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루이는 막스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저러다 또 쳐들어오는 거 아냐. 애초에 싹을 잘라야 하는데.”
히콕은 코르티네를 풀어준 것이 불만인 모양이었다. 막스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또 쳐들어오면 일거리가 또 생기는 거지. 어쨌든 의뢰인이 원했으면 거기에 맞춰 주는 게 우리가 할 일이야.”
딱히 후안 코르티네와 원한 산 일도 없었으니.
삐익.
막스가 손가락으로 휘슬을 불자, 클루이가 손을 들어 응답했다.
“보스가 기다리신다. 흔적 없애고, 철수할 수 있도록.”
시신들은 한 곳에 쌓아두고, 사용했던 무기의 탄피를 회수 및 흔적들을 제거했다.
작전의 시작과 끝은 채 한 시간이 걸리지 않을 정도로 신속했다.
“가자. 이랴 앗!”
SFBC는 왔던 때와 달리 당당하게 마을을 빠져나갔다.
잠시 후.
집마다 등잔불이 켜지고, 사람들이 빼꼼히 문을 열고 하나둘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새벽바람에 퍼지는 혈향이 코끝을 자극하고.
마을 사람은 말 먼지를 일으키며 사라지는 무리를 보며 중얼거렸다.
“SFBC···· 아는 사람?”
“그게 뭐가 됐든. 난 우리까지 걸고넘어질까 봐 가슴이 조마조마했다고.”
“소란 피워서 미안하다잖아. 설마 그런 말을 들을 줄 상상이나 했냐? 레인저스 놈들과는 비교가 안 된다고.”
“이제 SFBC가 텍사스에 주둔하는 건가?”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
수개월 간 마을을 장악했던 후안 코르티네를 단 한 번의 습격으로 궤멸시킨 SFBC의 존재 자체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이번 사건으로 마을 사람들은 SFBC에 호감과 두려움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깨달은 사실은 멕시코 정부가 영토를 수복할 의지가 없다는 것. 힘없이 무너진 코르티네 같은 자들을 도울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레이몬드 빌 인근의 캠프.
“드르렁. 푸우우.”
“크르러렁. 푸우우.”
해가 뜬지 오래지만, SFBC의 천막은 코 고는 소리만 요란하다.
아침 식사를 기다리던 브라운스 빌 민병대원들은 혀를 차며 투덜거렸다.
“시발, 며칠 동안 오바하더니 지쳤나 보네.”
“그냥 보여주기식이었던 거지.”
구보와 아침 식사도 없이 처자는 꼴이라니.
텍사스 레인저스도 비아냥거렸다.
“오늘 작전 들어간다고 하지 않았나?”
“막상 하려니까, 꿈에서 깨고 싶지 않은 거지. 저게 바로 현실 도피라는 거야.”
“지금까지 연기하느라 꽤 힘들었겠는데.”
하려면 끝까지 하던가. 포드의 입에서 어이없는 실소가 흘러나왔다.
이때 천막 입구가 벌어지며 막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하아아암. 이거 뭐, 한 것도 없이 피곤하네.”
기지개와 함께 하품을 크게 하고, 몸을 좌우로 비트는 때.
막스는 여러 시선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것도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오늘에서라도 알게 돼서 다행이다.”
포드가 이죽거리며 다가왔다.
“뭘?”
“SFBC가 그냥 돈만 많은 집단이라는 거.”
“뭐, 레인저스보다 돈이 많은 건 사실이지.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은?”
포드의 눈이 가늘어졌다.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오늘 움직이기로 했으면, 뭔가 보여줘야 하는 거 아닌가?!”
“쉿. 애들 깰라.”
막스는 포드에게 한발 다가가 그의 눈을 응시했다.
“네가 못 본 거야. 작전은 새벽에 끝냈거든.”
“뭐!?”
“브라운스 빌에 가서 수습이나 하라고.”
“마, 말도 안 돼!”
막스는 목을 이리저리 비틀며 브라운스 빌 민병대 리더를 쳐다봤다.
