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3화 (103/360)

현장에서 조금은 떨어진 장소.

막스와 콜린은 달이 훤히 비추는 천막 주변을 지켜보고 있었다.

“산초를 SFBC에 영입하려는 거지?”

“속사 실력도 좋다면서요? 저런 인재를 그냥 놔두면 손해 아닙니까.”

“근데 애가 좀 무식해 보이지 않아? 자기들이 미끼가 되는 것도 모르고 있잖아.”

콜린의 말에 막스는 고개를 저었다.

“동료 몇 명 빼둔 거 봐요. 본인도 알고 있다는 얘기죠.”

“그런데도 위험을 감수한다고?”

“더 큰 걸 원하는 거죠. 광산 회사 아니면 SFBC를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고요.”

산초는 히스패닉계의 한계를 알고 있다.

그 때문에, 이 기회에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고 막스와 거래를 하려는 의도일지도 모른다.

“금광을 캐려고 해도 히스패닉들은 항상 뒤통수가 따가운 법이죠. 산초가 동료를 생각한다면 더 좋은 일자리를 주고 싶었을 겁니다.”

막스가 말을 끝냈을 즈음.

타아앙!

총성이 울려 퍼지고. 곧이어 양 진영에서 총구의 불꽃이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한 차례 무차별 난사가 이루어지고, 재장전 타임이 돌아왔다. 이때 중국 쪽 주변에서 총성과 함께 불빛들이 번쩍였다.

“우리 대원들이군. 적절한 타이밍이네.”

비명과 함께 중국인들이 쓰러지고.

산초와 동료들도 이내 가세하여 총알을 퍼붓기 시작했다.

잠시 후. 

달빛에 반짝이는 금속이 눈에 띄었다.

적진 침투 및 진압 분대를 이끄는 네이선 로어가 대원들과 함께 방패를 들고 전진한다.

살아있는 놈들이 쏜 총알을 막기 위해서였다.

잠시 뒤, 시신들이 쓰러진 일대를 수색한 끝에 로어가 소리쳤다.

“상황 종료!”

산초는 발레리스의 상황을 생각하며, 섣불리 나가지 못했다. 양 진영을 죽여 입막음을 노린다면 지금이 기회였으니 말이다.

이때 산초의 우려를 짐작하는 듯, SFBC는 총을 집어넣은 채 산초에게 다가왔다.

“너희 중 서너 명이 법관과 검사관에게 증언해줘야겠다. 납치된 동료의 증언도 필요하니까 내일 요새로 데려오도록 해.”

“그거면 끝나는 건가?”

“중국 놈들이 스스로 여기까지 왔잖아. 습격했고, 너넨 그저 방어한 거다. 나머진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까 이만 돌아가 쉬어. 다들 고생했다.”

로어의 말에 산초가 동료들을 돌아봤다.

미소가 걸린 얼굴들을 보니, 무겁게 짓눌렀던 산초의 어깨가 한결 가벼워졌다.

콜로라도에 두 번째로 도착한 중국인.

도박, 매춘, 아편 사업과 자국민 보호비 명목으로 빨대를 꽂으려던 힙이통 조직원 24명이 제거되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차홍이 중국인들 캠프를 찾아갔을 때, 통역관 량웬허는 조직원 한 명을 이끌고 사라진 뒤였다.

*

요새 안 막스 사무실.

차홍의 보고를 들은 막스는 크게 개의치 않아 했다.

“가 봐야 캘리포니아겠지. 어차피 이번 일의 내막도 잘 모르잖아?”

“그렇긴 하지.”

잇달아 조직원들만 골라 죽었으니, 이상하다는 걸 눈치챘을 터. 오히려 량웬허가 돌아가면 조직은 콜로라도로 더는 사람들을 보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가봐야 희생만 늘어나니 말이다.

“남아있는 중국인 중에도 돌아가고 싶은 사람이 있을지도 몰라. 갈 사람은 가고, 남을 사람은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도시에서 자립할 수 있도록 차홍, 네가 도움을 줘.”

학교에서 영어를 배우고 새로운 삶을 살 기회.

일자리가 넘쳐나는 곳이라 가능한 일이었다.

만약 콜로라도에 중국인들이 다시 몰려온다면, 이는 금광이 아닌 대륙횡단 열차 노동자일 가능성이 컸다.

“현재 중국인이 몇 명이지?”

“음. 이번에 합류한 사람까지 총 224명이야. 그중 여자들이 48명이고.”

“요새 주변 5km 내외, 10 곳으로 쪼개서 머무르도록 해.”

