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프를 두른 막스는 선두에서 일행들을 이끌었다.
이주민들은 많은 인원이 마차 세 대를 이끌고 다가오자 바짝 긴장하며 경계하고 두려워했다. 무장한 인원이 오십 명이나 되었으니 당연한 반응들이었다.
오레곤 트레일에 합류할 즈음.
막스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긴 행렬을 이룬 자들의 정체.
중국인들이었다.
그 수가 족히 2백 명은 넘어 보였다.
‘망할, 차이나 마차.’
어쩐지 타운처럼 행렬도 꼴 보기가 싫다.
막스는 일행을 이끌고 느긋하게 행렬의 틈을 파고들었다. 그 때문에 뒤에 있던 행렬은 마차를 멈춰 세워야 했다.
중국인들 입장에선 행렬 허리가 잘린 것이다.
마차를 호위하는 중국인들의 서늘한 눈빛이 느껴졌으나 아무도 입을 열진 않았다.
스카프를 두른 막스. 그 앞에 있는 마차의 천막이 슬쩍 들어 올려진다. 그리고 몇몇 눈동자가 막스와 일행들을 훑어봤다.
‘또 여자들인가.’
콜로라도 준투로 향하는 길.
중국인들과 불편한 동행의 시작이었다.
< 튀어 > 끝
작가의말
당시 몰몬교에 대한 상황을 그리다보니
한쪽으로 치우친것 같습니다.
일부다처제는 우스갯소리로 적은 거고,
근거는 없는 콜린의 이야기입니다.
< SFBC(색깔을 초월한 힘) >
오레곤 트레일을 따라 콜로라도 준투까지 가는 거리는 대략 550km.
날이 어두워지자 긴 마차 행렬은 그룹을 만들며 야영을 준비한다.
한창 모닥불에 고기를 굽고 있을 때.
두 명의 중국인이 막스 진영으로 찾아왔다.
“저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온 량웬허라고 합니다만. 그쪽은 목적지가 어딥니까?”
량웬허가 공손한 자세로 물었다. 영어 발음이 어눌했지만 듣는 데는 무리가 없었다.
질문을 받은 대원은 스카프를 두른 막스를 쳐다보고, 눈치 빠른 왕창은 빠르게 막스를 스캔했다.
‘저자가 리더로군.’
“콜로라도 준투로 가는데. 그쪽은?”
“방향이 같군요. 우리도 광산으로 갑니다.”
“광부들만 있는 건 아닌 것 같은데?”
“다양합니다. 광부도 있고 장사하려는 사람들도 있지요. 그쪽은 어떻습니까? 광부로는 안 보이는데요.”
“그럼 어떻게 보이는데?”
량웬허가 말을 머뭇거리자 옆에 있던 남자가 그에게 속닥거렸다. 시선은 꼬질꼬질한 아이들을 향하고 있었다.
“혹시 노예 상인입니까?”
량웬허의 말에 대원들의 입에서 어이없는 실소가 흘러나왔다. 이와는 반대로 막스는 눈을 빛내며 물었다.
“왜, 노예에 관심 있어?”
“사려는 건 아니고. 팔 물건들은 있습니다. 물론 지금은 캘리포니아에 있지만요.”
“호오.”
량웬허가 음흉한 미소를 짓자 막스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아무래도 그쪽하고는 비즈니스 할 게 많아 보이네. 여기서 얘기할 게 아니라 조용한 곳으로 옮기지.”
“좋습니다.”
막스는 량웬허와 차오동이라는 남자를 대동한채 무리에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이동했다.
“또 뭐를 하려는 걸까.”
“지난번처럼 골라내려는 거겠지.”
“글쎄. 이번에는 다른 방법을 쓸 것 같은데? 보면 대장은 똑같은 수법은 안 쓰잖아.”
“오, 그래서 이번엔 뭔데?”
“...... 그것까지 내가 어떻게 아냐, 새꺄.”
대원들은 고기를 뜯으며 자신들의 추측을 늘어놓고. 막스가 돌아온 건 30분이 지나서였다.
다들 막스의 입에 시선이 쏠려 있을 때.
“설마, 고기 다 처먹었냐?”
“!”
“니들이 사람 새끼들이냐고!”
대원들은 서둘러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막스는 모닥불에 익어가는 고기를 노려보며 말했다.
