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나 다를까, 공장 확장과 장비 도입에 따른 추가 예산을 요청했다.
서류 뒤에는 자신들의 아이디어를 도면으로 첨부했는데 막스가 보기엔 하찮은 정도였다.
‘리볼버 모델 No.2를 개선하라고 했더니, 크기만 바꿨네.’
막스는 스미스앤 웨슨에게도 답장을 썼다.
핵심은 곧 대량 생산이 가능하도록 체계를 갖추라는 내용이었다.
남북 전쟁이 일어나면 북군의 소총은 샤프스와 헨리 라이플이 사용되고, 리볼버는 콜트와 스미스앤 웨슨이 양분하게 될 것이다.
이를 선택하는 건 대통령이 임명한, 지금으로 따지면 국방부인 전쟁부의 전쟁장관이다.
‘지금 장관은 민주당 존 플로이드.’
임기는 올해 말까지고, 존 브라운이 대통령으로 취임하면 새로운 인물을 임명해야 한다.
원 역사에서 남북 전쟁 초기의 전쟁장관은 변호사 출신인 정치인들이 임명되었다.
당연히 연합 장군들은 장관과 갈등을 빚었고 당연히 전쟁이 제대로 굴러갈 리가 없었다.
‘전쟁장관 임명은 대충 넘어갈 게 아니지.’
막스의 마음속엔 이미 한 사람이 자리 잡고 있었다.
에드윈 보스 섬너 대령.
경험으로 보나, 막스와의 관계로 보나.
거기다 호레이스 스미스의 친우이기도 했으니 최적임자로 볼 수 있었다.
물론 섬너 이후까지도 생각해야 한다.
막스의 목적은 주요 요직을 자신의 측근으로 채우는 것.
그 준비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았다.
‘클루이도 미리 작업을 해둬야겠군.’
텍사스 임무에서 좋은 지휘관을 모습을 보여준 클루이. 율리시스와 함께 강제 입대시키려면 미리 약을 쳐둬야 했다.
‘일단, 답장부터 끝내고.’
막스는 답장과 함께 미리 만들어놓은 도면을 첨부했다. 리볼버의 탄약 실린더를 통째로 빼내는 방식으로 장전이 빠르고 총기 관리가 수월하다는 게 장점이었다.
기존에도 이런 시도가 있었지만, 내구성이 떨어져 몇 번 발사하면 실린더와 총신 간 균열이 발생해 포기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막스는 견고하게 탈부착하는 방식을 고안해 이 부분을 해결했다.
여기에 한 가지 더.
재장전의 속도를 높이기 위한 도구
‘퀵 로더’까지 만들어 도면을 첨부했다.
리볼버 실린더에 들어가는 총알이 여섯 발.
이를 퀵 로더에 끼워, 한 번에 집어넣는 방식인데. 알프레도가 만들어 막스의 손에서 몇 번의 테스트를 마친 상태였다.
물론 이 이상 엄청난 무기를 내놓을 수도 있었지만, 후폭풍을 우려하여 막스는 적정수준에서 그쳤다.
전쟁 후 무법자들의 손에 쥐어질 무기가 너무 좋아도 골치 아팠으니 말이다.
스미스앤 웨슨으로 보낼 답장을 마무리하고,
이번엔 커다란 상자로 눈을 돌렸다.
피치도 궁금한지 다가와 상자 위에 붙은 발신자를 살펴봤다.
“캘리포니아에서 리바이 스트라우스 컴파니가 보낸 거네?”
“내가 요청한 게 있었거든.”
리바이스 청바지의 창시자, 리바이 스트라우스는 현재 면직물 공장을 인수해 사업을 하고 있었다.
막스가 리바이에게 요구한 건 몇 가지 색깔의 얇은 실을 다발로 묶어 보내달라는 것이었다.
상자를 뜯자 그 안에는 두 종류의 색깔이 다른 실 뭉텅이들이 들어 있었다.
피치는 이를 손으로 들어 올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꼭 잡초 같네. 이건 마른 건초 같고. 근데 이걸 뭐에다 쓰는 거야?”
“궁금해?”
“또 뭔 소리를 하려고.”
막스는 웃으며 뒤에 있는 캐비넷을 열었다.
