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9화 (99/360)

어머니가 아이를 안은 채 죽은 처참한 시체.

헤이트의 팔다리를 자르고 그 옆에 던져두었다.

비명을 지르고 신음하는 헤이트는 그렇게 죽음을 맞이했다.

피치와 듀들리, 코디와 대원들은 진작에 마차를 멀찌감치 이동해 아이들을 돌봤다.

그런데 상태가 꽤 심각하다.

씻은 지가 언제인지 진짜 피부색이 뭔지 알 수 없을뿐더러, 벌레가 살을 파먹고 갈비뼈가 앙상할 정도로 말라 있었다.

“이거 해도 해도 너무한 거 아녜요!”

“애들이 놀라잖아, 코디. 진정하고 상처나 잘 돌봐 줘.”

“아후, 진짜!”

눈시울이 뻘게진 코디는 듀들리를 도와 아이들의 곪아 터진 상처를 치료하고, 피치와 동료들은 여관을 떠날 때 막스가 챙기라던 음식을 나누어주었다.

아이들이 끔찍한 상태에서 발견된다는 걸 알고 있기에 막스가 준비해둔 것이었다.

조용하던 아이들은 눈동자만 굴리던 끝에 빵을 입에 가져가 오물거렸다. 그리고 어느 순간. 한 아이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더니 이내 흐느끼기 시작했다.

이를 시작으로 아이들의 울음이 메도우스 협곡에 울려 퍼졌다.

그나마 다행인 건, 원 역사보다 2년 앞서 아이들이 구조된다는 것. 지금도 이럴진대 그땐 어땠을까.

막스는 아이들이 우는 걸 다행으로 생각했다.

그게 그 또래의 정상적인 아이들이 할 행동이었으니까.

아이들에게서 시선을 뗀 막스는 콜린과 히콕을 보며 말했다.

“이제 곧 몰려올 테니. 마중 갑시다.”

“그 이름이 뭐랬더라, 라이언 맥스? 미친 사이코 새끼. 하여간 콴트릴 개자식. 이번엔 절대 안 놓칠 거야.”

히콕은 고삐를 움켜잡으며 막스와 대원들의 뒤를 따랐다.

< 우리에게 주어진 운명 > 끝

작가의말

마운틴 메도우스 대학살이 벌어지고 2년 뒤인 1859년. 

미연방에서 생존한 아이들을 빼내옵니다. 

당시의 기록이 오늘 화에 다루었던 묘사와 같습니다.

민병대가 아닌 일반 몰몬교도들도 대학살 당시 희생자들의 말과 물건들을 팔아치우고, 아이들을 데려다 돼지처럼 키웠다고 기록되었습니다.

아이러니한건, 당시 학살 희생자들의 후손들 상당수가 몰몬교도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피해 구제를 위해 도움을 받아서일까요.

조상에게 가해진 가혹한 운명을 후손들은 하나님의 뜻으로  여기고 있더군요.

그 인터뷰 기사를 보고 조금은 충격이었습니다.

< 튀어 >

줄줄이 사탕처럼 대학살의 흉수들이 메도우스 협곡으로 향한다. 그중엔 라이언 맥스, 윌리엄 콴트릴도 있었다.

‘아무래도 이상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연방정부와 전쟁을 각오했던 브리검 영이 동양인을 만나고 마음이 돌변했다. 게다가 브리검 영과 갈등 관계에 있던 제임스 스트랭은 왜 갑자기 튀어나왔을까.

‘뭔가 있어 분명.’

기분이 찝찝해진 콴트릴이 뒤를 돌아봤다.

자신을 따르는 수하들이 열셋. 전부 와이오밍과 유타 준주에서 긁어모은 놈들이다.

수개월 전. 콴트릴은 샤이엔 부족과 전쟁하던 섬너 군에 입대하려 했었다. 그런데 생각을 바꿔 평원을 배회하는 하이에나들을 하나둘 모으기 시작했다. 그런데 때마침 몰몬교와 이주민들 사이에 벌어진 전투를 목격했으니.

처음엔 양쪽 수가 비슷했다. 이주민들은 참호를 파고 무기도 넉넉해 그럭저럭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하루 이틀 교전이 벌어지는 동안 몰몬교 민병대원은 인디언과 추가 병력을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잠시나마 머물 곳을 찾던 콴트릴에겐 절호의 기회였다. 수하들을 이끌고 몰몬교 민병대에 가담. 그렇게 콴트릴은 메도우스 대학살의 공범이 되었다. 그것도 가장 잔인한 학살자로 말이다.

