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9화 (119/360)

‘노예 해방? 혁명?’

승객 중에는 혁명가가 존 브라운이 아닐까 의심하는 자들도 있었다.

일행들이 열차를 수색하고, 경비 세 명을 붙잡는 동안 존 브라운은 자신의 명분을 승객에게 설명했다. 

하지만 동조하기는커녕 공포와 두려움을 피하고 싶은 얼굴들이었다.

그 모습을 확인한 존 브라운은 화가 치밀었다.

하지만 강요할 일은 아니라 속으로 삭이는 수밖에 없었다.

비가 내리고 엔진이 꺼진 기차 안에 차가운 공기가 스며든다. 기차를 접수한 존 브라운은 추위에 오들오들 떠는 승객들을 밖으로 내보냈다.

“이 시간에도 호텔은 열려있을 거요.”

사람들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역 앞에 있는 호텔로 향했다.

경비들은 역사 안에 묶어 두고, 존 브라운과 일행은 메릴랜드와 웨스트 버지니아의 양방향 통신을 무력화하는 작업을 끝냈다.

그런데 얼마 되지 않아 한 남자가 다리를 건너 나타났는데, 존 스테리라는 의사로 총소리를 듣고 온 것이었다.

몽고메리와 제니슨이 그를 붙잡으려 했지만, 존 브라운은 고개를 저었다.

존 스테리는 자신을 노려보는 자들에게 위압감을 느끼며 마른침을 삼켰다.

총소리를 듣고 왜 달려왔을까 후회가 되었다.

하지만 존 브라운은 그를 위협하기는커녕, 다시 돌려보냈다.

목숨을 부지한 존 스테리는 다리를 건너 집을 가는 대신. 루터 교회의 종을 울렸다. 그리고 찰스 타운에 이 사실을 알려 도움을 요청했다.

그를 풀어준 것이 화를 자초한 셈일까.

하지만 이는 존 브라운의 계산이 깔린 행동이었다. 

사실 전산망을 무력화해서 시간은 벌었지만 그에겐 또다른 고민거리를 안겨주었다.

혁명을 알려 많은 흑인 노예들의 참여를 이끄는 것. 그런데 이 혁명을 알리는 방법이 없다는 게 존 브라운의 가장 큰 고민이었다.

‘이렇게라도 알리는 수밖에.’

다리를 건너온 의사가 도움을 요청하고 소식이 퍼지기까지 시간이 걸릴 터.

존 브라운은 물끄러미 다리를 쳐다보고 있을 때, 몽고메리가 작업이 끝났음을 알렸다.

“다시 복구하려면 시간이 제법 걸릴 겁니다.”

“흠. 그럼 날이 밝을 때까지 기다리도록 하지.”

일행은 열차 안에서 담요를 덮고 동이 트기를 기다렸다. 그동안 존 브라운은 밖에서 주변을 둘러보지만 아무도 이곳을 찾는 자들은 없었다.

다리 너머의 동쪽 산이 붉게 물들 무렵.

존 브라운이 일행들에게 말했다.

“이제 병기창으로 가자.”

전신을 잘라 통신이 불가한 상태. 

다리를 점거하는 대원 셋을 놔둔 채 어둠을 뚫고 포토맥강을 따라 병기창으로 진입했다.

그리고 역의 한 귀퉁이에서 나타난 검은 그림자, 막스도 그 뒤를 따랐다.

‘뭔가 짠하네.’

존 브라운은 혁명이 시작되면 사람들이 몰려들 거라 여겼다. 병기창을 선택한 건, 몰려드는 흑인 노예들과 지지자들에게 무기를 나눠주기 위함이었고.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록 아무도 나타나지 않는다? 이쯤 되면 보통은 혁명을 실패로 간주하고 후일을 도모하는게 정상이다. 

하지만.

‘노빠꾸···.’

상남자 존 브라운은 거침없이 병기창으로 진격했다.

초라한 혁명. 

그 끝은 존 브라운의 교수형.

이게 원 역사다. 

하지만 막스가 개입한 이상.

‘확 바꿔주마.’

막스는 입가에 미소를 그리며 뒤를 따라갔다.

< 하퍼스 페리 습격(1) > 끝

< 하퍼스 페리 습격(2) >

하퍼스 페리 역에 억류된 기차가 출발한 건 오전 7시.

