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8화 (128/360)

막스와는 로렌스에서부터 관계를 다져온 <헤럴드 오브 프리덤>, <캔자스 트리뷴>, <캔자스 프리 스테이트>의 발행인들.

- 좀 더 큰물에서 놀고 싶지 않습니까? 함께 큰 거 하나 만들어 보죠.

캔자스는 별도의 편집장을 두고, 광고는 SFBC, 핑커톤, 광산 회사로 시작해 확대해 나가면 된다.

재정 문제가 해결된 이상, 자신들의 목소리가 커지는데 거절할 이유가 있나.

캔자스 신문사의 발행인들은 뜻을 모아 막스의 언론사 설립을 돕기로 했다.

“데이비드 넌 앞으로 내 눈과 입이 되어서 워싱턴과 뉴욕 사무실을 관리하면 돼.”

“알겠습니다!”

언론은 그 자체만으로도 거대한 권력.

‘손에 쥐기 위해선 직접 만드는 수밖에 없지.’

이 시기의 언론사는 ‘펜이 금과 총보다도 강하다고 믿는’ 자긍심으로 똘똘 뭉친 기자와 발행인들이 꽤 많았다.

그 때문에 우회해서 지분을 잠식한다 해도, 동양인인 막스가 움직이기엔 한계가 명확했다.

한편, 데이비드 러셀과 막스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을 때. 비서 칸토는 또 다른 러셀을 찾아갔다.

“윌리엄 러셀씨. 막스 보스께서 찾으십니다.”

“막스?”

중년의 남자는 포니 익스프레스의 설립자 윌리엄 햅번 러셀. 

그는 동업자 알렉산더 메이저스, 윌리엄 와달과 회의를 하는 중이었다.

“내가 곧 요새로 방문하겠네.”

“알겠습니다.”

칸토가 나가자 와달이 재빨리 입을 열었다.

“갑자기 막스가 왜 자네를 찾지?”

“흠. 새로운 사업 때문인가. 미리 말을 안 해서 찝찝했는데 이런 식으로 나를 부를 줄 이야.”

“그만큼 우리 사업에 관심이 있는 거 아닐까?”

“글쎄. 워낙 종잡을 수 없는 자라.”

턱을 쓰다듬던 러셀이 말을 이었다.

“사업이 아니라, 지금 우리 상황을 알고서 부른 거면 그게 더 큰 문제야.”

“지금 회사 부채가 심각하다는 걸 지가 어떻게 알아? 절대 그럴 리 없다고.”

말은 그렇게 했지만, 회의실엔 침묵이 흘렀다.

리븐워스&파이크스 피크 익스프레스의 영업손실. 그로 인한 막대한 부채.

막스의 미팅 요청에 불안해하는 이유였다.

분위기가 가라앉자 와달은 짜증이 나는지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이거 뭐, 동양인이 머리 위에 앉아서 오라 가라 하는 판이니. 더러워서 해 먹겠어?”

“이번 사업만 성공하면 입장은 반대가 될 수도 있어. 그때까진 참아 보자고.”

메이저스의 말에 러셀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현재 운영하는 운송회사는 로렌스와 준투를 오가며 정기적인 우편 계약도 맺고 있다.

그만큼 준투에서 사업하려면 막스와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했다.

자리에서 일어난 러셀이 말했다.

“갔다 올 테니까, 채용할 기수들 면접 준비나 잘하고 있어.”

“알았어. 괜히 동양인한테 주눅 들지 말고, 당당하게 말하고 와. 사업 지분 얘기 꺼내거든 실컷 약이나 올려 주고!”

와달의 말에 러셀은 피식 웃으며 밖으로 나왔다.

*

“오랜만에 뵙는군요.”

“그러게나 말입니다. 거의 일 년 만에 보는 것 같군요, 러셀.”

콜로라도의 실세이자 SFBC의 리더.

러셀은 눈앞의 동양인을 감히 얕잡아 볼 수 없었다.

소파에 앉자 막스가 물었다.

“사업은 잘되십니까?”

“...... 그럭저럭요.”

“안 좋다는 말로 들리는군요.”

윌리엄 러셀이 운영하는 운송회사의 명칭은 리븐워스 & 파이크스 피크 익스프레스.