‘지금 돌아가는 상황이 묘하단 말야.’

브리검 영은 고사하고 일리노이에 있는 제임스 스트랭 밑으로 들어가게 되면 죽도 밥도 안되는 상황이었다.

더는 유타 준주에 있을 이유가 없었다.

‘멍청한 몰몬교들과는 슬슬 헤어질 때군.’

콴트릴은 다른 민병대 지휘관들이 들을 수 있도록 큰소리로 외쳤다.

“속도를 줄여라. 우린 혹시 모를 후미의 적들을 대비한다!”

몰몬교 민병대 10여단 3대대 지휘자 존 디 소령은 고개를 돌려 콴트릴을 힐끔 쳐다봤다.

“뒤는 저희에게 맡기십시오!”

콴트릴은 태연하게 소리쳤다.

섣부른 탈영은 오히려 위험을 자초하는 일. 

비 몰몬교도인 콴트릴은 민병대의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탈영을 하더라도 자연스러울 필요가 있었다.

앞선과 거리를 벌린 콴트릴은 될수록 느린 속도로 앞을 전진했다.

목적지에 다가갈 즈음엔 다음을 지시했다.

“전부 말에서 내려. 여기서부턴 은밀하게 접근한다.”

말을 나무에 묶어둔 채 콴트릴은 부하들과 허리를 숙여 이동했다.

고지대인 메도우스 협곡은 우뚝 솟은 로키산맥의 봉우리를 따라 늘어진 평원과도 같은 곳.

그런데 이때.

갑자기 총성이 울리기 시작했다.

탕! 탕!

식겁한 콴트릴이 반사적으로 땅에 엎드리고 부하들도 이를 따라 한다.

“대장,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야?”

“몰라서 묻냐? 함정에 빠진 거지. 멋도 모르고 따라갔다간, 뒈질 뻔했다.”

“대장은 미리 눈치챈 거야?”

리더의 능력은 대체 어디까지인가.

부하들은 존경심을 담아 콴트릴을 바라본다.

수하들의 충성심이 깊어만 갈 때, 정작 콴트릴은 막스를 떠올리며 전율하고 있었다.

‘놈이 이 함정을 꾸몄겠지.’

브리검 영을 만나고 단 하루 만에 이 짓을 꾸몄으니. 등줄기를 타고 소름이 돋을 지경이다.

‘이럴수록 냉정해야지.’

정신을 차린 콴트릴은 총소리가 나는 틈을 타 몸을 빼려 했다. 

그런데 예상보다 빨리 총성이 멈춰버렸다.

이때 엎드려있던 수하 하나가 고개를 빤히 쳐들었다. 그리고 순간.

타앙!

“다 끝난 거···.”

푸슉.

머리가 뒤로 젖혀지며 피를 뿜어댄다.

대경실색한 부하들은 더욱 바닥에 엎드리지만, 콴트릴은 반대로 행동했다.

총성의 거리로 보아 최소한 500야드(457m) 밖. 재장전 시간과 몰려오는 시간을 따지면 기회는 바로 지금뿐이다.

“튀어!”

퀀트릴이 벌떡 일어나 달리기 시작했다.

부하들도 허겁지겁 일어나 뒤를 따랐다.

타앙! 타앙!

푸슉! 푸슉!

부하 둘이 바닥에 고꾸라지지만, 콴트릴은 멈추지 않았다. 지그재그로 뛰며 말이 묶인 곳으로 내달렸다.

‘시발! 그 먼 거리에서 맞추다니.’

타앙! 타앙!

다행히 거리가 벌어질수록 정확도는 떨어졌다.

더는 총에 맞아 쓰러지는 부하가 없었다.

말에 올라탄 콴트릴이 곧장 달리기 시작한다. 

“멈추면 죽는다! 달려!”

“어디로 갈 거야, 대장!”

“롬 벨! 형이 갱단 두목이라고 했었지?”

“..... 제일 처음 총 맞았잖아.”

“시발? 그럼, 뒈졌어?”

‘아니지, 오히려 잘 된 건가?’