메릴랜드로부터 37km 떨어진 모노케이씨 부근에 도착해서는 한 회사의 전신망을 이용해 습격 소식을 전했다.

이 와중에 총 3대의 기차가 하퍼스 페리에 도착했고, 묶여있는 흑인 노동자를 발견한다.

사람들은 무기고 습격 사건을 전하려 했지만, 전신망이 망가진 탓에 워싱턴DC까지 보고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려야 했다.

하퍼스 페리 마을은 시작과 끝이 1km가 되지 않는 작은 마을이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병기창에서 일하는 근로자나 농장을 운영했다.

무기고의 경우 크게 제조시설과 적재하는 창고로 구분되어 있었는데, 10만 개에 달하는 라이플과 권총이 있었고 건물 또한 복잡하게 지어진 곳이었다.

혁명에 동참할 흑인들과 노예 폐지론자들이 무장하기에 충분한 수량이었다.

“인질들을 가장 큰 건물로 몰아넣어!”

존 브라운과 일행들은 60여 명의 인질을 붙잡아 두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출근한 무기고 직원들과 마을 주민들로, 적의 움직임을 봉쇄할 방패 역할이었다.

“너희는 이곳을 감시하고, 나머지는 엔진 하우스로 이동하도록.”

존 브라운은 몽고메리와 제니슨 등을 이끌고

무기고에 불이 났을 경우를 위해 만들어진 엔진 하우스로 향했다.

무기고 입구와 가장 가까운 곳이라, 무기고를 들어가려면 반드시 엔진 하우스를 지나쳐야 한다.

붉은 벽돌과 흰색 페인트가 칠해진 아치형의 문 세 개. 무기고의 화재와 경비를 대비하기 위해 지어진 이곳을 존 브라운은 혁명의 아지트로 삼았다.

무기와 식료품을 비축해두고, 마지막은 입구를 막는 일이었다.

“호스로 문을 막아. 나머진 문에 구멍을 뚫어 총격전을 준비한다!”

양쪽에 커다란 바퀴가 달리고 소방 호스가 돌돌 말린 소방차 두 대로 문을 막고, 호스로는 문을 열지 못하도록 단단히 조이고 묶어두었다.

한편, 또 다른 무기고 건물에는 막스와 피치, 콜린이 은신하고 있었다.

‘굳이 도망가기도 힘든 건물을 택했네.’

위장크림을 덕지덕지 처발라 흑인이 된 막스는 엔진 하우스를 보며 혀를 끌끌 찼다.

전면의 아치형 문이 세 개를 막고 결사 항전할 생각인 것 같은데, 수세에 몰렸을 때 사용하면 모를까 초반에 택할 방법은 아니었다.

물론 이해는 간다.

존 브라운의 병력은 고작해야 30명.

그중 다섯이 인질들 감시로 빠졌고, 일부는 다리를 점거하고 있어 엔진 하우스를 지킬 병력은 15명이 전부였다.

혁명을 이루기엔 턱없이 부족한 숫자였다.

하지만 존 브라운은 믿고 있었다.

곧 혁명에 동참할 사람들이 몰려올 것이고 그들이 무기고를 채울 거라는 걸.

“순진한 건지, 아니면 다른 의도가 있는 건지 당최 모르겠네. 언제까지 이렇게 지켜만 볼 거야?”

옆에 있던 왼쪽 뺨에 커다란 점을 만든 콜린은 고구마 몇 개 먹은 듯 답답함을 토로했다.

“아직은 아닙니다. 지금 개입하면 죽도 밥도 안 돼요.”

“진짜 궁금해서 그런데. 나중에 끼어들면 혁명이 일어나긴 하는 거야?”

“일어나겠습니까?”

“...... 그럼 뭐야. 어차피 망한 거잖아.”

막스는 고개를 저었다.

“중요한 건 사건이 일어난 이후죠.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어놔야 하거든요.”

“좀 쉽게 설명하면 안 되냐.”

“한 마디로 사람들의 양심에 불을 붙이는 겁니다. 말로만 노예 해방을 외치던 자들을 더 적극적으로 만드는 거죠.”

“그런 다음엔? 또 혁명?”

양 눈썹 사이에 점을 찍은 피치가 토끼 눈을 하고는 물었다.

막스는 고개를 저으며 되물었다.

“내년에 뭐가 있어?”

“......”

“1860년이면. 대선!?”

