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6화 (136/360)

“민주당에서 직접 나서기엔 민감한 사항입니다. 대신 사냥꾼들을 이쪽으로 보내줄 순 있죠. 알아서 계약하시면 될 겁니다.”

그거라도 어딘가. 

제시 제닝스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노예들만 잡아만 준다면 그깟 의뢰 비용이 대수인가.

‘이 잡것들. 잡히는 즉시 아이들을 평생 볼 수 없도록 찢어주마.’

찾을 수도 없도록 여기저기 아이들을 팔아넘기자. 

그래야 분이 풀릴 것 같았다. 

제시 제닝스가 이를 부득 가는 동안, 탐정 둘은 유유히 농장을 벗어났다.

그리고 미리 찾아 둔 다섯 명의 거친 노예 사냥꾼들을 찾아갔다.

버지니아주의 무법자들.

노예사냥을 부업으로 하는 놈들이라 속이고 자시고 할 것도 없다. 

실제로 노예가 도망갔고 놈들에게 중요한 건 보상금이었으니까.

“흐흐. 우리가 노예들 잡아 족치는 건 전문이지. 착수금은 100달러다.”

“그건 주인한테 가서 말해. 늦기 전에 얼른 가보라고.”

다섯 노예 사냥꾼들은 즉시 제시 제닝스의 농장을 찾아갔고, 이내 뉴비의 가족들을 추격하기 시작했다.

- 자네의 힘과 능력이면 충분히 구할 수 있을 텐데. 왜 지켜만 보는 건가?

‘이러려고 지켜봤지.’

링컨이 막스에 질문을 던질 때, 막스는 스노우볼을 굴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 크기는 겉잡을 수없이 커져갔다.

< 예측할 수 없는 선거를 위해 필요한 것 > 끝

< 피츠버그 암살 시도(1) >

노예 사냥꾼이 도망간 노예들을 쫓아 북쪽으로 향하기 전. 대통령 후보의 유세 현장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 동부는 유세를 좀 달리할까 합니다.

존 브라운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신념과 의지를 사람들에게 보이겠다며, 대중에게 바짝 다가가는 걸 택했다. 이는 사람들에겐 호감을 얻지만, 경호에 있어선 치명적이었다.

그 때문에 앨런에게 아무것도 듣지 못한 케이트 와네는 근심과 걱정으로 다크서클이 짙어져만 갔다.

“진짜 미치겠네. 저렇게 악수하는 척 누가 총이라도 쏘면 어떻게 합니까. 그쪽 보스는 뭐라고 안 해요?”

“글쎄요. 후보가 저렇게 하겠다는데 우린들 어쩌겠습니까.”

콜린은 모르는 척 시치미를 뗐다. 

핑커톤 수장이 말하지 않은 걸, 굳이 자신이 나서서 알려줄 필요는 없었으니 말이다.

한편, 자유주의 언론사는 존 브라운의 과감한 행보를 높이 평가하며 연설문과 유세 현장을 스케치하는 기사를 쏟아냈다.

그런데 유독 한 곳만큼은 암살 위험을 부각해 헤드라인을 내걸었는데, 얼마 전 막스에 의해 창간된 <프리덤 에코>였다.

[대중에게 한 발짝이라도 다가가려는 존 브라운, 과연 안전은 괜찮은 걸까?]

[미국 최초로 노예 해방을 공약으로 내건 존 브라운, 노예주가 바라보는 시선들은?]

[‘내 신념은 총보다 강하다.’, 경호원을 뿌리치고 대중들과 손잡은 존 브라운.]

<프리덤 에코>는 헤리엇 비쳐 스토우가 소설을 연재한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발행 초기부터 비상한 관심을 끌어모았고.

‘존 브라운의 암살 가능성’이라는 문구 자체가 자극적이라 사람들이 욕하면서 보게 만드는 심리효과도 불러일으켰다.

물론 막스가 노리는 건 ‘이러다 진짜 존 브라운이 암살당하는 거 아닌가’하는 위기감을 심어주는 것이다. 

해서 <프리덤 에코>의 기사 방향을 다음과 같이 지시하기도 했다.

