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동생을 죽인 새끼가 올 거거든.”
“복수군요.”
“재미있는 사실이 뭔지 아나?”
“글쎄요.”
“놈이 동양인이라는 사실이야.”
“그게 재미있는 겁니까?”
남자, 톰 벨은 피식거리며 말했다.
“캘리포니아에서 내가 죽인 중국인만 백 명이야. 근데 그런 버러지 같은 족속이 내 혈육을 죽였으니 재미있지 않나?”
“재미있군요.”
‘중국인 백 명은 개뿔. 하여튼 이 새낀 입만 열면 그짓말이야.’
톰 벨이 바텐더와 이야기를 나누는 때.
여자를 쫓아갔던 부하 놈의 집요한 스토킹이 시작됐다.
“혼자 사는 거야?”
“갑자기 남의 집에 와서 그건 왜 물어?”
“앙칼지긴.”
남자는 입가에 흐르는 침을 닦으며 여자에게 다가갔다.
“나이도 어린 것 같은데. 대체 이런 황무지엔 왜 있는 거야.”
“그러니까, 그걸 왜 묻냐고. 남이야 있든 말든 그게 무슨 상관인데?”
“크크. 그냥 궁금해서 그렇지. 2층을 좀 쓰고 싶은데 괜찮겠지?”
안 괜찮으면 어쩔 거야. 남자는 허리춤의 총을 슬쩍 내보이며 이죽거렸다.
“심심하면 같이 올라가든가.”
“헛소리 마. 이상한 짓 하면 소리친다.”
“하여간, 성깔은. 일 끝나면 다시 얘기하자고.”
2층으로 여유롭게 올라가는 남자를 보며 여인이 비릿한 조소를 흘렸다.
*
정오가 한참 지나도록 마을은 고요하기만 하다. 시간이나 때우려 남의 집에서 포커하던 부하들도 슬슬 짜증이 치밀기 시작했다.
“이 새낀 대체 언제 오는 거야. 튄 거 아냐?”
“그냥 겁쟁이였던 거지.”
“세븐 스트롱은 개뿔. 하여간 약한 새끼들 꼭 이름을 그렇게 지어요. 라이언, 타이거, 블러드. 이딴 이름은 거르고 봐야 해.”
콴트릴이 워낙 대단한 실력이라고 강조했기에 내심 긴장은 했었다. 그런데 약속 시간에 나타나지 않는 걸 보면 콴트릴의 말이 거짓인게 분명했다.
“그때 콴트릴을 잡았어야 했어. 톰 벨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현상금 천 달러를 그냥 돌려보낸 거야? 동생을 언제부터 그렇게 끔찍이 생각했다고.”
“복수는 그냥 핑계지. 콴트릴 그 자식 실력이 보통이 아니라서 보낸 거야. 톰 벨이 눈치 하나는 빠르잖아.”
“하긴. 그 새끼 눈깔부터가 예사롭지 않더만.”
“야, 넌 가서 물이나 가져 와.”
집에 있던 우두커니 서 있던 남자가 컵에 물을 담아왔다.
“이 새끼가, 애들 컵을 가져왔네.”
“그냥 제 덩치가 커서 그렇습니다.”
장신에 근육 덩어리인 남자가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컵을 받아든 놈은 그제야 자신의 몸과 손이 왜소함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이 새낀 황무지에서 혼자 다 처먹었나.”
“하이에나처럼 처먹은 건가.”
남자를 비웃던 톰 벨의 부하들은 이내 포커 게임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오후가 되고.
마침내 말을 탄 남자가 마을을 찾아왔다.
“오, 드디어!”
포커판을 엎은 두 놈이 황급히 옥상으로 올라간다. 덩치가 큰 남자는 느긋하게 숨겨둔 무기들을 주섬주섬 챙기며 무장을 시작했다.
그리고 벽면에 기댄 커다란 철판을 들고 천장을 바라봤다.
“저것들을 어떻게 죽여줄까.”
여인이 있던 집.
2층 창문가에 있던 톰 벨의 부하가 라이플을 꺼내 옆에 세워두었다. 이때 아래층에 있던 여인이 올라왔다.
