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스는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고.
피치는 미소를 머금으며 브로치를 쳐다봤다.
*
막스와 SFBC 대원들이 콜로라도에 도착한 건 11월 중순이 될 즘이었다.
겨울이 아님에도 로키산맥 곳곳이 얼어붙기 시작했다.
“우리에겐 아직 한 달의 시간이 남았드아!”
“혹한기까지 나 말리지 마.”
막스는 피식 웃으며 사무실로 향했다.
무려 5개월 만의 복귀라, 그동안 얼마나 많은 서류가 쌓였을지 끔찍한 생각이 앞섰다.
“보스, 무사히 잘 다녀오셨습니까!”
“잘 다녀오셨어요!”
칸토와 비서 세 명이 막스를 반겼다.
“다들 별일 없었지?”
“옙! 근데 보스를 기다리는 분이 계십니다.”
“누군데?”
“섬너 사령관이요.”
‘하퍼스 페리 습격 때문인가!’
어디로 도망가야 하나 두리번거릴 때, 뒤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아주 대단한 일을 벌이고 왔더구만.”
‘젠장, 늦었군.’
고개를 돌린 막스는 함박웃음을 지어 보였다.
“들어가서 얘기하세나.”
“커피 좋아하시죠? 칸토, 귀한 손님이 오셨으니까 스폐샬 포스 커피로 부탁해.”
“알겠습니다!”
섬너 대령은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사무실 소파에 앉자마자 그가 입을 뗐다.
“지금 자넬 잡아도 문제가 없을 것 같은데. 안 그런가?”
“어이구, 무슨 그런 말씀을.”
“하퍼스 페리에 직원 둘을 꽂아 줬더니 설마 그런 일을 벌일 줄 누가 알았겠나. 미리 말이라도 해줬으면 좀 좋아? 아무튼, 이번 일은 많이 섭섭하네.”
“사정이 있었습니다.”
막스는 그날 있었던 일을 짧게 설명했다.
섬너 대령은 다채로운 표정을 지으며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존 브라운을 막으려 했다 이거군.”
“말이 좋아 혁명이지, 일반인이나 군인이 죽었으면 일이 더 커졌겠죠. 레인 의원이 말해줘서 일찍 대응할 수 있었습니다.”
“흠. 사정이야 그렇다 쳐도, 섭섭한 건 섭섭한 거네. 우리 사이에 그 정도는 말해줄 수 있지 않은가?”
“앞으론 꼭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섬너는 턱수염을 매만지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SFBC에 의뢰할 일이 생겼거든.”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거라고 하시더니.”
“...... 생겨버렸네.”
섬너는 막스를 보며 말을 이었다.
“텍사스 남쪽 브라운스 빌을 민간 군사 집단이 점거해버렸네.”
“민간 군사 집단?”
“후안 코르티나라는 테야노스가 이끄는 조직이지.”
본래 코르티나 집안은 멕시코 전쟁 이전에는 텍사스 브라운스 빌의 유지였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뒤에 토지 일부가 몰수되자 갈등이 깊어졌다고 한다.
“멕시코인들도 그렇고. 다른 테야노스도 그자에게 동조하고 있네. 로빈후드라나 뭐라나. 아무튼 마을을 통째로 점거하는 바람에 여간 골치 아픈 게 아니네.”
“병력은요?”
“70명. 대부분 멕시코 전쟁에 참전했던 군인들이지.”
“멕시코 정부는요?”
“우리가 어떻게 나오는지 관망하고 있네. 그냥 놔두면 앞으로 이런 일이 반복되겠지.”
토지 문제로 촉발된 갈등이 양국의 경계에서 무력 충돌을 불러일으켰다.
브라운스 빌에선 민병대 20명을 조직해 싸웠으나 힘도 못 쓰고 밀려났다고 했다.
심지어.
“텍사스 레인저스도 나섰지만 실패했네.”
“군은요? 그쪽에도 요새가 있지 않습니까?”
“그놈의 아파치와 코만치 인디언들 때문에 여력이 없네. 병력을 빼봐야 20명 내외거든.”
막스는 팔짱을 낀 채 생각에 잠겼다.
‘멕시코 국경까지 가서, 무슨 이득이 있을까.’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섬너가 미끼를 던졌다.
“비용은 2만 달러. 연방과 텍사스에서 반씩 부담하기로 했네. 사실 이것도 내가 겨우 얻어낸 거라네. 사실 SFBC는 몰몬교 외에는 입증된 게 없으니까”
“뭐, 틀린 말은 아니군요. 이번 일로 SFBC를 확실히 알려라, 이 말입니까?”
“좋은 기회가 되지 않겠나.”
정부한텐 굳이 잘 보일 이유가 없었다.
어차피 곧 정권이 바뀔 테니까.
다만 텍사스주와 레인저스가 엮였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혹한기 훈련을 실전으로 대체해버려?’
2만 달러면 효율적인 인원 운용은 30명 내외.
