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븐 스트롱은 각 중대에서 제시한 작전을 공정하게 평가내리는 것. 그리고 최종 작전에 돌입했을 때, 위기 사태를 대비한 후방 지원군 정도의 역할이었다.
콜린은 걱정이 드는지 막스에게 물었다.
“저러다 무리한 작전을 세우는 거 아냐? 의욕만 앞세워서 잘못되기라도 하면 어째.”
“무리한 작전은 걸러내면 되죠. 이참에 누가 욕심이 많은지도 알아낼 수 있을 겁니다.”
“하여간 능구렁이라니까.”
경쟁에 몰두하면 인간의 본성이 나올 수도 있고. 의외로 냉정하고 침착한 지휘관이 등장할 수도 있다.
어찌 됐든, 후안 코르티나는 여러모로 혹한기 훈련의 좋은 재료로 사용되고 있었다.
회의를 마친 중대장들이 가장 먼저 한 것은 첩보 및 정보 수집. 문제는 저마다 정보원을 파견해 마을을 쑤시다간 발각될 염려가 있다는 것이다.
“정보는 공유하기로 하자. 중대별로 2명씩 차출해서 내일 오후까지 어때?”
“좋아, 당장 뽑도록 해.”
브라운스 빌까진 한 시간 거리.
열 명의 스카우트(척후병)를 파견하고, 나머지는 천막을 세워 임시 캠프를 만들기 시작했다.
레이몬드 빌 마을과는 조금 떨어진 곳.
네 개 집단이 만든 천막들은 전쟁터의 군 주둔지처럼 보였다.
SFBC가 분주하게 움직이는 가운데, 텍사스 레인저스는 하릴없이 빈둥거렸다.
하지만 그들은 눈과 귀로는 SFBC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했다.
“시발, 우리가 얻은 정보와 계획은 철저히 무시당했네. 기분 뭣 같구만.”
“근데, 그게 당연한 거 아니냐? 반대로 넌 SFBC가 준 정보를 그대로 믿을 거야?”
“...... 아니.”
“그러니까.”
“아무튼, 빈 수레가 요란하다고. 바쁜 척들은 더럽게 한다니까.”
빈둥거리는 게 찜찜한 레인저스는 괜히 SFBC를 보며 투덜거렸다.
*
다음 날 꼭두새벽.
“빰빠 밤빠빠, 밤빠라밤빠 밤빠빠!”
“해가 뜨고 있다 새끼들아! 전부 기상!”
잠시 후엔.
“멋있는! SFBC! 많고 많지만!”
“목소리 더 크게!”
적이라도 나타난 건가.
새벽에 울려 퍼지는 소리에 천막들이 들썩거렸다.
하나둘 천막에서 나온 사람들은 이색적인 풍경에 저마다 탄성을 내뱉었다.
“뭐여, 시벌!”
동이 트며 평원이 붉게 물들고.
SFBC 대원들이 태양 속을 달리고 있었다.
“어휴, 오바는 진짜.”
“근데 저 노래는 대체 누가 만든 거야?”
사람들은 아침부터 SFBC가 상당한 거리를 구보한다는 것에 놀라고, 달리면서 부르는 군가의 다채로움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더러는 자신들의 나태함을 비교하는 자들도 있었으니, SFBC의 기상까지 다른 집단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우리도 뛸까?”
“쪽팔리게. 깨어난 김에 아침이나 먹자.”
“어제 먹던 빵이 어디 있더라.”
서부의 아침, 특히 밖에서 야영하는 경우의 배고픔은 일상적인 일이다.
간단한 빵이나 말린 육포가 아침 식사로 끝이었다.
그런데.
“뭐야, 이 냄새는.”
“아침부터 어떤 새끼가 고기 먹냐.”
SFBC 캠프. 커다란 솥단지에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한쪽에선 구멍이 송송 뚫린 철판에 고기가 노릇노릇 구워지고 있었다.
한창 달리고 땀을 뺀 SFBC 대원들.