‘미친년이 여태 가만히 있다가 지금 오네.’
“나 지금 바쁘다. 방금 건방진 새끼가 도착했거든.”
“근데 왜 안 쏴?”
“그럼 일대일 대결이 아니지. 딱 시작할 타이밍에 쏴야 그럴듯하게 보이는 거다. 그게 우리 두목이 원하는 방식이거든.”
“비겁하네. 그래놓고 일대일 대결에서 이겼다고 할 거 아냐.”
“비겁하긴, 죽은 놈이 병신이지. 일단 살고 봐야 너같이 예쁜 여자를 얻을 수 있는 거라고.”
‘역겨운 새끼. 예쁜 건 또 알아서.’
여자는 속이 울렁거리는 걸 참아냈다.
남자의 시선이 다시금 창문 밖으로 향하고.
뒷짐을 진 여인은 서서히 남자에게 접근했다.
그리고는.
보위 나이프를 뽑아 남자의 목 뒤에 쑤셔 박았다.
푸욱.
경악한 남자의 고개가 돌아가며 여인에게로 향했다.
“시발, 비치···.”
“에밀리에 피치야, 인마.”
쑤컹.
칼을 빼자 피가 솟구친다. 피치는 히죽 웃으며 놈의 옷에 칼을 문질러 피를 닦아냈다.
눈으로는 창문 밖을 쳐다봤다.
그리고 이때,
톰 벨이 일갈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늘, 내 동생의 복수를 끝낸다!”
비웃음을 머금은 피치는 아래층으로 내려가 숨겨둔 라이플을 손에 쥐었다. 다시 2층으로 올라와서는 건초더미 뒤에 숨어있는 놈들을 겨냥했다.
잠시 후.
탕! 탕! 탕!
막스의 패스트 드로우에 이은 패닝.
톰 벨과 뒤에 있던 수하 둘이 쓰러지고, 이를 신호로 피치가 방아쇠를 당긴다.
타아앙!
동시에 술집 밖에 있던 바운서 콜린과 바텐더 산초는 숨어있던 톰 벨의 수하들을 향해 총을 쏘기 시작했다.
같은 시각. 옥상에 있던 톰 벨의 두 부하는 막스가 아닌 뒤에서 튀어나온 적을 향해 총알을 쏟아부었다.
“이 미친 새낀 뭔데!”
탕! 팅! 탕! 팅!
두꺼운 철판을 앞세우며 돌진하는 남자.
그냥 뒤에서 총 쏘면 될 걸 굳이 네이선 로어는 육탄전을 고집했다.
총알이 떨어지고 재장전이 필요할 즈음.
로어는 방패로 두 놈을 후려쳐 옥상에서 떨어트렸다. 그래봐야 2층.
리볼버를 꺼낸 로어는 짙은 미소를 지으며 꿈틀거리는 놈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탕!
곳곳에서 들려오는 비명.
조 짐 주니어는 이미 칼로 두 명을 제거했고, 건물 어딘가에 숨어있던 히콕은 과감하게 몸을 드러내며 총구에 불을 뿜어댔다.
히콕은 총알을 아끼지 않는다.
죽은 게 확실해도 몇 번을 더 쏘며 총알을 낭비했다. 그 때문에 장전할 때가 되면 옆에 있던 코디가 새로운 리볼버를 던져준다.
“작작 좀 쏴, 히콕!”
“크하하하!”
히콕이 톰 벨의 마지막 부하를 죽였을 때.
비로소 마을이 고요해졌다.
코디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히콕이 사용했던 리볼버 탄피를 소중하게 챙기기 시작했다.
SFBC에겐 막스가 만든 센터파이어 풀메탈재킷 총알이 지급된다.
처음엔 미친 듯이 환호했지만, 뒤늦게 자신들의 목줄을 옭아매는 덫임을 깨달았는데.
- 이 탄피를 잃어버리는 순간, 그냥 그 자리에서 자살하는 걸 추천한다. 우리는 그 탄피를 찾을 때까지 밥은 물론, 잠도 자지 않을 것이다. 또한 한 사람이 잃어버려도 그건 모두의 책임이다.
