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문이 열리자 군인들이 창고 안으로 진입했다.
마지막으로 빠져나간 막스는 알프레도에게서 받아 온 길쭉한 검은색 원통에서 핀을 뽑아 개구멍 안으로 밀어 넣었다.
‘하나, 둘, 셋.’
치이이이이익.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연기가 솟아났다.
이번엔 파란색 원통을 꺼내 또다시 핀을 뽑았다. 역시 셋을 세자.
펑!
굉음과 함께 개구멍 틈으로 빛이 번쩍였다.
“으악! 뭐야!”
“내 눈!”
창고 안은 섬광탄과 연막탄으로 인질과 군인들이 어우러져 아수라장이 펼쳐졌다.
막스는 구경할 새도 없이 철로를 따라 달렸다.
그리고는 또다시 검은 원통의 핀을 뽑아 연막탄을 터트렸다.
‘연기 양이 좀 부족하긴 하지만, 이 정도면 뭐.’
화재와 연막탄에서 뿜어진 연기가 막스의 모습을 지워갔다.
그리고 잠시 후엔.
히이이잉!
말 울음소리와 함께, 수십 마리의 말들이 포토맥강을 따라 서쪽으로 질주했다.
“이게 무슨 소리냐!”
마을 언덕에서 상황을 지휘하던 로버트 리 대령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연기가 뒤섞인 가운데, 그 사이로 서쪽으로 멀어져가는 무리가 눈에 들어왔다.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냐.’
로버트 리 대령은 장교 둘을 소환했다.
잠시 후. 헐레벌떡 달려온 젭 스튜어트는 거친 숨을 내쉬며 말을 내뱉었다.
“전부··· 탈출했습니다.”
“뭣이?! 말을 타고 도망갈 때까지 지금까지 무슨 일을 한 건가, 젭 중위!”
“죄송합니다. 하지만 인질들은 무사합니다. 놈들이 빈 창고에 불을 붙였더군요.”
“허···.”
인질들이 무사하다니.
로버트 리 대령은 멍하니 불에 타고 있는 창고를 바라봤다.
“놈들이 만반의 준비를 했던 것 같습니다. 일부는 나룻배를 이용해 강을 건넜구요.”
“자넨 사망자와 부상자를 파악하게. 그리고 이 일의 주동자들을 가려내도록 해.”
“알겠습니다.”
로버트 리 대령은 미간을 찌푸린 채 또 다른 장교 이스라엘 그린 중위를 불러 지시했다.
“자넨 놈들의 도주 경로를 파악해 전보를 치도록 해.”
“통신망이 아직 복구가 안 돼서··· 좀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연락을 취하도록 해.”
“알겠습니다.”
지시를 끝낸 로버트 리는 팔짱을 낀 채 턱수염을 매만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갔다.
‘혁명이니 뭐니. 터무니없는 계획을 세워 놓고, 정작 도망은 이렇게 완벽하다니.’
요리는 홀라당 태워 먹지도 못했는데,
설거지만 기막히게 한 꼴이지 않은가.
‘일을 벌인 놈과 수습한 놈이 다른 건가.’
로버트 리는 날카로운 눈으로 하퍼스 페리 병기창을 내려봤다.
이제야 불을 끌 여유가 생겨 엔진 하우스에서 끌어온 소방차 두 대의 호스에선 물줄기를 쏘아대고 있었다.
그나마 바람이 불지 않아 창고 하나만 불에 탄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한편, 젭 스튜어트는 인질들이 있던 곳으로 들어가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다.
‘연기를 뿜어내고, 갑자기 소리랑 빛이 번쩍였단 말이지.’
그게 무엇인지 흔적을 찾으려 했으나 어두워서 그런지 찾기가 쉽지 않았다.
수개월 전, 젭 스튜어트는 기병들이 사용하는 검을 말에 착검하는 것으로 특허를 취득했다.
이를 팔고 병참 장교를 지원하려 워싱턴에 있던 차, 하퍼스 페리 사건을 듣고 합류하게 된 것이었다.
