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5화 (115/360)

물론 그 이유가 전부였다면 말이다.

“뭐, 어느 정도 콜로라도 금광도 생각하고 있었지. 그리고.”

헤리 러브가 막스를 힐끔 쳐다봤다.

“SFBC도.”

“호오. 캘리포니아에도 우리 소문이 난 모양이군. 그런데 레인저스는 그만둔 건가?”

“애초에 파이브 호아킨스 갱을 잡기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었다. 네가 놈을 제거한 순간 존재 이유가 없어진 거야.”

조직이 해체된 뒤론 줄곧 현상금 사냥꾼 생활을 해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일에 염증을 느낀 헤리 러브는 다른 길을 모색하고 있었다.

“식인마가 로키산맥을 넘어 콜로라도로 향한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SFBC도 진지하게 고민했었거든.”

막스는 헤리 러브와 동료들을 쳐다보며 고개를 저었다. 50대를 코앞에 둔 헤리 러브와 동료들이 훈련받기엔 무리가 있어 보였다.

“아직 현역으로 충분히 뛸 수 있다. 그리고 말야, 저 친구도 우리와 비슷하잖아?”

헤리 러브가 콜린을 가리켰다.

순간 막스의 입에서 웃음이 새어 나왔다.

“믿기 힘들겠지만, 20대 후반이다.”

“뭣이!?”

얼굴이 삭아서 그렇지, 놀랍게도 콜린은 29살이다.

워낙 충격적이라 처음엔 아무도 믿지 않았다.

하지만 지하철도 지휘자인 존 브라운이 콜린의 나이를 증명해줬고, 그제야 논란은 사그라들 수 있었다. 

물론 아직도 믿지 않는 대원들이 더 많았다.

“이제는 나이 따져가며 일거리를 찾아야 할 때로군.”

헤리 러브의 말속엔 퇴물 취급을 당한 씁쓸함이 묻어있었다. 

멕시코 전쟁에 이어 캘리포니아를 누비던 때가 어제 같거늘. 시간이 총알 같다는 말이 새삼 실감이 났다.

막스는 헤리 러브의 마음을 이해했다. 

전생의 용병 시절. 

퇴역 수순을 밟는 용병들을 많이 봐왔고 자신도 언제나 그때를 준비하고 있었으니까.

막스가 이들을 두고 고민하고 있을 때, 헤리 러브가 담담하게 물었다.

“이쯤에서 우릴 풀어주는 건 어때?”

“아직 그 정도 관계는 아닌 것 같은데.”

“알다시피 나는 널 공격할 생각은 없었다. 그리고 동료들은.”

헤리 러브는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춥고 배고파서 순간 눈깔이 뒤집힌 거야. 그렇게 나쁜 놈들은 아니라고.”

“그렇군.”

“...... 그래서 풀어주겠다는 거야?”

“아니.”

헤리 러브와 동료들의 결박이 풀린 건 캠프에 도착해서였다. 

무기를 빼앗더니 따뜻한 수프와 고기를 주자, 동료들의 흰자위가 차츰 줄어들며 정상적인 눈으로 돌아왔다. 

모닥불에 몸을 녹이고, 배가 채워지자 언제 그랬냐는 듯 목소리가 나긋나긋해졌다. 

비로소 독기가 빠진 것이다.

“아깐, 우리가 잠깐 미쳤나 봐.”

“솔직히 쏠 생각은 없었다. 배고파서 뭐라도 얻을까 싶은 거지.”

“내 말이.”

‘에라, 한심한 새끼들아.’

헤리 러브는 고기를 질겅질겅 씹으며 동료들을 노려봤다. 그걸 보던 막스가 말을 건넸다.

“일주일 뒤에 요새로 복귀할 건데. 아직 SFBC에 생각 있어?”

“언제는 나이가 걸린다며?”

헤리 러브의 말에 동료들의 귀가 쫑긋거렸다. 

제대로 된 곳에 정착하고 싶은 간절함. 그들은 수프를 홀짝이며 막스의 입을 쳐다봤다.

“훈련에 참가해. 그리고 현역으로 충분하다는 걸 증명해.”

