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5화 (135/360)

< 예측할 수 없는 선거를 위해 필요한 것 >

존 브라운의 첫 유세 장소는 일리노이 스프링필드.

행사장 일정과 규모, 존 브라운의 이동 경로를 사전에 숙지한 대원들은 안팎으로 분주하게 움직이며 경호에 만전을 기했다.

“컨벤션 홀 점검 완료!”

“주변 건물 옥상 이상 무!”

유세가 벌어질 컨벤션 건물 옥상엔 저격수 두 명을 배치했다.

“행사가 끝날 때까지 정신 똑바로 차려. 로어는 존 브라운 옆에서 떨어지지 말고.”

“알았어요, 콜린.”

2m에 달하는 키에 근육이 덕지덕지 붙은 로어는 몸 자체가 흉기다. 암살자가 오다가 멈칫할 정도로 위협적이었다.

지시를 끝낸 콜린은 마찬가지로 바쁘게 움직이는 핑커톤 탐정 케이트 와네를 찾아갔다.

“준비는 다 됐습니까?”

“우리 측 요원 30명이 주변을 이중으로 감시하고 있어요. 창문이 열린 주변 건물은 말씀대로 한 번씩 방문해서 점검했고요. 근데 보기보다 꼼꼼하시네요.”

콜린은 평생 경호만 하다 온 사람처럼 체계적이며 효율적인 지시를 내렸다.

‘진짜 의외네, 이 남자.’

케이트 와네는 팔짱을 낀 채 콜린을 쳐다봤다.

시선이 위아래 훑던 중 콜린의 손에 들린 수첩에 고정되었다. 그러자 재빨리 품속에 감추는데, 그 모습이 더 수상했다.

“뭔데요?”

“.....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구만. 좀 보여줘 봐요.”

콜린은 케이트의 눈을 피하며 고개를 저었다.

“수첩에 뭐가 적힌 것 같은데, 혹시 그쪽 보스가 만든 거?”

“모릅니다.”

“그럼 제가 알려줄 테니까 보여줘 봐요.”

“안 된다니까, 그러네. 쥐도 새도 모르게 보스가 저를 죽일지도 모릅니다.”

‘역시 그 자가 만든 거구만.’

대체 SFBC 보스의 능력은 어디까지인지.

프로파일링부터 시작해 경호에도 일가견이 있는 모양이다. 

‘오히려 핑커톤에 더 어울리는 인물인 것 같은데.’

케이트 와네는 입맛을 다시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렇게 된 거, 같이 있으면서 이것저것 메모해 둬야겠다.’

선거가 끝나기 전까지 SFBC와 핑커톤의 공조는 계속될 것이다.

물론 공짜는 아니다.

공화당과 존 브라운, 링컨에게 모금된 후원금으로 비용을 지급하기로 했으니까.

대통령 후보를 직접 보기 위해 사람들이 컨벤션 홀을 가득 채웠다.

모든 준비가 끝나자 스트링필드에서 이름난 공화당 의원이 단상에 서 분위기를 띄운다.

회의장 구석에서 묵묵히 이를 지켜보던 콜린은 떠나기 전 막스가 한 말을 곱씹어봤다.

- 사실 선거가 한창일 때 상대 후보를 암살하는 건 미친 짓이죠. 동정여론 때문에 오히려 지시한 사람이 불리할 테니까요.

- 그것도 그렇네.

- 그래서 투표 한 달 전에 일을 벌일 생각입니다.

- 누가? 무슨 일을 벌인다고?

- 제가요.

놀란 콜린이 쳐다봤지만, 막스는 흔들림 없이 말을 이어갔다.

- 이번 선거는 근소한 차이로 이길 수도, 질 수도 있어요. 내겐 가슴 졸이는 것보다 확실한 결과가 필요합니다.

- 그, 그래서 자작극을 꾸미겠다고?

- 도움이 된다면 안 할 이유가 없죠.

‘무섭다 무서워.’

하긴 그러니 지금의 자리에 있는 거겠지.

SFBC 외에도 씨를 뿌리듯 막스가 관여한 일들이 어디 한두 가지인가.

과실을 수확할 때가 되면 모두가 알게 될 것이다. 동양인이 만든 터무니없는 것들을.

콜린은 고개를 절레 저을 때 컨벤션 홀이 시끄러워졌다. 

존 브라운의 등장. 그가 단상에 서서 손을 흔들자 광적인 지지자들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목청을 높였다.

*

콜로라도 요새 뒷산 로키산맥.