젭 스튜어트가 창고와 개구멍 사이를 관찰하는 동안. 인질이었던 두 명의 남자가 기다란 원통 세 개를 품에 감춘 채 기지를 벗어나 마을로 향했다.
이들은 한때 리븐워스의 대장간에서 구리 탄두로 인해 막스의 노예가 될 뻔한 마틴과 동료 브렛이었다.
“우린 며칠 더 있다 가는 거지?”
“의심 안 받으려면 그래야지. 그리고 아직 병기창에 있는 장비도 전부 파악하지 못했잖아.”
“그럼 한 일주일 있다가 갈까?”
브렛의 말에 마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나직이 탄성을 터트렸다.
“보스는 진짜 보면 볼수록 놀랍단 말야.”
두 달 전, 막스가 말하길.
- 섬너 대령이 하퍼스 페리 병기창에 너희 둘의 자리를 만들어놨대. 가서 선진화된 병기창을 견학하고 와.
- 언제까지?
- 내가 갈 때까지.
- ?
그렇게 병기창에 도착해서 일한 게 보름 전.
몇 년 전 대대적인 업그레이드를 한 공장이라 신기한 장비들이 많아서 이것저것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다.
그런데 막스가 도착했을 때, 그는 전혀 다른 지시를 내렸다.
- SFBC 대원들이 숨어 있을 만한 건물, 탈출할 때 필요한 말, 그리고 인질이 되어서 분위기를 조성해. 존 브라운은 아닌 것 같다고.
봤는데, 저렇게 안 생겼다고 바람 잡으라고 지시했다. 그게 다가 아니다.
- 참, 혹시 내가 연막과 섬광탄 사용하거든 탄피 꼭 회수하고. 내가 그런 거 민감한 거 알지?
- ...... 견학이라며.
- 그럼 견학이지, 견학.
오늘을 위해 그동안 얼마나 가슴을 졸였던가.
일개 대장간 직원으로선 감당하기 힘든 일이었다.
물론 막스는 이런 말도 했었다.
- 너희도 SFBC이 일원이야. 총 들고 싸우는 것만큼, 중요한 일들을 하고 있으니까.
다시 생각해도 가슴이 뜨거워지는 말이다.
마틴은 씨익 웃으며 브렛에게 말을 건넸다.
“그동안 고생한 보상으로, 한 잔 어때?”
“내가 먼저 말하려고 했는데.”
둘은 키득거리며 여관으로 향했다.
< 하퍼스 페리 습격(3) > 끝
작가의말
하퍼스 페리 습격 정보를 찾아보면
이해가 안 가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특히 지리와 건물의 위치들을 보면
어떻게 이런 계획을 세웠을까 싶을 정도로
허술해 보였습니다.
하긴, 21명이 나라의 병기창을 습격해서 점거한다는 게
애초에 말이 안 되는 일이기도 했죠.
< VIP 고객님 오셨다 >
10월의 가을.
막스와 존 브라운은 사건이 벌어진 하퍼스 페리와 75km 떨어진 버지니아주 북쪽의 올드 타운에서 합류했다.
기차는 발각될 염려가 있어 오로지 말로만 이동했고. 그렇게 해가 뉘엿뉘엿 지고서야 전 인원이 모이게 되었다.
SFBC가 30, 존 브라운 일행이 25명이었다.
타닥, 타닥.
모닥불에 둘러앉아 빵과 옥수수 스푸를 곁들여 끼니를 때운다.
시종일관 침묵하던 존 브라운이 입을 뗐다.
“제니슨과 몽고메리는 어찌 되었나 모르겠군. 엔진 하우스에서 바로 빠져나올 줄 알았는데.”
“기사를 보면 알겠죠.”
막스는 담담한 얼굴로 대답했다.
혁명의 제물로 바쳤다는 건 밝히지 말아야 할 비밀이었다.
“그 둘이 아무리 문제가 있다 치더라도, 나와 함께 한 동료였네. 만약 그들이 붙잡혀있다면 빼내기 위해 최선을 다할 걸세.”
