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3화 (113/360)

“누구를 위한 자금인데?”

“뭐, 양쪽 다야. 주지사가 조건으로 일만 달러를 제시했거든.”

‘주지사의 뇌물, 그리고 마을 사람들에게 흘러갈 협상금인가.’

막스는 월러스의 눈을 응시했다.

“방금 말한 조건들을 전부 계약서에 넣도록 하지. 돌아갈 때, 내 대리인과 함께 가도록 해.”

“알았어. 근데, 이곳에 며칠 더 있을 생각인데. 괜찮겠지?”

“마음대로 해.”

사실 월러스가 콜로라도를 직접 찾아온 건 두 눈으로 SFBC를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이곳에 머무는 동안 그들이 어떤 환경에서 지내는지 그 분위기를 살펴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자신의 속내를 알기라도 한 듯.

“칸토!”

덜컥!

“불렀습니까, 보스.”

“월러스를 히콕에게 안내해 줘. 텍사스 레인저스의 ‘견학’이라고 말하면 알아들을 거야.”

월러스의 눈이 가늘어졌다. 아무래도 막스는 자신이 온 진짜 목적을 눈치챈 것 같다.

칸토를 따라가려 자리에 일어서려 할 때. 

막스가 월러스에게 돈을 내밀었다.

“중간에서 수고했는데, 보상은 있어야지. 오백 달러다.”

월러스는 금화와 막스를 번갈아 쳐다봤다. 

그리고는 이내 손을 뻗어 돈을 챙겼다.

“사양은 안 하마.”

“그럼, 정당한 보수인데. SFBC 대원들이라면 아주 익숙한 대가야.”

막스는 SFBC 조직에 고정 급여에 인센티브를 도입했다. 그로 인해 몽고메리와 제니슨 임무 참가자들은 인당 150달러의 보너스를 받을 것이다.

막스는 넌지시 이런 점을 이야기하며 월러스에게 작업을 걸었다.

텍사스 레인저스의 와해를 시키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터. 가장 깔끔한 건 월러스를 중심으로 레인저스를 SFBC로 흡수하는 것이다.

중요한 건 월러스라는 인물의 성향인데.

막스는 그를 제대로 알지 못하기에 시간을 두고 지켜볼 생각이었다.

그런 점에서 보상금을 준 이유가 있었다. 

월러스와 함께 온 레인저스가 넷.

신뢰할 수 있으니 콜로라도까지 데려온 것일 터.

보상금 5백 달러를 어떻게 처리할지 지켜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었다.

조금은 월러스를 알 수 있을 테니까.

*

히콕은 월러스와 부하들의 가이드 역할을 했다.

요새에 지어진 흰색 페인트가 칠해진 4층 건물에 들어서며 히콕이 말했다.

“여기가 SFBC의 숙소다. 만든 지 얼마 안 돼서 나름 깔끔하지?”

건물 내부를 훑어보며 월러스가 고개를 끄덕거리고, 다른 레인저스들은 눈을 휘둥그레 뜨며 탄성을 내뱉었다. 대충 군 막사를 예상했으나, 보기엔 호텔이라고 할 정도로 깔끔했다.

“숙소는 기본 4명이 생활하고 있고, 각종 편의 시설은 내부에 다 있다고 보면 돼.”

히콕이 문을 열자 마침 포커 게임을 하는 대원들이 손을 흔들었다.

“히콕! 너 보너스 받는다며. 한 판 껴야지?”

“나 일하는 거 안 보이냐.”

“뭐야, 빼는 거야?”

“시끄러워, 인마.”

문을 닫은 히콕은 다음 장소로 이동하며 말했다.

“주말은 비교적 분위기가 널럴해. 교대로 도시를 순찰하는 것 빼고는 여유로운 편이지.”

문을 열자 이번엔 넓은 공간이 나타났다.

이곳에는 생전 처음 보는 기구들이 있었는데 대원들이 하나씩 달라붙어 뭔가를 하고 있었다.

레인저스들의 동공을 흔들리게 한 건, 

바퀴가 달린 고무판 위를 달리는 피치였다.

상의를 탈의하고, 생전 처음 보는 짙은 회색 속옷을 입고 달리는 모습은 묘하게 매력적이었다.

“근데 저게 뭐야?”

“보스가 만든 런닝머신이야.”

“런닝 머신?”

전자기기가 철저히 배제된 수동방식.

속도 조절이 안 되기 때문에, 자칫하면 엄청난 속도로 달리다 뒤통수가 깨질 위험이 있다.