“이마에 점 찍더니 더 똑똑해졌네. 맞아. 이번 사건으로 대선의 판도가 바뀔지도 모른다고.”

피치는 맞췄다며 콜린의 팔뚝을 툭 건드렸다.

코웃음 친 콜린은 팔짱을 낀 채 턱을 매만졌다.

“공화당에서 대통령이 당선된다 이거지?”

“그럴 가능성이 있다, 이거죠. 노예 문제는 캔자스 유혈사태부터 차곡차곡 쌓여 온 겁니다. 일리노이주에서 링컨이 더글라스를 이기고 당선된 게 그 증거고.”

“그건 네가 도와줘서 당선된 거잖아.”

“그럼 콜린도 상원으로 만들어 줄까요?”

콜린과 피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가능해?”

“가능하겠어요? 도와줘도 안 될 사람은 안 됩니다.”

“...... (시벌).”

“아무튼, 링컨이 당선된 건 여론이 그만큼 노예 해방에 관심이 많다는 말이에요.”

혁명이 초라하든 말든.

하퍼스 페리 습격 사건은 노예제 폐지론자들이 결속하는 계기고 이는 공화당 대통령을 만들어낼 것이다.

“우선은 존 브라운의 믿음부터 깨야 합니다. 다른 방법을 모색하게 해야죠.”

사람마다 신념의 깊이가 다르다는 것.

자기 생각처럼 혁명이 쉽지 않다는 걸 존 브라운은 깨달아야 한다.

‘그때야 비로소 내 제안이 먹혀들겠지.’

*

오전 10시 되었을 즈음.

“반역자들은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라!”

존 브라운이 가장 먼저 맞닥트린 열댓 명의 민병대는 다리 건너에서 페리를 타고 넘어온 자들이었다.

이들이 빨랐던 건 새벽에 총소리에 왔다가 돌아간 의사 때문이었는데, 일찍부터 여기저기 알린 탓에, 존 아비스라는 자가 찰스 타운에서 민병대를 소집해왔다.

처음 도착한 이들은 직접적인 교전은 하지 않았다. 서부의 여느 민병대와 달리 무기가 제대로 없었기 때문에 협상하는 정도에 그쳤다.

하지만 정오가 되자 더 많은 민병대가 모이기 시작했다.

하퍼스 기차역을 관리하고 전 카운티의 보안관이었던 시장도 민병대를 이끌고 나타났다.

그는 협상보다 총이 앞선 자였다.

“감히 병기창을 점거해! 전원 사격 개시!”

탕! 탕!

엔진 하우스에 있던 존 브라운과 일행 역시 대응 사격이 이루어졌다. 교전이 벌어지자 다른 건물에 은신해있던 막스가 슬슬 움직일 채비를 했다.

“판이 깔렸으니 가 보죠.”

막스는 은밀히 건물 뒤쪽으로 접근했다.

이 시각 엔진 하우스는 총을 쏘면서도 거친 고성이 오고 갔다. 상황의 불리함을 깨달은 제니슨이 불만을 터트린 것이다.

“이대로면 다 죽어요, 존! 차라리 인질들이 있는 곳으로 가야 합니다!”

“가서 어떻게 하려고?”

“접근하면 하나씩 죽여야죠. 그러면 감히 공격하지 못할 겁니다.”

“그게 무슨.”

존 브라운의 얼굴이 찌푸렸다.

제니슨은 답답한 듯 목소리를 더욱 높였다.

“민병대 숫자는 늘어가는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아무도 오지 않았다고요. 혁명은 실패한 겁니다!”

제니슨의 말은 틀리진 않았다.

애초에 계획은 오전 내 무기고를 점거하고 혁명에 동참하는 사람들에게 무기를 나눠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오후가 되도록 단 한 명도 동조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30년 전과 전혀 바뀌지 않았구나.’

버지니아주에 냇 터너라는 흑인 노예가 있었다. 그는 백인들을 닥치는 대로 죽이고 노예들을 해방하기 위해 반란을 일으켰다.

하지만 정작 흑인 노예들은 그를 외면했다.

그 결과, 백인들은 냇 터너가 일으킨 반란을 두려워해 흑인 노예들을 옥죄게 되었다.

혁명의 부작용이 더 큰 셈이었다.

