피치가 눈을 말똥말똥 뜨더니, 이내 웃음을 터트렸다.

“사실 애들하고 직접 찾아갔거든.”

“...... 그래서?”

“산초가 너랑 겨뤄보고 싶다고 하니까, 히콕이 비웃으면서 말했어. ‘그런 개소리는 나부터 이기고 해.’”

피치는 목소리를 굵게 하여 히콕 성대모사를 했다. 하나도 안 똑같았다.

“그랬더니 ‘내가 이러고 있으니까, 우습게 보였나 보군. 승부를 겨루자.’”

“...... 그건 산초 목소린 거지?”

“어, 완전 똑같아. 아무튼, 그래서 둘이 총을 뽑았어. 이렇게 간격을 두고 했는데, 결과야 빤하지. 히콕이 좀 빨라?”

총알 없는 총 대결. 그 결과 산초는 압도적인 히콕의 패스트 드로우를 감당할 수 없었다. 

패배한 산초는 얼굴이 시뻘게져서는 싸움이 꼭 총싸움만 있는 게 아니라며 주먹으론 동양인을 이길 수 있다고 말했단다.

“그래서 이번엔 조 짐 주니어가 나섰어. 걔도 요새 멘트가 좀 늘었는지 나와서 하는 말이, ‘그런 개소리는 나부터 이기고 해.’”

“성대모사를 굳이 해야 하는 거야?”

“아무튼, 이번에는 육탄전을 벌였지 뭐야.”

팔짱을 낀 피치는 고개를 절레 저으며 말을 이었다.

“와, 근데 산초가 좀 싸우더라. 주니어가 우리 중엔 너랑 제일 비슷하잖아. 근데도 대등하게 싸우더라고.”

막스는 조 짐 주니어에게 많은 근접 전투 기술을 전수한 바 있다. 일종의 수제자랄까.

그 때문에 어느 순간엔 히콕 역시 주니어와는 맨손 싸움을 피할 정도였다.

‘근데 대등하게 싸웠다 이거지.’

흥미가 생긴 막스는 피치에게 말을 재촉했다.

“주니어가 애를 먹긴 했지만, 결국 산초가 무릎을 꿇었어. 그러더니 이렇게 묻더라. ‘동양인은 너희보다 강한가?’. 이때 히콕이 이죽거리면서 말했지. ‘좆나 강해, 인마.’라고!”

“굳이 욕까지 따라 할 필요는 없잖아?”

“난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거야.”

피치는 평소보다 꽤 기분이 업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 이유가 조금은 어이가 없었다.

“좀 귀엽게 생겼더라고. 얼굴하고 눈이 동글동글한 게, 성격도 좋아 보이고. 더구나 나름 신념도 있어 보인 달까?”

“...... 그래서 그 귀여운 산초는 지금 뭐 하고 있냐.”

“아직 일은 안 하고 거주지를 물색 중이래.”

현재 건설은 도시 중심부부터 진행 중이다.

그런데 땅이 워낙 넓어 산초가 있는 남쪽에서 건설 현장까지는 무려 40~50km에 달한다.

일을 구해도 출퇴근이 어려우니, 동료들과 함께 머물 수 있는 중심부의 땅부터 알아보는 중이었다.

“회사 땅을 임대하려는 데도 애를 먹고 있대. 은근히 알력 싸움이 심하거든.” 

인종, 출신 국가를 따지며 집단 대 집단의 갈등이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다. 

더욱이 멕시코 전쟁이 끝난 지 10년밖에 되지 않아 백인들에게 히스패닉계는 혐오와 증오, 경계의 대상이었다.

“아무튼, 결론이 뭐야?”

“너한테 부탁할 게 있대. 그래서 여기로 데려왔어.”

“지금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피치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이없지만, 일단 데려와 봐.”

“오케이.”

피치가 이렇듯 초면에 데려올 정도면 꽤 마음에 들었다는 얘기다. 

‘뭐냐, 금사빠도 아니고.’

막스가 입을 삐죽거릴 때, 한 남자가 사무실로 들어섰다.

