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2화 (132/360)

오늘도 전 당신이 하루빨리 저와 아이들을 사길 기도하고 있어요. 아니면 다른 누군가가 저를 살 테니까요.

하인들은 저를 싫어하는 것 같아요. 

그들은 내 여주인이 저를 싫어하도록 일부러 이상한 짓들을 하기도 해요.

당신을 본 지도 일 년이 넘었네요, 함께 한 시간이 마치 꿈만 같아요.

주인은 아직도 돈이 부족하다고 말하고 있어요. 그리고는 나를 언제 어느 때 팔지 모른다며 겁을 주곤 합니다. 

점점 미래에 대한 희망이 산산이 조각 나는 기분이에요. 이 모든 고난 속에서 벗어나는 건 바로 당신과 함께하는 거예요. 

내가 이 땅에서 당신을 볼 수 없다고 생각했다면 삶은 의미가 없을 거예요.

나는 당신이 해낼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아이들은 모두 잘 지내고 있습니다. 

아직 아가는 스스로 걸을 수 없지만, 물건을 붙잡아 곧잘 일어서고 걸을 수 있답니다. 

다른 좋은 소식이 없어서 편지는 이만 끝낼게요. 

너무 보고 싶어요. 

부디 언제 돌아올지 제게 답장을 써주세요.

당신의 다정한 아내, 헤리엇 뉴비로부터.]

원 역사에서 하퍼스 페리 습격은 꽤 끔찍했다. 존 브라운이 교수형 당한 걸 빼고도, 함께한 이들 대부분이 죽거나 처형을 당하게 된다.

일부 시체는 인근 대학에서 인체 해부용으로 쓰이기도 했고.

비록 막스의 개입으로 끔찍한 비극은 피했으나, 데인저필드 뉴비의 심적 고통은 여전히 진행 중이었다. 그의 품속에는 부인의 편지를 여전히 간직하고 있었다.

사정을 알면서 막스는 왜 나서지 않을까.

링컨은 막스에게 그 이유를 물은 것이다.

“그러는 의원님께서는 왜 도와주질 않습니까.”

“뉴비가 존 브라운의 측근이 됐다는 걸 알았는지 주인이 몸값을 더 올렸더군.”

“돈이 이유는 아니지 않습니까?”

“뭐, 변명으로 들리겠지만. 그런 협상에 응하면 결국 공화당에서도 노예를 돈 주고 사고파는 것과 마찬가지네. 그들 뒤에 누가 있을지 빤하니까. 아무튼, 자네라면 뭔가 다른 해결법이 있지 않을까 했는데, 없으면 됐네.”

‘은근히 도발하네.’

막스의 눈이 가늘어졌다.

현재 데인저필드 뉴비의 가족은 핑커톤 탐정 두 명이 지켜보고 있다.

언제 부인과 아이들이 팔려나갈지 모르기에 막스와 앨런이 감시를 붙인 것이었다.

‘굳이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막스가 입을 달싹거릴 때, 링컨이 말했다.

“이번 선거에서 지면 또다시 4년을 기다려야 하네. 데인저필드 뉴비처럼 흑인 노예들이 겪는 고통의 시간이 그만큼 늘어난 셈이지.”

“그러니 최선을 다해야죠. 그런 점에서 뉴비의 가족들도 나름 의미를 갖게 될 겁니다.”

“의미?”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한 전략은 다양하다.

그중에선 더러운 꼼수가 있을 수도 있는데, 막스는 결정적인 순간 존 브라운의 표를 집결하기 위해 데인저필드 뉴비의 가족을 이용할 생각이었다. 

정확히는 뉴비의 부인과 아이들로 흥정하는 노예 주인을 이용할 계획이었다.

*

공화당 전당대회에 내내 사람들의 주목을 받은 3인방이 있다.

흑인 노예의 아버지라 일컫는 프레데릭 더글라스, ‘톰 아저씨의 오두막’ 저자 헤리엇 비쳐 스토우. 그리고 서부 개척의 영웅 키트 카슨이었다.