말 그대로 캔자스 리븐워스에서 콜로라도 준투까지 ‘여객, 우편물, 화물 및 금’을 운송하는 서비스다. 

막스는 이주민들의 편의를 위해 러셀에게 0.2에이커(약 240평)씩 53군데의 부지를 무상으로 빌려주고 정기적인 우편과 화물 계약까지 맺었다.

그런데도 러셀의 운송 사업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편하게 말해보세요. 사업이 어려우면 저도 방법을 찾아야지 않겠습니까. 다른 운송회사를 찾아볼 수도 있고.”

“그, 그 정도까진 아닙니다.”

윌리엄 러셀은 화들짝 놀라며 말을 이었다.

“적자 폭이 커지긴 했지만, 만회할 방법은 있습니다.”

“글쎄요. 제가 봤을 땐, 운송비용이 문제인데 해결할 방법이 있을까요?”

‘설마 회사 뒷조사라도 했나.’

담담한 표정 뒤에 뭐를 숨기고 있는지, 러셀은 막스의 눈을 마주치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막스의 말마따나, 승객은 100달러, 화물은 파운드당 1달러, 간단한 우편물은 25센트로 요금이 책정되어 있다.

문제는 골드러시를 찾아온 대부분이 가난한 사람들이라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는다는 거.

그렇다고 가격을 낮추면 그건 그것대로 적자를 면하기 힘들었다.

유일한 방법은 다른 곳에서 적자를 메우는 건데···. 

막스는 이 사실도 귀신같이 알고 있었다.

“정부의 우편 배달 입찰을 따내야 길이 보일 텐데, 웰스 파고 같은 회사들과 경쟁해서 성공할 수 있겠습니까?”

‘대체 어디까지 아는 거야.’

한편으론 동양인에게 이런 소리를 듣고 있자니 조금은 화가 치밀었다.

‘조만간 내가 성공하면 무슨 말을 할지 두고 보자고.’

믿을 건 포니 익스프레스. 이걸 생각하자, 러셀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그렇지 않아도 새로운 서비스를 계획 중입니다. 획기적이고 파격적인 사업이죠.”

“아, 그 포니 익스프레스요? 사실 그것 때문에 부른 겁니다.”

‘역시 관심이 있었구만.’

러셀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진작에 상의했어야 했는데, 이제야 말을 꺼내게 됐군요.”

“그런 건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자리 비운 제가 잘못이죠.”

“잘못까지야.”

러셀이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막스의 굳어진 얼굴을 본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또 뭔가 싶다.

“몇 개월 전부터 회사들을 인수했었죠?”

“..... 맞습니다.”

“지금 하는 사업도 적자, 새로 인수한 회사들도 적자. 얼추 계산해보면 수십만 달러에 달하는 채무가 생겼을 텐데요.”

러셀은 포니 익스프레스의 운송 경로를 위해 회사들을 인수했다. 전부 적자 상태인 회사다.

어떻게 된 건지, 막스는 정확히 자신의 상황을 꿰뚫고 있었다.

현재의 운송 사업은 그야말로 빛 좋은 개살구.

겉으론 사업이 번창하는 것 같지만, 속으론 썩어 문드러지고 있었다.

러셀의 시선이 아래로 떨어졌다.

“정확히 빚이 얼맙니까?”

“......”

“말 안 할 거면, 준투에서 철수하시던가요.”

“철수라니요!”

러셀은 곤혹스러운 얼굴로 입을 뗐다.

“오, 오십만 달럽니다.”

“허.”

막스는 핑커톤과 공조해 뒷조사를 한 결과 심각한 재정난이라는 건 대충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실상은 더 심각하지 않은가.

‘설마 이 정도일 줄이야.’

막스는 팔짱을 낀 채 손가락으로 팔뚝을 톡톡 두드렸다.

“오십만 달러의 빚을 새로운 사업으로 만회하겠다. 이 생각입니까?”

“그만큼 자신 있으니까요. 방금도 말했지만,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획기적인 사업입니다.”

“그렇게 좋은 걸, 왜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생각 못 한 겁니다. 안 한 게 아니라.”

오기가 생긴 러셀의 목소리가 조금은 날카로워졌다.

“현재 투자금은 얼마나 모았습니까?”

“7만 달러 정도 됩니다.”