‘잘들 숨으랬더니. 머리카락 다 보인다.’

산 중턱에 엎드려있는 막스는 스코프로 주변을 훑어보며 대원들의 위치를 파악했다.

이때 한 명의 머리가 꿈틀거리자 여지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근데 그 소리가 둔탁하기 그지없었다.

뚜쿵.

숨어있는 대원의 머리에서 조금 떨어진 나무에 총알이 박히며 나무 파편이 휘날렸다.

뒤이어 훈련 교관 산초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2중대 고트, 탈락!”

“아아! 젠장!”

막스에게 발각된 대원은 터벅터벅 나와 이미 붙잡힌 자들이 모인 곳으로 합류했다.

“어이구, 겁나 많이도 잡혔네.”

“웬일로 좀 버텼다?”

전부 막스와 피치, 그 외 저격수 28명에게 덜미가 잡힌 대원들이었다.

뚜쿵.

지금도 둔탁한 총격 소리가 울릴 때마다 대원들이 하나둘 밖으로 기어 나오고 있었다.

“시발, 저 소리 졸 기분 나쁘네.”

“꼭 물에서 쏜 것 같지 않냐? 어디서 쐈는지도 종잡을 수가 없고.”

“대장은 대체 머리에 뭐가 들었을까. 저런 게 있을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냐고.”

최근 막스가 선보인 무기. 아니, 저격 라이플 보조 파츠는 기이하기 이를 데 없는 물건이었다.

- 이게 소음기라는 거다, 무식한 새끼들아.

총구 앞에 나사처럼 돌려 끼웠을 뿐인데, 소리가 현격히 줄어들어 마치 물먹은 소리만 뱉어냈다.

- 총에서 나는 소음은 크게 세 가지다.

노리쇠나 코킹 된 해머가 뇌관을 때려 화약이 폭발하면서 생기는 소음. 

이때 생기는 고압가스가 총구 밖으로 분출되는 팽창할 때 나는 소음. 

그리고 발사한 총알이 공기를 뚫고 나가면서 발생하는 소음.

- 그중 가장 큰 소음은 바로 두 번째. 총구 밖으로 총알이 튀어나오면서 터지는 소리만 잡는다면 기존보다 현저하게 소음을 줄일 수 있다.

원래 소음기는 분출되는 가스를 여러 방향으로 분산시켜야 하기에 단순한 외형에 비해 내부는 꽤 복잡한 구조로 되어있다.

막스는 이 시대의 기술로 구현할 수 있는 공정의 한계를 넘기 위해 알프레도뿐 아니라 몇 명의 엔지니어를 동원했다.

이 과정에서 광학 기술 전문가 핸리 가버 행크스는 스코프의 미세한 눈금을 만드는 데 공헌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건 보조 수단일 뿐, 막스가 가장 심혈을 기울여 만드는 건 따로 있었다.

바로 무연화약의 제조.

현재 사용하는 흑색화약은 연소할 때 잔여물과 연기가 심해 총기 불량의 원인이 된다.

이에 반해 무연화약은 말 그대로 연기가 발생하지 않는 화약이며 폭발력 또한 흑색화약보다 강하다.

완벽한 무연화약을 만드는 데 필요한 세 가지 성분은 니트로글리세린, 니트로셀룰로오스, 니트로구아니딘.

하지만 이 전부를 사용하기엔 시대적 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그 때문에 막스는 황산과 질산을 면직물에 절여 만든 니트로셀룰로오스, 즉 무연화약의 초기 형태인 면화약을 구상했다.

기본적으로 연소 속도가 빠르고, 작은 충격에도 민감하기에 폭발량을 조절하기 위한 황산과 질산의 배합, 그리고 장뇌나 에테르에 녹여 젤리를 섞는 방식이 필요했다.

막스는 예일대 화학 교수였던 존 에디슨 포스터와 실험을 거듭한 끝에 최적의 배합을 찾아내 무연화약을 만들어냈다.

- 발명은 교수님 이름으로 등재하죠.

- 지, 진짜 그래도 됩니까!?

- 대신 특허권은 막스 인베스트먼트 소유에요.

- 당연하죠! 정말 감사합니다!

사실 니트로셀룰로오스는 이미 1845년 독일 과학자에 의해 화학식이 발견되었다. 

다만 이를 안전하게 화약 파우더로 만든 건 막스가 최초였고. 이 공로를 교수에게 돌렸다.

무릇 과학자의 욕망이란 역사에 족적을 남길만한 성과를 남기는 것이라 했다. 

