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아니라면 마을 사람들이 이렇듯 대담하게 시체를 쌓아 둘리가 없다. 지나가는 갱단을 자극하고 오히려 마을로 불러들이는 셈이니까.
‘SFBC의 핵심이 세븐 스트롱이라 했나. 이름 참.’
리더인 월러스의 미간이 좁아졌다.
몰몬교 사건으로 유명해진 민간군사기업.
그중 핵심 인물로 구성된 세븐 스트롱의 활약은 콜로라도를 넘어 텍사스에까지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상황이다.
월러스는 이들을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려왔다.
“가자.”
월러스가 말을 박차자 대원이 뒤를 따른다.
그리고 잠시 후. 마을 중심부에 도착한 레인저스는 거리 한복판에 서 있는 남자를 볼 수 있었다.
“저건 또 뭐죠?”
선두에 있던 월러스는 말을 멈춰 세워 스카프를 얼굴에 두른 남자를 노려봤다.
‘우리를 기다린 건가.’
기선제압이라도 하려는 듯 서로의 시선이 교차한 끝에 월러스가 입을 떼었다.
“텍사스 레인전스의 월러스다. 네가 세븐 스트롱의 리더인가?”
“정확히는 SFBC의 리더, 막스 조다.”
“남의 땅에 기어들어 와서 분탕질 쳐놓고. 꽤 당당하군.”
“당당하지 않을 이유가 있나? 갱단을 대신 잡아줬는데.”
- 어마, 막스 말하는 것 좀 봐요. 20명이 노려보는데도 어쩜 저렇게 당당할까. 저 여유로움은 또 뭐고.
- 내가 보기엔 그냥 정신 줄 놓은 거 같은데.
숨어서 지켜보던 피치. 그녀의 속삭임이 듣기 싫은 듯 콜린이 귀를 후벼팠다.
하지만 입가엔 희미한 미소가 번져갔다.
막스를 처음 만난 때가 떠올라서였다.
‘그땐 캘리포니아 레인저스였지 아마.’
미친 동양인이 오늘만 살 것처럼, 그것도 혼자 캘리포니아 레인저스와 맞서던 모습이 선하다.
‘근데 지금은 텍사스 레인저스와 저러고 있네.’
그때와 달라진 게 있다면 동료들이 있다는 거.
그중에 콜린 자신이 있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한 일이었다.
‘하여간 인생 재미있다니까.’
콜린이 조용히 낄낄거릴 때,
막스와 마주선 월러스가 입을 뗐다.
“오리에, 르콘, 파킨시. 이 마을을 약탈한 막스 조. 현상금은 100달러.”
‘그놈의 100달러는.’
막스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현상범이 다른 현상범을 잡았다고 죄가 없어지는 건 아니지. 안 그래?”
“누군가 내 이름을 도용한 거다. 머리털 나고, 며칠 전에야 텍사스 땅을 처음으로 밟았거든.”
“거짓말, 핑계, 변명. 다들 내 앞에선 그딴 말을 늘어놓지. 그러다 죽을 때가 되어서야 진실을 말하더군.”
“나를 죽일 자신은 있고?”
월러스의 눈매가 가늘어진다.
흥분한 레인저스 대원들 일부는 홀스터로 손을 뻗쳤다. 단순한 위협이든 아니든, 막스는 가소롭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잘 생각해. 그거 뽑는 순간 다 죽는 거니까.”
말이 끝나기 무섭게 건물 곳곳에서 총구가 튀어나온다.
레인저스의 얼굴이 당혹감으로 물들 때.
잔뼈가 굵은 월러스는 동요하는 대신 실소를 흘렸다.
“우리를 우습게 본 모양이군.”
“그쪽이 나를 우습게 본 건 아니고?”
“텍사스 레인저스는 그 자체가 법 집행기관이다. 그 말인즉, 네 놈의 몸에 총알을 쑤셔 박아도 아무도 우리에게 죄를 묻지 않는다는 말이지.”
월러스의 말에 레인저스의 눈빛에 자부심이 깃들었다. 하지만 상대는 막스다.
“SFBC도 마찬가지다. 콜로라도에선 우리가 곧 법이거든. 비록 이곳이 텍사스라 해도, 우릴 건드리면 대가는 죽음이다.”
