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0화 (120/360)

통신망은 무력화시켰지만, 생각보다 빠르게 워싱턴에 소식이 전해졌다.

대통령 제임스 뷰캐넌은 ‘워싱턴 해군 야드’에 해병대를 소집했다.

이들은 하사관 11명, 사병 80명, 나팔수 한 명과 곡사포 7문을 보유한 전력이었다.

그리고 이를 이끄는 자는 훗날 남부군의 총사령관 로버트 에드워드 리 대령이었다.

*

해병대가 워싱턴에서 출발한 시간이 오후 3시 30분. 해가 질 즈음 하퍼스 페리에 도착했을 때 장교 몇 명이 합류했다.

“상황은 어떻습니까?”

수염이 희끗희끗한 로버트 리 대령이 민병대 지휘관인 시장에게 물었다.

“놈들이 엔진 하우스에 처박혀서 총을 쏘는 바람에, 우리 민병대가 접근하기 쉽지 않더군요. 무기도 변변치 않고.”

민병대들을 훑어보던 로버트 리가 미간을 찌푸렸다.

무기가 아니라 민병대원 자체가 문제였다.

술에 취해 잔뜩 움츠려든 놈들이 무슨 총을 쏘겠는가.

“여긴 이제 우리가 맡도록 하겠습니다.”

로버트 리 장군은 장교 둘을 불러 지시를 내렸다.

“이스라엘 그린 중위. 자넨 엔진 하우스를 공격할 병력을 꾸리고, 지휘를 맡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그리고 젭 스튜어트 중위.”

“예!”

섬너 대령과 샤이엔 전쟁에 참여한 젭 스튜어트. 부상으로 캔자스 리븐워스에 머물러 있어야 할 젭이 이곳에 나타났다.

“자넨 내 임시 보좌관이 돼서, 상대에게 제안할 옵션들을 생각해 보게. 노예 해방을 주장한다는 데 실제로 저 안에 존 브라운이 있는지도 정확하지 않거든.”

“인질과 항복. 이 두 가지를 두고 협상안을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인질의 가치는 두 가지.’

탈출을 위한 방패와 협상을 위한 카드.

60명에 가까운 인질은 일부를 죽여도 상관없을 정도의 숫자.

‘희생자가 생기는 건 어쩔 수 없겠군.’

젭 스튜어트가 반란군이 처한 상황과 인질들이 있는 장소를 두고 나름의 계획을 세우고 있을 때였다.

해가 지고 어둠이 몰려올 즈음.

갑자기 무기고 게이트 밖으로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 인질들을 풀어줬어?”

젭 스튜어트는 놀란 듯 눈을 껌뻑였다.

그리곤 자리에서 일어나 사람을 붙잡아 물었다.

“모, 모르겠어요. 갑자기 절반을 풀어줬어요.”

“절반? 혹시 그 안에 존 브라운이 있던가요?”

“그건 모르겠습니다. 다들 노예 해방만 외쳐댔지, 이름을 말하진 않았으니까요.”

“나머지 인질들은 어떻습니까?”

“몰라요. 그냥 그대로 창고에 있을 거예요.”

젭 스튜어트는 거대한 창고에 나머지 인질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젭 중위.”

“예! 대령님.”

“반란군들이 왜 갑자기 인질을 풀어준 것 같나?”

젭 스튜어트는 잠시 고민한 끝에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곧 항복하겠다는 제스처가 아닐까 합니다. 우리 해병대 병력을 보고, 실패했다는 걸 확신한 거죠.”

“흠. 합리적인 추론일세.”

그런데 이때 무기고 게이트 안쪽에서 누군가 크게 소리쳤다.

“우리는 노예 해방을 위한 혁명군이다! 원하는 것은 단 하나! 제임스 뷰캐넌 대통령이 노예 해방을 선언하는 것이다!”

“......”

“혁명을 위한 우리의 각오를 지금부터 보여주겠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네이선 로어. 게이트 뒤쪽에서 입에 깔때기를 댄 채 소리쳤다.

“똑똑히 봐라! 우리의 의지를!”

화르르.

미리 기름이라도 부었는지, 순식간에 창고에 불이 붙었다.

연기가 나고, 이내 활활 타올랐다.

