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4화 (114/360)

대체 뭘 말하는 건지, 대원들의 눈동자가 좌우로 굴러가며 주변을 훑었다. 

그리고 이때, 또다시 막스의 목소리가 그들의 고막을 두드렸다.

“그럼 1대대부터 행군을 시작하도록 한다. 전원 로키산맥으로 전진!”

“!”

- 시발, 로키산맥이 뒷산이었다니! 

쿵!

충격에 다리가 풀린 대원들이 군장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픽픽 쓰러졌다. 

하지만 비대칭 전력인 세븐 스트롱이 발걸음을 떼자 서둘러 몸을 일으켜 따라가기 시작했다.

시야가 흐려진 코닐이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봤다. 아버지 제임스가 안쓰러운 얼굴로 자신에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막스 좀 혼내줘요, 아버지.’

악마의 손에 이끌려 콜로라도라는 지옥에 떨어진 코닐의 안구에 물이 차올랐다.

혹한기 훈련 3일차.

눈으로 뒤덮인 로키산맥으로 긴 행렬이 줄을 지어 이동한다. 선두에 있는 막스는 지치지도 않는지 행군하면서도 입을 쉬지 않았다.

“생존에서 가장 중요한 첫 번째, 바로 상황 파악이다. 뭐라고?”

“상황 파악!”

“전투 중이라면 적의 눈을 피할 장소를 찾고 시각, 청각, 후각을 끌어올려 적의 움직임을 파악해야 한다.”

“옛썰!”

“잠시 제자리에.”

대원들이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 상태로 눈을 감는다. 그리고 5분 동안 주변에 들리는 소리에 집중한다.”

시간이 되어서는.

“아직 눈 뜨지 않는다. 계속 소리에 집중한다.”

막스는 주변에 뭔가를 던져 작은 소리를 만들어냈다. 그러면서 말을 이었다.

“모든 주변 환경에는 반복되는 형태가 있는 법이다. 동물, 곤충, 얼었지만 그 아래를 흐르는 냇물 소리가 들렸다면, 이 속에서 사람이 움직이는 인위적인 소리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옛썰!”

“주변 환경을 파악했다면, 다음은 나 자신을 파악하는 일이다. 흔히 전투가 시작되면 극도로 흥분상태에 빠지게 마련이고. 심지어는 자신이 부상을 당했는지 모르는 경우도 있다. 때문에 내 몸과 심리 상태를 제대로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옛썰!”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바로 장비파악이다. 총알이 몇 발 있는지, 삽이 있는지, 불을 피울 만한 부싯돌이 있는지를 안다면 적재적소의 상황에 응용할 수 있다.”

막스는 특전사와 용병을 거치면서 자연스레 익힌 정보를 알려주었다. 

수많은 사람이 이론과 경험을 토대로 정립한 노하우. 시대를 앞서간 고급 정보를 알려줬음에도 행군으로 지친 대원들의 귀에 제대로 박힐 리 없었다.

“낮에 한 말들은 밤마다 테스트가 이뤄질 거다. 보상은 야간 경계, 캠프 작업 열외다.”

“오오···.”

‘악마야, 악마.’

막스는 당근과 채찍으로 대원들을 독려했다.

혹한기 훈련 15일 차.

오크 크릭 부근의 협곡을 지날 때였다.

갑자기 인디언들이 나타나 대원들을 포위하기 시작했다.

“당황하지 말고 중대 단위로 진형을 짜라! 지시가 있을 때까지 사격은 하지 않는다!”

“옛썰!”

2백 명에 달하는 대원들이 발 빠르게 대응에 나섰다. 행군 중에도 관찰해둔 은폐물을 찾아 몸을 감추고, 각 중대의 간격을 벌려 지원 사격이 가능하도록 대형을 만들었다.

전투가 임박하자, 신병들은 쿵쾅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선임들의 행동을 따라 했다.

냇가와 바위, 나무들이 어우러진 협곡.

SFBC 대원들은 인디언들을 주시하며 막스의 공격 신호를 기다렸다.

그런데 이때 막스가 휘슬을 불고는 소리쳤다.

“상황종료!”

“?”