작금의 SFBC는 전투 병력에만 치중되어 있다.

막스는 물자 보급, 정비, 행정, 인사 등 다양한 분야의 인재들을 모을 생각이었다.

헤리 러브와 동료들이 능력이 있다면, 그에 맞는 일을 주면 된다. 하지만 채용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건 이들의 성향. 

훈련을 핑계로 지켜볼 좋은 기회였다.

혹한기 훈련 47일 차.

“내 발목 붙잡으면 각오해요! 이번엔 무조건 3등 안에 들 테니까!”

“누가 할 소리. 너나 내 발목 잡지 말라고!”

“분대 약진 앞으로!”

코닐과 헤리 러브가 한 분대를 형성했다.

나이와 둔해 보이는 몸이 무색하게 헤리 러브와 동료들은 훈련에 잘 적응하고 있었다.

- 우리가 누구냐?

- 캘리포니아 레인저스의 처음이자 끝!

- 그런데 애송이들에게 질 수 있어?

- 없지!

실제로 캘리포니아 역사에서 레인저스의 존재 기간은 1년이었다. 남들은 기억도 못 할 만큼 짧은 순간이었지만, 이들은 그 자부심으로 살아온 남자들이었다.

혹한기 훈련 50일 차. 

“더는 할 게 없다! 이만 하산한다!”

“드디어!”

훈련을 끝내고 우테 부족과 작별하고 산을 내려왔다. 물론 추장의 아들 우레이는 조만간 또 보게 될 것이다. 요새에서 영어를 배우고, 목장에서 일도 하고 있으니까.

“와 씨, 눈 녹은 것 봐.”

“뭐야. 벌써 봄이야?”

내려가는 길에 대원들은 금광에 오르는 광부들을 볼 수 있었다. 

독기 서린 눈빛의 시커먼 무장한 괴인들. 

금 캐러 왔다가 식겁한 얼굴로 도망치는 사람도 더러 있었다. 

그렇게 SFBC가 혹한기 훈련을 끝내고 막사 앞 연병장으로 복귀한 건 떠난 지 60일 만의 일이었다.

“다들 수고했다! 모두 좌향좌.”

“좌향좌!”

“두 달간의 경험이 여러분의 미래를 바꿀 것이다! 더불어 SFBC 첫 혹한기 훈련을 낙오자 없이 끝나게 해준, 로키 산맥에게 감사를 전한다. 전방을 향해 5초간 함성!”

“시바아아알!”

“...... 오늘 하루는 푹 쉬고 내일 아침 집할 할 수 있도록.”

헤리 러브와 동료들은 군장을 깔고 앉아 휴식을 취했다. 

SFBC도 아니라, 마땅히 갈 곳도 없었다.

그들이 멍하니 대원들을 바라볼 때, 하나둘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함께 고생한 만큼, 전우애가 생긴 모양이다.

다른 쪽도 마찬가지였다.

“코닐! 악으로 깡으로 공부할 수 있도록 해!”

“듀들리! 공부도 전투나 마찬가지야. 1등이 힘들면, 죽여서라도 차지하라고!”

“그건 너무 갔어, 새끼야. 아무튼 다음 겨울에도 또 보자.”

“!”

“방학이잖아?”

순간 얼굴이 창백해진 코닐과 듀들리는 이내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

다들 손을 붙잡고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코닐의 아버지 제임스는 진작부터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무거운 군장을 매고 늠름하게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모습에는 눈물이 핑 돌기까지 했다.

“추운데 왜 나와계셨어요.”

“춥긴 뭐가 추워. 아무튼, 고생했다.”

제임스는 아들과 포옹하며 등을 두드렸다.

듀들리와 코닐은 어차피 내일 일리노이 대학으로 떠나야 한다. 제임스는 고생한 둘에게 근사한 저녁을 준비했다며 집으로 데려갔다.

대부분 흩어지고 연병장엔 헤리 러브와 동료들만이 남게 되었다. 

그들이 뻘쭘하게 있는 동안 사라졌던 막스가 비서 칸토를 대동한 채 나타났다.