동생이 죽었는데 갱단 두목이 두고 보고만 있겠는가. 더구나 동양인에게 죽었다는 걸 알면 길길이 날뛸 게 분명하다.

콴트릴은 뒤를 힐끔 쳐다보며 물었다.

“롬 벨 형이 어디 있다 그랬지?”

“텍사스. 톰 벨 갱단이라고 아주 유명해.”

콴트릴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지어졌다.

목적지는 정해졌다.

“가자! 텍사스로!”

*

‘쥐새끼 같은 놈.’

스코프에서 눈을 뗀 막스는 라이플을 쥔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히콕. 가서 확인해 봐.”

“젠장. 콴트릴 그 새낀 지지리 운도 좋네!”

"운이 좋은 게 아니고. 그냥 의심이 많고 눈치가 빨라서 피한 거지."

히콕은 돌부리를 걷어차며 화풀이했다. 말에 올라탄 뒤에는 대원 몇 명을 이끌고 콴트릴이 엎드려있던 곳으로 향했다.

쓴웃음을 지은 막스는 방금 학살이 벌어진 곳으로 향했다.

타앙! 타앙!

대원들은 살아서 꿈틀거리는 몰몬교 민병대들을 확인 사살하는 중이다.

다만 그 와중에도 세 명만큼은 비교적 온전한 모습이었는데, 일부러 살려둔 민병대 지휘자 윌리엄 데임, 존 디, 히그비였다.

“이런 끔찍한 짓을 벌이다니. 하늘이 무섭지도 않더냐!”

팔에 총상을 입은 윌리엄 데임. 그의 일갈이 콜린의 신경을 건드렸다.

“개소리를 잘도 지껄이는군.”

콜린은 주먹으로 얼굴을 후려친 뒤, 총상 부위를 손가락으로 쑤셨다. 그런 뒤엔 고통에 비명을 지르는 데임을 끌고 죽은 헤이트 시신 옆으로 끌고 갔다.

“다 데리고 와.”

콜린의 지시에 대원들이 나머지 두 명을 헤이트 옆으로 끌고 왔다. 그 끔찍한 시체에 셋의 눈동자가 미친듯 요동쳤다.

“내 신경 건드리지 마. 똑같이 만들어주기 전에.”

콜린이 세 명의 멘탈을 뭉개버릴 때, 막스는 뒷정리를 지시했다.

“터커, 너는 대원 셋을 데리고 브리검 영에게 상황을 전해. 우린 콜로라도로 돌아갈 테니까, 가는 길에 합류하도록 하고.”

“옛 썰!”

“나머지는 전리품을 챙긴다. 전부 쓸어 담아.”

“옛 썰!”

뒤처리가 진행되는 동안 막스는 주섬주섬 돌을 모아 탑을 쌓기 시작했다. 

희생자를 기리는 추모탑이자, 그들에게 바치는 건 가해자들의 피였다.

바람을 타고 퍼지는 혈향. 

시선 어디를 둬도 역겨운 광경이 펼쳐졌다.

전리품을 챙긴 대원들이 하나둘 막스에게 손을 보태 추모비에 돌을 쌓기 시작했다.

조금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아이들은 멍하니 이 광경을 지켜봤다.

이 탑이 자신들의 부모 형제를 기리는 추모탑이라는 걸 아직은 모르고 있었다.

*

일행은 몰몬 로드를 따라 로키산맥 동쪽을 타고 북쪽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마차 두 대를 추가로 구해 아이들을 나누고, 한 곳에는 포로 셋을 태웠다.

날이 어두워지면 어쩔 수 없이 야영할 곳을 찾아 밤을 보내야 했다.

그리고 저녁을 위해 히콕과 코디는 버팔로 한 마리를 사냥하고, 가죽과 고기를 부위별로 해체했다. 12살이 된 코디는 나이에 맞지 않게 능숙한 솜씨였다.

“우리 코디 버팔로 사냥했구나.”

어김없이 막스가 다가오자, 코디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잔소리하기 전에 미리 선수쳤다.

“우린 배고파서 사냥한 거예요. 절대 재미로 사냥하면 안 되죠!”

“그런 의미에서 코디, 너한테 별명 하나 지어주고 싶은데.”

“뭔데요?”

코디가 똘망똘망한 눈으로 막스를 쳐다봤다.