“쫓겨난 마을 사람들에게 전해. 후안 코르티네는 리오그란데강 너머로 퇴각했다고. 아, 참. 오늘은 아점이라 밥 나오려면 한참 있어야 하니까 그렇게 알고.”
“...... 아점?”
아점이든 뭐든.
포드 대위는 다급히 레인저스 대원들을 이끌고 브라운스 빌로 향했다. 브라운스 빌 민병대 역시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레인저스의 뒤를 따랐다.
하인첼만 소령도 군을 이끌고 가려던 차.
막스가 그에게 종이를 내밀었다.
“후안 코르티네가 사인한 겁니다. 보다시피 섬너 사령관께서 작성했구요.”
내용을 훑어본 하인첼만 소령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다시는 국경을 넘어 땅을 탐내지 않겠다는 서약서. 군데군데 묻은 핏자국만으로도 후안 코르티네의 상태를 짐작할 정도였다.
“섬너 사령관이 자네를 믿는 이유가 있었군.”
“과찬이십니다.”
“바로 돌아갈 건가?”
“대원들이 일어나는 대로 갈 생각입니다.”
“흠. 알겠네. 기회 되면 콜로라도를 찾아가도록 하지.”
“언제나 환영입니다.”
하인첼만 소령이 웃으며 모자를 벗어 고개를 슬쩍 숙였다. 말에 올라타서는 부하들을 이끌고 브라운스 빌로 향했다.
유일하게 작전에 참여하지 않은 율리시스가 막스에게 다가와 물었다.
“진짜 새벽에 작전을 다 끝낸 건가?”
“그러니까 이렇게 자고 있죠.”
“흠. 어제부터 궁금했는데, 그 플래시 탄과 스모그 탄이라는 게 대체 뭔가?”
대장간에 일하지만, 알프레도가 무엇을 만드는지 율리시스가 알 턱이 없었다.
“일급 보안입니다. 그나저나, 마을에서 식료품을 충당해야겠군요.”
“그렇지 않아도 그 얘기를 하려던 참이네. 레이몬드빌에서 식자재를 공수할 생각인데, 돌아가는 일정을 몰라서 말일세.”
“가는 길에 그냥 갈 수 있나요. 훈련하면서 갈 거니까, 넉넉하게 두 달로 잡아 주십시오.”
대원들이 알면 기겁할 내용이라 막스가 목소리를 줄였다.
가고 오고. 혹한기 훈련 기간만 석 달인 셈이다.
“자네, 진짜 악마로군.”
“무슨 말씀입니까. 겨울철에 애써 따뜻한 곳을 찾아왔는데요.”
“...... 찾아온 게 아니라, 돈 벌러 온 거 아닌가.”
“그게 그거죠.”
북희귀선에서 북쪽으로 약 2.49도.
걸프 연안에 걸친 브라운스 빌은 습한 아열대 기후이다. 그 때문에 겨울은 따뜻하고 여름은 덥고 습해, 12월 중순임에도 기온은 15도밖에 되지 않았다.
“훈련하기 딱 좋은 날씨죠. 물론 올라갈수록 춥긴 하겠지만.”
율리시스는 질린 얼굴을 하곤 보급 대원 몇 명을 차출해 마을로 향했다.
해가 중천에 떠서야 대원들이 일어났다.
집결한 뒤에는 구보를 하기 시작. 이후엔 식사를 준비하는 모습이 여느 때와 다를 바가 없었다.
막스는 간밤에 작전을 지휘한 1중대장을 천막으로 불러들였다.
“클루이. 어제 작전 지휘는 인상적이었어.”
“감사합니다, 보스!”
동부 뉴욕주에서 넘어 온 24살 금발의 아서 클루이.
골드러시를 쫓아 로렌스에 왔다가 막스의 소문을 듣고 무작정 따라온 스코틀랜드계 남자다.
“근데 작전 계획은 누가 세운 거야?”
“중대원들이 의견을 내고, 그걸 토대로 세운 겁니다.”
“한 명에게서 나온 건 아니라는 거네?”