그리고 30년이 지난 지금 역사는 반복되고 있었다. 심지어 백인이 흑인들을 위해 봉기했음에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그래도 인질을 죽이는 건 안 되네.”

“일단 우리부터 살고 봐야죠! 정 마음에 걸리면 눈과 귀를 막으면 됩니다.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제니슨의 말에 몽고메리도 마음이 기우는 듯했다. 둘 다 실패한 혁명에 목숨을 버리고 싶진 않았다.

착잡한 얼굴을 한 존 브라운은 입을 굳게 다물고 침묵했다.

그런데 이때 지붕과 뒷벽 사이에 있는 창문이 깨지며 주먹만 한 돌덩이가 떨어졌다.

“이게 뭡니까?”

누군가 엔진 하우스를 향해 던진 돌.

그 돌에는 쪽지가 끈에 묶여있었다.

존 브라운이 허리를 숙여 돌을 집어 들었다.

끈을 풀어 종이를 펴자.

[병력 절반을 이끌고 뒤쪽 사무실로 오세요. 당신의 친구 막스가.]

“!”

눈을 부릅뜬 존 브라운이 깨진 창문을 올려다봤다. 그때 누군가 낑낑거리며 창문 위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얼굴에 점을 만든 콜린이었다.

“존, 잘 지냈죠?”

“..... 자, 자네가 어떻게 여길.”

기다리던 사람들은 안 오고, 뜬금없이 콜로라도에 있어야 할 사람들이 왔다.

방아쇠를 당기던 존 브라운의 측근들도 이내 멍한 얼굴로 콜린을 쳐다봤다.

*

몽고메리는 남아서 교전을 벌이기로 하고,

존 브라운은 막스의 말대로 병력 절반을 이끌고 엔진 하우스 뒤쪽에 있는 사무실로 건너왔다.

그리고 흑인이 된 막스를 보며 경악했다.

막스는 동요하는 존 브라운의 눈을 바라보며 말을 건넸다.

“존, 혁명은 실패했어요.”

“......”

“민병대가 총 들고 있는데 그걸 뚫고 동조자들이 나타나겠습니까. 헛된 기대는 버리세요, 존.”

지극히 현실적이고 냉정한 말.

존 브라운과 일행들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막스는 존 브라운을 응시하며 말했다.

“지금부터 내게 지휘를 넘겨요. 이미 모든 준비는 끝냈으니까.”

존 브라운과 양아들은 침묵을. 제니슨과 일행들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도 동조하지 않은 혁명은 의미가 없습니다. 이제는 수습할 차례에요, 존.”

“어쩔 생각인가?”

“이제 탈출에 신경을 써야죠. 일단은 인질 절반을 풀어줄 생각입니다.”

“말이 되는 소리야? 그럼 우리가 더 빠져나가기 힘들다고.”

제니슨이 끼어들었다.

막스에 관한 소문만 들었지, 직접 대면한 건 처음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막스에게 총을 맞고도제니슨은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흥분한 제니슨을 본 막스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이번 일에서 가장 중요한 건 무고한 사람들이 다치거나 죽지 않는 거야.”

“그걸 말이라고 해? 피 흘리지 않는 혁명이 혁명이야? 그렇게 해서 뭐가 바뀌냐고!”

“그럼 실패한 혁명에 인질까지 죽이면 뭐가 바뀌지? 그리고 멍청해서 모르는 모양인데. 혁명에서 필요한 피는 따로 있어.”

“...... 뭐?”

혁명에서 필요한 건 적이 아닌 아군의 피.

그 희생이야말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원래는 존 브라운이 피를 흘려야 했지만, 막스는 이를 바꿀 생각이었다.

‘건방진 동양인 새끼.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막스를 노려보는 제니슨은 화가 치미는지 눈꼬리를 파르르 떨었다.

인질을 죽여서라도 이곳을 나갈 생각이었는데,

갑자기 동양인이 튀어나와 방해하고 있으니 고깝기만 하다. 그렇다고 멋대로 하기엔 존 브라운과 그 측근들이 자신을 가만히 놔두지 않을 거고.

‘시발, 여차하면 나라도 빠져나가는 수밖에.’

제니슨이 머리를 굴리고 있을 때였다.

덜컥.

사무실 문이 열리고 히콕이 허겁지겁 들어왔다.

“보스, 연방에서 보낸 군 병력이 도착했어!”

“예상보다 빠르군.”

존 브라운이 침음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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