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밖에 나오는 것도 나쁘지 않죠. 그나저나, 인디언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세요.”
“뜬금없이 그건 왜 물어?”
마부석 옆에 앉은 막스는 버팔로 빌 코디에게 했던 것처럼 율리시스의 세뇌작업을 시작했다.
“그럼 백인 외에 다른 인종의 참정권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대체 그런 걸 왜 나한테 묻는 거야?”
“궁금해서 그렇죠.”
막스의 마음속 미국 대통령 라인업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존 브라운-링컨-율리시스.
그게 이루어질지는 모르나, 제대로만 된다면 최소 20년은 걱정 없었다.
물론 사람이 어떻게 변할지는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손에 닿지 않는 권력자보다야 낫지 않겠는가.
“이 땅의 주인이 백인이라는 생각은 굉장히 모순된 겁니다. 동의하십니까?”
“흠. 뭐, 동의하네.”
“그럼 미연방이 발전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이념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민주주의지. 그 밑바탕엔 인권이 존중되어야겠고.”
“좋습니다. 다음은 대외 문제. 쿠바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솔직히 아무 생각 없네.”
“그럼 패스.”
낮에도, 저녁에도.
막스는 율리시스에게 수많은 질문을 던졌다.
그 와중에.
“우리 코디, 버팔로 사냥했구나.”
“먹기 위해서! 살기 위해서! 미안하다 버팔로야! 이렇게 감사 인사하고 죽였어요.”
“잘했다.”
막스가 코디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잠시 후, 율리시스가 코디에게 다가와 물었다.
“막스 보스, 원래 저러니?”
“뭐가요?”
“...... 좀 이상한 것 같아서.”
“...... 이제 아셨어요?”
둘은 급속도로 친해졌다.
*
준투에서 텍사스 남부 브라운스 빌까지 직선 거리로 1,700km. 하루 평균 50km를 이동하는 마차를 생각하면 한 달 정도 걸리는 거리다.
낮에는 이동하고 밤에는 모닥불에 모여 대화를 나누었다.
막스는 평소와 달리 자신의 사상을 주입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물론 21세기의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할 수 있는 평범한 말들이었다.
“사회주의? 이론상으론 완벽하지. 문제는 사회를 구성하는 인간의 탐욕과 욕망이야. 국민의 자유를 빼앗은 권력자가 스스로 부패하면 답이 없는 거지. 그걸 견제할 수 없다면 실패한 국가인 거야.”
“그럼 보스가 생각하는 국가는 뭡니까?”
“모든 사람이 자유롭고 행복을 추구할 권리, 국가는 이를 보장하고 유지하기 위해 존재하는 거?”
정치 외에도 경제, 종교, 과학, 문학 등.
다양한 주제를 넘나들며 토론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조금씩은 다르지만, 말미에는 소속감을 강조하는 말로 매듭을 지었다.
“SFBC 내에도 각기 관심 분야는 다를 수 있다. 만약 자신이 어떤 능력을 발견했다면, 난 적극적으로 밀어줄 생각이야. 대신 그 능력을 다른 곳이 아닌 나와 우리 SFBC를 위해 썼으면 해.”
“보스만 괜찮다면, 죽을 때까지 SFBC에 있고 싶은데요!”
아부성 발언일 수도 있지만, 다들 눈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 역시 너희들과 함께 늙어가는 게 소원이다. 변함없이 나와 한길을 걷는다면 그 보상은 확실히 해주마.”
막스가 짙은 미소를 보이며 대답했다.
‘보면 볼수록 신기하단 말야.’
율리시스 그랜트는 구석에서 육포를 질겅질겅 씹으며 막스를 지켜봤다.
사실 대장간에서 일하는 율리시스는 SFBC를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돈을 벌기 위한 용병 집단.
국가가 존재하고 군인들이 버젓이 있는데, 그들이 필요한 이유가 뭐란 말인가?
언제 어느 때 변절할지 모를 민간군사기업은 그 자체만으로도 위험성이 짙다는 게 율리시스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동하는 내내 막스와 나누었던 대화, 그리고 SFBC의 모습은 율리시스를 혼란스럽게 했다.
군대가 적성에 안 맞아, 뛰쳐나온 율리시스라 더욱 그랬는지도 모른다.