“중국인들이 준투에 도착하면 차홍부터 찾으려 할 거다. 후팡이 죽은 건 멕시코계 갱단의 습격으로 이미 소문이 퍼졌으니까, 우리는 이번에도 중간에서 범죄 조직을 솎아낼 거야. 그런 다음엔 뭉치지 못하도록 갈기갈기 찢어놔야지.”
막스는 량웬허와 대화한 끝에 몇 가지 사실을 알아냈는데, 차홍에게 들은 이야기와 일치했다.
조직 이름은 힙이통(協義堂).
이들은 인당 보호비를 받고 콜로라도 골드러시에 합류하는 자들을 보호하고 있다.
조직도 나름의 사업을 계획 중인데, 선발대인 후팡이 하고 있을 매춘과 아편 사업의 확장이었다. 물론 량웬허를 비롯한 조직원들은 후팡이 죽은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근데 그 통이란 게 대체 뭡니까?”
“뭐, 알아 두는 것도 나쁘지 않지.”
막스는 통들과의 충돌에 대비해 자신이 아는 정보들을 말해주었다.
통(tong)은 일종의 비밀결사 조직.
시작은 태평천국 운동의 실패로 쫓겨난 지도자들이며, 통은 근본적으로 반청복명을 외치는 삼합회 인물과 뒤섞여 구분이 모호한 조직이다.
향후 미국에서 늘어난 중국인들은 조직을 삼합회가 아닌 통으로 칭했고, 통들끼리는 치열한 경쟁과 전쟁을 벌이기도 한다.
“통의 사업이란 크게 두 가지다. 보기엔 아무런 이상이 없는 일반적인 사업으로 이목을 감추고, 뒤로는 매춘, 도박, 복권, 아편과 연관되어있지. 여자들의 경우엔 골드러시로 몰려든 남자들을 위해 중국 본토에서 조달하는데, 그중 절반이 매춘에 종사한다더라.”
“그런 사업이 돈이 돼요?”
“캘리포니아에 중국인만 3만 명이야. 앞으로 그 몇 배는 늘어나게 될 거고.”
“왓더···.”
언제 그렇게 왔을까. 게다가 지금 숫자도 어마어마한데 앞으로 더 는다고?
대원들이 입을 쩍 벌릴 때, 막스가 말을 이었다.
“우리가 컨트롤하지 못하면 언제고 공격받게 될 거야. 그러니 미리미리 싹을 밟아 놔야지.”
조선인인 막스와 차이나타운 통들의 충돌.
백인들에겐 관심 밖의 일이나 막스는 대원들을 ‘우리’라는 말로 끌어들였다.
이는 운명공동체로 여기게끔 하는 주문과도 같은 단어였다. 막스의 일은 곧 자신들의 현재와 미래와 직결되었으니까.
‘이제 때가 된 건가.’
막스는 대원들과의 유대감을 쌓기 위해 오래전부터 품어왔던 생각을 실행시킬 계획이다.
민간군사기업인 PMC를 세상에 드러내는 것.
지금이야말로 적기였다.
*
오레곤 트레일에 합류한 지 칠일.
마침내 콜로라도 준투에 진입할 즈음, 막스는 콜린에게 한 가지 지시를 내렸다.
“중국인들을 도시 중심인 21번 구역에 몰아넣어요. 량웬허에게 말은 해 놨으니까, 콜린은 당분간 광산회사와 놈들 중간에서 조율자 역할을 하는 척하면 됩니다.”
“신뢰를 얻고 솎아내라 이거지? 이전처럼?”
“방법은 좀 다를 수 있죠. 어쨌든 틈틈이 진행 과정만 말해줘요.”
“오케이!”
콜린은 맡겨두라며 대원 다섯을 이끌고 량웬허를 찾아갔다.
“터커는 가서 기자들을 요새 앞에 모아줘. 그중엔 반드시 사진기자가 있어야 해. 그리고 코디는 요새에 있을 주지사와 회사 주주들에게 이 사실을 알려. 내가 말해놨으니까 알아서 반응할 거야.”
“옛썰!”
막스는 유타로 향하기 전, 존 기어리와 로렌스 핵심 인사들에게 미리 말을 해두었다.
- 정치적인 야망이 있으면 요새로 모이세요.
그리고 한 시간 뒤.
요새 앞에는 그 야망이 꿈틀거리는 인간들로 가득했다.