그중 절반은 막스가 아는 사람들의 것이다.

“사업 개시일은요?”

“4월 3일입니다.”

“두 달밖에 안 남았군요.”

“곧 미 전역이 떠들썩할 겁니다.”

동부 뉴욕에서 서부 샌프란시스코까지 4,100km.

이를 단 9일 만에 주파한다는 건, 이 시기로 치면 로켓배송 아닌가.

상상 그 이상의 경이적인 속도였다.

그렇다고 단순한 허풍은 아니다.

러셀은 총 113개의 간이역을 80명의 기수가 조랑말 400마리를 번갈아 타고 운송할, 구체적인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다음 달에 대대적인 신문 광고가 나갈 겁니다. 첫 스타트를 끊으면 사람들이 확인하겠죠. 이 엄청난 운송 서비스를요.”

“저도 그렇게 되길 바랍니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막스는 러셀을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올해 안으로 재정 상태가 나아지지 않는다면, 준투는 다른 운송업체를 찾아 계약할 겁니다. 무상으로 임대한 부지도 회수할 거고요.”

“그, 그런.”

어느 누가 망해가는 회사에 금과 화물을 맡길 수 있을까. 러셀에겐 가혹하지만, 막스 입장에선 당연한 일이었다.

“아, 그리고 한 가지 더 부탁이 있습니다.”

율리시스를 포함, 지인들의 투자 지분을 막스 인베스트로 합치는 것. 

이는 막스가 직접 관리하겠다는 의지였고, 러셀에겐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왔다.

여차하면 SFBC가 자신을 노릴 테니까.

“투, 투자자들에게 동의는 받은 겁니까?”

“물론입니다. 여기 서류를 한 번 보시죠.”

내용을 훑어보던 러셀이 어느 부분에 이르러서 동공이 팽창했다.

“기존 투자금 외에 3만 달러를 더 투자하시겠다고요?”

“그렇습니다.”

이렇게 되면 포니 익스프레스 사업은 총 10만 달러의 자금을 확보한 셈이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흩어진 지분을 하나로 합친 막스 인베스트의 지분율이 60%에 달하게 된다.

정상적인 경영자라면 당연히 거부해야 한다.

그런데 얄미운 막스는 이를 차단하기 위해 항목을 추가했다.

“경영권은 간섭하지 않는다는 조항이 있군요.”

“경영에는 전혀 관심이 없으니까요. 다만, 회사를 매각, 합병할 땐 내 동의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흠.”

회사를 키워 팔 생각이었다면 거절할 테고, 진심으로 경영할 생각이면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다.

“동업자들과 논의 해 보겠습니다.”

“검토하고 말해줘요.”

러셀이 나가고 막스는 소파에 몸을 묻고는 천장을 바라봤다.

포니 익스프레스를 통해 러셀이 노리는 건 연방 정부와의 연간 계약. 그 금액만 연간 60만 달러에 달한다.

러셀은 포니 익프프레스의 배달 속도라면 충분히 입찰을 따낼 자신이 있었다.

‘그건 당신 생각이고.’

포니 익스프레스의 문제는 정부 입찰만이 아니었다.

콜로라도와 유타, 네바다주에 걸쳐 생활하는 파이우테스 부족.

몰몬교가 저지른 메도우스 대학살의 범인으로 지목된 이 파이우테스 부족이 얼마 전부터 백인 마을과 심각한 갈등을 벌이고 있었다.

문제는 지금은 작은 분쟁 정도지만, 조만간 전쟁으로 확대된다는 것. 

이로 인해 포니 익스프레스는 영업 개시 한 달 만에, 영업을 중단하게 된다는 점이었다.

막스의 목표는 포니 익스프레스 뿐만 아니라, 러셀이 운영하는 ‘리븐워스&파이크스 피크 익스프레스’까지 인수하는 것이다.

그리고 재능있는 인력은 SFBC로 흡수하고, 나머지는 웰스-파고에 팔아넘겨 그 회사의 지분을 획득할 생각이었다.

‘남북 전쟁 동안 여러 가지 일이 벌어지겠구나.’

폭력과 돈이 미쳐 날뛰던 무법 시대. 

그 시작은 남북 전쟁이었으니.

여러 가지 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

막스가 텍사스에서 혹한기 훈련을 하는 동안.