“저 창고엔 뭐가 있지?”

“이, 인질들이 있습니다···.”

“!”

로버트 리 대령과 젭 스튜어트의 눈동자에도 그 불길이 맺혀 활활 타올랐다.

같은 시각.

다른 곳으로 옮겨진 인질들은 방금까지 자신들이 있었던 불타는 창고를 넋 놓고 보고 있었다.

막스가 노린 건 상대를 흥분하게 만들어 공격을 서두르게 하는 것.

아니나 다를까, 분노한 로버트 리 대령은 젭 스튜어트와 그린 중위에게 곧바로 총공격을 지시했다.

< 하퍼스 페리 습격(2) > 끝

< 하퍼스 페리 습격(3) >

117화

창고에 불이 붙기 전.

군 병력이 집결되자 존 브라운은 모종의 결심을 하게 된다. 

그는 굳은 얼굴로 입을 뗐다.

“아무래도 이런 식으로는 답이 아닌 것 같네.”

지금 탈출을 생각하는 게 과연 옳은 걸까.

혁명을 주도하고 계획한 자신이 책임 지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실패가 아닐까.

“세상에 충격을 주고자 했으나, 실패했다고 회피하는 건 나답지 못하네.”

존 브라운은 아들들과 측근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너희들은 이곳을 탈출하고, 후일을 도모해라. 난 나만의 방식으로 이 일을 처리하마.”

“아버지!”

“존! 그게 무슨 소립니까! 우리 모두 같은 뜻을 품고 혁명에 동참한 겁니다!”

원 역사에서 존 브라운의 남자들이라 불리며 이름을 남긴 측근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아들들도 마찬가지였고.

‘나 답지 않다라.’

분위기가 묘하게 흐르자, 보다 못한 막스가 끼어들었다.

“실패의 책임을 지기 위해서 목숨을 버리는 건 비겁하고 무책임한 말입니다.”

“혁명의 의미를 담아내려면 그 방법뿐이네. 내 의도를 폄훼하진 말게.”

“나는 이만큼 했으니까, 나머지는 맡기마. 이런 걸 자기 위안이라고 하는 겁니다.”

“.......”

“세상을 바꿀 수만 있다면 살아남아서 포기하지 않고 시도해야죠. 그렇게 해서 결과를 만들어야 하는 겁니다. 그리고 또 하나. 실패의 원인도 모른 채 목숨을 버리면 되겠습니까?”

“원인? 자넨 아는 것처럼 말하는군.”

막스는 존 브라운의 눈을 쳐다보며 말했다.

“존, 이 땅엔 스스로 행복하다고 여기는 노예들도 많아요. 그것부터 인정하지 않으면 혁명은 실패할 수밖에 없거든요.”

“행복한 노예라. 남부 노예주들이나 하는 말이 자네 입에서 나올 줄은 몰랐군.”

자신들의 신념과 배치되는 말.

존 브라운과 측근들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막스를 쳐다본다.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막스는 말을 이어갔다.

“흑인 노예는 법적으로 배우는 것 자체가 금지되어 있죠. 쓰지도 읽지도 못하니, 자신이 처한 상황이 전부인 겁니다. 주인이 밥을 제때 먹여주면 그게 행복일 수도 있죠.”

“프레데릭 더글라스는 노예였지만 훌륭한 지도자가 되었네. 그의 사상과 신념은 우리와 다를 게 없네. 배움의 차이는 아니라는 거지.”

게다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흑인들도 마찬가지 아닌가? 

존 브라운과 일행들이 자신들의 논리를 내세우려 하지만, 막스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한두 사람을 빗대어 전체를 재단하면 안 되죠. 배우지 못하고, 두려움에 떨고 있을 노예들이 과연 당신들의 무엇을 믿고 혁명에 동참하겠습니까?”

지하철도? 

정작 탈출한 노예들은 어딘가에서 자신의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중 노예 해방을 위해 싸울 자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행동에는 책임이 따르는 법입니다. 그렇게 무책임하게 죽음으로 회피할 게 아니라, 어떻게든 결과로 만들어 보여주는 게 당신이 짊어져야 할 사명입니다, 존.”

냉정하지만 구구절절 틀린 말이 없다.

