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슬슬 팔아볼까.’
회사의 가치가 최고점일 때.
막스는 투자 지분을 팔아치우려 했다.
포니 익스프레스가 미국을 흥분으로 몰아넣기 한 달 전.
막스는 홀리데이를 통해 사전에 접촉해둔 자본가와 물밑 협상을 하고 있었다.
아이러니한 건 그 자본가가 바로 데이비드 라이스 애치슨이라는 사실.
보더 러피안의 수장이자 한때 미주리주 상원 의원이었던 애치슨은 포니 익스프레스 사업에 참여하지 못한 걸 아쉬워하고 있었다.
홀리데이는 기겁하며 물었다.
- 그래서 애치슨에게 투자 지분을 판다고?
- 관심 있다면서요?
신문에 떠들 때가 회사 가치의 머리 꼭대기.
막스는 애초에 투자 지분을 팔 생각이었다.
율리시스를 비롯한 주주들에게 모든 걸 위임받은 터라, 별도의 허락은 필요하지 않았다.
- 와,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애치슨한테 팔 생각을 하냐. 너도 참 대단하다.
- 돈 말고도 다른 목적도 있습니다. AT&SF는 어떻게 되어 가고 있어요?
AT&SF는 홀리데이와 사무엘 포메로이가 추진 중인 ‘애치슨, 토피카와 산타페철도’ 사업이다.
예전에 포메로이는 막스로 하여금 철도가 지나가는 애치슨 마을을 통째로 먹게 해달라며 귀찮게 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이름 그대로 애치슨 마을을 설립한 건 바로 데이비드 라이스 애치슨이었다.
- 애치슨이 투자에 실패하면, 그때 마을 지분을 가지고 거래해요.
- 설마, 그것까지 생각하고 있었다니! 막스 너란 인간은 대체···!
홀리데이와 포메로이는 애치슨에게 몇 번이나 함께 사업에 참여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애치슨은 노예제를 운운하며 거절했었다.
물론 속내는 더 많은 지분. 즉, 자신의 몸값을 더 높이기 위한 꼼수에 지나지 않았다.
어찌 됐든, 그렇게 홀리데이는 애치슨과 거래한 끝에. 며칠 전 투자 지분을 25만 달러에 매각할 수 있었다.
이는 막스와 초기 투자자들에게 무려 4배에 가까운 수익을 안겨 주었다.
“이 일은 내년까진 비밀로 해주세요.”
“그러다 들통나면?”
“이익 보고 팔았으면 된 거 아닙니까.”
“... 그건 그렇지. 누가 너한테 뭐라 하겠어.”
아마도 막스가 이 일을 말하는 건 율리시스가 남북전쟁에 자원입대한 다음일 것이다.
그 전에 4배의 수익을 율리시스에게 돌려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하지만 거래를 성사시킨 홀리데이지만 찜찜함은 있었다.
“포니 익스프레스를 지금 파는 게 잘한 걸까? 나중엔 열 배도 넘을 것 같은데.”
“장담하는 데 지금이 최고점입니다. 정 찜찜하면, 애치슨한테 다시 사던가요.”
“아니야. 난 그냥 4배로 만족할게.”
그리고 5월이 될 무렵.
막스가 예견한 사태가 벌어졌다.
콜로라도, 유타, 와이오밍, 네바다에 걸쳐 거주하는 파이우트족과 전쟁이 벌어진 것이다.
이 여파는 포니 익스프레스가 지나는 경로에 심각한 타격을 안겨주었다.
“망할! 하필 이런 때에 이런 일이 터지다니!”
러셀과 동업자들은 분통을 터트렸다.
그럼에도 이들은 사업을 강행하려 했다.
하지만 며칠 안 되어 기수 하나가 인디언에게 공격받아 죽는 일이 발생했다.
결국, 사업을 임시 중단할 수밖에 없었고 정부 입찰 계약도 보류되었다.
사업 시작 한 달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막스! 죽어도 우린 함께 하는 거야! 살다 살다, 애치슨이 불쌍하게 보이긴 처음이네.”
홀리데이가 막스의 통찰력을 칭송할 때.
시카고에는 또 다른 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사흘에 걸친 공화당 전당대회.
동양인인 막스는 참석해봐야 도움이 되지 않기에, 핑커톤 사무실 인근 호텔에 홀로 머물면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 시기의 공화당 대통령 후보 경선은 총 3차에 걸쳐 투표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이 투표권은 지역별 인구 비례에 할당된 대표 당원들이 갖고 있어 그 수가 많지 않았다.