막스에겐 굳이 필요 없는 명예. 

이런 식으로 지식인들의 재능에 빨대 꽂을 수 있다면 이름쯤 넘겨주는 게 무슨 대수인가.

물론 머지않아 만들게 될 다이너마이트는 차원이 다른 문제였지만.

어찌 됐든, 저격 라이플은 개량을 거듭해 현재 Max-A4 모델까지 진보했다.

구경은 7.62mm, 총알은 풀메탈재킷에 그 안을 채운 화약 파우더는 무연화약.

8배율 스코프와 소음기까지 장착한 이상 현존하는 지구상 가장 강력한 저격 라이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면 리볼버는 탈부착 실린더 개량에 그쳤다.

총알도 기존의 흑색화약만을 사용해, 막스는 이 수준에서 북군의 무기 표준화가 이루어지길 바랬다.

‘뭐야, 벌써 끝난거야?’

서로 꼬리를 잡은 끝에 저격수 30명이 170명의 대원을 잡아내는 데 걸린 시간은 세 시간. 물론 그사이 저격수도 절반이 잡혔다.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그사이 긴장감을 느꼈다면 그걸로도 훈련 효과는 충분하다.

검은 천으로 라이플을 휘감은 막스는 어깨에 멘 채 붙잡힌 대원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동시에 사방에 퍼져있던 길리 슈트를 입고 있던 저격수들도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초록 실이 치렁치렁한 바바리안들 중 유독 몸매가 돋보이는 자가 막스에게 다가왔다. 

가슴에 브로치는 왜 계속 달고 다니는 건지.

“나 몇 명 잡았게?”

“흠. 열다섯?”

“땡! 열여섯!”

“오오오, 장난 아닌데?”

막스가 과장하며 놀라자 피치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는 우리 보스는 몇 명 잡으셨을까? 그래도 나보단 낫겠지이?”

“안 알려 줘.”

잠시 후 저격수들이 모여 자신이 잡아낸 대원 숫자를 더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막스가 잡은 숫자가 밝혀졌다.

- 혼자서 82명?

- 절대 그럴 리 없어. 다시 해보자.

피치가 강하게 부정했다.

그렇게 다시 한 결과 오히려 한 명이 더 늘었다. 

막스 혼자 과반을 넘게 잡은 것이다.

- 이래놓고 우리보고 자신감 없는 새끼라고 욕하더라. 이걸 그냥 듣고만 있어야 하는 거야? 확 들이받을까?

- 제발 좀 그래라. 말만 하지 말고, 새끼야.

훈련을 끝내고 요새로 복귀했다. 

핑커톤 수석탐정 토디가 막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

“지금은 인디애나주를 돌고 있으니, 조만간 오하이오주로 이동하게 될 겁니다.”

일리노이를 시작으로 존 브라운의 선거유세는 동쪽으로 향하고 있다.

막스는 사무실 벽면에 걸린 지도로 다가가 한 지점을 가리켰다.

“여기 버지니아주 켈페퍼 카운티에 데인저필드 뉴비의 가족이 있다고 했죠?”

“맞습니다. 그자가 존 브라운의 참모 중 하나라는 게 밝혀지면서 주인인 제시 제닝스에게 접근하는 자들이 늘어나고 있거든요. 덩달아 몸값이 높아지면서 주인은 아예 노예를 팔지 않겠다고 선언했답니다.”

“가격을 더 높게 불러라, 이 소리군요.”

“뭐, 그런 의미겠죠?”

존 브라운의 약점을 캐내기 위해 측근인 데인저필드 뉴비의 가족을 볼모로 잡는다.

민주당에선 한 번쯤 생각해볼 수 있는 유혹이 아닐까. 이미 노예주인 버지니아에 있기에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고. 

다만 그들을 소유한 주인이 가격을 높이 부르는 게 장애라면 장애였다.

막스가 지도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마 지금쯤 히콕과 대원들이 이 부근에 도착했을 겁니다. 뉴비의 부인과 아이들을 빼내는 일을 진행하죠.”

“알겠습니다. 이미 우리 측 요원들이 깊숙이 잠복해있으니까, 바로 착수할 수 있을 겁니다.”

리스크가 무지막지한 위험한 음모. 

처음엔 SFBC만으로 계획하려 했으나, 그러기엔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다.

그렇게 막스는 앨런 핑커톤을 끌어들였고 가담하는 순간 한배를 탄 운명이 되어 버렸다.