“당연히 그러셔야겠죠. 다만 지금까지와는 다른 노선을 가야 합니다.”
“다른 노선?”
존 브라운과 측근들이 막스의 입을 쳐다본다.
그는 아직도 흑인으로 위장한 모습이었다.
“이번 혁명을 끝으로 무력이 아닌 정치 집단으로 변모할 필요가 있어요.”
“흠. 애초에 그럴 생각이었으면 총을 들진 않았을 걸세.”
“정치도 전쟁과 다를 바 없습니다만.”
“책상에 앉아 입으로만 떠드는 위선자는 되기 싫다는 말이네.”
존 브라운의 말에 막스는 내심 실소를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폭력으로 점철된 존 브라운의 성향을 바꾸긴 했으나, 그는 여전히 한 가지만 보는 경향이 있었다.
이를테면 핍박받는 흑인 노예와 노예주에서 선출된 정치인을 전체인 양 말하고 있다.
이는 극단적 치우침이었다.
“불행하게도 세상을 움직이는 건 그런 위선자들이에요, 존. 그렇다고 그들이 악인일까요? 영국에서 노예 해방을 선언한 건 수상 찰스 그레이였고, 그걸 가능하게 만든 사람은 하원 의원 윌리엄 윌버포스였죠. 그들도 위선자입니까?”
영국은 1834년에 노예 해방을 선언했다.
아프리카를 넘어 전 세계의 하나의 전환점을 만들어낸 대사건이었다.
“동양인이 흑인 위장했으니, 나는 위선자입니까? 중요한 건 수단이 아니라 목적입니다. 진정 노예 해방을 원한다면 위선자가 되어야 합니다.”
“흠.”
존 브라운 역시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다.
다만 성격이 급하고 다혈질인 탓에 행동하지 않으면 불안한 마음이 커서였다.
“하퍼스 페리 혁명에 가치를 부여하려면 여러분 모두 위선자가 되어야 합니다.”
막스는 존 브라운의 측근들로 시선을 돌렸다.
올해로 27살인 존 쿡은 코네티켓의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 예일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인물이다.
26살인 아론 스티븐스는 16세에 멕시코 전쟁에 참전하기 위해 코네티켓에서 집을 떠나, 의용군으로 전쟁에 참여했다. 그는 존 브라운처럼 불같은 성질을 가진 자였다.
그리고 22살의 존 카기.
그는 학교 선생님이었고 네브래스카에서 변호사 자격을 취득, 신문의 특파원으로도 활동한 적이 있었다.
혁명에 함께 하진 못했지만, 뒤에서 그를 후원하는 비밀의 6인 위원회 역시 만만치 않은 자들이었다.
존 브라운은 이렇듯 유능한 사람들을 스펀지처럼 사람들을 빨아들이는 능력이 있었다.
비폭력주의자가 총을 들게 할 만큼 선동에도 일가견이 있었고, 신념으로 무장한 존 브라운의 웅변과 토론은 총 못지않게 훌륭한 무기였다.
어찌 됐든, 운을 떼었으니 결정은 그들의 몫이다. 하지만 막스는 자신했다.
무력 혁명에 실패한 이들이 기댈 것은 결국 정치적 수단밖에 없을 테니 말이다.
*
[충격! 반란군들의 연방 무기고 점거!]
[극단적 노예제 폐지론자들의 하퍼스 페리 병기창 습격, 실패로 끝나다!]
[정부, 반란을 주도한 혐의로 존 브라운에 수배령. 하지만 증거는 심증뿐.]
[존 브라운의 개입을 입증할 수 있을까? 목격자들의 진술에서도 흔적을 찾을 수 없어.]
[현장에서 사살된 반란군들,
알고 보니 제이호커스의 찰스 제니슨과 제임스 몽고메리로 밝혀져.]
[로버트 리 대령, 반란군들을 제압하다.]
하퍼스 페리 습격 사건이 미 전역을 강타했다.
국가의 병기창을 습격, 점거까지 했다는 점에서 여타의 사건과 미치는 파장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주목할 점은 노예주와 자유주의 언론의 극명한 온도 차이. ‘반란 대 혁명’이라는 각 진영에 유리한 쪽으로 기사가 작성될 수밖에 없었다.