“고생하셨습니다, 카슨.”

“고생은 무슨. 그런데, 자넨 언제 돌아갈 생각인가?”

“이틀 뒤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흠. 그럼 콜로라도로 가기 전, 토피카에서 잠깐 봤으면 하는데.”

‘굳이 거기서?’

“그럼 기다리겠네.”

마치 막스의 일정에 맞춰서 움직이는 듯, 키트 카슨은 하루 전날 시카고를 떠났다.

상당히 신경쓰이는 행동이었다.

다음 날.

앨런 핑커톤이 손을 내밀었다.

“오랜만에 악수나 하지.”

“뭘, 새삼스레.”

손을 맞잡자 앨런이 막스의 눈을 응시했다.

마치 뭔가 반응이라도 기다리는 것처럼 보였다.

“왜요?”

“...... 아닐세. 조심히 돌아가게.”

“설마 손에 독약이라도 묻힌 거 아니죠?”

앨런의 웃음을 뒤로하고 막스는 홀로 시카고를 벗어났다. 공화당 전당대회가 끝나고 닷새 만이었다.

리더와 로렌스 공화당 당원들은 그곳에 남아 민주당 경선 소식을 기다렸다.

그리고 막스가 로렌스에 도착할 즈음.

민주당 경선 결과가 신문 헤드라인을 장식했는데.

[작은 거인 스티븐 더글라스,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되다!]

링컨에게 상원 의원 선거에서 패한 스티븐 더글라스. 

캔자스-네브라레스카 법을 발의한 더글라스가 민주당 경선에서 승리를 거머쥐었다. 

러닝메이트로는 지난 조지아 주지사인 허셜 존슨이 당선되었다.

이로써 미국의 거대 양당에서 대선 후보가 정해진 것이다.

막스가 로렌스를 지나칠 즈음.

토피카에선 밀실 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참석자는 캔자스 준주의 주지사 존 기어리와 홀리데이, 그리고 키트 카슨이었다.

“링컨에게 패한 더글라스가 민주당 대선 후보라니, 좀 의외네요.”

“그만큼 지지기반이 있다는 말이겠지요.”

“듣기론 일리노이 롯지에서도 더글라스를 전폭적으로 밀고 있다고 하더군요.”

키트 카슨의 말에 기어리와 홀리데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 됐든, 이번 대선이 대변화를 일으킬 건 분명합니다. 막스가 개입한 이상, 존 브라운의 당선을 확신하고 있거든요.”

최근 포니 익스프레스 일을 봐도 막스의 통찰력은 상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홀리데이의 말에 존 기어리도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나도 같은 생각입니다. 막스라면 무슨 짓을 해서라도 당선시키겠죠.”

“흠. 다들 같은 생각이니, 결국 그 일은 피할 수가 없겠군요.”

키트 카슨이 말한 그 일이란 전쟁을 뜻했다.

존 기어리가 턱을 매만지며 말했다.

“만인의 평등, 신의 확고한 믿음과 희망은 쉽게 얻어지는 게 아니죠. 무릇 역사를 보면 대변혁은 반드시 그만한 충격이 따랐습니다.”

“시기의 문제였을 뿐, 자유주와 노예주의 전쟁은 예견된 겁니다. 문제는 이게 결국 롯지 간 대결로도 이어진다는 거죠. 제가 막스를 입회시키려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홀리데의 말에 키트 카스의 미간이 좁아졌다.

한 뿌리에서 탄생했지만, 각각의 롯지는 이념과 추구하는 바가 다르다.

분명한 건 분열과 혼란의 뒤엔 반드시 그들이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똑똑.

“막스가 토피카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밖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존 기어리, 키트 카슨, 그리고 홀리데의 얼굴이 비장감이 서렸다. 

이들이 염려하는 건 막스의 반응. 

그동안 시기를 가늠했으나, 대선이라는 대변화를 앞두고 더는 미룰 수 없어 택한 것이었다.