그들이 손에 쥔 철판에는 이내 음식들이 수북하게 쌓이기 시작했다.
‘우린 이렇게 먹는다.’
승자의 미소. SFBC 대원들의 얼굴을 본 순간 상대적 박탈감 밀려든다.
멍하니 쳐다보던 자들 중 일부는 천막으로 들어가 다시금 잠을 청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때.
누군가 큰소리로 외쳤다.
“SFBC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다들 와서 식사하십시오!”
“엉? 우리도?”
닫힌 천막이 슬그머니 열리고 사람들이 하나둘 나오기 시작한다.
줄을 서고 철판을 들자, 그 위에 배식 담당 대원들이 음식을 수북이 올려주기 시작했다.
“어흑.”
기습적인 울컥거림에 입을 틀어막고.
동료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막스 보스, 돌아갈 땐 굶을 생각인가?”
보급 담당 율리시스가 못마땅한 얼굴로 물었다.
“식료품이야 마을에서 다시 채우면 되죠.”
“그거야 그렇지만. 쓸데없는 선심이 아닐까 싶어서 그렇지.”
“글쎄요. 보세요, 저 표정들을.”
브라운스 빌 민병대는 쫓겨나서 갈 곳이 없고, 전투에서 패한 텍사스 레인저스는 사기가 떨어져 축 처져있다. 그리고 샌안토니오 요새에서 달려온,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군인은 뻘쭘하게 와서 방황하고 있었고.
“상황에 따라선 아침 식사 한 끼의 의미가 그 이상을 담아낼 수도 있습니다. 아군에겐 사기를 끌어 올리고, 적군에겐 그 반대의 영향을 미치는 거죠. 여기엔 적은 없지만, SFBC에 호의적인 집단도 없는 게 사실이거든요.”
물론 막스가 노리는 건 텍사스 레인저스다.
조직을 와해시키든 SFBC에 흡수하든.
아침 식사 한 끼는 그들의 마음을 낚을 낚싯바늘에 꿴 먹이로 볼 수 있었다.
“혹여나 군대를 지휘하게 되거든, 심리적인 요인도 각별하게 신경을 기울여야 할 겁니다.”
“뭐, 내가 그럴 일이 어디 있겠나.”
율리시스가 헛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이날의 경험을, 훗날 남북전쟁에서 써먹게 될 줄은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슬슬 저도 아침을 먹어야겠군요.”
막스는 식판을 들고 마지막으로 줄을 섰다.
하루 중 가장 즐거운 시간을 꼽으라면 막스에겐 단연코 식사 시간이다.
더욱이 구보로 땀을 흘리고, 배를 비운 다음에 먹는 아침은 그야말로 꿀맛이 따로 없었으니.
그런데 배식 담당 훌러와 눈이 마주치자 그의 눈동자가 미친 듯 요동쳤다.
“설마··· 아니라고 말해줘.”
“죄송합니다. 배··· 배식이 끝났습···.”
“내가 말했지.”
솥단지가 비어있고, 고기도 동이 나버렸다.
화가 치민 막스가 식판을 두드리며 으르렁거렸다.
“경계에서 실패한 건 용서해도 배식에 실패한 병사는 뭐라고?”
“초, 총살감···.”
“그래 인마! 근데···.”
잔뜩 흥분했을 때, 피치가 다가와 막스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 내가 미리 퍼 놨어.
- !
막스가 먹을 거에 민감하다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 게다가 워낙 일이 많은 보스라 식사 시간을 놓칠 때가 잦았다.
그래서일까, 언제부턴가 피치가 각별한 신경을 기울였다. 표면상 이유는 SFBC의 평화를 위해서였다.
- 이리 와. 같이 밥 먹자.
피치의 입김이 귀에 닿자 화가 눈 녹듯 녹아버린다. 막스는 배시시 웃으며 피치를 따라갔다.
*
이틀 동안 정보를 수집한 끝에, 중대별로 치밀한 작전이 수립되었다.
“율리시스, 와서 같이 살펴보죠.”
“내가?”