똑똑.
막스가 머문 호텔 방에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날세···.”
기운이 쫙 빠진 목소리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캔자스 전 주지사 앤드류 호레시오 리더다.
“들어와요.”
덜컥.
리더가 들어오자 방까지 음침하고 우울해졌다.
깊은 한숨까지 내쉬며 리더는 소파에 몸을 묻었다.
“설마 내가 질 줄 누가 알았겠는가.”
리더는 부통령에 도전했다.
막스가 일리노이주를 가려고 로렌스를 떠나려 할 때. 리더가 따라붙길래, 뭔 일인가 싶었다.
- 어디 가시려고요?
- 공화당 전당대회. 부통령에 도전할 생각이거든.
- ......
결과는 부통령 후보에 낙선.
1위는 링컨, 2위는 원 역사에서 부통령이었던 한니발 햄린이 차지했다. 막스 덕분에 꼬인 인물 중 하나였다.
어찌 됐든, 놀라운 건 10명의 후보 중 리더가 무려 5위를 차지했다는 점이었다.
막스는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실화예요? 5위라니!”
“나도 놀라워. 고작 그것밖에 안 되다니.”
‘그것밖에 라니.’
역시 뻔뻔하다며 막스는 리더를 보며 고개를 절레 저었다.
“그나저나, 가장 중요한 걸 말해줘야죠.”
“뭐, 안 봐도 빤하잖아. 1위는 존 브라운이야. 3차 선거까지 전부 압도적이었어. 그 사람은 참 복도 많아. 도와주는 사람이 어디 한둘이라야지.”
키트 카슨, 헤리엇 비쳐 스토우, 흑인들의 아버지라 일컫는 프레데릭 더글라스.
하지만 그런 거물들을 빼고서라도, 가장 섭섭한 건 바로 막스였다.
리더가 입을 삐죽거리며 막스를 힐끔거렸다.
“자네가 내 후원자였다면···.”
“그래도 안 됐어요. 어찌 됐든, 제가 위로주 한 잔 살게요.”
리더에겐 위로주요 막스에겐 자축의 의미다.
“밥은?”
“...... 밥도 살게요.”
“내가 이럴 줄 알고, 미리 봐둔 식당이 있어. 공화당 당원들도 곧 간다는데, 우리가 선수 쳐서 먹자! 이런 거라도 이겨야지!”
리더의 얼굴에 해맑은 미소가 지어졌다.
하여간 낙천적인 성격인 건 분명했다.
시카고 호텔 인근의 식당.
동양인이 희귀한 지역이라 호텔 내에서만 식사했었다.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불필요한 마찰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아니나 다를까.
리더와 테이블에 앉은 막스가 스카프를 풀자마자 소란이 일어났다.
“시발, 내가 지금 헛것을 본 거야?”
“쿨리 새끼가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기어들어 왔대!?”
백인들 몇 명이 광분하며 소리친다.
“저 새끼가 말귀도 못 알아듣나.”
적극적인 떡대 한 명이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오기까지 했다.
“이거 아무래도 내가 장소를 잘못 택한 것 같은데.”
리더는 잔뜩 긴장한 채 막스의 눈치를 살폈다.
떡대가 두려워서는 아니다. 막스가 여기서 저자를 죽이진 않을지, 가슴을 졸일 뿐.
“어이, 쿨리. 네가 여기 왜 있어? 내 말 안 들려?”
백인 남자가 막스의 뒤통수를 후려치려는 순간. 자리에 일어나면서 자연스레 손길을 피했다. 흥분한 남자가 손을 뻗을 땐, 손목을 잡아 꺾고.
동시에 재빨리 팔뚝으로 목에 초크를 걸었다.
그리고는 언제 들었는지 왼손에 쥔 고기 써는 나이프를 놈의 눈알에 가져다 대었다.
“눈깔 하나 없어도 백인이라 대접받냐?”
“...... 윽.”
남자의 일행들은 감히 다가오진 못했다.
막스가 비웃듯 피식하며 남자를 내동댕이쳤다.
“이, 이 개새끼가!”
흥분한 남자가 튕기듯 일어나 달려든다.
멧돼지처럼 다가오는 놈의 면상에 막스의 오른발이 마중 나가고. 오는 속도보다 더 빨리 튕겨 나갔다.