존 기어리가 회의실 밖을 향해 말했다.

“수고스러우시겠지만, 조엘 형제께서 이쪽으로 안내해주시죠.”

“알겠습니다.”

*

터벅, 터벅.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막스는 느릿느릿 말을 탄 채 토피카로 들어섰다.

막스의 시선이 토피카 중심가를 훑어갔다.

건물들이 드문드문 지어져 있고, 인구도 어느새 오천을 넘어섰다.

‘내 땅은 잘 있으려나.’

강가 부근에 땅이 있지만, 막스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주도로 밀고는 있지만, 여전히 캔자스의 정치는 레콤프턴과 로렌스가 중심이었으니.

토피카는 주목을 끌지 못했다.

막스가 토피카 도심 깊숙이 대로를 지나는 것도 거의 3년 만이었다.

‘그나저나, 키트 카슨은.’

어디에 있는지 두리번거릴 때, 막스 앞을 한 남자가 막아섰다.

“오랜만일세, 막스 보안관.”

조엘 그로버. 

막스의 뒤를 이어 로렌스 보안관으로 선출된 자다. 지금은 보안관을 그만두고 토피카에서 식료품 상점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나야 똑같지. 다들 자네를 기다리고 있네.”

‘다들?’

역시 키트 카슨 혼자가 아니었나.

막스는 그동안 의문을 품고 있던 수상한 3인방을 떠올렸다. 

그러는 동안 조엘을 따라 이동한 끝에 한 건물 앞에 도착했다. 

막스의 시선이 지붕에서 기둥까지 훑는다.

그러다 입구 위에 새겨진 심볼을 본 순간 눈이 휘둥그레졌다.

‘역시!’

Masonic hall이라 쓰인 문자 아래의 심벌.

아래로 향한 컴파스와 브이자로 꺾인 자.

그 밑에는 Lodge No. 17이라 쓰여 있었다.

‘무슨 생각으로 동양인인 나를 초대했지.’

프리메이슨.

막스도 미처 대비하지 못한 집단이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었다.

< 무슨 생각으로 나를 초대했지 > 끝

작가의말

프리메이슨을 다룰까 말까 하다가,

생각보다 등장인물 중 꽤 많은 사람이

프리메이슨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다만 워낙 음모론이 많아서 어디까지가 진짜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기에, 제 주관적 기준에서

프리메이슨을 다룰까 합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하니다!

< 프리메이슨과 그랜드 마스터 >

미국을 넘어 전 세계를 움직이는 흑막. 

영화와 소설에서 자주 거론되는 집단, 프리메이슨(Freemason).

그들을 둘러싼 수많은 의혹과 음모론을 떠올리며 막스는 팔짱을 낀 채 입구를 응시했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3층 건물, 하지만 1층에 드러난 창문이 유독 짧은 거로 보아선 반지하로 보였다.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나?”

조엘 그로버의 질문에 막스는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말을 묶은 뒤 막스는 조엘을 따라 내부로 들어갔다. 

집회에 이용되는 대강당의 전면부엔 십자가 대신 프리메이슨 심볼이 벽에 박혀 있고, 양쪽에 알 수 없는 깃발이 축 늘어져 있다. 그리고 그 앞에는 마치 제단처럼 두 개의 촛대가 휘황찬란하게 금속 조각품에 꽂혀있었다.

  

“이쪽으로 오게.”

조엘을 따라 계단을 내려갔다. 

역시 반지하로 된 아래층엔 햇살이 줄어들어 조금은 음습한 분위기를 풍겼다.

어쩌면 막스의 뇌리에 박힌 선입관인지도 모른다. 반지하가 어두운 건 당연했으니까.

똑똑.

“막스가 왔습니다.”

드르륵.

의자가 밀리며 일어나는 소리가 들렸다.

덜컥.

문을 열자 안에 있는 세 사람은 제각각의 표정으로 막스를 반겼다.

키트 카슨은 잔잔한 미소를, 존 기어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비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홀리데이는.