그래서인지 아들 프레데릭과 측근들도 나서서 거들었다.

“막스의 말이 맞습니다, 아버지! 포기하기엔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고요!”

“목숨이 아까워서가 아닙니다. 더 큰 기회를 노리는 것도 방법이에요, 존.”

착잡한 표정을 짓던 존 브라운.

계속된 설득에 결국 고개를 끄덕여 막스의 계획에 따르기로 했다.

한편, 막스는 의도적으로 제니슨과 몽고메리를 엔진 하우스로 몰아넣었다.

그들은 존 브라운이 어떤 대화를 나누는지 알지 못한 채 은밀한 이야기를 나눴다.

동양인을 믿지 못하고 현 상황에 불만이 많은 제니슨이 몽고메리를 부추겼다.

“탈출 루트가 있는데 비밀로 하는 이유가 뭐겠어? 애초에 없거나, 있다 해도 위험하기 짝이 없다는 거겠지.”

“그래서 네 생각이 뭐야?”

“우리가 살고 혁명의 실패를 덮는 거.”

“뭐로?”

몽고메리의 질문에 제니슨이 눈알을 굴리며 답했다.

“존 브라운의 희생.”

“......”

놀라는 대신 몽고메리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놀라지 않는 걸 보면 그 또한 같은 생각을 했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역시 몽고메리는 나와 잘 통한다니까.’

제니슨이 가장 두려워하는 건 실패한 혁명에 가담한 것. 그 결과로 사람들이 자신을 비아냥거리고 무시하는 모습이었다.

이는 제이호커스 리더에서 순식간에 밑바닥으로 추락한 일종의 트라우마였다.

“노예 새끼들과 폐지론자들이 동참하지 않은 건 아무도 피를 흘리지 않아서야. 게다가 존 브라운의 행동을 봐. 얼굴은 수염을 길러 감추고, 이제 와선 탈출할 궁리만 하고 있다고.”

“솔직히 나도 실망했어. 순교자가 될 각오가 되어 있다더니, 실패하니까 생각이 달라진 모양이더군.”

몽고메리의 말에 제니슨은 고개를 끄덕이며 한 방향을 쏘아봤다. 건물 벽 너머에 있을 동양인과 존 브라운을 향한 짜증과 분노였다.

“동양인한테 지휘권을 넘긴 것도 마음에 안 들어. 병신이, 인질 절반을 왜 자기 맘대로 풀어주는데?”

“그래서 제니슨. 빠져나갈 방법은 생각해 봤어?”

제니슨은 고개를 끄덕이며 더욱 목소리를 줄였다.

“인질을 우리가 빼앗는 거야. 여차하면 하나씩 죽이면서 활로를 뚫는 거지.”

“존 브라운은?”

“적들에게 협상 조건으로 넘겨야지.”

제니슨과 몽고메리가 힘을 합치면 이곳에 있는 대원 다섯 정도가 따라올 것이다. 

그 정도면 뒤통수치기에 적당한 수였다.

턱을 매만지던 몽고메리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존 브라운의 나약해진 신념을 도와주는 거네.”

“암, 비겁자를 순교자로 만드는 거지.”

어떤 식으로든 노예 해방을 위한 행동이 아닌가.

노예제 폐지론자로서 둘의 신념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 때문에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데 짧은 시간이면 충분했다.

한편, 둘의 움직임을 주시하던 SFBC 대원 하나가 막스에게 다가와 은밀히 보고를 했다.

“둘이 쑥덕거리면 뻔하지. 잔머리 더 굴리기 전에 시작해야겠군. 창고에 불 질러.”

막스는 바깥에 있는 군인들 뿐 아니라, 내부의 적들도 당황 시켰다. 그들의 머릿속 사고를 중단시키고 행동을 끌어냈다.

*

탕! 탕!

“놈들은 인질들을 죽인 반란군들이다! 보이는 족족 사살하라!”

파죽지세로 90명의 미 해병대가 병기창 게이트를 밀고 들어온다. 

갑자기 벌어진 상황에 당황하며 몽고메리와 제니슨은 엔진 하우스를 버리고 뒤로 후퇴했다.

탕! 탕!

피융, 피융.

뒤통수에서 들려오는 총성. 

벽돌과 쇠기둥에 맞아 생기는 파편들. 