“오래 기다렸습니다, SFBC 신병 여러분. 칸토가 숙소를 안내해줄 테니, 따라가도록 해. 헤리 러브는 짐만 풀고 사무실로 오고.”

굳었던 헤리와 동료들의 얼굴이 풀어졌다. 

풀어지다 못해 눈시울까지 붉어졌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 숙소에 들어설 때까지. 

그들은 입가를 씰룩거리며 간신히 기쁨을 참아냈다.

짐을 대충 놔둔 채 헤리 러브는 칸토를 따라 막스의 사무실로 향했다.

덜컥.

문을 열자, 그 안에는 세븐 스트롱과 핑커톤의 탐정들이 앉아 있었다.

“헤리, 이제 그 식인마를 잡아 보자고.”

“물론이지.”

헤리 러브가 품속에서 현상금 수배 전단지를 내밀었다.

레비 분 헬름은 길쭉한 얼굴에 머리카락이 없는, 다소 맹한 얼굴의 남자였다.

핑커톤 수석 탐정 토디가 먼저 지시를 내렸다.

“포터, 수배지를 똑같이 인쇄해서 내일 아침까지 100장 만들어. 케이트 와네양. 이번 사건을 맡을 수 있죠?”

“물론입니다!”

케이트 와네는 시카고에서 몇몇 사건을 훌륭하게 해결한 경험이 있었다. 때문에 앨런 핑커톤과 토디에게도 신임을 듬뿍 받고 있었다.

자신 있게 대답한 케이트. 

그녀의 시선이 세븐 스트롱을 향했다. 

정확히는 피치였다.

‘뭐야. 저 눈빛은. 나랑 해보자고?’

혹한기 훈련으로 독기가 잔뜩 오른 피치다.

케이트가 내민 도전장을 거절할 리 없었다. 

눈썹을 꿈틀거린 피치가 막스를 쳐다볼 때.

그녀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잘 부탁해, 피치. 우리 쪽에선 네가 최고잖아.”

“...... 응. 알았어.”

피치와 케이트의 시선이 부딪힌다.

식인마를 잡기 위한 SFBC와 핑커톤의 공조를 가장한 경쟁이 시작되었다.

< 우리 중엔 네가 최고잖아 > 끝

작가의말

수배범은 켄터키 식인마라 불리는 실존 인물입니다.

캘리포니아와 로키 산맥에서 

함께 다니던 동료들을 배고파서 잡아 먹었다는데,

그게 중독이라도 되었는지 습관 적으로

인육을 먹었다더군요.

< 켄터키 식인마(1) >

회의가 끝나고 콜린과 막스 둘만 남게 되었다.

“괜찮겠어? 이건 피치한테 부담을 지우는 일이라고.”

골칫거리가 생겨난 듯 콜린이 찝찝한 얼굴로 물었다.

“어차피 내가 말 안 했으면, 본인이 한다고 달려들었을 겁니다. 그리고 이참에 케이트 와네의 능력도 궁금했어요.”

“그 정도로 주목할 여자야?”

“핑커톤 탐정만 수천입니다. 단순히 여자라서 그 자리에 있는 건 아닐 테니까요.”

일명 링컨의 볼티모어 암살 사건.

대통령에 당선되자마자 일어난 사건을 막은 게 케이트 와네다. 그 덕분에 핑커톤은 확실한 성장의 발판을 마련한 것이고.

피치를 떠나, 동시대에 태어난 이상 케이트의 능력이 궁금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를 알지 못하는 콜린은 걱정거리가 생긴 듯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말, 피치는 싫어하겠지만. SFBC 유일한 여인이 우울해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남자라도 똑같아. 기대를 한 몸에 받았는데 실패했을 땐 심리적인 타격이 클걸?”

“그 정도는 감당해야죠.”

막스는 자신이 생각해도 냉정하다 싶었는지 곧바로 말을 덧붙였다.

“그렇게 피치를 못 믿습니까?”

“아니, 뭐. 그건 아닌데.”

콜린은 입맛을 다시며 말을 이었다.

“인원부터 차이가 너무 나잖아. SFBC보다 7배는 많다고. 당연히 더 빨리 찾아내지 않겠어?”