하지만 익숙한 듯 피치는 달리면서도 히콕과 레인저스에게 손을 흔드는 여유까지 보였다.

그래도 텍사스에서 한 번 봤다고 월러스는 어정쩡하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그리고는 조금은 민망한지 시선을 다른 곳으로 옮겼다. 

마침 우락부락한 근육질의 네이선 로어가 양쪽에 둥그런 쇠판이 여러 개 달린 철봉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 보기에도 어마어마한 무게였다.

“SFBC 대원이라면··· 체력은 기본이지!”

로어는 호흡을 조절하며 보란듯 말을 내뱉었다.

눈을 껌뻑거리던 월러스와 레인저스는 다른 신기한 운동기구들도 살펴봤다.

“이걸 대체 누가 만든 거야?”

“누구긴. 보스지.”

겨울에도 운동을 게을리하지 말라는 막스의 배려랄까. 대원들은 의무적으로 하루 두 시간은 무조건 이곳에서 땀을 흘려야 했다.

체력단련실을 본 뒤엔, 지하로 이동했다. 

그런데 문을 열기도 전에 총소리가 울렸다.

“뭐야, 시발!”

반사적으로 홀스터에서 총을 뽑으려는 레인저스를 보며 히콕이 피식거렸다.

“지하 사격장이야. 겨울철에도 실내에서 사격 연습하라는 보스의 배려지.”

문을 열자, 총성은 더욱 크게 들려왔다.

대략 열 명이 사람을 닮은 과녁을 향해 총을 쏘고 있었는데, 외부인이 온 것을 알고는 갑자기 후다닥거리며 뭔가를 감추기 시작했다.

“뭐, 뭔데?”

“..... 대충 분위기 봤지? 이제 가자.”

“왜? 더 보고 싶은데.”

“여긴 외부인 금지구역이거든.”

가장 큰 이유는 개량된 총기와 총알 때문이다.

문만 빼꼼히 봤을 뿐, 월러스는 들어가지 못한 채 발길을 돌려야 했다.

휴게실, 체력단련실, 사격장도 충격이지만, 

레인저스의 마음을 뒤흔든 건 단체 식당이었다.

밥 시간도 아닌데 일부 대원들이 옹기종기 모여 뭔가를 먹고 있었다. 앞에 놓인 사각형 철판 식판도 낯설지만 언제라도 음식이 준비되어 있다는 건 충격적이라 할 수 있었다.

“보스가 먹는 데 한이 맺혀서 그렇다는데. 온 김에 먹고 갈래?”

월러스가 부하들을 힐끔 쳐다보자 고개를 끄덕거렸다. 빵과 고기로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있을 때, 월러스는 뭔가 생각난 듯 히콕에게 물었다.

“근데, 다들 목에 걸고 있는 건 뭐야?”

“아, 이거?”

히콕이 손을 집어넣어 목걸이를 꺼내 내밀었다.

두 개의 은색 빛이 감도는 직사각형 모양.

미래에나 사용되는 인식표로 흔히 말하는 군번줄이다. 워낙 생소한 것이라 레인저스는 신기한 듯 새겨진 문구를 살펴봤다.

Special Forces Beyond Color!

58-000007

James Butler "Wild Bill" Hickok 

(May 27, 1837)

“내가 죽으면 하나는 몸에 남기고, 다른 하나는 회수해간데.”

“오오.”

선진화된 SFBC의 체계적인 시스템은 텍사스 레인저스의 마음을 계속해서 흔들어 놓았다.

식당 문 앞에서 이를 몰래 지켜본 막스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계획대로 되고 있어.’

“여기서 뭐하는데?”

땀에 흠뻑 젖는 피치가 막스의 뒤통수를 노려보며 물었다. 고개를 돌린 막스의 시선이 이내 조금은 아래로 향했다.

“뭘 보냐?”

“...... 운동할 땐 그렇다 쳐도, 제발 위에 뭣 좀 입고 다녀.”

“이게 편한데. 왜, 신경쓰여?”

“...... 됐다.”

막스가 다시 식당으로 고개를 돌릴 때, 하필 히콕과 월러스 일행이 문쪽으로 오고 있었다.

막스는 피치의 손을 잡아끌고 황급히 자리를 피하려 했다.

“뭐야, 드디어 결심한 거야?!”

“시끄럽구요.”

“나 좀 씻고 오면 안 될까?”

“......”

건물 밖으로 나온 히콕은 월러스 일행을 외부 훈련장으로 안내했다.

“아까 본 대원들은 티어 1, 2급이고. 여기는 티어 3, 4급들이 훈련받는 곳이야.”