약하게 보이는 순간 상대는 틈을 파고들어 물어뜯는다. 동등한 입장에서 대화하려면 먼저 기선을 제압해야 한다.
‘상대하기 까다로운 놈이군.’
밑도 끝도 없는 자신감에 분노가 치밀지만,
월러스는 이성적으로 생각했다.
막스의 목에 현상금을 건 자는 타호카 마을의 보안관. 그런데 놈은 톰 벨 갱단과 연관이 있고, 그 갱단을 막스가 제거했다.
문제는 이후의 행동이다.
마을 밖에 시체를 쌓아두고, 자신들이 오길 기다리기까지 했으니.
‘어쩌면 사실일지도 모르겠군.’
그렇다면, 상대는 현상금 걸린 갱단을 죽인 게 전부였으니 탓할 거리가 안 된다. 단지 남의 땅에서 활개 치는 모습이 눈에 거슬릴 뿐.
“그래서 여길 찾아온 이유는?”
월러스의 목소리에서 어느 정도 대화할 의지가 느껴진다. 더는 날을 세울 필요가 없었다.
이제는 유해질 차례였다.
“소가 좀 필요했거든. 텍사스 경제 발전에 이바지한 셈이지.”
“소? 그럼 갱단은 우연인가?”
“뭐, 우연은 아니고.”
막스는 뒤를 쳐다보며 손짓하자, 터커가 천을 덮어씌운 남자를 끌고 왔다.
“내 목에 왜 현상금이 걸렸는지부터 시작해서, 꽤 복잡한 이야기라 직접 데려가서 심문하는 게 더 빠를 거야. 톰 벨 갱단의 일원이거든.”
레인저스 대원들이 인질을 데려갔다.
막스는 월러스를 보며 말을 이었다.
“솔직히 우리한테 따질 게 생각 안 나지?”
“흠···.”
“차라리 좀 더 발전적인 이야기를 하는 게 어때? 우리 둘 다 총 밥 먹는 건 똑같은데.”
‘총 밥?’
월러스의 입에 실소가 흘러나왔다.
비웃음이 아닌, 그냥 웃음이었다.
월러스의 시선이 주변을 훑는다.
어느덧 마을 사람들은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고 SFBC와 꽤 친근하게 말을 주고받고 있었다.
마침 술집 주인 마드리오가 다가와 월러스에게 말을 건넸다.
“SFBC는 현상금 전액을 마을 사람들에게 나눠 주기로 했습니다만.”
“현상금을?”
월러스가 의외라는 듯 물었다.
돈을 받고 일하는 용병들이 현상금을 왜 남에게 준단 말인가. 도무지 이해가 안간다.
이때 마드리오가 슬쩍 다가와 속삭였다.
“SFBC 보스가 엄청 부자랍니다. 광산 회사의 지분도 조금 갖고 있다던데요.”
단숨에 이해한 월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광산 지분을 가졌다는 데 할 말 있나.
오히려 막스에 관한 호감도가 증가했다.
“어디 조용한데 들어가서 이야기나 하지.”
막스는 월러스를 술집으로 데려갔다.
그리고 스카프를 풀어 헤치자,
월러스가 신음을 흘렸다.
‘동양인이 SFBC의 보스였다니!’
동공이 한껏 팽창된 월러스는 충격을 받은 듯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
맥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데, 의외로 월러스는 막스가 묻는 말에 대답을 곧잘 했다.
‘처음 봤을 때랑 다르네.’
막스는 의아했지만 이내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텍사스 레인저스가 재조직된 게 작년이다.”
“1년도 안 된 거네?”
“사실 이것도 언제 없어질지 모르지. 텍사스 재정 형편이 별로 안 좋거든.”
멕시코 전쟁 후 해체된 레인저스를 현 주지사가 7만 달러 기금을 마련해 조직했다.
하지만 기금이 언제 바닥나고 다시 채워질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어느날 갑자기 잘릴지 모를 고용불안.
월러스가 막스의 질문에 성심성의껏 대답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군인 출신인 월러스에게 돈 많은 SFBC 오너는 꽤 매력적인 고용주였으니 말이다.
“인디언 부족과 전쟁을 벌인다고 들었는데, 거긴 다른 부대가 참가한 모양이군.”
“수석 대위인 존 포드가 직접 대원들을 이끌고 전쟁을 벌이고 있어. 아마, 곧 끝날 거다.”
