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5화 (105/360)

막스의 눈이 가늘어지자 산초가 말을 이었다.

“사실 나 테야노스다. 여기서 나만큼 잘 아는 사람은 없을 거야.”

“테야노스가 뭔데?”

“멕시코 전쟁 이전부터 텍사스에 살던 멕시코인이지. 정확히는 스페인 식민시절부터 살던 토박이랄까. 나는 그 후손인 거고.”

테야노스라는 말도 스페인어라 했다.

흥미를 느낀 막스가 질문을 던졌다.

“혹시 텍사스에서 목장 하는 사람들 알아?”

“그냥 가면 죄다 소 키우고 있다. 달리 할 게 없거든.”

“그 소가 롱혼 맞지?”

롱혼은 뿔이 양쪽으로 길게 자란 소들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땅을 발견했을 때 스페인에서 가져온 소들이었다.

그리고 주로 텍사스에 있어서 ‘텍사스 롱혼’이라 불리기도 한다.

버팔로의 경우 길들이기가 힘들어 인디언들은 가축화하는 데 실패했다. 결국 필요한 때에만 사냥함으로써 식량과 가죽을 조달했다.

막스가 소에 관심을 둔 건 바로 이런 인디언들 때문이었다.

롱혼을 키우며 인디언들이 자급자족할 수 있다면 어떨까. 버팔로에만 의존하던 인디언들의 삶이 풍요로워지진 않을까.

물론 단순한 생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머지않아 닥칠 인디언과 버팔로의 위기를 타개할 뾰족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막스가 코디를 세뇌한들, 버팔로 학살은 피하기 힘들다.

연방 정부의 인디언 말살 정책과 맞물려 버팔로는 대륙횡단 기차의 장애물이었고.

동부의 한 사업가가 버팔로 가죽 가공법을 개발해 수요가 폭증했으니 말이다.

“산초. 혹시 그 목장에서 소들을 대량으로 사들일 수 있어?”

“얼마나? 참고로 마리당 3.5달러에 거래된다.”

“가격까지 아네. 한 1만 마리 정도 사고 싶은데. 한 번에는 불가능하겠지?”

“가능해. 카우보이들을 고용하면 되거든.”

산초가 말한 카우보이들은 농장에서 일하는 흑인 노예들이나 히스패닉계 노동자다.

영화에서 등장하는 백인 카우보이가 등장하는 건 남북전쟁 이후의 일이었다.

‘1만 마리를 한 번에 콜로라도로 몰고 올 수 있다, 이거지.’

“그럼. 소 사러 가자.”

“...... 진짜 그 이유야?”

“그럼 무슨 다른 이유가 또 있어? 여기도 식량이 부족하잖아. 인디언들에게 지급할 경비를 소로 지불하고, 목장을 경영하게 해줄 거야.”

다들 막스를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본다.

“롱혼은 기후에도 강하고 풀이 적은 곳에서도 잘 살아남는 종이야. 콜로라도에서도 키울 수 있으니까, 진작부터 가져올 생각을 했거든. 아주 오래전부터.”

‘내가 왜 이렇게 일일이 설명하고 있냐.’

막스가 어이없는 표정을 지을 때, 히콕이 물었다.

“그럼 소만 사고, 그 현상금 내건 새끼들은 그냥 지나치는 거야?”

“...... 아마 가는 길일걸?”

“텍사스 안 가봤다며? 타호카 타운이 어딘지도 모르잖아.”

막스가 히콕을 쏘아봤다.

“반드시 지나간다고.”

"근데 왜 화를 내?"

*

며칠 동안 작전을 수립하고, 그 사이 막스는 정보부대를 먼저 급파했다.

그들은 현상금을 내건 마을을 미리 정찰해 정보를 수집하고, 산초의 동료였던 히스패닉계 대원들은 더 멀리 이동해 목장주에게 대량의 소를 구매할 것이다.

“그럼 가볼까!”

막스는 세븐 스트롱과 대원 10명을 이끌고 남동쪽으로 진격했다.

텍사스의 면적은 대한민국의 7배, 유럽에서도 땅이 큰 축에 속하는 프랑스보다도 21%가 더 넓다. 

일개 주로는 터무니없이 큰 땅덩어리였다.

콜로라도 푸에블로를 지나 텍사스주 경계까지 500km. 황무지뿐인 땅을 사흘 만에 주파하고, 살로워터란 작은 마을에 도착하는데 꼬박 닷새가 소요되었다.