“알겠어.”

처음처럼 집단을 고집하진 않는다. 막스에겐 그 요구가 통하지 않을뿐더러, 몇 개월 지내다 보니 장점이 있다는 걸 차홍도 깨닫고 있었다.

동포에게만 의지하던 사람들이 영어를 배우기 시작하고, 다양한 인종과 섞여 정착민으로의 삶을 살고 있었으니 말이다.

‘더는 안 늘었으면 좋겠다.’

차홍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지금의 적은 숫자가 가장 이상적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차홍이 돌아가고 얼마 후.

산초가 사무실을 찾아왔다.

하루 내내 법관과 검사관에게 시달렸는지 눈이 게슴츠레했다.

“어제 일은 들어서 알고 있지?”

“물론이다. 잘 끝난 것 같더군.”

“그래서 말인데.”

산초가 얼굴을 가까이하며 말을 이었다.

“제대로 된 일자리 좀 줘.”

‘역시.’

산초가 위험을 감수한 건 동료들 때문이었다.

지금은 비록 같은 히스패닉계에 국한되긴 했지만, 조직으로 확대되면 이점은 상당했다.

일종의 전우애로 똘똘 뭉친 집단이 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제대로 된 일자리가 뭔데?”

“이를테면, 광산 회사 직속 아니면 SFBC로다가···?”

“동료들까지?”

산초가 고개를 끄덕이고 막스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내심과는 다른 말을 꺼냈다.

“언제까지 동료들 챙길 거냐? 각자 능력이 다르다는 거, 몰라? 쓸데없는 오지랖이 동료들을 더 나약하게 만드는 거야.”

“나도 알아. 그래서 능력대로 고용해달라는 거고. 나를 포함해 3명은 SFBC로, 나머지는 네가 운영하는 대장간이나 다른 사업체로 넣어줘.”

“거래냐?”

“부탁이다, 보스.”

산초는 잡아먹을 듯 막스 보스를 쳐다봤다.

부탁하는 자세치고는 건방지지 않은가.

하지만 막스는 그게 오히려 마음에 들었다.

“네가 동료들을 가장 잘 알겠지. 능력대로 리스트를 뽑아봐. 어느 분야든 괜찮으니까.”

“...... 고맙다.”

“어제까진 거래였다 치고. 앞으론 한솥밥 먹기로 했으니, 신뢰를 쌓아보자.”

“난 보스를 신뢰한다.”

“뻥 치네. 어제 사람 몇 명 빼돌린 거 모를 줄 알아? 여차하면 전부 까발리려고 그랬지?”

“...... 그래서 지금부터 신뢰한다고.”

피식 웃음을 던진 막스는 이내 정색하며 입을 열었다.

“이제부터 넌 SFBC니까 가서 6주간 기초 훈련부터 받도록 해.”

“...... 훈련?”

“물론이지. 수료할 때 점수대로 너와 네 동료들의 위치가 결정될 거다.”

“광산 회사에 다른 자리는 없나, 보스?”

“없어, 인마.”

막스는 산초를 조 짐 주니어에게 맡겼다.

그렇게 산초는 동료 세 명과 함께 SFBC의 첫 히스패닉계 용병이 되었다.

*

콜로라도에 본격적인 채굴이 시작되면서 준투 도시에 사람이 몰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온갖 사건 사고가 끊이질 않았다. 

핑커톤 1,500명과 SFBC 150여 명이 광산과 도시를 누비며 치안 유지에 총력을 기울였다.

그리고 그중 강력한 갱단과 범죄에 특화된 조직이 있었으니. SFBC에서 별도로 구성된 최정예요원 ‘세븐 스트롱’이었다. 

- 자꾸 그딴 식으로 이름 지을 거야?

- 네이밍 센스가 진짜 어마어마하네.

- 입에 착착 감기지?

준투 내 핑커톤 제1 사무실.

수석팀장이자 총괄 책임자 토디는 여기저기 터지는 사건들을 분류하고, 그중 한 건을 비서에게 건네줬다.

“A 랭크다! 뉴멕시코에서 넘어온 갱단이니, 이건 세븐 스트롱에게 넘겨.”

“알겠습니다.”

로키산맥의 협곡. 센트럴 시티가 자리 잡은 사금을 채굴하는 지역에 갱단이 출몰했다.

이 일로 민간이 세 명이 죽고, 금을 빼앗은 놈들은 도시 남쪽 어딘가에 틀어박혀 있었다.

“보스! A랭크 들어왔어!”

와일드 빌 히콕이 가져온 서류를 훑어본 막스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세븐 스트롱 소집!”