물론 이 둘만으로 끝난 건 아니다.

존 브라운의 합의도 있었으니까.

사전 여론조사와 출구조사가 전무한 시대.

노예주와 자유주에서 쏟아내는 편향적인 언론에 기대기엔 결과를 장담할 수가 없었으니.

- 깜깜한 선거판에서 승리를 얻어내려면 극적인 연출이 필요합니다. 양심과 정의는 우리의 목적을 위해 잠시 접어두는 거로 합시다.

-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팔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네. 자네 뜻에 따르도록 하지.

자칫 역풍을 불러올 수 있는 대담한 계획.

그 주모자가 막스라면?

존 브라운과 앨런 핑커톤은 믿고 가는 게 옳다고 판단했다.

*

버지니아주 켈페퍼 카운티.

제시 제닝스의 농장 1km 떨어진 지점에서 은밀한 접선이 이루어졌다.

“농장의 집은 두 챕니다. 뉴비의 가족은 오른쪽 초록 지붕의 집에서 머물고 있구요. 낮에는 목화솜을 따고, 저녁에는 주로 빨래를 하더군요.”

“뉴비의 아이들이 몇 명이죠?”

히콕의 물음에 핑커톤 탐정은 혀를 찼다.

“...... 일곱입니다. 갓난아기도 있구요.”

“스벌, 대책없는 양반이구만.”

“그러니까요. 허허.”

부인과 아이 일곱을 빼내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벌써부터 히콕의 머리가 지끈거렸다.

탐정에게 정보를 들은 히콕은 구체적인 작전을 전달했다. 막스에게 전달받은 계획이 있기에 시간만 조정하면 끝이었다.

그날 밤 자정.

검은 그림자 넷이 제시 제닝스의 농장에 스며든다. 그중 하나인 히콕은 집 앞에 쌓아둔 건초더미로, 나머지 셋은 제시 제닝스가 머무는 이층집 현관 벽에 기대었다.

그들의 손에는 각각 연장과 나무판이 들려 있었다. 

주르르륵.

먼저 히콕이 건초더미에 기름을 붓고는 불을 붙였다. 이와 동시에 대원 하나가 집 안에 연막탄을 던졌다.

치이이이익.

연기가 1층을 가득 채우며 2층 계단을 타고 올라간다. 

히콕이 수신호를 하자, 벽에 기대고 있던 대원들이 득달같이 현관문에 달라붙었다.

그리고는.

탁, 탁, 탁.

나무판에 못을 박아 현관문을 막아버렸다.

공포스러운 소리에 잠을 깬 제시 제닝스와 가족들이 본 건, 집 안을 자욱하게 메운 연기, 창밖에선 뭔가 활활 타오르는 모습이었다.

“부, 불이다!”

“얼른 대피해요!”

비명을 신호로 집 뒤편에서 대기하던 SFBC 대원들과 핑커톤 요원이 뉴비가 머무는 집에 쳐들어갔다.

“하인들은 전부 바닥에 엎드려! 우린 뉴비의 가족만 데려가면 된다!”

탕! 탕!

히콕이 천장을 향해 총을 발사하자 하인들은 바닥에 납작 엎드려 공포에 떨었다.

“뉴비 부인, 남편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

“가시죠.”

아이 일곱까지 빠짐없이 집 밖으로 빼내는 동안 제시 제닝스와 가족은 못 박힌 현관문을 미친 듯이 두드리고 있었다. 

자욱한 연기와 탄 내음은 그들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극도의 두려움으로 몰아갔다.

다음 날 아침.

핑커톤 요원 두 명은 민주당 당원으로 신분을 가장한 채 제시 제닝스의 집을 찾아갔다. 

밤새 한숨도 못 잔 제시는 이미 멘탈이 박살 난 상태. 탐정들이 꾸며낸 말들을 별 의심 없이 받아들였다.

“데인저필드 그 개자식이 이런 식으로 가족들을 빼돌릴 줄이야.”

“그만큼 존 브라운의 약점이 될 수도 있다는 이야깁니다. 노예들이 향하는 곳은 빤해요. 남편과 합류하기 위해 펜실베니아로 가겠죠.”

“그럼 전 어떻게 해야 합니까?”

“늦기 전에 노예 사냥꾼들을 고용해야죠. 버지니아를 벗어나기 전에 붙잡을 수도 있을 겁니다.”

“당신들이 대신해 줄 순 없습니까?”

제시 제닝스의 말에 민주당 당원으로 가장한 탐정은 고개를 저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