마을 부근에 진을 친 막스는 미리 간 정보원들을 기다렸다.

“이 부근은 죄다 황무지지만 동쪽은 평원이야. 정착민들은 평원에서 목장을 하고 있고.”

산초의 말을 들으며, 막스는 광활하게 펼쳐진 땅을 응시했다. 대충 시추기 꽂으면 석유가 콸콸 쏟아진다는 축복받은 땅. 

‘여길 차지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텍사스는 절대 만만치 않은 곳이다.

특히 텍사스 레인저스.

“현재 레인저스는 100명 안팎, 한동안 해체되었다가 현 주지사가 작년에 부활시켰어. 본부는 오스틴. 무법자들과 인디언들을 상대하고, 멕시코 전쟁에선 군인으로도 활약했으니까. 경험 많고 노련한 집단이지.”

“아는 사람은?”

산초가 고개를 저었다.

“백인 외에는 끼기 힘들어. 최근에는 아파치, 코만치 등 인디언들과 전쟁을 벌이고 있고, 노예제 옹호론자들이라 보스와는 성향이 맞지 않을 거야.”

둘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일단의 무리가 말 먼지를 일으키며 접근했다.

망원경을 보던 피치가 말했다.

“터커 부대야. 옆에 인질 한 놈도 잡아 왔네.”

“하여간 일 야무지게 한다니까.”

히콕이 손을 흔들고, 잠시 후 터커와 대원들이 일행과 합류했다.

터커는 말에서 인질을 떨어트리며 말했다.

“이번 일이 누구 소행인지 알아냈습니다.”

윌리엄 콴트릴.

그 이름이 또 등장했다.

하지만 막스는 별로 놀라지 않았다.

텍사스가 워낙 뜬금없어서 긴가민가했었을 뿐, 어느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다.

‘사이코 새끼. 현상금 천 달러짜리가 여기서 나를 기다린다 이건가?’

막스는 인질 머리에 뒤집어씌운 천을 벗겨냈다.

“콴트릴은?”

“...... 한 달 전에 떠났다.”

“어디로?”

“정확히는··· 모르지만. 북동쪽으로 갔다는 건 확실해.”

‘북동쪽이라.’

현상금 사냥꾼을 뿌리치기 가장 좋은 장소.

미주리다.

콴트릴은 원 역사대로 보더 러피안을 선택한 듯싶다. 돈보다는 헛된 신념으로 들어찬 집단이 안전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원래 있을 곳으로 돌아간 건가.’

남북전쟁에서 남부군의 게릴라 지휘자인 콴트릴은 제 자리를 찾아갔다.

그런데 가기 전 고춧가루를 잔뜩 뿌리고 갔다.

막스를 사칭해 마을을 약탈했다고 했으니. 

“그럼 지금 타호카 타운에 누가 있어?”

“톰 벨. 네가 두목의 동생을 죽였다고 해서 잔뜩 벼르고 있거든.”

인질은 살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묻는 말에 크고 또렷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놈 동생이 누군데?”

“롬 벨···.”

“그게 누군데 새끼야.”

히콕이 뒤통수를 후려쳤다.

인질은 이를 악물며 설명을 이어갔다.

롬 벨은 콴트릴과 함께 몰몬교 민병대였고, 막스가 쏜 총에 죽었다. 그런데 그 롬 벨이 바로 톰 벨의 동생이었다는 이야기였다.

“콴트릴이 찾아와서 이 얘기를 해줬고. 현상금 걸면 알아서 찾아올 거라 그랬어.”

“근데 100달러는 누구 생각이야?”

피치가 끼어들었다.

그게 가장 궁금한 모양이다.

“톰 벨. 50달러로 한다는 걸, 콴트릴이 정신 나갔냐고 해서 겨우 100달러로 올렸어.”

“......”

다들 기막힌 표정을 지을 때, 산초가 막스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 톰 벨은 캘리포니아 역사상 최초의 역마차 강도야. 병신같이 실패했지만, 이후에 민간인들을 습격하고 죽여서 캘리포니아 레인저스에게 쫓겼거든. 근데 여기에 처박혀 있었나 보네.

이곳저곳 일자리를 찾아 떠돌던 산초는 아는 것도 많았다.