그 속에서 두벌의 옷을 꺼냈는데, 겉에는 뭔가를 걸 수 있는 두꺼운 천으로 된 고리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막스가 재봉 솜씨가 좋은 로렌스의 두 메리 부인에게 요청한 옷이었다.
“궁금하면 여기에다 실 뭉텅이들을 끼워 봐.”
“전부?”
“피치는 초록 실, 난 이 건초 같은 실 뭉텅이를 끼울게.”
피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재료들을 들고 소파에 앉았다. 그녀는 옷 밖에다 초록 실 뭉텅이를 끼우며.
“케이트는 다시 시카고로 돌아간다며?”
“어. 존 브라운 경호 때문에 앨런이 불렀어.”
“우린 누가 가?”
“콜린과 로어를 보낼 생각인데. 왜? 가고 싶어?”
“아니. 난 여기서 너 도울 거야.”
피치는 여전히 고리에 실 뭉텅이를 끼우며.
“근데 이번엔 왜 선물 안 사 왔어?”
“... 엉? 선물?”
그런 거 없다.
이번엔 앨런 핑커톤이 안 줬으니까.
차마 이 말은 못 하겠고 궁색해진 막스는 미소를 지으며 품속을 뒤적거렸다.
“설마 내가 선물을 잊었을까.”
그러면서 엄지와 검지를 이용해 손가락 하트를 만들어 보여줬다. 잔뜩 기대하던 피치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뭐야?”
“...... 하트.”
“뒤질래?”
막스는 더욱 고개를 숙여 작업에 집중했다.
“근데. 이거 귀엽다.”
피치는 손가락으로 하트를 만들며 키득거렸다.
그리고는 양손으로 하트를 만들어 막스에게 보여줬다.
“어때? 난 두 개다?”
“하트가 두 개라니. 선물 장난 아니네.”
“쳇.”
피치는 피식하며 다시 작업에 열중했다.
잠시 후.
“다했다! 어때 내가 한 거? 예쁘지?”
피치가 완성한 걸 양손으로 높이 들었다.
치렁치렁 수많은 초록 실들이 옷을 뒤덮었다.
그런데 가슴에 걸린 선물로 준 장신구, 브로치가 막스의 정신을 어지럽게 했다.
‘길리 슈트에 브로치라니···.’
막스는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몸을 일으켰다.
“그거 한번 입어 볼래?”
“지금?”
피치는 슈트의 상의 단추를 열고 그 안에 다리부터 집어넣었다. 사이즈가 남자 기준이라 팔다리가 한 번에 쏙 들어갔다.
둔해진 몸으로 단추를 채우기가 어디 쉬운가.
막스가 대신 상의 단추를 채워줬다.
피치의 얼굴에 피어난 홍조를 보며 막스는 괜스레 헛기침을 내뱉었다.
“다 됐다. 거울 한 번 봐봐.”
“아우, 이거 걷기도 힘드네.”
피치가 뒤뚱거리며 벽에 걸린 거울을 향해 걸어갔다. 단순히 겨울철에 입을 수 있는 방한복 정도로 생각했는데, 자신의 몸을 확인한 피치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설마, 이거 위장옷이었어?!”
“길리 슈트라는 거야. 피치가 만든 건 정글이나 숲에서 입는 용도고, 내가 만든 건 사막이나 황무지용.”
“와, 이렇게 있으면 진짜 눈에 안 띄겠는데?”
피치는 고개와 팔을 이리저리 흔들며 온갖 포즈를 취했다. 그 모습이 귀여운 바바리안 같아 막스는 입을 벌린 채 지켜봤다.
“근데 이렇게까지 입고서 저격할 일이 있어?”
“음? 당연하지. 앞으로 쓸 일이야 넘쳐날걸?”
남북전쟁에서 남부군을 공포에 떨게 할 저격부대. 그 전설의 시작은 바로 길리 슈트였으니.
이때 피치가 갑자기 뒤뚱거리며 사무실 밖으로 나가려 했다.
“뭐야, 어디 가게?”
“애들 불러서 숨바꼭질하려고.”
“...... 그러는 거 아냐. 실밥 풀리기 전에 얼른 벗어.”
“알았어. 그래서 어디까지 벗으라고?”
“미친···.”