“옛 썰!”

막스가 사무실을 나가자 콜린, 피치, 히콕, 조 짐 주니어, 산초, 네이선 로어가 말을 탄 채 기다리고 있었다.

“도시 남쪽으로 가자!”

“이랴앗!”

대부분이 금광을 목적으로 찾아왔지만, 일부는 사업을 하기 위해 방문한 사람들도 있다.

그중 40대의 중년인과 20대 후반의 남자는 곳곳에서 공사 중인 도시를 보며 탄성을 질렀다.

“이 도시를 보게나. 광산도 그렇고 전부 그자가 관련되어 있다네. 그게 뭘 말하겠어?”

“아무래도 돈이 많다는 거겠죠. 혹시 그동안 마음이 바뀐 건 아니겠죠?”

“그렇게 걱정할 거였으면 진작 결정을 내렸어야지.”

“...... 일단 막스 그 친구를 만나러 가보죠.”

올해로 50세가 된 호레이스 스미스. 그는 자신보다 17살이나 어린 동업자 다니엘 웨슨과 함께 요새로 향했다. 스미스 앤 웨슨을 설립한 둘은 막스와 협상을 하기 위해 직접 콜로라도를 찾아왔다.

그런데 이때 이 둘을 향해 말 일곱 필이 먼지를 일으키며 빠른 속도로 지나갔다.

다다다다다다.

“거, 뭐가 그리 급하다고 쯧쯧.”

스미스와 웨슨이 손으로 먼지를 걷어낼 때.

다른 의미에서 도시를 찾아온 사업가가 있었다. 

광부를 상대로 텐트, 직물, 의류 등을 파는 자로, 캘리포니아 골드러시에서 꽤 성공을 거둔 인물이었다.

“일단 시장조사부터.”

남자는 콜로라도에 상점을 내기 전, 미리 입점한 가게들을 살펴봤다.

그러던 중 텐트 천막 재질인 캔버스 천으로 만든 갈색 바지를 발견하곤 시선을 떼지 못했다.

충격적인 건, 주머니가 뜯어질 걸 막기 위해 작은 구리 리벳이 박혀있다는 점이었다.

‘...... 맙소사!’

리바이 스트라우스는 눈을 껌뻑이며 가게 점원에게 물었다.

“이거 직접 만든 겁니까?”

“로렌스에서 가져온 거예요.”

가게 점원은 로렌스 마을에서 온 정착민.

막스와는 보안관 시절부터 알고 있던 자였다.

“공장이 거기에 있나요? 가면 사장을 만날 수 있습니까?!”

“아, 사장님은 요새 안에····?”

이때 가게 밖으로 말발굽 소리가 들려오고.

점주의 시선이 빠르게 스치는 그들을 따라 움직였다.

“없고···· 지금 갱단 하나 작살 내러 가는 모양이네요.”

“네? 사장이 갱단을요?”

아직은 청바지가 나오지 않은 시기.

광부들에게 필요한 잡다한 물건을 팔던 리바이 스트라우스는 가게에 있는 희귀한 물건들을 살펴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 사장이 갱단을? > 끝

< 100달러 >

준투 도시 남쪽의 캐슬 록.

세븐 스트롱은 하루 동안 일대를 정탐한 끝에 뉴멕시코 출신 갱단 시드니 하운드 독의 안전 가옥을 찾아냈다.

“피치와 내가 쏘면 그때가 시작이다. 앞은 우리가 맡을 테니까, 나머지는 알아서들 해.”

예전에나 시시콜콜 지시를 내렸지, 지금은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각자의 역할을 알고 있다. 다섯은 근거지인 오두막 후미를 포위하고, 막스와 피치는 서로 거리를 둔 채 저격을 준비했다.

천으로 휘감은 라이플을 꺼내든 피치.

알프레도가 만든 일명 ‘막스 에이원’ 라이플.

볼트를 젖혀 코킹하고, 탄피 바닥의 둥근 홈에 맞물린 카트리지를 끼워 다섯 발을 동시에 집어넣었다.

‘진짜 보면 볼수록 놀랍네.’

센터파이어 방식의 풀메탈재킷 총알도 그렇고 재장전 시간은 무려 20분의 1로 줄어들었다.

거기다 정확도는 어떻고.

오른쪽 뺨에 개머리판을 맞댄 피치는 스코프에 미세하게 그어진 십자 조준경으로 표적을 찾았다. 적들이 있는 곳과는 불과 2백 미터.

스코프가 필요 없는 거리지만, 익숙해지기 위해서 사용한다.