이름하여 리틀 로브 크릭 전투.
상대는 텍사스와 오클라호마에 걸쳐 생활하던 코만치 부족이다.
멕시코 전쟁 이전에는 그나마 화친 조약이라도 맺어 평화로웠던 관계가 동부에서 밀려온 백인들에 의해 깨지고. 비옥한 평원에서 계속해서 밀려나던 코만치 부족은 결국 백인들과의 전쟁을 택했다.
‘지금은 방법이 없구나.’
막스는 내심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현재 텍사스에는 코만치, 아파치, 톤카와, 하시나이등 여러 부족이 살고 있다.
문제는 흩어져있던 인디언 부족들이 벼랑 끝에 몰릴 때. 즉, 터전을 빼앗기고 황무지뿐인 애리조나와 뉴멕시코로 밀려날 때 비로소 연합하게 된다는 것이다.
막스가 우려하는 건 그렇게 연합된 인디언들이 벌이는 최후의 전쟁이었다.
당연히 인디언들은 패배한다.
멸족을 당하는 부족들이 생겨나고, 집단 학살과 약탈로 인디언은 멸망의 길을 걷는다.
아이들은 원주민 기숙사 학교에 강제로 끌려가고, 황무지에 만들어진 인디언 보호구역에서 살게 되는 비참한 역사가 만들어진다.
‘그것만은 막아야지.’
캔자스에서 정치적 기반을 닦고,
콜로라도에선 부의 기반을 닦고 있다.
텍사스에선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막스는 답을 구하기 위해 산초에게 많은 걸 물었었다. 그리고 이제는, 월러스에게도 정보를 얻고 있다.
“목축과 목화 이 두 가지가 텍사스 산업의 근간이라 할 수 있지. 요즘은 목재 쪽에도 몰리는 것 같긴 하고.”
“목재?”
“텍사스엔 소나무 숲이 꽤 많거든.”
실제로 텍사스에 황무지는 10%밖에 되지 않는다. 그것만도 워낙 땅이 넓어 크게 보일 뿐, 나머지는 평원과 숲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역시 탐나는 곳이야.’
월러스와 대화를 들으며 막스는 밑그림을 그려나갔다.
SFBC가 텍사스를 잠식해가기 위한 밑그림.
그 계획의 시작은 텍사스의 무력 집단인 레인저스의 와해다.
다만, 절대 티를 내선 안 되는 계획이었다.
“월러스. SFBC가 주지사에게 사업을 제안하고 싶은데. 만남을 주선해줄 수 있어?”
“사업이라. 일단 내가 듣고 결정하지.”
“그럴 위치가 돼?”
자존심을 슬쩍 건드려봤다. 월러스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어차피 나를 기다린 목적도 이거 아니었나?”
“뭐, 그렇긴 한데. 그 정도 위치인지는 모르겠네. 레인저스를 이끄는 리더는 따로 있다며.”
“각자 파트가 다를 뿐이다. 총괄 책임자는 어차피 우리 사이에서 선출하는 것뿐. 내 발언권도 적지 않거든.”
“그러니까, 주지사와 만남을 주선하고 사업을 관철시킬 만한 능력은 있다는 거지?”
“그 사업이 괜찮다면?”
막스는 짙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내가 원하는 사업은 두 가지야.”
목장과 목재 사업.
이에 필요한 땅이 필요하다.
“그 조건으로 텍사스 레인저스의 기금을 우리 SFBC가 대도록 하지.”
“음?”
“기간은 10년. 그동안 월러스, 당신 월급을 우리 SFBC가 책임지도록 할게. 어쩌면 지금보다 늘어날 수도 있고.”
막스의 제안은 월러스가 바라던 것이다.
고용불안에 시달리느니, 확실한 물주가 생긴다면 안정적인 레인저스 활동이 보장될 테니 말이다.
“마음에 드는 사업이군.”
‘걸려들었구나.’
텍사스 레인저스의 와해.
이는 곧 SFBC로의 대체를 의미했다.
< 텍사스 레인저스 > 끝
< 앞서 나가는 자 >
월러스가 막스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한들,
주지사와의 만남이 바로 이루어지는 건 아니다.
- 일이 성사되면 콜로라도 준투로 회신을 보내도록 하지.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거다.