실제로 훈련할 때, 누군가 탄피 하나를 잊어버린 적이 있었다.
막스는 사이코처럼 분노하며 탄피를 잃어버린 대원을 죽일 듯 몰아세웠다.
SFBC 전원이 달려들어 결국엔 찾았지만, 이미 탄피를 잃어버린 대원의 멘탈은 탈탈 털린 뒤였다.
- 이 탄피는 SFBC만의 무기다. 절대 외부로 나가선 안 된다. 앞으로 너희에게 지급될 총기도 마찬가지다.
- ...... 그 총 안 받으면 안 됩니까?
- 안 된다.
- ...... 만약 적에게 잡히면 어떻게 합니까?
- 그래서 조만간 자폭할 수 있는 폭탄을 만들 예정이다.
- !
마지막 한 발까지 탄피를 챙기고 숫자를 확인하고서야 히콕과 코디는 막스와 합류할 수 있었다.
콜로라도에서 텍사스까지 이름을 떨친 세븐 스트롱. 석양을 등진 그들이 하나둘 막스를 중심으로 모여든다.
그런데 길게 늘어진 그림자의 수가 여덟.
미간을 찌푸린 막스가 한 명을 힐끔 쳐다보며 고갯짓했다.
“숫자 안 맞는다. 막내 뒤로 빠져.”
“씨·······.”
입을 삐죽 내민 버팔로 빌 코디가 와일드 빌 히콕 뒤로 숨었다.
마침내 완성된 일곱 개의 그림자.
흡족한 미소를 지은 막스가 침묵에 휩싸인 마을을 향해 입을 열었다.
“협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약속대로 톰 벨의 현상금은 마을의 몫으로 남기도록 하죠.”
드르륵.
덜컥.
문과 창문이 열리며 사람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톰 벨 갱단은 캘리포니아 레인저스에게 쫓겨 텍사로 도망쳐왔다. 그런 만큼, 놈들의 몸에 붙은 현상금은 5백 달러. 이를 돌려주는 조건으로 마을의 협조를 구할 수 있었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산초가 이곳 술집 주인을 알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마드리오. 보스가 오늘 술집에서 파티를 열겠다는데 괜찮겠어?”
“마을 사람들도?”
“물론이지. 소 떼가 올 때까지 여기서 머무를 생각이야. 사실, 우리 보스가 돈이 좀 많거든.”
광산의 실제 주인이라는 이미지가 덧붙여져서 그런지, SFBC 대원들은 막스를 엄청난 부자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실상은 전혀 달랐다.
버는 족족 돈을 쓰느라 막스는 알프레도보다도 돈이 없었다.
그냥 빛 좋은 개살구였다.
‘뭐, 내일은 또 채워지겠지.’
무서운 속도로 곳간은 채워지지만, 그만큼 빠르게 사라지는 게 현실.
그렇다고, 오늘 파티때문에 망할 정도는 아니었다.
중요한 건 텍사스 레인저스와 협상할 정도로 마을 사람들의 인심을 얻는 것이었으니까.
세븐 스트롱이 룸스빌에서 톰 벨 갱단을 제거하는 동안. 터커가 이끄는 정보 대원들은 갱단이 있던 본진을 털고 있었다.
타호카 타운.
갱단의 거처를 지키는 수하 세 명은 이미 싸늘한 주검이 되었고. 지난번 인질이었던 놈은 또다시 터커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그리고 놈을 앞장세워 집안에 숨겨둔 금은보화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보스! 이놈들 이거 알짜였네요!”
보스는 없지만, 터커는 잔뜩 흥분해 소리쳤다.
톰 벨 갱단은 캘리포니아와 텍사스에서 강도질로 긁어모은 재산이 적지 않다.
이를 전부 챙긴 터커는 놈들의 거처를 빠져나와 인질을 말에 태워 룸스빌로 향했다.
*
며칠이 지나고 타호카 타운.
통나무 집안을 살피고 시체를 끌어내던 남자들이 혀를 내둘렀다.
“톰 벨 갱단이 여기 숨어있었다니, 참나.”
“난 현상금 걸린 놈이 현상금을 걸었다는 게 더 웃겨.”