- 캘리포니아에서 톰 벨이 잘하던 짓이 있었는데···.

산초가 속삭이려 할 때, 인질이 쭈뼛거리며 말을 이었다.

“톰 벨은 너와 일대일 대결을 원해. 누가 속사 실력이 뛰어난지 겨뤄보고 싶어 했거든.”

- 나왔다. 저거야, 저거. 일대일 한다면서 뒤통수치는 게 톰 벨 전문이거든.

“그, 그래도 톰 벨은 진정한 남자야. 지금까지 그런 대결을 몇 번이나 했었다구. 너도 생각 있으면 내가 두목한테 가서 말해줄게.”

막스는 인질의 눈을 응시했다.

‘내가 자신을 메신저로 쓰길 바라는 군.’

“잔 대가리 굴리긴.”

속내를 들킨 듯 인질의 눈빛이 흔들리고, 이내 입술을 깨물었다. 

막스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모레. 룸스빌 타운에서 일대일 대결을 한다고 전해.”

인질이었던 남자의 얼굴에 희색이 돈다.

하지만 재빨리 표정을 관리했다.

“나도 남잔데, 일대일 대결을 피하면 되나.”

인질을 말에 태워 돌려보낸 뒤, 막스는 일행을 둘러보며 말했다.

“뒤통수 제대로 치자고.”

“진짜 우릴 개 호구로 봤네. 그런데 콴트릴, 그 사이코 새끼 계획치고는 별거 없잖아?”

히콕의 말에 막스가 고개를 저었다.

“만약 내가 콴트릴이었다면. 톰 벨은 미끼고 진짜 상대는 텍사스 레인저스겠지. 남의 땅에 와서 일을 저질렀으니, SFBC와 대결 구도를 만들려 했을 거야.”

“설마 그런 생각까지 했을까?”

“그야 모르지. 뭐가 되었든. 텍사스 레인저스가 와도 우리가 꿀릴 거 있나?”

“없지!”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의 SFBC라면 텍사스 레인저스와 붙어도 이길 자신이 있었다.

물론 그런 전면전은 피해야겠지만 말이다.

‘이 기회에 텍사스 레인저스와 접점을 만드는 것도 나쁘지 않아.’

막스는 산초가 알려준 룸스빌 마을에 정찰대를 미리 파견했다. 

마을 사람이래야 고작해야 30명 내외. 

황무지에 어울리는 황량한 마을이라 했다.

막스가 약속된 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산초의 동료와 대원들은  텍사스 중심부의 평원에 있는  목장을 방문했다.

입구의 푯말에는 라 엘레라 목장(La Elera Ranch)이라 쓰여 있었다.

무장한 자들이 몰려오자, 긴장한 목장 주인인 중년 부인이 일꾼들을 불러 모았다.

그들의 손에는 총이 들려 있었다.

이때 산초의 동료 호세 라울이 손을 흔들며 소리친다.

“El Maria. Cuánto tiempo sin verte(엘 마리아. 정말 오랜만이네요)!”

“José Raúl. De verdad eres tú(호세 라울, 진짜 너 맞아)?”

중년 부인의 얼굴이 밝아지고, 총구는 아래로 내려 무장을 해제했다. 

텍사스 토박이 테야노스만의 끈끈함이랄까.

부인은 호세 라울과 대원들을 환영하며 집 안으로 초대했다.

“소가 필요하다고? 몇 마리나?”

“1만 마리요.”

부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엄청난 숫자네. 그걸 다 뭐 하려고?”

“콜로라도로 데려가려고요. 가능해요?”

“나 혼자는 불가능하지. 뭐, 주변에 다른 목장들과 얘기하면 되긴 할 거야.”

“그럼 카우보이들도 같이 알아봐 줘요. 시세는 두당 4달러로 쳐 드릴게요.”

여인은 행복한 비명을 속으로 삼키며 물었다.

“금광 간다더니 그새 돈을 번 거야?”

“제가 아니라, 우리 보스가 돈이 좀 많아요. 광산 회사 오너거든요.”

“와우, 그럼 돈은 진짜 많겠네.”

라울과 동료들이 머무는 동안 여인은 분주하게 움직였다. 인근 목장과 연계해 판매 가능한 소들을 추려 1만 마리를 만들어냈다.