막스는 SFBC를 크게 네 분류로 나누었다.

비대칭 전력인 티어 1을 필두로 일 년이 채 안 된 신병들을 티어 4로 분류했다.

“뭐, 티어는 올라갈 수도 내려갈 수도 있어.”

“그럼 세븐 스트롱은 티어 1이겠네?”

“그 멤버도 언제든 바뀔 수 있어. 보스도 마찬가지고. 능력 없으면 빠져야지, 안 그래?”

“...... 그렇긴 하지.”

월러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한편으로는 텍사스 레인저스 조직과 비교하며 생각에 잠겼다.

레인저스의 경우 리더와 대원들의 지위는 평판과 명성으로 결정된다.

태생 자체가 민병대로서 봉사 개념이 강하기에 리더라고는 해도 대원들과는 수평적인 관계.

SFBC의 시스템을 적용하기는 애초에 무리였다.

어디 그뿐인가. 

가장 근본적인 자금력에서 비교가 되질 않는다.

게다가 아무리 SFBC의 체계가 좋다고 한들, 

막스처럼 조직을 완벽하게 장악하지 못한다면 무용지물이었다.

‘민간군사회사라는 말이 딱 어울리네.’

전투력을 갖춘 용병들이 돈을 받고 군사 활동을 펼친다? 한때 군인이었던 월러스와 부하들은 SFBC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그날 밤 막스가 히콕에게 넌지시 물었다.

보상금에 관한 것이었다.

“들어보니까 부하들하고 똑같이 나눴던데? 다들 100달러로 뭘 할지 들떠 있더라고.”

며칠 뒤.

월러스와 레인저스는 텍사스로 돌아갔다.

막스가 대리인으로 내세운 사람은 키트 카슨.

그는 금을 캐던 조지 심슨과 오토비, 폴리프와 바클레이까지 대동했다.

- 주지사와 협상이 끝나면, 다음 차례는 인디언입니다. 

코만치, 아파치, 키파푸 부족이 유토피아 지역에 걸쳐 있다. 막스는 그들을 목축업과 목재 사업에 끌어들이려 했다.

키트 카슨이 텍사스 레인저스와 떠날 즈음.

미 전역에 상원 투표가 실시되었다.

투표에 걸린 상원 좌석수는 66석.

민주당이 36, 미국당(Know nothing)이 3석.

그리고 공화당이 27석을 차지했다.

이는 원 역사보다 2개가 늘어난 결과로. 

일리노이주의 링컨이 스티븐 더글라스의 재선을 저지하고 상원에 당선되는 파란을 일으켰다.

< 텍사스 레인저스의 견학 > 끝

< 혹한기 훈련 >

110화

[공화당의 약진. 노예제를 둘러싼 갈등 악화.]

[일리노이주, 작은 거인을 무너트린 에이브러햄 링컨은 누구인가?]

[열일곱 차례의 토론으로 링컨이 더글라스의 재선을 저지하다.]

1858년이 끝나가는 시점.

워싱턴 정치가 요동치는 가운데, 

콜로라도에 혹한의 겨울이 찾아왔다.

로키산맥과 사우스 플래트 강에서 뻗쳐나온 시냇물과 광산이 얼어붙고, 콜로라도의 금광 시계가 멈춰버렸다.

하지만 도시와 캠프는 여전히 사람들로 북적거려 활기가 넘쳤다.

작년에 도시 기반 토목 사업에 집중했다면, 올해 겨울은 집과 사무실들에 건설 인력을 집중하고 있었다.

현재 준투 도시의 임시 시장은 제임스 블러드. 

2년 전 로렌스의 시장이었으며 와카루사 전쟁의 유일한 희생자 토마스 바버의 미망인과 재혼한 유능한 행정가였다.

도시 개발 운영회의 경우 초반엔 로렌스의 광산 주주들이 주축을 이뤘고. 현재는 새로 고용된 인재들이 그 자리를 채워갔다.

재무, 토지, 경제 및 무역, 인사 행정, 노동 고용, 교육 등. 각 파트별 인원들이 채워지고 그럴듯한 행정 시스템을 만들어갔다.

부서별 연말 결산 보고를 받은 블러드는 의견을 나누기 위해 막스 사무실을 찾아왔다.

임시 시장과 실제 실세의 회담이었다.

“자네도 이미 알겠지만, 건설현장에 사람들이 넘쳐나고 있다더군. 단기 임대 거주도 불티나게 팔리고 있고.”