“버팔로 빌 코디.”

버팔로를 학살해 얻은 별명보단 멀쩡할 때 지워주는 게 아무래도 낫지 않을까 싶다.

다행히 코디도 마음에 드는 얼굴이었다.

“버팔로 빌···.”

코디는 별명을 되뇌며 흡족해했다.

옆에서 고기손질 하던 히콕도 막스를 힐끔 쳐다봤다. 자신은 없냐며 눈으로 물었다.

“당연히 있지. 성격과 행동이 거치니까, 와일드 빌 히콕 어때?”

“오오, 와일드 빌 히콕. 나는 버팔로 빌 코디! 꼭 형제 같아서 난 마음에 쏙 드는데, 히콕은 어때?”

코디의 말에 히콕도 만족한 듯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막스는 강제로 둘의 별명을 지어주었다. 

“난 없어?”

콜린이 슬쩍 끼어들며 물었다.

“어렵네요. 좀 더 생각해봅시다.”

“뭐야, 나한테 너무 관심 없는 거 아냐?”

“그럼 나는!?”

이번엔 피치가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웨딩ㅍ···. 좀 더 생각해 보자.”

“뭔데? 웨딩 뭐?”

타닥, 타닥.

모닥불 주변에서 오손도손 고기를 뜯고, 아이들의 손에도 고기가 들려 있었다.

유일하게 포로 셋만 이 모습을 지켜봤다.

“굶는 것도 너희들이 짊어질 운명이다. 안 그러냐?”

콜린은 포로들을 약 올리며 비꼬았다.

대원들도 비웃으며 동조했다.

비참한 몰골에 배까지 꼬르륵거리는 포로들은 무기력하게 허공을 응시했다.

그런데 이때.

한 아이가 자신이 먹던 고기를 포로들에게 건네준다. 

“먹고 싶냐?”

콜린의 비아냥에 포로들이 고개를 숙였다.

분위기가 이상해지자 아이는 자신이 실수했다고 여겼는지 금방 울상을 지었다.

피치는 아이를 토닥이며 아이 손에 들린 고기를 포로들에게 건네줬다. 배고픔을 견디지 못한 포로들은 결국 이를 받아들고는 입에 덥석 집어넣었다.

침묵과 함께 묘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이를 깨려는 듯, 피치가 입을 열었다.

근데 좀 뜬금없는 내용이었다.

“아까 웨딩 하니까 떠올랐는데. 몰몬교는 왜 일부다처제를 고집하는 거야?”

피치의 말에 포로 중 한 명이 입을 열었다.

“...... 그건 신, 구약 시대에 있었던 결혼제도 때문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인정한 제도이지 너희들이 생각하는 범법 행위가 아니다.”

“과연 그럴까?”

바운서는 이죽거리며 입을 열었다.

“바운서 시절에 누가 그러더군. 몰몬경을 한창 만들고 있을 때. 하필 쓰던 사람이 바람이 났다고. 그런데 그걸 부인에게 딱 걸렸네? 당연히 부부 사이가 틀어지고 주변 눈총도 따가웠지. 그런데 얼마 후, 바람난 창시자께서 몰몬경에 일부다처제 교리를 심어놨어. 이게 뭘 말하는 거겠냐?”

“뭐야, 불륜을 정당화하려고 했단 거에요?”

“...... 그딴 미친 소리를 누가 한단 말이냐!”

“난 모르지. 그냥 술집에서 들었다니까. 그냥 술 취한 놈이 지껄인 헛소리야, 헛소리.”

콜린은 귀를 후벼파며 몰몬교 포로들의 신경을 자극했다. 신앙을 공격받은 그들은 분노에 몸을 부들거리기까지 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이동한 일행은 마침내 몰몬 로드를 지나 오레곤 트레일과 합류하게 되었다.

버팔로 빌 코디는 기나긴 마차 행렬을 보며 입을 쩍 벌렸다.

“와, 줄이 장난 아니네. 다들 캘리포니아에서 넘어오는 자들인가?”

“이제 곧 봄이잖아. 다들 콜로라도 금광으로 가는 거지. 조심해, 저 중에 어떤 놈들이 섞였는지 모르니까.”

히콕은 눈을 반짝이며 행렬을 쳐다봤다.

정작 자신들이 가장 위험해 보인다는 건 깨닫지 못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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