워싱턴에선 하퍼스 페리 사건을 두고 공화당과 민주당의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졌다.

핵심은 존 브라운.

민주당은 반역자로 몰아 체포하길 원했고,

공화당은 억울한 누명이라며 반발했다.

일리노이주의 상원의원 링컨은 적극적으로 존 브라운을 변호하며 무죄를 주장했다.

- 대통령이 뚜렷한 증거 없이 존 브라운을 반역자로 몬다면, 이는 나 역시도 어느 날 갑자기 반역자가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노예 해방을 주장한 게 죄라면, 저도 체포하십시오.

링컨은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는데 존 브라운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공화당도 당 차원에서 링컨과 함께 움직였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제임스 뷰캐넌 대통령은 존 브라운의 체포를 명령했다.

그리고 실제로 체포가 이루어졌는데, 

그 장소가 뜻밖이었다.

[하퍼스 페리 습격 용의자로 지목된 존 브라운, 오하이오주 공화당 의회실에서 체포]

[존 브라운, 최근 공화당 입당 확인]

[연방 정부의 공화당 당원 탄압. 제임스 뷰캐넌 대통령의 무리수인가.]

공화당 지지자와 노예제 폐지론자는 이 소식에 흥분하고, 존 브라운의 결백을 외쳤다.

막스는 이미 존 브라운이 체포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사이 편지를 몇 번 주고받았으니 말이다.

- 어떤 게 이득일 것 같나? 체포되는 것과 피해 가는 것 말일세.

막스는 각각의 장단점을 들어 답장했다.

- 체포되면 대중적인 지지는 폭발적으로 이끌 수 있겠죠. 하지만 시간을 버리고, 존의 안전을 장담할 수 없습니다.

- 반대로 체포되지 않는다면 조용히 정치기반을 닦으면서 안정적인 활동을 할 순 있을 겁니다. 하지만 자칫 대중들에게 오해를 살 수도 있습니다. 노예제 폐지론자는 비겁자로, 노예제 옹호론자는 죄가 있어서 숨는다고 주장하겠죠.

- 결론, 사실 체포되는 게 가장 좋습니다. 다만 대중에게 노출되고 메시지를 던질 수 있는 곳이면 더 좋겠죠. 그게 존의 안전을 보장해 줄 테니까요.

막스가 보낸 편지에 답장은 오지 않았다.

대신 행동으로서 답을 했다.

‘역시 행동파야.’

존 브라운은 체포 장소로 그의 고향이기도 한 오하이오주, 그것도 공화당 의회실을 선택했다.

여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공화당 지지자들의 관심까지 끌어낼 최적의 장소라 할 수 있었다.

누구의 머리인지 모르지만, 존 브라운을 돕는 참모 중에 뛰어난 자가 있는 게 분명했다.

체포되면서 존 브라운이 한 말들이 신문 헤드라인을 장식했으니 말이다.

[존 브라운, ‘노예주들이 즐겨 쓰는 저질적인 누명 씌우기’라며 절대 굴복하지 않을 것을 천명.]

[존 브라운 솔직한 심정 고백. ‘몽고메리와 제니슨처럼 행동하지 못한 게 부끄럽다. 그들은 내 마음속의 영웅들.’]

‘위선자가 되기로 단단히 마음을 먹었구만.’

신문을 읽던 막스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물론 존 브라운은 진짜로 그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둘의 죽음을 제대로 알지 못했으니.

막스가 말한 위선자는 존 브라운이 결백을 주장한 순간 정치인으로 변신을 완성했다는 걸 의미했다.

하퍼스 페리를 습격한 몽고메리와 제니슨은 혁명가로서 노예제 폐지론자들의 우상화가 진행중이고. 존 브라운은 이를 자신의 정치적 발걸음을 떼는 것으로 활용했다.

존 브라운이 체포되고 정치 공세와 여론 분열이 가속화될 때, 어쩐지 링컨의 말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는 링컨의 존재감이 존 브라운에게 묻혔음을 의미했고, 눈치 빠른 링컨은 존 브라운의 언급을 줄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리고 3월이 될 즈음.

막스에게 우편이 도착했다.

[자유주의 심장, 로렌스에서부터 정치를 시작할 생각이네. 자네의 조언과 힘이 필요하네. 존 브라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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