“금으로 번 돈들을 마음껏 쓸 수 있도록 영업시간도 연장해야겠군요.”

“그렇지 않아도 상점 연합에서 요청을 해왔네. 유흥 종사자들이 가장 적극적이야.”

블러드는 각종 사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 끝에 물었다.

“내년에는 콜로라도의 준주 지위를 공론화해야 하지 않나? 인구로 보나 조건은 충족할 테니 말일세.”

현재 콜로라도는 캔자스 준주에 속해있다.

만약 입주민들의 투표에서 결정되면 연방 정부에 요청할 수가 있었다.

“이 시점에 굳이 준주가 될 필요가 있을까요? 노예제 문제로 피바람이 불 겁니다. 혼란은 캔자스 하나면 족하죠.”

“흠. 결국 캔자스의 결과를 지켜봐야 한다는 소리군. 자네 혹시, 공화당이 집권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나?”

“글쎄요. 일단은 긁어 부스럼 만들 필요는 없으니까요. 그나저나, 로렌스 대학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습니까?”

블러드는 정치보단 교육에 관심이 많은 자다. 

그 때문에 광산에서 얻은 이익으로 뜻이 맞는 주주들과 함께 로렌스 대학 설립을 추진하고 있었다. 그중엔 막스도 포함되어 있다.

“내년에 이사회가 만들어질 걸세. 그게 마무리되면 다음은 콜로라도 차례네.”

막스는 철저히 산학협력을 중심으로 한 대학을 만들 생각이다. 현재 고용된 학자와 전문 기술자들을 교수로 앉히고 인재 양성에 힘을 쏟을 생각이었다.

최종적인 목표는 미 전역에 있는 우수한 인재를 끌어모아 워싱턴 정계와 각 산업의 요직에 앉히는 일이었다. 길고 긴 싸움이지만,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었다.

“아참, SFBC 훈련에 자네가 직접 참가한다는 소리가 들리던데.”

“그렇지 않아도 두 달 정도 자리를 비울지도 모릅니다.”

“대체 훈련 장소가 어디길래···.”

“뒷 산이요.”

“음?”

*

연병장에 SFBC 대원들이 집합했다.

짊어진 가방은 이 시대엔 절대 볼 수 없는 군장으로 거기 달린 것들은 대부분 특허가 등록된 제품들이었다.

돌돌 말린 모포, 접히는 야삽, 수통과 반합, 여분의 옷까지.

주목할 건, 알루미늄 따위 취급하지 않기에 죄다 무쇠로 만들어졌다는 거. 추가로 리볼버와 라이플, 탄약과 화약까지 치면 그 무게가 60kg에 달했다.

“누가 움직이나!”

막스의 매서운 눈빛이 몇몇 대원들을 쏘아봤다.

단지 서 있을 뿐인데도 몸이 앞뒤로 쏠리는 기이한 현상. 군장의 무게에 적응하지 못한 대원들은 이제 갓 들어온 신병들이었다.

‘내가 진짜 어지간하면 욕 안 하는데. 진짜, 시발이네. 진짜.’

죽을상을 하고 낑낑거리는 코닐은 지난 일주일간 기초훈련을 마친 상태다. 갑작스러운 과격한 행동으로 근육이 놀라고, 온몸에 배긴 알이 풀릴 즈음 막스는 뒷산으로 야영 간다며 코닐을 꼬드겼다.

‘시발, 대학 졸업하면 다른 데로 도망가야지. 절대 여기 안 온다.’

군장의 무게를 절반으로 줄여줬음에도 코닐은 또다시 중심을 잃고 휘청거렸다.

앞 사람과 부딪히자 그는 신경질적으로 고개를 돌아보며 으르렁거렸다.

- 시발, 건들면 뒈진다.

얼마 전까지 병원에서 작은 칼만 휘두르던 듀들리. 얌전하던 그도 잔뜩 화가 나 있었다.

하지만 완전 초짜인 코닐을 보곤 몇 가지 팁을 알려주기도 했다.

- 가방 줄 꽉 쪼여. 어깨랑 간격 벌어질수록 힘이 더 들어가니까.

- 고, 고마워.

인원점검이 끝나고 막스가 소리쳤다.

“이제부터 희망찬 새해를 위한, SFBC의 사상 첫 혹한기 훈련을 시작하겠다! 아, 그 전에 미안하다는 말부터 해야겠다. 다들 훈련 장소를 잔뜩 기대한 것 같은데. 미안하다, 이번에는 그냥 뒷산에서 하기로 했다.”

요새의 뒷산은 사람이 오르지 못하는 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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