“고생들 했네에에에!”
손을 흔들며 기뻐하던 존 기어리.
하지만 아이들의 초췌한 몰골을 본 순간 그 자리에서 얼어붙어 버렸다. 옆에 있던 찰스와 레인, 홀리데이와 블러드 등 핵심 인물들도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좌로는 아이들을, 우로는 대학살의 흉수인 몰몬교 민병대원 셋을 앞세운 막스.
스카프를 두른 그의 뒤로는 장벽처럼 대원들이 따르고 있었으니.
기자들은 이 광경을 담아내기 위해 미리 설치한 사진기의 셔터를 누르기 시작했다.
털컥.
복잡한 기계가 돌아가고, 다음 컷은 막스 대신 존 기어리가 중심에 서게 되었다.
그리고 로렌스 핵심 인물들이 아이들 뒤에 슬픈 얼굴로 서 있는 것으로 컷을 마무리했다.
“사진은 훌륭한 정치적 도구죠.”
“음. 아이들을 이런 식으로 이용한 게 옳은 건지 모르겠군.”
존 기어리의 말에 막스가 피식 입을 열었다.
“반대로 생각하세요. 아이들이 주지사님을 이용한 걸 수도 있으니까.”
“음?”
“아이들을 친척들 품으로 돌려보내실 거잖아요?”
“아, 그 말이었군.”
존 기어리는 굳어진 얼굴이 펴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요새 안으로 들어가는 길.
홀리데이가 물었다.
“이번 사건에 넌 어떤 포지션이야? 이제는 슬슬 전면에 나설 때도 되지 않았어?”
“아주 좋은 질문입니다.”
막스는 존 기어리와 회사 주주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이번에 아이들을 구출한 건 연방정부와 캔자스 준주 주지사의 의뢰를 받은, 한 회사가 해결한 겁니다.”
“회사?”
“조만간 발표할 겁니다.”
*
요새 안 막스의 사무실.
존 기어리는 편지를 내밀며 입을 열었다.
“대통령이 보낸 답신일세. 브리검 영이 준주 주지사와 관리 임명을 수용하면 이곳 준투 도시 개발을 10년간 광산회사에 위임한다고 하더군. 자치권을 부여하는 셈이지.”
“대신 콜로라도가 준주로 승격되면 바뀔 수도 있겠군요.”
“뭐, 그때는 연방정부에서 임명하는 대로 따라야겠지.”
지금은 준주가 되기에 인구가 턱없이 부족하다. 하지만 광산에 사람들이 몰리고 도시가 번성하면 그 수는 금방 채워진다.
원 역사에서 콜로라도가 준주로 되는 건 1861년. 캔자스가 주로 승격되는 시기와 일치한다.
또한 남북전쟁이 벌어지는 해이기도 하고.
“앞으로 3년간 간섭받는 일은 없겠네요.”
“그나저나 몰몬교 문제는 잘 해결된 건가? 아이들을 구해온 걸 보면 브리검 영과 협상이 된 것 같은데.”
막스는 그간 벌어진 일을 설명했다.
마운틴 메도우스 대학살은 존 기어리도 듣기 힘든지 시종일관 얼굴을 찌푸렸다.
“비극적인 일이군. 그런데 자네 말을 들어보면 브리검 영이 대학살을 지시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네. 안 그런가?”
“학살에 참여한 민병대원들은 그렇게 주장하고 있습니다만. 법관은 들어주지 않을 겁니다. 결국 그들을 처형하는 거로 매듭짓겠죠.”
턱수염을 매만지며 존 기어리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드네. 우리가 브리검 영에게 면죄부를 준 게 아닐까 하는.”
“글쎄요. 이번 사건을 위해, 죽은 조셉 스미스의 동생과 부인을 끌어들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지지를 얻고 있는 제임스 스트랭을 끼워 넣었죠.”
“몰몬교의 두 세력을 충돌시킬 생각인가?”
“그건 앞으로 브리검 영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겁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몰몬교의 힘을 억제할 수단이 생겼다는 거죠.”
존 기어리의 눈을 응시한 막스가 나직이 입을 열었다.
“브리검 영의 암살.”
“!”
존 기어리가 기겁하며 눈을 부릅떴다.
“그런 일이 벌어지면, 더 격렬하게 내분이 일어나고 갈라지고 쪼개지겠죠.”