“프리메이슨에 온 걸 환영해.”

눈빛은 막스의 반응을 지켜보며 꽤 긴장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

일루미나티, 세계 전복을 노리는 집단.

이런 미래의 음모론은 차치하고 이 시기의 프리메이슨이 과연 어떤 위치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었다.

“프리메이슨은 수백 년 전 유대인들이 만든 석공 길드에서 출발한 조직이야. 영국에서 시작해서 유럽으로 많이 퍼져있지.”

하지만 반그리스도로 낙인찍히면서 정부의 탄압이 시작된다. 

독특한 신비주의와 비밀결사, 그리고 사회에 끼치는 영향이 커지면서 사회를 위협하는 존재로 인식된 것이다.

더욱이 이 시기엔 루터와 칼뱅의 종교 개혁과 맞물려 혼란이 극에 달했고, 개신교와 프리메이슨을 싸잡아 탄압하게 된다.

그렇게 해서 종교박해를 피한 엑소더스가 유럽을 휩쓸었다.

개신교와 프리메이슨은 자신들의 신념을 이어가기 위해 기회의 땅 아메리카를 택했다.

그리고 이들 상당수가 미국의 독립에 관여했다.

막스의 시선이 회의실 벽에 걸려있는 초상화를 향했다.

독립전쟁을 이끈 미국의 초대 대통령이자 미국 건국의 아버지 조지 워싱턴.

초상화 곳곳에 프리메이슨 상징들이 새겨져 있었으니, 이는 미래에도 널리 퍼진 사실이었다.

“프랑스 시민혁명, 멕시코 독립, 유럽의 노예 해방도 우리 프리메이슨 형제들이 관련되어 있어.”

“그렇다고 모두가 정치적인 활동을 하는 건 아닐세. 롯지마다 추구하는 바가 다르거든.”

롯지(Lodge)는 오두막이라는 뜻으로 프리메이슨의 집회 장소를 말한다. 

석공들이 오두막에 모여 비밀결사를 조직한 이후 롯지는 프리메이슨의 활동 장소를 지칭했다.

계속해서 존 기어리가 설명을 이어갔다.

“분명 프리메이슨의 시작은 사색적이고 철학적이었으며 비정치적이었네. 하지만 깊이 빠져들다 보면 세상을 바꾸고 싶은 열망을 느끼게 되는 법이지.”

막스는 이들이 적극적으로 세상의 변화를 갈망하는 부류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대충 설명은 끝났으니 제안을 할게.”

“뭐, 저보고 가입하라는 겁니까?”

“...... 맞아.”

홀리데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입하면 어떤 이득이 있죠?”

“여러모로 도움이 될 거야. 보더 러피안을 예로 들면, 그들 역시 프리메이슨과 연관이 있거든.”

“음?”

캔자스-네브래스카 법이 통과된 직후.

캔자스를 자유주로 만들기 위해 엘리 타일러는 NEEAC를 설립해 이주자를 모집한다.

이에 대항해 미주리주에서도 단체를 조직하는데, 프리메이슨이 주축이 되어 만든 블루 롯지(Blue Lodges)였다. 

그리고 그 구성원은 데이비드 라이스 애치슨, 조 쉘비, 막스에게 죽임을 당한 스트링팰로우 형제들이었다.

“롯지라는 걸 드러내지 않기 위해 ‘보더 러피안’이나 ‘부쉬웨커’라는 말들을 붙인 거지, 실제로 그 뒤엔 프리메이슨 롯지가 있거든.”

“쉽게 말해, 자네 앞길을 막을 거대한 적들이 바로 프리메이슨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네.”

존 기어리가 끼어들어 설명했다.

그런데 굉장히 모순되는 말이었다.

“같은 프리메이슨이지만 적이 될 수도 있다, 이겁니까?”

“말했듯이 롯지마다 추구하는 방향이 달라. 그래서 다른 롯지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행동하는지 알 길이 없지. 다만.”

홀리데이는 막스를 보며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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