왼손에는 나이프가 현란하게 스핀하며 눈을 어지럽히고, 테이블 하나를 뭉개며 쓰러진 남자에게 막스가 천천히 다가갔다.
콰악.
머리를 잡고 일으켰다. 발버둥 치자 가차 없이 가슴을 발로 걷어찼다.
남자가 고통에 신음할 때.
덜컥.
식당에 일단의 무리가 들어왔다.
선두에 있던 존 브라운이 눈을 부릅뜨고, 고개를 숙이며 막 들어온 링컨도 경직된 채 막스와 시선이 마주쳤다.
앨런도 식겁한 얼굴로 눈을 껌뻑거렸다.
막스는 눈을 가늘게 뜬 채, 잠시 고민하다 남자를 잡은 머리를 놔버렸다.
그리곤 왼손으로 돌리던 나이프를 나무 벽에 내던졌다.
지지잉.
제대로 박힌 나이프 끝이 진동하고, 막스가 발걸음을 옮겼다.
“리더, 다른 데서 먹죠.”
막스는 존 브라운의 시선을 피하고, 링컨과는 짧게 시선을 마주친 뒤 식당 밖으로 벗어났다.
곧 대통령과 부통령 후보가 될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자리를 피한 것이지만.
링컨은 다른 의미로 해석했다.
- 평등을 주장하려거든 예외를 두지 말라.
지금껏 노예 해방에만 매몰된 건 아닌지.
막스의 짧지만 강렬한 시선이 링컨의 뇌리에 각인 되었다.
< 포니 익스프레스와 공화당 전당대회 > 끝
< 무슨 생각으로 나를 초대했지 >
며칠 전,
공화당 전당대회가 시작되는 5월 16일.
임시 의장인 펜실베니아 하원 데이비드 필모트는 다음과 같은 기조연설을 했다.
[몰염치하고 귀족적인 정당이 그동안 이 나라의 정치를 수년간 지배해 왔습니다.
그들은 노예제도의 확장과 국유화라는 목표에 집착해 국민의 권리를 빼앗고 갈등을 일으켰습니다.
여러분, 분열과 갈등의 원인인 민주당 정책에 저항하는 것이 공화당의 사명이자 우리 조직의 기초입니다.
연방의 깃발이 펄럭이는 곳이면 어디든지 헌법에 따라 노예제에 저항하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자 정책입니다.]
뒤이어 공화당 강령 위원회 의장 펜실베니아 판사 윌리엄 제섭은 독립 선언문을 응용.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창조되었으며 창조주로부터 양도할 수 없는 특정 권리를 부여받았다.’로 시작해 17개의 공화당 강령을 공표했다.
이는 노예제, 자유 토지, 도망노예법, 연방 보존, 보호관세, 홈스테드법 제정, 이민의 자유, 시민권, 내부 개선 및 대륙횡단철도를 총망라한 것이었다.
막스는 이때 처음 알게 되었다.
원 역사에서 링컨 대통령이 추진한 정책은 이미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정해진 강령을 이행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라는 걸.
이는 링컨의 머릿속 구상이 아닌 공화당 전체의 의중이었으며, 막스가 임의로 끌고 가다간 자칫 공화당 전체가 적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어찌 됐든, 경선 승리를 위해 존 브라운과 링컨은 공화당 강령을 따를 수밖에 없었고.
권력에 다가갈수록 막스는 이 나라를 자신의 의지대로 바꾸는 게 호락호락하지 않음을 깨닫게 되었다.
식당에서 백인과 시비가 붙었던 날.
저녁 늦게 앨런 핑커톤이 막스의 호텔 방을 찾아왔다.
“저녁은 먹었나?”
“리더 의원과 호텔에서 해결했습니다.”
소파에 앉은 앨런이 넌지시 막스를 쳐다봤다.
“눈에 띄지 않겠다고 호텔에만 있겠다더니, 아깐 자네답지 않더군.”
“가끔은 확인하고 싶을 때가 있거든요.”
동양인의 위치.
SFBC와 콜로라도, 로렌스에 있다 보면 현실을 망각할 때가 있다. 주변의 백인들이 하나같이 호의적이었으니 가끔은 이런 식의 충격요법이 필요했다. 물론 전당대회 승리 기념 뒤풀이가 있을 거라는 걸 알기에 벌인 짓이었지만.