“우테 부족은 우리 혹한기 훈련에 일부 참여하게 되었다. 적이 아니라 아군이란 말이다. 총기 거두고 대형을 원위치로 하도록!”

말을 끝낸 막스는 인디언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우테는 여러 부족이 있다.

몰몬교도가 된 카노쉬 추장은 파반트족이고, 이번 혹한기 훈련에 참여할 곳은 타베구아체라는 부족이었다.

추장 구에라 무라가 말을 하면, 그의 아들이 통역했다.

“훈련할 수 있는 장소를 미리 마련해두었다. 추위도 피할 수 있고, 동굴도 있어서 지내기엔 괜찮을 거다.”

“고맙다.”

“다른 건 없나.”

“없다.”

대화하다 보면 상대를 따라가는 경우가 있는데, 추장의 아들이 그랬다. 말투가 투박하고 딱딱해서인지 막스는 대답도 짧았다.

“그래도 너 영어 많이 늘었다.”

“발음 괜찮았냐.”

“어, 대신 눈에 힘 좀 풀어. 그렇게 잔뜩 힘주고 말하면 괜히 총 뽑고 싶잖아.”

“그 정도냐.”

추장의 아들 우레이는 목이 짧고 얼굴은 둥글고 큰 편이다. 그는 막스가 말하는 공존에 꽤 깊은 관심을 보이는 인물이었다.

막스는 모르고 있지만, 원 역사에서 우레이는 위대한 인디언 추장으로 족적을 남기는 자였다.

언컴파레그와 타베구아체 외에도 몇 개의 부족을 통합한 뛰어난 지도자였으며 백인들에게도 상당히 우호적이었다. 물론 이러한 태도는 부족들의 평화와 안녕을 위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백인들에게 연이은 뒤통수를 맞으며 우테족은 콜로라도 땅을 빼앗기고 척박한 유타 지역의 인디언 보호구역으로 내몰리게 된다.

평화를 지향했으나 좌절된 우레이의 꿈. 

이는 인디언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아파치와 코만치등 인디언이 연합해 봉기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았고.

어찌 됐든, 막스와 우레이의 만남은 그 의미가 결코 작지 않았다. 

혹한기 훈련 32일 차.

막스는 그동안 대원들을 열 명 단위로 쪼개고, 그 속에 인디언들을 뒤섞었다.

우테족이 안내해준 장소는 사방이 협곡으로 둘러싸인 곳이었다. 추위가 덜하고, 분지가 넓어 대원들이 훈련하기에도 적합했다.

“각. 개. 전. 투! 각. 개. 전. 투!”

“가시 덤불은 지옥의 불길이다. 닿는 순간 죽었다고 복창해라. 포복할 땐 총을 앞으로 팔꿈치와 무릎을 이용해 신속하게 이동한다!”

막스가 말하면 훈련을 받는 우레이도 우테족 언어로 소리쳤다.

“빠져나왔으면 빠르게 은폐물을 찾아 이동한다! 어떤 새끼가 애벌레처럼 아직도 땅바닥을 기어 다니나!”

코닐이다. 

그는 독기 서린 눈빛으로 튕기듯 일어나더니, 나무 뒤에 숨어 사격 자세를 취했다.

‘시발, 저기까지 냅다 뛰면 순위 안에 들 것도 같은데.’

어느 순간 코닐은 SFBC에 완벽하게 동화되어 머릿속은 훈련으로 가득 차버렸다.

남들보다 빠르고 효율적인 방법을 찾으려 했고, 꼴찌를 하면 주먹으로 땅을 치고 밤잠을 설치는 승부욕도 생겨났다.

혹한기 훈련 45일 차.

캠프에서 조금 벗어난 장소.

최종 점검차 공격조와 수비조로 나뉘어 숲에서 모의 전투를 펼쳤다.

최후의 1대 1이 된 상황. 

실제를 방불케 한 긴장감이 흐르고.

히콕이 총을 쏘며 튀어나왔다.

“땅!”

“......!”

“으악해야지, 새끼야!”“으, 으악!”

‘마지막 실전 훈련이 이렇게 유치할 줄이야.’

페인트 탄의 필요성을 깨달은 막스는 내년에는 반드시 훈련에 사용하리라 다짐했다.