막스의 얼굴이 벌게지자, 피치는 오히려 뒤뚱뒤뚱 다가오며 가슴을 들이밀었다.
“단추 풀어줘. 잘 안 보여.”
“...... 알았어.”
손가락을 파르르 떨며 막스는 길리 슈트 실밥을 젖혀 단추를 풀어갔다.
피치는 담담하게 그 모습을 지켜보며 더욱더 가슴을 내밀었다.
*
“존 브라운을 경호하는데 10명이면 되겠어요?”
“인생 뭐 있나. 그까짓 거, 총알 날아오면 내가 대신 맞고 뒤지지 뭐.”
포니 익스프레스 투자 실패의 여파가 큰지 콜린은 삶의 의욕을 잃어버렸다.
그렇다고 고점에 팔아서 4배 이익을 봤다고 말하기엔, 콜린이 대신 총 맞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물론 죽지 않을 정도로만···.
‘미안, 콜린.’
늦게 알수록 기쁨은 더욱 커질 것이니.
마음을 다잡은 막스는 콜린의 어깨를 토닥였다.
“내일 로어랑 대원들하고 시카고로 출발해요.”
“알았어.”
막스는 미리 선출한 대원 리스트와 용병 시절 경험을 축적해 정리한 노트를 넘겨주었다.
겉표지에는 ‘일급 비밀 경호수칙’이라 적혀 있었다.
어찌 됐든, 지금 헤어지면 최소 일 년.
아니, 전쟁이 벌어지면 더 오랜 기간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
“임무 끝나면 보너스 두둑이 챙겨줄게요”
“주면 또 어디 거지 같은데 투자해서 날려버리겠지. 이 빌어먹을 인생. 돈이 나를 만만히 보는 게 틀림없다고!”
“그만 흥분을 가라앉히고, 낼 새벽에 봐요.”
존 브라운과 콜린은 함께 지하철도에 몸담았던 사이다. 경호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콜린은 곧 진지하게 대원들을 소집해 새벽 일찍 떠날 채비를 했다.
다음 날.
연병장에 SFBC 대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콜린과 로어를 포함한 경호 요원 10명이 요새를 벗어났다.
세븐 스토롱 중 두 명이 빠져나갔기에, 당분간 이들의 완전체를 보긴 힘들었다.
막스는 SFBC 대원을 향해 소리쳤다.
“구보가 끝나면 중대장들은 회의실로 모일 수 있도록!”
“옛썰!”
‘전쟁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대선으로 향하는 시계가 빨라질수록 전쟁의 시기도 그만큼 빨라진다.
대원들과 섞여 구보하면서 막스의 머릿속은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을 정리해 나갔다.
SFBC의 회의실.
중대장들과 남은 세븐 스트롱이 모인 가운데 막스가 회의를 주도했다.
“앞으로 한 달간 조직 재편성에 들어간다. 핵심은 크게 다음과 같다.”
50명 선에서 운영되는 첩보 중대 편성.
실전 전투에 특화된 2개 중대 편성.
“그리고 30명으로 구성된 저격 특수부대를 별도로 만들 생각이다. 그리고 나머지 인원은 보급, 행정, 교관이 되어 콜로라도에 상주하게 될 것이다.”
중대장들은 지금껏 막스에게서 전쟁 가능성을 귀가 따갑도록 들어왔었다.
실제로 존 브라운이 대통령 후보가 되면서 그 믿음은 확신으로 굳어진 상태였다.
상세한 조직개편 구상 내용을 전달하고 회의는 끝이 났다. 중대장들과 세븐 스트롱은 각자 자리로 돌아갔지만, 1중대장 클루이는 막스를 따라 사무실로 향하고 있었다.
‘왜 나만 따로 부른 걸까.’
텍사스 브라운스 빌에서 후안 코르티네를 섬멸한 이후 보스와의 독대는 처음이었다.
소파의 탁자를 두고 마주 앉자 막스가 말을 건넸다.
“내가 독단적으로 결정하기보다 네 의사를 먼저 묻고 싶어서 불렀어.”
“말씀하십쇼.”
클루이의 눈을 응시하며 막스가 입을 뗐다.
“전쟁이 개시되면 네가 군에 입대했으면 좋겠는데. 어떻게 생각해?”