“내가 뒤처리는 해놨네. 시카고에선 나름 영향력이 있거든. 콜로라도에서 내가 일 저지르면 그땐 자네가 나서줄 거지?”
“.... 아무튼, 괜히 저 때문에 고생하셨네요.”
“고생은 무슨. 그나저나 자네의 그림대로 존 브라운과 링컨 의원이 경선에서 승리했네.”
막스는 이미 알고 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앨런이 재차 말을 이었다.
“내가 걱정하는 건 둘의 경호인데, SFBC는 어쩔 건가?”
“콜린을 붙일 생각입니다. 핑커톤과 협조하면 더 촘촘해지지 않을까 싶은데요.”
“말이 나왔으니, 콜로라도의 인력을 좀 빼야겠어. 50명 정도 생각하고 있네.”
1,300명 중 50명은 티도 안 나는 숫자다.
중요한 건 누굴 빼냐는 거지.
“케이트 와네 양을 불러들일 생각입니까?”
“잘 아는군. 토디 수석탐정은 지금처럼 콜로라도를 총괄 지휘할 거라네.”
원 역사에서 링컨의 1차 암살을 저지한 케이트 와네였지만 지금은 지켜야 할 대상이 바뀌어버렸다.
“존 브라운이 대통령 후보가 된 소식이 퍼져나가면 노예주들이 꽤 흥분할 겁니다.”
“암살 위험률이 역대 최고를 찍겠지.”
“이참에 경호에 대한 메뉴얼도 만들어 놓으면 좋겠군요.”
“하여간 자네랑은 밤새 이야기해도 시간이 모자란다니까.”
막스와 앨런은 경호 이외에도 앞으로 벌어질 극단적 상황을 두고도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다음 날.
앨런이 미리 빌려둔 호텔 회의실에서 단체 미팅이 이루어졌다.
참석자는 이제 대통령 후보가 된 존 브라운과 조력자, 그리고 링컨과 로렌스에서 온 공화당 당원들이었다.
회의의 주 내용은 본 게임인 대선을 위한 다짐과 포부, 그리고 전략이었다.
맨 뒤, 스카프를 두른 채 앉아 있는 막스 옆에는 링컨이 있었는데. 그는 회의에 집중하다가도 간혹 막스를 힐끔거렸다.
“하실 말씀이 있으면 하시죠.”
“흠. 어젠 왜 그랬나. 감정적으로 일을 처리할 성격은 아니라고 봤는데.”
“밟으면 꿈틀거려야죠. 시카고는 어떨까 했는데, 별 차이 없더군요.”
링컨이 실소를 흘리며 말했다.
“핵심은 ‘나도 사람이다’, 이 말이군. 그게 자네의 메시지라면 제대로 전달되었네.”
'그냥 빡친거였는데.'
둘 사이에 침묵이 흐르는 사이, 존 브라운의 참모 한 명이 단상에서 연설하고 있었다.
링컨은 턱으로 남자를 가리키며 물었다.
“저 친구에 대해 좀 아나?”
“어느 정도는요.”
“자네처럼 힘과 돈이 있으면 저 친구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움직이지 않는 이유가 뭔가?”
데인저필드 뉴비는 지난번 존 브라운이 공화당에서 체포될 당시 계획을 세운, 머리가 제법 굴러가는 참모였다.
특이한 점은 그의 아버지가 백인 지주였고, 어머니는 다른 사람 소유의 흑인 노예라는 사실이었다.
법적 혼인이 금지된 상태에서 백인 아버지는 데인저필드 뉴비를 비롯 일곱 자녀를 노예에서 해방하는 데 평생을 바쳤다.
문제는 노예에서 해방된 뉴비의 부인 역시 누군가의 노예라는 점이었다.
해서, 뉴비는 부인과 자신의 아이들을 주인에게서 사기 위해 1,500달러를 모았다.
그런데 주인이 돌연 가격을 인상했다.
이에 분노한 뉴비는 빌어먹을 세상을 전복시키기 위해 하퍼스 페리 습격에 동참하게 된다.
지금이야 저렇게 멀쩡히 단상에서 연설을 하고 있찌만, 원 역사에서 데인저필드 뉴비는 하퍼스 페리 습격 도중 총에 맞아 죽게 된다.
당시 분노한 마을 주민들은 그의 사지를 자르고, 일부를 돼지 먹이로 던져준다.
그리고 그의 품속에서 노예인 부인의 편지가 발견되었는데, 내용은 이렇다.
[사랑하는 남편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