“그렇습니다. 사실 전 별로 한 게 없습니다.”
막스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의견을 가릴 줄 아는 것도 능력이야, 클루이. 아무튼, 오늘의 작전은 잊지 말도록 해.”
“알겠습니다.”
“약속대로 1중대는 불침번 제외, 포상금은 복귀하는 대로 지급하도록 할게.”
“감사합니다!”
입이 귀에 걸린 클루이가 천막을 벗어났다.
잠시 후, 1중대 대원들의 환호 소리가 들려왔다.
‘남북전쟁이 일어나면, 클루이를 입대시켜야겠군.’
율리시스를 돕는다면 함께 커갈 수 있으리라.
막스가 SFBC 대원 몇 명을 노트에 끄적거리는 때.
브라운스 빌에선 사후 처리가 한창이었다.
레인저스는 시신을 확인하고 포드 대위는 목격자를 대상으로 조사를 착수했다.
“그러니까, 새벽에 총격전이 벌어지고 얼마 안 돼서 후안 코르티네가 투항했다 이거지?”
“예. 저기 한복판에서 죄다 무릎 꿇었죠. 서류에 사인하라더니 마음 변하기 전에 리오그란데강으로 꺼지라고 했어요. 그리고 우리한테는 소란 일으켜서 미안하다고도 했고요.”
목격자마다 진술은 똑같았다.
신기한 건 마을 사람들의 SFBC에 대한 감정. 단 한마디의 말이 만들어낸 호감과 그들이 보여준 무력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소란을 떨어서 미안하다고? 쳇, 이게 뭐라고.’
포드는 근본적인 원인을 모르고 있었다.
테야노스에게 텍사스 레인저스란.
백인들을 위해서만 총을 드는 동시에.
선택적 정의에 고귀한 법관이라는 이미지를 덧칠한 가식적인 집단에 불과했음을.
그 때문엔 작은 말 한마디가 SFBC를 텍사스 레인저스 위에 올려두었음을 포드는 알지 못했다.
‘젠장, 돈으로 처발랐다는 말은 괜히 해서.’
창피하다.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포드가 길게 한숨을 내쉴 때, 다른 레인저스는 자기들끼리 분석에 열을 올렸다.
“불난 흔적도 없는데 연기가 났다는데, 이걸 믿어야 해?”
“목격자들 진술이 일치하잖아. 그리고 번쩍거리는 것도 봤다는데, 당최 뭐를 사용한 건지 알 수가 없네.”
“어쨌든, 그냥 쪽수로 밀어붙인 거야. 우리도 다 모였으면 충분히 할 수 있었다고.”
“그래. 그렇게라도 생각해야지.”
‘쪽수가 문제가 아니야, 바보들아.’
포드 대위는 혀를 차며 레인저스의 모습을 바라봤다.
완벽한 기습과 이를 펼친 미친 속도, 여기에 더한 과감한 공격. 이 삼박자가 골고루 갖추어졌으니, 상대는 별다른 저항도 못 한 채 무너져내린 것이다.
‘말이야 쉽지. 훈련이 그만큼 되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아침마다 구보하는 것도 그 연장선이리라.
만약 자기가 레인저스를 이끌고 똑같이 작전을 수행했다면?
솔직히 똑같은 결과를 기대하기는 힘들었다.
‘월러스랑 다시 얘기 좀 해봐야겠네.’
그동안 워낙 개무시한 터라 제대로 대화가 될진 모르겠지만, 월러스의 말대로 ‘레인저스의 미래가 SFBC’라는 것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
콜로라도로 향하는 길.
막스가 붉은 깃발을 들고는 외쳤다.
“이번엔 분대 단위로 움직인다. 이 깃발이 보이나?”
“보입니다!”
“이건 그냥 깃발이 아니다. 흉악한 놈들에게 붙잡힌 애인이다!”
“......?”
별 감흥이 없는 표정.
문득 막스는 자신이 실언했음을 깨달았다.
‘모쏠들이라, 감정이입이 안 되는구나.’