‘귀엽기는 개뿔. 느끼하게 생겼구만.’

햇볕에 그을린 검붉은 피부에 콧수염을 기른 곱슬머리의 남자. 동글동글하다더니 지금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막스를 노려보고 있다.

“네가 무리에타를 죽인 그 동양인인가?”

“이름으로 불러. 막스 조다.”

“...... 발레라스는 네가 죽였나?”

“글쎄. 그게 누군지 모르지만, 내가 죽인 사람은 중국인 한 명뿐인 것 같은데.”

막스의 말에 산초는 허탈한 웃음을 내뱉었다.

“멍청한 발레라스. 정작 너랑은 싸우지도 못하고 죽었구나.”

친구의 허무한 죽음에 산초는 콧잔등을 찡그렸다. 그러다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막스를 노려보며 말했다.

“무리에타는 멕시코의 영웅이다.”

“그래서?”

“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그래봐야 남을 죽이고 물건을 빼앗는 갱단일 뿐이니까!”

“..... 뭘 말하고 싶은 거야?”

“숙소와 일자리 좀 구해다오!”

산초는 막스를 응시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골때리는 놈이네.’

숙소와 일자리는 동료들을 포함한 것일 터. 

싸움 실력도 괜찮고, 동료들이 스스로 따를 만큼 인덕도 있는 흥미로운 인물이다. 다만 이놈이나 차홍이나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동료들과 그렇게 뭉쳐 다니는 이유는?”

“억압과 핍박을 받다 보면 기댈 곳이 필요한 법. 단지 먹고 살려는 동료들이 그런 불합리한 처우를 안 당할려면 이 방법뿐이거든.”

“반대로 묻자. 너넨 다른 사람을 핍박하고 무시하지 않는다는 거냐?”

“물론이지.”

“동료들이 그런 짓을 하면?”

“그땐 내 동료가 될 자격이 없다.”

산초의 대답은 확고했다. 자신과 동료들은 결코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막스는 잠시 생각한 끝에 입을 뗐다.

“이 부근에 거주지를 마련해 주마. 준비가 끝나면 요새 안, 공사 현장에 투입될 거야.”

“고맙다.”

“대신 네 말에 책임을 져. 그 결과에 따라 내 행동이 달라질 테니까.”

산초는 크게 고개를 끄덕이곤 몸을 돌렸다.

옆에 있던 피치와 시선이 마주쳤을 땐 미소를 지으며 사무실을 벗어났다.

문이 닫히자 피치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너무 빨리 결정 내린 거 아냐? 몇 마디 말도 안 한 거 같은데.”

“괜찮은 사람이라서 데려온 거 아녔어?”

“그렇긴 한데···. 정확히는 네가 관심 가질만한 사람인 것 같아서 데려온 거야. 지금쯤이면 히스패닉계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었거든.”

막스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피치를 쳐다봤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어?”

“알프레도와 드레드 스콧은 흑인. 그다음은 인디언과 손을 잡았잖아. 사실 그때까진 잘 몰랐는데, 최근 중국인들을 보면서 확신했지.”

피치가 얼굴을 막스에게 가까이하며 미소를 지었다.

“네 앞날을 위해 다양한 인종과 국가의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걸 말야.”

“......”

“덕분에 나도 생각이 달라졌어. 지금은 다른 인종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거든. 네 목표가 뭔지 정확히 알 순 없지만, 도와주고 싶어.”

“...... 지금도 충분히 도움이 되고 있어.”

“더, 더 해주고 싶어.”

피치가 점점 더 얼굴을 가까이 들이민다.

사탕이라도 먹었는지 달콤한 향이 전해졌다.

이마에 송글송글 땀이 맺힐 즈음.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느긋하게 몸을 뒤로 뺀 피치는 거리를 둔 채 팔짱을 꼈다.

덜컥.

사무실로 들어온 사람은 키트 카슨. 그는 피치와 얼굴이 벌게진 막스를 번갈아 쳐다보며 물었다.

“...... 잠시 시간 되나?”

“물론이죠. 무슨 일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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