여기에 더해 화재로 인한 연기까지 가세하며 후퇴하는 이들의 공포심을 자극했다.

제니슨이 이를 악물며 소리쳤다.

“젠장! 그 자식이 인질들을 다른 곳으로 빼돌린 것 같아.”

“뒤로 빠지면서 찾아보자!”

‘찾긴 뭘 찾아.’

한 건물 옥상.

막스와 피치, SFBC 저격수들은 인질을 찾아다니는 제니슨과 몽고메리 일행을 쬐고 있었다. 

그런데 그 뒤를 쫓는 군인들이 총을 쏘며 그들 앞을 지나갈 즈음.

‘젭 스튜어트?’

선두에 있는 남자를 본 순간 막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놈이 여기에 있든 말든, 지금은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동시에 사격한다. 하나, 둘, 셋.”

탕!

동시에 총성이 울리고. 

달리던 제니슨, 몽고메리와 그의 부하들이 땅에 쓰러졌다.

혁명을 위한 피. 

그 제물이 마침내 만들어진 것이다.

‘좋아할지 모르겠지만. 너희들의 이름을 예쁘게 포장해서 후대에 남겨 주마. 뭐, 아닐 수도 있고.’

총성이 뒤섞인 바람에 제니슨과 몽고메리의 죽음은 해병대가 한 것으로 결론 날 것이다.

심지어 이 사실은 존 브라운조차 알지 못하는 일이었다.

‘무덤까지 가져갈 비밀이 생겨버렸네.’

공범자는 피치와 저격수들.

그들의 입이 무겁다는 건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막스와 일행은 미리 준비해둔 탈출 루트를 이용해 빠르게 자리를 이탈했다.

하퍼스 페리 병기창 주변은 담장으로 둘러 있고, 게이트에서 반대 끝까지의 거리는 600미터가량 된다.

병기창의 왼쪽엔 담벼락 너머 마을 언덕이 보이고, 오른쪽은 기차 철로가 있었는데 이는 150미터 폭의 포토맥강과 맞닿아 있었다.

게이트에서 병기창의 끝까지 길쭉한 직사각형의 모습이었다.

젭 스튜어트가 죽은 제니슨과 몽고메리 일행을 확인했다. 시간이 지체되었고 그 틈에 막스는 병기창 오른쪽으로 빠져 철로가 있는 쪽으로 나올 수 있었다.

철로 옆 포토맥강을 가로지르는 나룻배.

그 안에는 콜린의 지휘 아래 존 브라운과 일행들은 건너편 메릴랜드로 넘어가는 중이었다.

이대로 발각되면 총탄이 쏟아질 거고, SFBC의 탈출을 위해서라도 시간과 이목을 끌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남겨둔 것이 바로 인질이었다.

막스와 일행은 군인들이 나룻배를 볼 겨를을 주지 않기 위해 인질을 가둬둔 건물로 향했다.

피치와 저격수들은 놔둔 채, 막스가 건물 안으로 진입을 시도했다. 

문은 걸어 잠갔기 때문에, 담벼락과 붙어 있는 건물 뒤 개구멍으로 들어갔다. 

그 안에는 어둠 속에서 SFBC 10여 명이 인질들을 감시하고 있었다.

“시작하자.”

나직한 외침과 함께 막스가 천장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잠잠했던 병기창에 또다시 총성이 울려 퍼졌다. 소리는 훌륭한 미끼가 되었다. 흩어졌던 군인들이 건물로 모여들어 문을 열려 했다.

막스는 그 모습을 보다 인질에게 말을 건넸다.

“뭐해? 살려달라고 소리쳐야지. 저러다 총이라도 쏘면 어쩌려고.”

그래도 되냐고 인질들이 눈을 껌뻑거릴 때, 무리에 있던 두 명이 소리를 질러댔다.

“여기 사람이 있어요!”

“살려 주세요!”

미 해병대들 일부가 사다리를 눕혀 문을 향해 쇄도했다.

쾅!

쾅!

나무 문짝이 흔들리고, 쪼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둠 속에서 인질들은 숨을 죽이며 문이 열리길 기다렸다. 

그리고 이 틈에 SFBC는 하나둘 개구멍으로 밖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파지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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