하지만 훈련을 겸해서 전 대원을 데려가기로 했다. 어차피 남북전쟁에 대비해 점검이 필요한 상황이었으니까.
*
“아직 한 달 남았다 이거지!”
“서둘러 지금도 시간이 가고 있다고!”
“시발, 그냥 도망가고 싶다 하.”
혹한기 훈련이 오기까지 뭔가 하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은 마음. 숙소에 도착한 대원들이 어디론가 뛰쳐나가려 할 때였다.
댕! 댕!
종이 울리며 복도에서 네이선 로어의 우렁찬 소리가 울려 퍼졌다.
“SFBC 전 대원은 6시까지 연병장으로 집합!”
“와씨, 또 뭐야.”
“어째 뒷골이 싸한데?”
해진 저녁.
연병장에 땅거미가 질 때 SFBC 대원들이 칼같이 오와 열을 맞춰 도열했다.
단상에 올라간 막스는 대원들을 둘러보며 입을 뗐다.
“혹한기 훈련 일정과 장소에 변동이 생겼다.”
- 오오!
- 설마 더 깊숙이 들어가는 건 아니겠지.
- 제발···.
다들 숨죽이며 막스의 입을 노려봤다.
‘이것들이 미쳤나.’
“커흠. 장소는 텍사스 남부 브라운스 빌. 우리와 비슷한 민간 군사 집단이 마을을 점거했다고 한다. 아쉽지만 혹한기 훈련은 이것으로 대체하기로 했다.”
- 거긴 좀 따뜻하지 않나?
- 아무래도 텍사스 남부면 그렇겠지?
- 시발, 다행이다. 흑.
“누가 속닥거리나! 출정은 이틀 뒤. 모두 준비할 수 있도록.”
“옛썰!”
대원들이 해산하고, 막스는 세븐 스트롱과 다섯 명의 중대장들을 회의실로 불러들였다.
“이번 작전은 신병들의 실전 경험에 초점을 둘 거야. 분대에 골고루 섞어서 잘 가르치도록 해.”
“알겠습니다!”
“이번 훈련의 목표는 개개인이 중대 하나를 이끌 정도로 능력을 키우는 거다.”
머지않아 닥칠 남북전쟁에 대비한 인재 양성.
SFBC를 한 덩어리로 움직이기보단, 일부는 군으로 입대시킬 생각이었다.
그리고 군의 요직에 앉아 막스를 돕는 게 장기적 플랜이었다.
< 혹한기 장소와 일정이 바뀌었다 > 끝
작가의말
어제 자,
‘제니슨과 몽고메리의 희생’ 부분에서
의미 전달이 제대로 안 된 것 같습니다.
희생을 포괄적인 의미로 썼는데, 무사히 도망갔을 경우를
생각하면 희생이라는 언급이 적절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 부분은 제니슨과 몽고메리 부분을 삭제하고,
‘혁명의 가치를 담는 의미’ 정도로 수정했습니다.
< 눈빛들이 왜 그래 >
다가올 대선.
이후에 벌어질 남북전쟁.
여러 계획이 진행되고는 있지만 뭔가 놓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뭐지. 이 찜찜한 기분은.’
로렌스에서부터 콜로라도까지. 조직과 인물들을 나열하던 끝에 한 인물이 떠올랐다.
‘율리시스.’
그동안 율리시스 그랜트를 너무 방치했다.
훗날 남북전쟁 총사령관을 대장간에 처박아둔 채 잊고 있었으니.
전략회의를 끝낸 막스는 회의실을 나와 율리시스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동안 월급도 꽤 모았을 텐데, 이러다 군대 안 가는 거 아냐.’
원 역사에서 율리시스 그랜트는 사업 실패와 처가살이를 벗어나기 위해 남북전쟁 초기 북군 장교로 자원입대하게 된다.
그런데 그런 궁핍함과 처절한 이유가 사라진다면? 입대 명분은 사라지게 된 셈이다.
‘내가 월급을 너무 많이 줬어. 큰일이네.’
마음 같아선 자신이 총사령관이 되면 좋겠지만, 과연 동양인을 반기는 자들이 몇이나 될까 싶다.
대통령이 임명해도 거센 반발이 일어날 테고, 군 사기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쓸데없는 혼란을 초래할 필요는 없을 터.
결국 멕시코 전쟁 경험도 있는 율리시스를 총사령관으로 미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려면 제대로 망하게 해야 하는데.’
율리시스의 파산, 즉 벼랑 끝으로 밀어낼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대장간에 도착한 막스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평소처럼 작업실 귀퉁이에서 신문이나 책을 읽어야 할 율리시스가 보이질 않는다.
지나가던 직원이 말하길.
“새로운 사업에 투자한다고 저녁만 되면 시내로 나가거든요.”
“사업?”
“예. 파이크스 피크 익스프레스 사장이 조만간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거든요. 관심 있는 사람이 꽤 많습니다.”
요즘 핫한 사업 아이템이라고 하는데.