멕시코 전쟁을 왜 했는지, 인디언과는 왜 싸우는지 그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었고.
마음이 움직이질 않는데 행동해야 하는 건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으니까.
반면, 막스는 자신의 신념 아래 조직을 이끌고 움직인다. 그리고 그 신념이란 복잡하지만, 율리시스마저 혹할 정도로 합리적이고 구체적인 면이 있었다.
그래서일까.
돈만 좇는 용병들로 여겼는데, 이들은 더 높은 가치를 향하고 있었다.
‘오히려 돈을 좇는 건 나란 인간인가.’
율리시스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마저 육포를 씹어댔다.
*
브라운스 빌에서 30km 떨어진 할링젠.
이 마을에 세 그룹이 모여 있었다.
섬너 사령관이 파견한 미 육군이 20명.
브라운스 빌의 민병대가 17명.
그리고 텍사스 레인저스가 62명이다.
“SFBC인지 뭔지. 오긴 오는 겁니까? 어차피 쪽수도 우리가 많은데, 그냥 쳐들어가죠.”
기다리다 지친 브라운스 빌 타이거의 리더가 군 지휘관에게 제안했다.
“같은 말도 여러 번 들으면 지겨운 법이네. 잔소리 말고 기다리게. 아직 약속된 날짜가 하루 남지 않았나.”
“코르티나 놈들이 두 발 뻗고 자는데, 이러고 있을 수가 있어야죠. 그리고 SFBC도 코르티나 놈들처럼 민간 군사 조직이라면서요? 갑자기 뒤통수라도 치면 어쩌려고요.”
적들을 이끄는 후안 코르티나는 군인들을 긁어모아 민간 군사를 조직했다.
그들에게 한 차례 쓴맛을 본 민병대 리더는 SFBC마저 색안경을 끼고 바라봤다.
군 지휘관 사무엘 하인첼만 소령은 상대하기 싫은 듯, 레인저스의 리더에게 다가갔다.
“포드 대위. 당신들 중에 SFBC를 만난 자가 있다고 하지 않았나?”
“아, 윌리엄 월러스요. 근데 이번 전투에는 빠졌습니다.”
“아쉽게 됐군. 그럼 그 자에게 들은 정보는 없나?”
레인저스 리더 존 살몬 포드 대위는 시선은 저 멀리 평원을 향한 채, 팔짱을 끼며 말했다.
“전 별로 관심이 없어서요. 다만, 말만 민간 군사 조직이지 실제로 SFBC 내에 군인은 몇 명 없다고 하더군요. 리더도 그렇고, 대부분 20대라니 알 만하지 않습니까?”
“허, 그게 진짠가?”
“월러스 말로는 시설 좋은 곳에서 먹고 자고, 훈련받는다던데. 글쎄요. 전 그냥 애들 소꿉장난 정도가 아닐까 싶더군요. 광산 회사에서 돈이 남아돌아 주체를 못 한 거죠.”
건방지게 레인저스의 월급을 대준다는 것부터 돈이 넘쳐난다는 증거 아닌가.
“흠. 몰몬교 사건을 보면 뭔가 있긴 있어 보이던데.”
“다른 각도로 보면 생각이 다를 겁니다.”
“다른 각도?”
“몰몬교가 콜로라도 광산 회사와 결탁했을 수도 있죠. 금 준다는데 그깟 애새끼들 풀어주는 게 뭐 어렵겠습니까.”
포드 대위는 SFBC의 업적을 모조리 깎아내렸다. 본적도 없는데 미운털이 박힌 건 월러스 때문이었다.
텍사스 레인저스의 다섯 리더 중에서도, 포드 대위는 월러스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노예제 입장만 보더라도, 월러스가 중립이라면 포드는 노예제 옹호론자에 가까웠다.
그래서인지 원 역사에서 그는 휘하의 레인저스를 이끌고 남부군에 합류한다.
“월러스가 이런 말도 했습니다.”
“뭐라고 말입니까?”
“SFBC 리더가 백인이 아닐 수도 있다고요.”
“허. 백인이 아니라니.”
그럼 뭐지? 흑인? 히스패닉?
“그나저나, 관심 없다더니 상당히 많이 알고 있군.”
“뭐, 그게 전부에요. 전 진짜 관심 없거든요.”
포드는 냉랭한 투로 말을 이었다.