캔자스 유혈 사태, 노예주 하원이 자유주 상원을 폭행한 사건, 드레드 스콧 최악의 판결. 그리고 하퍼스 페리 습격은 분열의 갈등이 한계점에 도달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백인과 흑인.
노예제 옹호론자와 폐지론자.
농업과 공업.
노예주와 자유주.
그리고 민주당과 공화당···.
미국은 확실한 분열의 길을 걷고 있었다.
가는 길목에 검문당할 위기가 있었지만, 무사히 빠져나갔다.
이때 막스는 한 가지 유혹을 느꼈는데.
존 브라운이 체포당하는 것이었다.
극적인 대중의 이목과 지지를 끌어내려면 이 또한 좋은 방법이지 않겠는가.
현행범이 아닌 이상 교수형 당할 일도 없을 테니 말이다.
‘문제는 시간이 많지 않다는 거야.’
구금된 존 브라운을 빼내려 시간을 낭비하느니 정공법을 택하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도착한 곳은 거대한 미시간 호수를 끼고 일리노이주의 시카고.
콜로라도를 생각했던 사람들의 예상을 깬 경로였다.
단 한 명, 존 브라운은 막스의 의도를 짐작하고 있었다.
오는 내내 고민과 갈등하던 그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결심을 굳혔네. 위선자가 될지라도 목적을 이루기 위해 무엇이든 할 생각이네.”
“잘 생각하셨습니다.”
존 브라운이 손을 내밀었다.
막스가 이를 붙잡자.
“자네가 나를 도와주게.”
“존도 저를 도와주십시오. 노예 해방 말고도 해야 할 일은 많으니까요.”
“알고 있네. 그럼, 일이 끝나는 대로 콜로라도에서 만나기로 하지.”
존 브라운은 무리를 이끌고 시카고 도심으로 향했다. 그가 향한 곳은 일리노이주 공화당 본부였다.
콜린은 멀어지는 존 브라운을 보며 물었다.
“존이 결심했다는 게, 설마 그거야?”
“아마도요.”
“저러다 붙잡혀가면 어쩌려고?”
“그럼 더 잘 된 거죠.”
뚜렷한 증거도 없이 공화당 당원을 연행할 수 있을까? 정부는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을 터.
그래도 강행한다면, 그 또한 대중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좋은 소스였다.
“자, 그럼. 다들 고생했는데 시카고에서 이틀 정도 머물다 갈까?”
“오오!”
SFBC 대원들이 환호하며 들뜬 얼굴이었다.
오랜 여정으로 몰골들이 말이 아니다.
더욱이 시카고와 같은 대도시는 먹고 놀고 마시기에 부족함이 없는 곳이었다.
“내가 시카고를 오다니.”
산초가 도시를 응시하며 가슴 벅찬 표정을 지었다.
바다와 헷갈릴 정도로 거대한 미시간 호수.
그 옆에 오밀조밀하게 붙어있는 도시는 고작해야 서부가 다였던 산초의 가슴을 웅장하게 만들었다.
산초가 넋 놓고 도시를 바라볼 때 와일드 빌 히콕이 다가와 비아냥거렸다.
“하여간 촌놈들은 어딜 가나 티를 낸다니까. 뭘 이딴 걸 가지고 감격하고 그러냐.”
“그렇게 잘 알면, 오늘 밤 술 마실 곳이나 안내하던지.”
“걱정하지 마. 나만 따라오라고.”
*
일리노이주 시카고 워싱턴 스트리트 80.
호텔에서 짐을 풀고 흑인 위장을 지운 막스는 홀로 시카고 도심의 한 건물을 찾아갔다.
그동안 돈을 얼마나 벌었는지 핑커톤은 6층짜리 건물에 로비도 으리으리했다.
“우린 절대 잠들지 않아요(We never sleep)! 핑커톤 탐정 에이전시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고객님?”
“사장님을 만나러 왔습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