막스는 전생의 기억을 뒤진 끝에 한 가지를 떠올렸다.
‘포니 익스프레스!’
얼추 시기도 맞아떨어졌다.
익스프레스는 역마차 운송 서비스.
우체국이나 택배와 비슷한 개념으로, 현재 서부 쪽은 ‘스테이지코치 킹’과 미래에도 존재하는 ‘웰스파고’가 사업을 양분하고 있다.
이 웰스파고의 설립자 웰스와 파고는 동부 뉴욕에 미래의 아멕스 카드를 만든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의 창업주이기 하다.
어찌 됐든, 그런 웰스파고에 도전장을 내민 벤처 회사가 있었으니 바로 ‘포니 익스프레스(Pony Express)’다.
창업주 윌리엄 러셀은 최근 캔자스 리븐워스와 콜로라도 준투를 오가는 파이크스 피크 익스프레스를 인수했다.
현재 윌리엄 러셀은 새로운 개념의 역마차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미국 중심부 미주리주에서 서부 끝 샌프란시스코까지 25일 걸리던 걸 단 10일 안에 주파하는 것이었다.
방법은 막스가 모세 그린터에서 통신 부대를 지휘하던 것과 유사한데.
구간마다 세워진 간이역을 만들어 우편을 배달하는 기수를 배치하고, 평균 75~100마일(120~160km)를 한 기수가 이동한다.
기록에 따르면 한번은 다음 기수들이 인디언 습격으로 죽거나 도망가는 바람에 홀로 380마일(611km)를 달린 적도 있었다.
이런 무식한 기록을 세운 자는 다름 아닌 바로 14살이었던 버팔로 빌 코디.
원 역사대로라면 일 년 뒤에 벌어질 일이었다.
‘그런데 포니 익스프레스는···.’
“오오, 막스 보스! 멀리 갔다더니 오늘 온 건가?”
멀리서 율리시스가 밝은 표정으로 손을 흔들었다. 새로운 사업 투자로 하루하루가 즐거운 모양이다.
하지만 막스는 율리시스의 얼굴을 본 순간 속으로 유레카를 외쳤다.
‘찾았다. 율리시스를 벼랑 끝으로 보낼 방법!’
안타깝게도.
포니 익스프레스는 사업 개시 1년 만에 폭삭 망하게 된다.
이유는 복잡하지만 가장 큰 원인으로는 사업 시작 1년 만에 남북전쟁이 터진다는 거.
어디 그뿐인가.
대륙횡단 열차, 모스 전신주가 세워지고, 인디언 습격을 당하는 등. 단 일 년 만에 어마어마한 손실을 입고 망해버린다.
똥손 율리시스는 기가 막히게 이를 알고 투자한 것이다.
막스는 흔들리는 눈동자를 진정시키고 말을 건넸다.
“새로운 사업에 투자하신다고요?”
“자네도 들었나? 방금 회사 이름하고 구체적인 계획까지 듣고 왔는데, 제대로 느낌이 왔네.”
“회사 이름이···?”
“포니 익스프레스! 이름부터 느낌 있지 않나?”
‘역시.’
슬슬 낚싯바늘에 먹이를 꽂아 볼까.
“얼마 투자할 생각이에요?”
“내 전 재산, 4천 달러!”
“오오.”
‘이게 바로 영끌 투자라는 건가.’
“모처럼 느낌이 왔는데 투자금이 아쉽네요.”
“내 말이. 마음 같아선 돈이라도 빌려서 더 투자하고 싶은데 말야.”
“얼마요?”
“딱 5천에 맞추고 싶었거든.”
막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힘차게 낚싯대를 던졌다.
“제가 천 달러 빌려드릴게요.”
“지, 진짜!?”
“이자는 5%. 그리고 이번에 SFBC 원정 가는 데 같이 가요.”
“내가 왜?”
“병참 장교였잖아요. 250명이 움직이려면 보급에도 신경 써야죠.”
율리시스는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고민했다.
이자 5%쯤은 문제도 아니다.
보급도 멕시코 전쟁에서 했던 만큼 전문 분야라 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5천 달러 투자했을 때 벌어들일 수익금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생각을 마친 율리시스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까짓거, 가자고!”
“제임스에겐 말해둘 테니까, 내일 회의에 나와요.”
“알았어!”
영차, 영차.
대어가 걸렸는지 낚싯대가 묵직하다.
역시 율리시스에게 어울리는 곳은 포화가 빗발치는 전쟁터.
아무리 막스가 날갯짓해도 율리시스의 사업 실패라는 강력한 운명을 바꾸기엔 역부족이었다.
이틀 뒤.
“전원 텍사스 남부로 출발!”
SFBC 대원들 뒤로 마차 두 대가 따라붙었다.
마부 한 명은 율리시스 그랜트로, 짐칸에는 식료품과 무기가 실려 있었다.
“공기 좋다. 모처럼 마차를 모니까 느낌이 다르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