“보안관이랑 뭔 관계가 있던 거겠지. 아니면 말이 안 되잖아.”
타호카에서 벌어진 일은 텍사스 레인저스의 귀에도 들어가고. 현장으로 달려온 그들은 즉시 탐문 수사를 벌였다.
“이든 보안관, 톰 벨과는 무슨 관계였나.”
“관계라뇨. 얼굴만 마주치는 정도였습니다.”
네이선 로어에 버금가는 장신의 남자.
텍사스 레인저스의 리더 윌리엄 알렉산더 앤더슨 월러스라는 자였다.
그는 보안관을 보며 냉소했다.
“현상금 걸린 놈이 현상금을 내걸었는데, 그걸 덜컥 수락했다는 게 말이 되나?”
“그, 그거야 그놈이 톰 벨인지 누군지···· 힉!”
월러스는 총을 꺼내 보안관의 머리를 겨눴다.
“이미 마을 사람들에게서 소문은 들었어. 쥐새끼를 감싸줬으니, 네놈이 받아 처먹은 게 적지 않았다는 거겠지.”
“이, 이거 왜 이러십니까.”
겁에 질린 보안관의 눈을 응시한 월러스.
이내 총을 집어넣으며 레인저스 대원들을 돌아봤다.
“마무리하고 룸스빌로 이동한다!”
“옛썰!”
텍사스 레인저스가 말 먼지를 일으키며 떠나자 보안관의 입에서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하마터면 죽을뻔했네. 톰 벨, 멍청한 새끼.”
그동안 받은 뇌물이 적지 않았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자 분노가 치밀었다.
텍사스 레인저스는 그 자체로 법 집행기관이나 마찬가지. 월러슨이 자신에게 총을 쏜다해도 문제될 게 없었다.
벌렁대던 심장을 가라앉히고, 보안관은 말에 올라타 사무실로 말 머리를 틀어다.
그런데 이때.
지축을 뒤흔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건 또 뭐야.”
저 멀리, 수많은 소 떼가 구름처럼 먼지를 일으키며 북상하고 있다.
좀처럼 보기 드문 광경이다.
보안관은 고개를 갸웃하고는 자신의 사무실로 향했다.
< 막내 뒤로 빠져 > 끝
< 텍사스 레인저스 >
“우물에 뭐가 있어?”
룸스빌에 머무른 지 일주일.
우물에 머리를 처박고 있는 막스에게 피치가 물었다.
“그냥····. 시원해서.”
5월이지만 텍사스의 햇볕이 뜨겁다.
더위도 피할 겸, 우물에 기름 냄새도 맡을 겸.
하지만 땅 파면 기름 나온다는 텍사스라도 우물 정도 깊이로는 기름이 나오질 않는 모양이다.
머리를 든 막스는 입맛을 다시며 피치를 쳐다봤다. 황량한 마을이지만 여관은 나름 지낼 만하다. 요 며칠 잘 씻어서 그런지 햇빛을 받은 피치의 피부가 유독 반짝거렸다.
‘얜 주근깨도 별로 없네.’
“뭘 그렇게 빤히 쳐다봐?”
피치의 백옥같이 하얀 얼굴이 이내 붉어졌다.
“근데 어쩐 일이야?”
“쳇, 말 돌리긴. 아무튼, 오고 있대.”
피치가 남쪽을 힐끔 눈짓하며 말했다.
“사람? 동물?”
“둘 다. 물론 먼저 도착하는 건 사람이겠지.”
막스는 정색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이라면 텍사스 레인저스, 동물은 소 떼다.
막스는 피치와 함께 여관으로 향했다.
*
두드드드.
룸스빌을 향해 달려오는 무리.
텍사스 레인저스의 상징인, 반짝거리는 은색별 모양 배지가 햇볕에 반짝거린다.
그런데 그들이 마을 입구에 도착할 즈음, 고삐를 당겨 말들을 멈춰 세웠다.
“맙소사.”
“이놈들이 톰 벨 갱단인가 보네요.”
파리가 꼬여 썩어가는 시체들.
선두에 있던 남자가 미간을 찌푸렸다.
‘아직 마을에 있다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