“아무튼, 별로 기대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몇 명이나 데려올지 모르지만, 어차피 돈 준 만큼 총알받이로 쓰면 되지 않겠습니까?”
“흠. 일단 그쪽 인원부터 살펴보자고.”
하인첼만이 턱을 매만지며 고심할 때였다.
포드는 평원의 수평선에 먼지구름이 일어나는 걸 볼 수 있었다.
“드디어 왔군. 어디 몇 명이나 데려왔나.”
작은 점은 점점 커져 이윽고 일자로 쭉 늘어나며 그 인원을 짐작하게 했다.
‘시발, 저게 몇 명이야!’
포드는 지축을 뒤흔들며 쇄도하는 무리를 보며 눈을 껌뻑거렸다. 재빨리 품속을 뒤져 망원경을 꺼내 들었다.
무리에서 불쑥 튀어나온 여덟 명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맨 앞이 그 세븐 스트롱이군. 근데 한 명이 많네?”
포드는 망원경을 오른쪽부터 훑어가며 중얼거렸다.
“와일드 빌 히콕, 네이선 로어, 조 짐 주니어, 콜린, 테야노스 산초, 호, 미인이 있다더니 저 여자가 피치로군. 그럼 옆에 꼬맹이가 버팔로··· 빌, 어? 갑자기 사라졌네.”
망원경을 살짝 틀자,
스카프를 두른 남자가 마찬가지로 망원경을 들고 이쪽을 보고 있었다.
순간, 소름이 돋은 포드가 망원경에서 눈을 뗐다. 고개를 돌리자 하이첼만 소령이 빤히 자신을 보고 있었다.
“왜요?”
“관심 없다면서, 대체 그 이름들은 왜 외우고 있는 건가.”
“.......”
잠시 후.
오와 열을 맞춘 SFBC 대원들이 장내를 압도하며 멈춰선다.
선두에 있던 스카프를 두른 자가 말에서 내리더니, 저벅저벅 다가왔다.
그리곤 스카프를 풀어 헤쳤다.
“!”
'SFBC 리더가 동양인?'
충격과 당혹감이 장내를 휩쓸었다.
막스는 사람들을 훑어보며.
“눈빛들이 왜 그래. 동양인이라서 불만이야?”
“......”
포드 대위와 레인저스. 브라운스 빌 민병대와 군인들은 입을 닫은 채 침묵했다.
“됐고. 그래서 이곳 책임자는 누구야?”
조직의 리더는 항상 당당해야 한다는 것.
지금이야 쪽수가 많다지만, 적을 때도 마찬가지다. 막스는 굳이 동양인임을 감출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 눈빛들이 왜 그래 > 끝
< 속전속결 >
“포트 샌안토니아의 사령관 하인첼만 소령일세. 섬너 사령관에게 이야기는 들었네.”
머리와 수염이 희끗희끗한 군인이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얼핏 섬너와 연배는 비슷해 보였다.
막스는 악수하며 입을 열었다.
“막스 조입니다.”
“설마 SFBC 리더가 도···, 아니. 일단 시간이 많지 않으니 상황부터 이야기 나누세나.”
동양인이라는 말이 튀어나오려던 걸 집어삼킨 하인첼만이 커다란 천막을 가리켰다.
막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뒤를 따랐다.
그런데 자신들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남자들을 발견하곤 막스가 걸음을 멈췄다.
가슴에 텍사스 레인저스의 월러스처럼 원 가운데 별 모양이 있는 은색 배지를 달고 있는 자들이었다.
“나한테 할 말 있나?”
“...... 텍사스 레인저스 제3 순찰대 존 살몬 포드다.”
기회다 싶었는지 두 명이 더 다가와 자신들을 소개했다.
“제4 순찰대 레인저스 2루드윅 에버스네.”
“난 제5 순찰대 윌리엄 버틀러 프리맨.”
40~50명의 레인저스를 지휘하는 리더들.
이들의 눈빛엔 호기심과는 별개로 뭔가를 갈구하는 열망이 엿보였다.
“월러스에게 이야기는 들었다. 일단 작전부터 들어보지.”
막스가 천막으로 향하자 그들도 함께 움직였다. 브라운스 빌의 민병대장은 눈치를 살피고서야 뒤늦게 천막으로 들어갔다.