막스가 고개를 절레 저을 때, 갑자기 우레이가 달려왔다.

“백인들이 근처에 접근했다!”

“음?”

우레이를 따라간 막스는 다섯 명의 무장한 무리를 볼 수 있었다.

망원경을 꺼내 살펴본 막스의 고개가 살짝 비틀어졌다.

‘이게 누구야?’

퉁퉁하고 양쪽 눈꼬리가 처진, 긴 곱슬머리와 얇고 가는 콧수염을 기른 남자. 

캘리포니아 레인저스의 헤리 러브 대위였다.

< 혹한기 훈련 > 끝

< 우리 중엔 네가 최고잖아 >

파이브 호아킨스 리더 무리에타의 목을 잘라 술을 담근 헤리 러브. 그를 다시 만나게 된 건 캘리포니아로 돌아간 지 4년 만이었다.

‘로키산맥 서쪽에서부터 들어왔으면 여기까지도 상당한 거리였을 텐데.’

그래서인지 헤리 러브와 일행은 꽤 지친 모습이었다.

“조금만 참아. 곧 콜로라도니까.”

“젠장, 그 새끼는 어디에 숨어 있는 거야.”

“이미 산을 빠져나갔을 거야. 콜로라도 도시 어딘가에 처박혀 있을 거라고.”

“진짜, 이게 뭔 개고생이냐.”

헤리 러브와 동료들은 거친 말들을 쏟아내며 발걸음을 옮겼다.

발은 동상이라도 걸렸는지 감각이 없고, 뱃속에선 꼬르륵 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그런데 이때.

사사삭.

소리가 들리자 일행의 움직임이 멈췄다. 총을 뽑아서는 자세를 웅크리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오늘 고기 먹는 날인가.”

“사람이든 뭐든. 시발, 이 총으로 구멍을 내주겠어.”

헤리 러브는 날카롭게 소리가 들린 곳을 응시했다. 사람 셋이 팔을 두를 정도로 굵은 나무. 

그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캘리포니아 레인저스가 여긴 어쩐 일입니까?”

“음?”

헤리 러브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려왔다.

워낙 강렬한 인상이 남았기에 헤리 러브는 단숨에 목소리의 정체를 짐작할 수 있었다.

“설마, 그 미친 동양인은 아니겠지?”

“당연히 아니지. 미치지 않았거든.”

나무 뒤에서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모자를 슬쩍 들어 올리자,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허. 진짜였군.”

“그때 그 새끼잖아?”

“와, 어떻게 여기서 튀어나오냐.”

헤리 러브와 일행들의 머릿속에 동양인에 대한 기억이 빠르게 스쳤다.

레인저스 20명을 상대로 당당했던, 미친 동양인의 모습. 그런데 드넓은 로키산맥에서 다시 만나게 되자 뭔가 섬뜩한 기분에 머리카락이 쭈뼛거렸다.

헤리 러브의 눈동자가 막스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어내렸다.

‘산속에서 만난 것치곤, 너무 멀쩡해.’

자신들의 초췌한 행색과 비교될 만큼.

헤리 러브가 눈을 가늘게 떠 물었다.

“네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

“내가 먼저 물었을 텐데. 여긴 어쩐 일이야?”

헤리 러브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여전히 시건방지군. 그땐 현상금 때문에 그냥 넘어갔지만, 지금은 그럴 이유가 없다. 죽이면 그만이라는 소리지.”

“흠. 확실히 그때랑은 상황이 달라지긴 했네.”

“알면 꺼져.”

“그냥 보낸다고?”

헤리 러브의 말에 동료들이 얼굴을 찌푸렸다.

“음식이든 돈이든. 뭐라도 빼앗아야지.”

“우리가 갱단이냐?”

“...... 물론 그건 아니지만.”

몸과 마음이 지치면 본능에 충실한 법.

동양인을 털어서라도 부족한 걸 채워야 했다.

그런데 헤리 러브는 오늘도 꽉 막힌 듯 답답한 모습을 보였다. 참다못한 동료가 속삭였다.

- 헤리. 저 동양인 복장 보면 모르겠어? 이 근처에 집이 있는 거라고.

- 그래서?