“멕시코 전쟁 영웅이면 자격은 충분하죠.”
율리시스와 세븐 스트롱은 중대에서 내민 작전 계획서를 면밀하게 검토했다.
보는 눈들이 비슷한지 이내 두 개로 압축되었다. 그리고 각자 지지하는 계획을 두고 설전이 오고 갔다.
하지만 도저히 결판이 나질 않자, 결국 보스인 막스에게 선택권을 넘겨 버렸다.
양손에 1중대와 3중대의 계획서를 든 막스.
“제 선택은.”
장내를 둘러보며.
“60초 후에 공개하겠습니다.”
“......”
아무도 웃질 않는다.
분위기를 냉각시킨 막스는 헛기침을 하며 말을 이었다.
“1중대로 하죠. 리스크를 줄이려 SFBC 전 대원을 투입한 작전이지만, 그 역할에 신병들을 고르게 배치한 점. 주어진 무기의 특성을 제대로 활용한 점, 침투 경로와 후방 및 퇴로를 차단한 점도 마음에 듭니다. 무엇보다, 오늘 자정에 진행한다는 게 마음에 들고요.”
“그럼 슬슬 준비해야겠네.”
“달밤에 총 쏘는 것도 괜찮지.”
히콕은 키득거리며 자신의 리볼버를 만지작 거렸다. 이를 본 막스는 고개를 저었다.
“우린 위험할 때만 개입하는 거 알지?”
“난 구경하는 건 취미 없는데.”
“누가 구경만 하래. 보면서 냉철한 분석을 해야지.”
“분석이라.”
히콕은 리볼버 총구로 관자놀이를 긁적거렸다.
처음엔 다들 불안해했지만, 이젠 그러려니 한다.
달빛 아래,
은밀히 캠프를 빠져나온 무리가 말에 올라탔다.
조심스러운 말발굽 소리. 천천히 이동하는 말들은 어느 정도 캠프와 거리를 둔 뒤엔 지축을 흔들며 한 방향으로 쏘아져 나갔다.
브라운스 빌.
마을 안으로 스며든 검은 그림자들이 벽과 담을 스치며 이동한다.
작전을 지휘하는 1중대장 호른 클루이가 손으로 수신호를 보내자, 각 중대가 저마다의 위치를 잡으며 건물들을 포위했다.
후안 코르티네는 총 네 개의 건물을 점거했고, 60명의 병력이 퍼져 생활하고 있었다.
지휘관인 중대장 클루이는 후안 코르티네가 머무는 건물을 포위했다. 벽에 등을 기댄 그는
허리에 매고 있던 가방을 뒤적거렸다.
그리고 꺼낸 원통.
핀을 뽑아 2층 창문을 향해 내던졌다.
쨍그랑.
펑.
츠즈즈즈즈.
“뭐, 뭐야!”
“불이다!”
연기가 뿜어지고, 2층에 있던 자들이 1층으로 내려오는 걸 확인.
또다시 원통의 핀을 뽑은 클루이는 이번엔 현관문을 열어 그 틈에 내던졌다.
펑!
쨍!
“으악! 내 눈!”
비명이 들리고, 중대장 클루이의 수신호에 맞춰 병력이 건물로 진입했다.
탕! 탕!
총성을 들은 다른 건물의 코르티네 병력들이 뛰쳐나오기 시작한다.
하지만 미리 밖에서 진을 친 SFBC 대원들에 의해 다가갈 수가 없었다.
탕! 탕!
작은 브라운스 빌 마을에 연기가 퍼지고 곳곳에 총성이 울린다.
삽시간에 전쟁터가 되어 버렸지만, 아무도 등잔을 켜는 자들이 없었다.
후안 코르티네에 동조한 마을 사람들은 숨죽이며 총소리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멀리서 이를 지켜본 피치.
“30분이면 끝나겠는데?”
“그야말로 속전속결이지.”
무기는 사용하라고 만든 거. 이를 적재적소에 활용한 작전이 막스의 마음에 쏙 들었다.