“구, 군대요?”
‘나보고 그만두라는 소린가?’
갑자기? 왜?
순간 오만가지 생각이 들면서 클루이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졌다.
“난 우리 SFBC가 이 나라의 요직을 차지했으면 해. 전쟁에서 네 능력을 마음껏 펼치면 가능성이 있다고 봤거든.”
“전··· 죽을 때까지 SFBC에 남고 싶습니다.”
막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클루이 넌 영원히 SFBC야. 단지 밖에서 우릴 돕는 것뿐이지. 올라갈 때까지 올라간 뒤에 돌아오면 돼. 네 자린 언제나 비워둘 거니까.”
“...... 어디까질 바라는 겁니까?”
“글쎄. 이왕이면 전쟁장관?”
클루이의 동공이 팽창하며 눈이 커졌다.
“저같이 평범한 놈이 넘보기엔 너무 높은 자린데요···.”
“SFBC에 너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많나?”
“예?”
막스가 날카로운 눈매로 클루이를 쳐다봤다.
“그렇게 자신감도 없고 스스로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대원들 말이다.”
“......”
“지금까지 병신들을 가리친 건지 갑자기 자괴감이 밀려드네.”
“...... 죄송합니다.”
세상 헛산 듯 씁쓸한 막스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클루이의 고막을 두드렸다.
“죽을 만큼 힘든 훈련을 버티고, 이것저것 배운 것도 많은데 자신이 없다니. 그동안 내가 헛지랄을 했어.”
“...... 아닙니다.”
“뭐가 아닌데?”
“자신 있습니다. 전쟁장관이든 뭐든, 자신 있습니다!”
막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클루이의 어깨를 토닥였다.
“내가 바란 게 바로 그런 자신감이다. 어디 가서 꿀리지 않을 자신감! 클루이 넌 내가 훈련시킨 최고의 대원. 웨스트포인트 출신 장교 열 명이 와도 널 당해내지 못할 거야.”
‘이 정도로 날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니.’
갑자기 가슴 깊숙한 곳에서 뜨거운 기운이 꿈틀거린다.
더욱이 자신을 바라보는 보스의 눈빛.
신뢰로 가득하지 않은가.
‘SFBC에서 나름 인정받은 놈이었구나.’
세븐 스트롱은 차치하더라도, 쟁쟁한 놈들이 어디 한둘인가. 체력과 끈기, 정신력으로 무장한 동료들이 괴물처럼 보일 때도 많았다.
자신의 장점이라곤 조금은 침착하고 머리가 남들보단 빠릿빠릿하다는 것뿐.
그런 자신을 보스는 인정해주고 있었다.
“전쟁이 시작되면 곧바로 입대하겠습니다.”
막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잘 생각했다. 그럼 함께 갈 대원 20명도 지금부터 만들어 두도록 해.”
“저 혼자가 아니구요?”
“설마, 너만 믿는다 클루이 중대장.”
사무실을 빠져나온 클루이는 이내 자신이 당했음을 깨달았다.
솔직히 자신감이 없는 건 다 보스 때문이다.
인간 같지 않은 전투 능력.
그걸 볼 때마다 대원들의 자신감이 바닥치는 건 당연한 일이었으니 말이다.
어찌 됐든,
‘내 의사를 묻는다더니, 이거 강제로 군입대하게 생겼네.’
게다가 함께 입대할 동료 20명도 설득해야 한다. 이 또한 보스가 자신을 이용한 것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억울하진 않았다.
지금이야 다 같이 훈련하지만 결국 용병이란 임무를 위해 존재하는 조직.
콜린과 대원들이 경호 임무를 위해 외부로 나간 것과 똑같다고 치면, 장소가 어디든 SFBC라는 건 변함이 없었으니 말이다.
*
무더운 여름이 끝나고 가을이 다가왔다.
SFBC의 조직이 개편되고 전략 전술의 훈련이 한창일 때.
민주당과 공화당의 운명을 건 16대 대통령 선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존 브라운과 링컨은 공화당원들과 함께 유세에 총력을 기울이고, SFBC의 콜린과 핑커톤은 역대 가장 위험한 선거임을 감안해 경호에 총력을 기울였다.
< 다가오는 대통령 선거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