“꼭 인원이 많다고 유리한 건 아니죠. 아무튼, 전 피치를 믿습니다.”

콜린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내일 아침에 보자고.”

“두 달 동안 고생했는데, 푹 쉬어요.”

콜린이 나가고 막스는 책상에 앉아 의자에 몸을 깊숙이 묻었다.

식인마는 사실 지나가는 사건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런데.

‘피치와 케이트 와네를 경쟁 붙인 게 잘한 것일까.’

가장 큰 불안 요소는 막스가 그 식인마를 모른다는 점이다.

혼란한 시대, 황폐한 땅에 살다 보면 사람도 피폐해지게 마련이다.

일전의 미국당을 가장한 캔자스 연쇄 살인범들처럼, 레비 분 헬름 역시 피폐한 연쇄 살인범 중 하나였다.

‘미래 정보는 전무한 상태.’

범죄 프로파일링도 없는 시대에 그런 놈을 어떻게 잡을 것인가.

프로파일링.

그 시작은 1888년 런던에서 벌어진 매춘부 연쇄 살인 사건의 잭더 리퍼였고, 제대로 사용된 건 1950년 미국의 퇴역한 FBI들이다.

하지만 범죄를 데이터화 하고 분석하는 기법은 앨런 핑커톤이 최초가 아닐까 싶다. 

앨런은 효과적인 수사를 위해 미 연방과 손잡고 범죄 데이터를 구축할 테니까. 다만, 시기는 링컨이 대통령이 된 이후의 일이었다.

‘그것까지 SFBC가 해야 하나.’

고심 끝에 막스는 의자에 몸을 일으켜 사무실을 벗어났다.

찾아간 곳은, 피치의 숙소였다.

기다란 이 층 복도의 맨 끝 방.

SFBC의 숙소는 보통 서너 명이 사용하지만, 피치는 유일한 여자라 혼자 사용하고 있었다. 

똑똑.

“나 막스.”

“응? 드, 들어와.”

덜컥.

문을 열고 들어가자, 피치가 당황한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막스는 그녀가 옷도 갈아입지 않고 책상에서 뭔가를 끄적거리고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안 피곤해? 얼른 씻고 자야지.”

“이럴 줄 알고 찾아온 거잖아?”

피치는 막스에게 작은 나무 의자를 내밀었다. 하지만 막스는 앉을 생각이 없었다.

“오래 있을 건 아니고. 그냥 걱정돼서 와 봤어.”

“나 못 믿냐?”

“물론 믿지.”

볼에 잔뜩 바람을 넣은 피치는 이내 작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솔직히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전혀 감이 안 와.”

“알려줘?”

“아니! 케이트와 공정하게 경쟁하고 싶어. 내 힘으로!”

“콜린은 핑커톤 탐정 수가 많다고, 네가 불리하다고 생각하던데?”

“그건 핑계야. 이런 건 쪽수가 중요한 게 아니라고.”

막스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같은 생각이야. 하지만 조금은 네가 불리한 건 사실이지. 그래서 균형을 맞춰주고 싶은데.”

“찝찝한 건 싫어. 이겨도 기쁘지 않다고.”

피치는 막스가 이번에도 뭔가를 안다고 생각했다. 늘 그래왔으니까.

그녀의 내심을 짐작이라도 한 듯 막스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내가 알았으면 굳이 너한테 맡길 이유가 없지. 나도 전혀 몰라. 그냥 이러면 어떨까 싶은 정도랄까.”

“...... 흠.”

피치는 미간을 찌푸리며 고민했다. 그런데 이미 막스가 입을 열기 시작했다.

“행동에 앞선 건 생각이고. 생각에 앞선 건 바로 심리야. 네가 식인마가 되었다, 생각하고 과거 행적과 그 심리를 분석해봐. 그럼 단서가 나올지도 모르니까.”

다른 살인범들의 수법에 관한 데이터는 존재하지 않는다. 정보는 오로지 헤리 러브와 동료에게서 얻은 것뿐. 그걸 통해 식인마 레비 분 헬름의 행적에서 패턴을 찾아내는 수밖에 없었다. 실패 확률이 높지만, 그나마 기댈 건 이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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