주먹 만한 대가리가 스코프에 들어오고.

숨을 고른 피치가 슬며시 방아쇠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타아아앙!

산자락 밑에 총성이 울리고, 피치가 노린 표적의 머리가 꺾이며 피를 뿜어냈다. 

곧이어.

타아아앙!

막스가 쏜 총탄 역시 다른 한 명의 머리를 관통. 오두막 밖에 있던 놈들이 황급히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창문 안에 뭔가 보인다 싶으면 막스와 피치가 어김없이 총을 쏴댔다. 그렇게 둘이 적들의 시선을 끌 때, 다섯 명이 오두막에 접근했다.

마침내 입구에 도착했을 즈음. 

방패를 앞세운 로어가 문을 부숴버렸다.

쾅!

“죽어라, 개새끼들아!”

“감히 우리가 누군지 알고, 덤벼!”

갱단이 소리치며 난사하기 시작했다.

탕! 탕! 탕!

팅! 팅! 팅!

“!?”

놈들이 쏘아댄 총알이 방패에 튕겨나갈 때.

창문 위로 콜린과 히콕, 조 짐 주니어, 산초가 불쑥 튀어나왔다.

곧이어 그들이 겨눈 총구에서 불이 뿜어지고 적들은 순식간에 궤멸 되었다.

스코프로 상황을 지켜본 막스는 건물 내 진입을 좀 더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두 가지를 떠올렸다. SFBC 용병들의 안전을 위해 그리고 효과적인 적들의 제거를 위해.

‘섬광탄과 연막탄도 만들어야겠어.’

순간적이나마 빛과 폭음으로 적들을 무력화할 수 있는 섬광탄. 

적들의 시야를 막고, 아군의 위치를 감출 수 있는 연막탄은 여러모로 쓰임새가 있었다.

하운드 독 갱단의 안전 가옥에서 3천 달러 상당의 금과 현금을 확보. 막스는 죽은 민간인들의 유족에게 금을 돌려주기로 하고, 나머지 전리품들은 SFBC로 귀속시켰다.

*

요새 안 막스의 사무실 옆.

최근 마련된 응접실 소파에 스미스와 웨슨, 그리고 리바이 스트라우스 등이 앉아 커피를 마시고. 일부는 벽에 붙은 현상금 수배 전단지를 훑어봤다.

WANTED

DEAD or ALIVE

윌리엄 콴트릴의 얼굴과 그 아래엔 메도우스 대학살 사건의 주범이라고 쓰여 있다. 

한 달 전, 막스가 지시한 것으로 현상금 액수는 무려 천 달러였다.

이 정도면 현상금 사냥꾼들이 달라붙지 않겠는가. 콴트릴은 피해 숨어다니거나 활동에 제약을 받을 터. 막스는 우편물을 배달하는 역마차를 통해 서부 전역에 전단지를 배포했다.

기다리기가 지루했는지, 소파에 앉아있던 자들이 막스에 관해 대화를 나누었다.

“동양인이라고요?”

“모르셨군요. 듣기로는 조선인이라고 하더군요.”

“조선이 어디지···.”

막스를 직접 만나 본 건 호레이스 스미스가 유일하다. 그래서인지 어느새 이야기의 중심이 되어 있었다.

“친우인 섬너 대령의 말을 빌리면, 로렌스 보안관 시절 장난 아니었다고 하더군요. 제이호커스 지휘관이었던 적도 있었고. 아무튼 무기에 관한 지식이 아주 뛰어난 사람이었습니다.”

“허, 대단하군요. 사실 저는 옷 때문에 찾아왔는데, 이거 제대로 온 건지 모르겠습니다.”

“옷이요?”

“그런 게 있습니다. 아주 놀라운 걸 발명했더라고요.”

“특허만 수십 개 들고 있다던데. 그 분야가 총기만 국한된 건 아닌 모양이군요.”

스미스와 웨슨. 그리고 리바이 스트라우스가 나누는 대화를 다른 사람들은 귀를 쫑긋 세우며 듣고 있었다.

이들은 신문 광고를 보고 찾아온 사람들로 전문적인 기술자 혹은 학자들이었다.

잠시 후.

응접실로 막스의 비서가 들어왔다.

산초의 동료 칸토. 커피를 기가 막히게 잘 타고 눈치가 빠르다는 능력으로 비서가 된 자다.

잘생긴 외모에 쌍꺼풀이 짙고 느끼한 눈, 목소리 또한 기름기가 흐르는 칸토가 스미스와 웨슨을 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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