*
“후안 코르티나는 현재 브라운스 빌을 장악했네. 백인들은 전부 내쫓고, 테야노스는 일체 건들지 않았지.”
“그럼 마을 주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겠군요.”
멕시코 전쟁의 후유증이랄까.
막스가 제거한 파이브 호아킨스 갱단처럼.
백인을 상대로 총을 든 멕시코인은 쉽게 영웅이 될 수 있었다.
후안 코르티나는 이를 이용한 것으로.
백인들만 타겟으로 삼아, 브라운스 빌에 오랫동안 거주해온 멕시코인들, 즉 테야노스의 지지를 끌어냈다.
물론 진짜 목적은 코르티나 가문 대대로 내려온 땅을 찾기 위해서였지만.
탁자 위엔 브라운스 빌 지도가 펼쳐져 있고, 하인첼만은 미리 구상해둔 작전을 설명했다.
그런데 이를 담담히 듣고 있던 막스가 고개를 들어 하인첼만을 쳐다봤다.
“이 작전 누가 세웠습니까?”
“......?”
“후방과 적 퇴로를 군과 레인저스, 민병대가 맡고. 건물 안에 틀어박힌 놈들을 공격하는 건 SFBC군요.”
“그, 그렇네.”
‘우릴 총알받이로 쓸 생각이었다 이거지.’
어차피 작전에 따를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조금은 화가 난 막스의 눈이 깊이 가라앉았다.
“이번 일은 SFBC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섬너 사령관께서 내게 전권을 위임한 것도 그걸 바란 거니까요.”
“흠.”
하인첼만 소령으로선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지금 상태론 군 병력이 모자라 끼어들기도 애매했으니까.
“포드 대위. 자네가 계획을 세웠으니 말해보게.”
발을 슬쩍 뺀 하인첼만이 포드를 끌어들였다.
‘네가 계획을 세웠냐?’
막스의 날카로운 눈빛을 마주한 포드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여기는 텍사스야. 그런데 레인저스와 사전 조율 없이 일을 처리 하겠다?”
“그래서?”
“알았다. 그럼 그렇게 해.”
“......”
‘뭐지, 이놈은.’
사실 레인저스의 자존심을 세우고 싶어도, 상황이 좋지 않았다. 이미 한 차례 전투에서 패한 바람에 부상자가 많았고, 사기는 바닥에 떨어진 상태였다.
그러니 애초에 총알받이로 쓸 SFBC가 알아서 전투를 벌이겠다는데 말릴 이유가 있을까.
‘월러스의 병신같은 말도 확인해 볼 겸. 지금은 자존심 세울 때가 아니지.’
- 장담컨대, 우리의 미래는 SFBC에 있다. 훈련 강도, 분위기, 숙소 환경. 어느 것 하나 부족함이 없었어.
- 지랄, 배신자 새끼.
- 포드, 넌 절대 오지 마라. 내가 결사반대할 테니까.
과연 돈으로 처바른 건지, 소문만큼 실력이 뛰어난지는 지켜보면 될 일이었다.
“앞으로 3일 뒤에 작전에 들어갈 테니, 지켜보든 떠나든 알아서 결정하십시오.”
막스의 선언 이후, 천막은 SFBC에게로 넘어가 버렸다. 세븐 스트롱과 중대장들을 불러 막스는 상황을 설명했다.
내용은 하인첼만 소령에게 들은 그대로였다.
“여기까지가 내가 알고 있는 전부다.”
“뭔가 좀 부실한 것 같은데요.”
“저쪽 정보만 믿고 들어가긴 좀 그렇지 않습니까?”
막스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파격적인 지시를 내렸다.
“그래서 앞으로 이틀. 중대별로 작전을 수립한다.”
“중대별로요?”
중점 사안으론 혹한기 훈련의 연장선으로 SFBC의 조직력을 보이고, 신병들의 참여를 요구했다.
“채택된 중대가 작전 지휘권을 갖고, 작전 성공 시 해당 중대원은 혹한기 훈련기간 내 불침번 제외! 또한 개인당 포상금 백 달러씩을 지급할 생각이다.”
“오오오!”
파격적인 진행방식과 파격적인 보상.
다들 눈빛들이 돌변하며 전의를 불태웠다.
“그럼 지금부터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