“후, 후폭풍을 감당할 수 있겠나?”
“제가 감당할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제임스 스트랭이 감당할 일이죠.”
소름이 돋는다고 해야 하나.
순간 존 기어리의 머리카락이 쭈뼛거린다.
“자네, 무서운 흉계를 꾸미고 있었구만.”
“최악의 경우를 말한 겁니다. 브리검 영이 약속을 파기하고 다른 생각을 품게 되면 그 방법 외엔 떠오르지 않더군요.”
분위기가 무거워지자 막스는 화제를 전환했다.
“아칸소의 친인척이 있으면 다행인데, 없는 아이들은 어쩌실 생각입니까?”
“그 일은 아칸소 주지사와 논의해 봐야지.”
“만약 갈 데 없는 아이들이 있으면 이곳으로 데려오십시오. 어떻습니까?”
“암살과 자선 사업은 너무 극과 극인데?”
“뭐, 지금 상황은 그게 그거죠. 둘 다 몰몬교가 싸지른 똥이니까.”
존 기어리는 헛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사흘 뒤엔 아이들을 데리고 아칸소로 떠나겠네. 곧 준주의 병력이 올 테니, 자네 대원들이 고생할 일은 없을 걸세.”
“잘 됐군요.”
*
그날 저녁.
몰몬교에서 성공적으로 일을 마친 막스와 대원들을 위해 조촐한 파티가 마련됐다.
요새 안에 지어진 커다란 홀에 제법 많은 사람이 모였다.
한쪽에는 대학살에서 생존한 아이들이 말끔하게 옷을 차려입고 음식을 먹고 있었다.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
막스가 장내를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이참에 조직을 하나 만들 생각입니다.”
“조직? 아, 낮에 말한 그 회사요?”
지금까지는 젊은 제이호커스, 막스 인베트스먼트, 대장간, 미네랄 익스플로러 등과 같은 복잡하고 일관성 없는 이름으로 불렸다.
그 때문에 막스를 중심으로 모이긴 했으나 그 실체가 모호한 게 사실이었다. 해서.
“앞으로 우릴 SFBC PMC라 불러주세요.”
“...... 그게 뭔데요?”
“색깔을 초월한 특별한 힘. Special Forces Beyond Color, Private Millitary Company!”
대원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 ...... 좆나 길어.
- 난 벌써 까먹었다. 누가 적어줄 사람?
콜린의 말에 다들 고개를 저었다.
피치도 마음에 안 드는지 입을 삐죽거리며 물었다.
“이름 다른 거로 바꾸면 안 돼?”
“내가 4년 동안 생각한 거야.”
“무슨 그딴 걸 4년씩이나···.”
반응이 미적지근하다. 막스는 비장한 표정으로 품속에 있던 종이 한 장을 꺼내 들었다.
“어떻습니까! SFBC의 심볼!”
해골에 리볼버와 라이플이 교차하고 그 중간엔 M자가 크게 박혀 있었다.
일단 발로 그린 퀄은 그렇다 쳐도 꽤 유치한 그림이었다.
홀리데이가 웃으며 물었다.
“생존한 애들이 그린 그림이구나. 잘 그렸네.”
“...... 내가 그렸는데!?”
“아하?! M은···· 막스겠지?”
막스가 고개를 끄덕이자, 홀리데이를 비롯한 회사 주주들의 시선이 뒤에 있는 대원들로 향했다. 창피한 듯 다들 얼굴을 붉히고 있었다.
“뭐, 괜찮네. 하하.”
홀리데이는 멋쩍게 웃으며 막스의 어깨를 토닥거렸다. 그러자 다른 사람들도 좋다며 하나둘 엄지를 추켜세웠다.
홀리데이와 키트 카슨, 존 기어리는 서로 눈빛을 주고받는 동안, 막스는 기자들에게 SFBC의 의미를 열성적으로 설명했다.
“나는 언급하지 말고, SFBC만 멋지게 기사 써줘요.”
“에이, 우리가 어디 하루 이틀 기사 쓰나요.”
동양인 막스가 전면에 나서긴 이른 시기.
당장은 자신의 꿈이었던 PMC를 만들어 키울 생각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몰몬교 사건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였다.
세계 최초이자 최대의 민간군사기업.
SFBC의 전설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 SFBC(색깔을 초월한 힘)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