< 속전속결 > 끝
< 네가 못 본 거야 >
“하, 항복이오, 항복!”
어깨와 다리에 총을 맞은 후안 코르티네.
온몸에 피칠을 한 그는 부하들에게 무기를 버리라며 소리쳤다.
‘윽, 갑자기 이게 무슨.’
브라운스 빌 민병대와 텍사스 레인저스까지 물리치고 조금은 느슨해진 건 사실이다.
그렇다고 한순간에 무너진 것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후안 코르티네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옆 건물에선 투항한 부하들이 양손을 든 채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손 뒤로하고, 무릎 꿇어.”
마을의 대로.
작전을 지휘한 클루이의 말에 후안 코르티네와 부하들이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떨구었다.
“총알이 네놈은 피해갔구나. 이왕 이렇게 된 거, 멕시코 국경을 넘지 않겠다는 서약서다. 뭐, 지키든 말든 그건 알아서 하고. 일단 사인이나 해.”
클루이는 미리 준비해둔 종이를 후안 코르티네에게 내밀었다.
이는 섬너 사령관의 부탁에 따른 것이었다.
- 연방에선 멕시코 정부와 불필요한 마찰은 피하고 싶어 하네.
- 생포하란 말입니까?
- 어지간하면 그냥 쫓아내란 거지. 다시는 넘볼 수 없도록.
- 그게 제일 어려운 겁니다.
- 나도 알고 있네. 일단 정부 입장이 그렇다는 거고, 죽여도 책임을 묻진 않을 걸세.
멕시코 전쟁이 만들어낸 갈등의 산물.
후안 코르티네는 멕시코와 미국 텍사스주에 걸쳐 땅을 소유한 지주였다. 신분 역시 멕시코인인 동시에 텍사스의 테야노스이기도 하고.
멕시코 정부는 그런 코르티네를 방관하며 미연방의 대응을 관찰했다.
소극적으로 대응하면 제2, 제3의 후안 코르티네를 보내 텍사스 국경을 어지럽혀 분란 지역으로 만들 셈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미연방의 선택은 응징은 하되 텍사스의 테야노스를 자극하지 않는 것.
코르티네를 죽여 의적을 만드느니 부하를 잃고 도망친 비겁자의 모습을 만드는 것이었다.
이러한 내용은 섬너의 입을 통해 막스로, 그리고 다시 클루이에게 전해졌다.
서약서를 품속에 챙긴 클루이가 후안 코르티네의 머리채를 잡아 일으켰다.
“부하들을 이끌고 지금 당장 리오그란데강을 넘도록.”
“보, 보내주는 건가?”
“마음 바뀌기 전에 서둘러야 할 거야.”
마구간에 있는 말들을 긁어모아, 후안 코르티네는 부하들을 이끌고 남쪽으로 내달렸다. 그 수는 20명이 채 되지 않았다.
SFBC 대원들은 문틈으로 지켜보는 눈들이 적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후안 코르티네에 동조한 마을 사람들.
그들은 행여 불똥이 튈까 숨죽이며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그런데 이때.
말에 탄 클루이가 말 머리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외쳤다.
“우리 SFBC는 지난 일을 따지지 않을 것이오. 하지만, 앞으로 이 같은 일이 반복되면 동조자들에게도 죄를 물을 것이오. 그리고, 늦은 밤 소란을 일으킨 점에 대해 깊은 사과를 드리는 바요.”
“.......?”
집에 숨어있는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의 귀를 의심했다. SFBC가 뭐든지 간에, 보복은커녕 이대로 넘어간다니 믿기 힘든 일이었다.
‘레인저스 놈들과는 전혀 딴판이구나.’
짝짝짝.
멀리서 지켜보던 막스가 조용히 손뼉을 쳤다.
“좋은 지휘관을 발견했다. 클루이, 쟤 물건이었네.”
막스가 내린 지시는 몇 가지 되지 않는다.
가능한 후안 코르티네를 생포할 것.
SFBC의 이미지를 잘 포장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