“실수했다. 그냥 이 깃발을 천 달러라고 생각해라.”
“오오! 포상인가!”
불쌍한 새끼들.
막스는 룰을 설명했다.
“기간은 이틀. 우리 세븐 스트롱과 1중대 1분대가 지키고 있을 테니, 마음껏 습격해라. 참고로 한 대라도 몸이 스치면 실격이다.”
막스는 마차 위에 깃발을 세워두었다.
그 주변을 세븐 스트롱과 열 명이 지켰다.
각 분대의 구성인원은 열 명. 총 22개의 분대원이 각자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다.
그중 수염이 덥수룩한 남자가 쪼그려 앉은 채 무리에 포함되어 있었는데.
‘율리시스!’
포상금에 마음이 움직인 모양이었다.
적극적으로 분대원들 틈에 끼어들었다.
< 네가 못 본 거야 > 끝
< 미래에도 존재하나 >
율리시스를 본 콜린이 팔짱 끼며 어이없어했다.
“대체 사업에 얼마나 돈을 투자하려고 저러는지 원.”
“콜린도 그 사업 알아요?”
막스는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포니 익스프레스? 당연하지, 나도 투자했는데.”
“!”
“나도 투자했어!”
“저도요!”
히콕에 네이선 로어까지.
들어보면 하퍼스 페리에 가 있는 동안 막스가 아는 많은 사람이 포니 익스프레스에 투자한 상황이었다. 광산 회사 주주들은 물론 홀리데이까지.
‘곡소리가 아주 진동하겠구나.’
망하는 회사에 이렇듯 진심일 줄이야.
보통은 안타까워해야 할 일이나 막스는 입가를 씰룩거리며 실소를 흘렸다.
‘이거 종신 노예도 가능하겠는데.’
이를테면···.
막스는 피치를 쳐다봤다.
‘노예 피치?’
“뭘 봐? 난 투자 안 했어.”
“왜?!”
“네가 포니 익스프레스엔 관심 없으니까?”
눈치 빠른 피치는 언제부턴가 사업 성공의 척도를 막스로 삼았다.
막스가 관심 있으면 따라가고, 그게 아니면 굳이 모험하지 않는 게 나름의 기준이라면 기준이었다.
어찌 됐든, 입맛을 다신 막스는 이렇게 된 이상 포니 익스프레스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볼 필요성을 느꼈다. 캔자스강 수온 체크 한다고 들어가는 불상사는 막아야 했으니.
‘불과 2년도 못 버틸 회사에 뭐 먹을 게 있을까.’
역사에 기록된 포니 익스프레스의 가치?
짧고 굵게 사라졌다는 표현이 어울린달까.
서부의 낭만과 용기, 그리고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기수들의 능력이 대중에게 깊이 각인된 정도였다.
‘낭만과 용기는 개나 줘버리고.’
막스가 주목하는 건 기수.
회사는 사라져도 일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존재했으니.
불굴의 정신과 강인한 체력, 심지어 나이까지 따져가며 포니 익스프레스는 대담하게 기수를 채용했다.
‘중요한 건 사람이지. 그걸 흡수하면···.’
막스가 고민하는 사이 성질 급한 분대원들이 저지선을 뚫지 못하고 땅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그리고.
“큰일이네! 보급 관련해서 긴히 할 이야기가 있으니, 아무래도 전체 회의를···.”
“안 속습니다.”
율리시스는 터벅터벅 분대원들에게 돌아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대원들은 하나같이 낙담하며 고개를 떨구고.
‘다들 미쳤구만.’
천 달러가 뉘 집 개 이름도 아니고, 얄팍한 수가 통할까 싶은가.
22개의 분대 중 5개가 조기 탈락.
다른 분대가 습격하는 틈을 노리고 그 틈을 또 노리는 등. 치열한 수 싸움이 이루어졌다.
지키는 사람은 막스를 포함해 17명.
마차 위에 꽂힌 깃발도 여전히 건재하고, 아직 막스는 나서지도 않은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