“이 정도 규모로 소를 몰려면 카우보이 40명은 필요할 거야. 거리도 꽤 되니까 콜로라도까지 두 달은 걸릴 거고. 지금까지 이런 적이 없어서 카우보이들이 지원하려나 모르겠네.”

“가는 길에 우리도 함께할 거니까, 위험은 줄어들 거에요. 그걸 좀 말해줘요.”

카우보이 10명이 보통 3천 마리의 소를 몬다.

기나긴 여정 동안 인디언들과 맹수의 습격 등을 고려하면 꽤 힘든 일이었다.

더욱이 이런 규모의 소 떼를 몰고 이동한 적이 많지 않은 시기라, 카우보이들은 주로 노예에서 해방된 흑인들이나 멕시코에서 넘어온 값싼 노동자들이 주를 차지했다.

호세 라울과 대원들이 소를 구매하는 동안.

막스와 톰 벨의 결투 시간이 다가왔다.

세븐 스트롱은 마을 어딘가에 은신하고 있고. 뜨거운 태양 아래, 말을 탄 막스는 느긋느긋하게 룸스빌 타운으로 향했다.

황무지에 부는 먼지가 뒤섞인 뜨거운 바람. 

실뭉치처럼 굴러다니는 회전초가 그 황량함을 더했다.

< 뒤통수 전문 갱단 > 끝

< 막내 뒤로 빠져 >

룸스빌 타운.

아침부터 일단의 무리가 먼지를 일으키며 마을 안으로 들어섰다. 열 개도 되지 않는 건물.

한복판에 멈춰선 자들이 말에 탄 채 소리쳤다.

“오늘 이곳에 피바람이 불 것이다! 우리에게 협조하면 아무 일도 없을 테니, 알아서 잘하도록!”

얼마 되지 않는 마을 사람들은 무장한 자들의 시선을 피하며 황급히 문을 닫았다.

빨래를 널던 여인도 마음이 급한지 손이 빨라졌다. 그런 그녀의 뒤태를 무리 중 하나가 노골적으로 훑어내렸다.

“호오. 여기에서 썩긴 아까운데?”

“저건 오늘 내 거다.”

“지랄. 내가 먼저 찜했어, 새끼야.”

“헛소리 말고, 오늘 일에나 집중해.”

두목의 말에 부하들이 입맛을 다신다.

하지만 눈빛은 여전히 여자의 뒷모습을 노려보고 있었다.

“다들 위치부터 잡아.”

두목의 말에 부하들이 이리저리 흩어졌다.

상점과 마굿간. 가정집까지 들쑤시며 자신들이 있을 곳을 선점하고자 했다.

‘넌 오늘 내거다.’

마치 기회라도 잡은 듯, 부두목은 여인이 있는 집으로 향했다.

갱단의 두목은 부하에게 고삐를 넘겨주곤, 느긋느긋 술집을 향해 걸어갔다.

T Saloon의 입구.

한가하게 의자에 몸을 묻은 바운서가 얼굴을 가린 모자를 슬쩍 들어 올렸다.

눈빛이 마주치자 바운서는 이내 모자를 덮어 다시금 잠을 청했다.

“게으른 바운서로군.”

삐걱, 삐걱.

스윙도어를 밀고 들어온 남자의 날카로운 시선이 술집 안을 훑는다. 이내 발걸음이 바텐더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나무 바닥의 삐걱거림이 멈추고, 바텐더 앞에 앉은 남자는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위스키로.”

옆으로 젖혀진 허리춤엔 화려하게 장식된 콜트 네이비 리볼버 손잡이가 반짝거렸다.

또르르.

술잔에 위스키가 채워지고, 히스패닉계 바텐더는 남자 앞에 술잔을 내밀었다.

“바텐더, 자네도 이곳 출신인가?”

“그렇습니다. 테야노스죠.”

“이 마을이 언제 생겨났지?”

“한 30년 됐을 겁니다. 멕시코 전쟁 이후로 마을이 썰렁해졌죠.”

“이딴 황무지 마을에 그동안 버틴 것도 용하군. 오늘 밤 거하게 파티나 할 생각인데. 술과 음식은 충분하겠지?”

유리컵을 천으로 닦던 바텐더가 씨익 미소를 지었다.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가져와야죠. 일행이 많은 것 같습니다만.”

“대충 20명분 준비해둬.”

“근데 오늘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

바텐더는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마치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닌 듯 여유마저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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