- 그래서라니. 저놈을 인질로 잡아서 뭐라도 얻어 내야지. 이러다 굶어 죽지 않으면, 얼어 죽는 건 우리라고.

“다 들려, 새끼들아. 누가 누굴 인질로 잡아?”

동료들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더니 막스에게 총을 겨눴다. 그런데 어느새 나무 뒤로 숨어 보이질 않았다.

“쥐새끼 같은 놈! 그때는 넘어갔지만, 지금은 달라. 살고 싶으면 뭐라도 내놓으라고!”

동료들이 미쳐가고 있다.

막으려다간 총구를 자신에게 겨눌 수도 있는 상황이다. 헤리 러브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나무 뒤에서 조롱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엎드려서 구걸해도 줄까 말까인데, 총을 겨눠? 네놈들 말대로 그때랑 지금은 많이 달라졌어, 인마.”

“알면 순순히 먹을 걸 내놓으라고!”

나무 뒤에서 모습을 드러낸 막스가 이죽거리며 말했다.

“4년 전과 달라진 게 뭔 줄 알아? 내가 총을 뽑지 않아도 네놈들 목을 날릴 사람들은 널렸다는 거다.”

“뭐? 저 새끼가 뭐라는 거···.”

“경고 사격 후 적 진압 개시.”

“!?”

쌔한 기분이 들자, 눈동자들이 빠르게 주변을 훑어간다. 그리고 이때.

타아앙!

어디선가 날아온 총알이 방금 말한 놈의 모자를 날려버렸다.

“1대대 1, 2중대 진입!”

“2대대 원거리 포지션 유지. 적 사정거리에 두고 조준 대기!”

“......”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가. 

로키산맥 한복판에서 나타난 병력이라니!

헤리 러브와 동료들은 자신들을 향해 몰려오는 부대를 보고는 눈을 껌뻑거렸다.

‘좆됐네!’

사방에서 무장한 자들이 자신들을 포위하고,

저 멀리 라이플로 쬐고 있는 저격수들도 한둘이 아니었다.

헤리 러브와 동료들은 재빨리 총을 홀스터에 꼽고는 양손을 하늘 높이 쳐들었다.

“빠릿빠릿한 게 혹한기 훈련 성과가 있구만. SFBC는 지금부터 인질을 포박하고 캠프로 압송한다.”

“옛썰!”

‘SFBC?’

헤리 러브는 막스를 노려보며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리더가 저 동양인이었다니.’

캘리포니아의 신문사 역시 몰몬교에 얽힌 사건을 대대적으로 다룬 적이 있었다.

군과 레인저스 출신의 헤리 러브는 자연스레 그 사건을 해결한 SFBC라는 조직에 관심을 두게 되는데. 그만큼 세계 최초의 민간군사기업(PMC)은 헤리 러브 같은 자들에겐 꽤 매력적인 조직이었다.

밧줄에 묶여 끌려가는 도중, 막스가 다가와 넌지시 물었다.

“대화를 다시 시작해 볼까?”

“얼마든지.”

“진작 그렇게 나왔어야지.”

“......”

“그래서 여긴 무슨 볼일이야?”

“현상금 걸린 놈을 추적하는 중이었다.”

수배범의 이름은 레비 분 헬름.

캘리포니아에서 사람을 죽였으나, 감옥 대신 정신병원에 갇힌 놈이었다. 하지만 병원을 탈출하고 도주하면서 악명이 더 높아졌는데, 독특한 살인 방식 때문이었다.

“사람들을 잡아먹는 식인마거든. 보름 전에 놈과 함께 도망친 동료를 발견했는데, 이미 잡아 먹혔더군. 다리 하나는 나중에 먹으려는 지 잘라갔고.”

“워···. 그래서 현상금은 얼만데?”

“5백 달러.”

“그거 벌자고 혹한의 겨울에 로키산맥까지 들어온 건가?”

“우린 현상금 사냥꾼이니까.”

헤리 러브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돈의 가치는 상대적이다.

텍사스 레인저스 월러스는 수고비 명목으로 5백 달러를 벌었고 헤리 러브는 로키산맥의 생사를 넘나들며 힘들게 돈을 버는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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