- 주지사를 만나게 된다면 그 자리엔 내 대리인이 나갈 거야. 이게 무슨 말인지 알지?
- 동양인이라는 걸 굳이 말할 필요는 없다 이거잖아.
눈치 빠른 월러스. 그가 레인저스들을 이끌고 마을을 떠나자, 피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텍사스 주지사가 조건을 받아들일까?”
“글쎄. 텍사스 주는 이 넓은 땅덩이를 갖고도 재정에 쪼들리고 있어. 땅으로는 돈이 안 된다는 소리지.”
실제로 대도시, 그것도 중심 지역이 아닌 이상 땅은 별 값어치가 없다.
만약 주에서 돈을 요구했다면, 사람들이 텍사스로 올 이유가 있을까.
가깝게는 위에 있는 오클라호마나 캔자스로 가면 공짜 땅이 천지다.
정착민들은 빈 곳을 개척해 공짜로 땅을 얻으려 하지 살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런 텍사스에 SFBC가 땅을 조건으로 돈을 준다고 했어. 거절할 이유가 없잖아?”
“그렇긴 한데. 우리한테는 무슨 이득이 있는 거야? 콜로라도도 아니고 여기서 목재와 목축업 사업은 좀 뜬금없는 것 같아서.”
“도시가 발전하려면 두 가지는 필수야. 건물을 지으려면 나무가 필요하고, 사람들이 먹고 살려면 고기가 필요하거든. 앞으로 광산에 몰려올 사람들은 지금보다 수십 배는 늘어 날걸?”
몰려든 사람들은 준투 주변으로 퍼지고 콜로라도 전역에 도시들을 만들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텍사스 주변 주들 역시 마을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날 것이다.
이를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목재와 축산은 반드시 필요한 사업이었다.
“그럼 그것도 SFBC가 운영하는 거야?”
“전혀. 우리 몸이 열 개는 아니잖아?”
막스는 짙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인디언들이 하게 될 거야.”
“...... 콜로라도처럼?”
막스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당장은 호의적인 부족들을 끌어들일 것이다.
그러다 보면 다른 부족들까지 참여가 늘어날 테고.
막스 입장에선 노동자를 쉽게 얻는 동시에 인디언의 자립을 이끌어갈 방법이기도 했다.
인디언이 쓸모없는 건, 그들이 백인에게 줄 것이 땅뿐이라서다. 아메리카에서 살아갈 방법을 알려준 뒤로 인디언은 그 쓸모를 다해버렸다.
그 때문에 막스가 생각한 공존은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로 거듭나는 것.
생산자인 동시에 소비자로서 인디언들이 백인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위치로 끌어올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선.
“레인저스는 인디언을 몰아내는 데 쓰는 칼이야. 그 칼을 우리 SFBC가 손에 넣으면 뭐든 조금 더 쉬워지겠지. 정 갖기 힘들면 박살을 내면 되고.”
남북전쟁이 시작되면 어차피 와해 될 조직.
숫자는 알 수 없으나, 남부군에 투신하느니 SFBC로 흡수될 인원도 분명 있을 것이다.
짧게나마 무정부 상태인 텍사스의 틈을 파고들려면 지금부터 준비해두는 것이 옳았다.
‘어후, 대체 어디까지 생각하는 거야.’
막스가 지금껏 보인 행동을 보면 이 또한 실현될 것처럼 보인다. 피치는 시간이 갈수록 거대해지는 막스의 계획을 기대 반, 우려 반으로 지켜봐야 했다.
텍사스 레인저스가 떠난 날 저녁.
룸스빌 마을에 소 떼가 도착했다.
그런데 선두에 있던, 산초의 동료인 호세 라울과 일행들의 얼굴이 침울했다.
“오다가 인디언들을 만났어요, 보스. 일이 커질 것 같아서 제 임의로 소 500마리를 주고 끝냈습니다. 죄송합니다.”
라울과 동료들, 거기에 카우보이들까지 합치면 60명이나 되는 인원이다. 그런데 싸우지도 않고 소를 줘버렸으니 고개를 떨굴만도 했다.
‘500마리면 1,750달러를 날린 거네.’
인디언과의 공존은 개뿔.
화가 치밀지만, 막스는 담담하게 라울에게 말을 건넸다.
“상대 인디언들 수는?”
“40명 정도 됐습니다···.”
“어느 부족인지는 알고?”
“아파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