- 존 브라운이 총을 맞았을 때, 대중들은 놀라거나 당황하는 대신 분노해야 합니다. 자신의 신념이 저격당한 정도의 강한 분노. 지금부터 그 분위기를 만들어가야 해요.

*

버지니아주에서부터 쫓아온 노예 사냥꾼들은 어느덧 펜실베이니아주 경계에 들어섰다.

금방 잡을 줄 알았는데, 시간이 벌써 일주일이나 지나버린 것이다.

“뭔, 노예 새끼들이 이렇게 빨리 도망가냐.”

“지하철도인가 뭔가에서 뒤를 봐준 거겠지. 어찌 됐든, 이동 경로는 확실하니까 잡히는 건 시간문제라고.”

노예 사냥꾼들은 노예를 빼앗긴 주인 제시 제닝스의 말을 그대로 믿고 있었다.

게다가 올라오면서 알게 된 건, 그들이 단순한 도망 노예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이거 잘만 하면 더 큰돈을 만질 수도 있겠는데.’

대통령 후보 측근의 가족.

그게 노예라는 게 믿기질 않았지만, 후보가 존 브라운이라면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었으니까.

“노예들을 잡으면 칼자루는 우리가 쥔 거야. 부르는 게 값이라고.”

“존 브라운 그 새끼, 꼴 보기 싫었는데. 잘됐다. 이참에 아주 엿을 먹여주자고.” 

“내 말이. 남 밥줄 끊기게 노예 해방 같은 개소리나 처하고 말야.”

다섯 노예 사냥꾼은 존 브라운을 씹어대며 북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뒤를 핑커톤 탐정들이 따라붙고 있었다.

“SFBC가 말한 장소에 다 와 간다. 거기까지만 추격하면 반은 한 거라고 봐야지.”

“대체 뭘 하려고 이러는 거야?”

“낸들 알겠냐. 그냥 시키는 대로 하는 거지.”

탐정들은 조직적으로 노예 사냥꾼을 한 장소로 몰아넣고 있었는데, 그곳은 조만간 유세가 벌어질 피츠버그 도시였다.

게다가 일부 탐정들은 뒤쫓아가며 노예 사냥꾼 행세를 했는데, ‘존 브라운을 죽이겠다.’, ‘민주당에게 돈을 더 요구해야겠다’라는 등의 말들을 남기며 떠난 것이다.

며칠 뒤.

피츠버그에서 60km 떨어진 웨인스 버그 마을.

작지만 깔끔하게 지어진 술집을 향해 한 남자가 터벅터벅 발걸음을 옮겼다.

덜컥.

문을 열고 들어서자 몇몇 테이블에 앉아있던 자들이 힐끔 눈을 준다. 

‘흑인?’

스카프 밖으로 검은 피부가 보이고 등 뒤에 검은 천으로 싼 물건도 호기심을 자극했다.

하지만 남자의 허리춤에 있는 리볼버를 확인한 순간 사람들이 슬며시 시선을 피했다.

‘요즘 마을이 왜 이러냐. 무서워 죽겠네.’

동부 펜실베이니아의 작은 마을.

거친 서부와 달리 농부들이 대부분이라 무장한 자들을 보기가 쉽지 않은 곳이다.

그런데 어제부터 무장한 자들이 술집을 들락거렸으니, 자연스레 새로 나타난 남자와 그 무리의 연관성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그리고 그들의 예상대로, 스카프로 얼굴을 가린 흑인 남자가 무장한 자들이 있는 곳으로 성큼 다가갔다. 그러자 무리가 일어나며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 생각보다 빨리 왔네, 대장?

- 뉴비 가족은?

- 핑커톤이 데려갔어.

막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 앉았다.

- 다들 고생했다.

- 뭐 이 정도야.

얼굴에 커다란 점 하나씩 찍은 히콕과 대원 넷은 씨익 웃으며 술잔을 들었다.

데인저필드 뉴비의 부인과 아이들은 선거가 끝날 때까지 안전한 곳에 숨어 지내야 한다. 

이를 위해 앨런 핑커톤은 노예주와 멀리 떨어진 북쪽 미시간주에 거처를 마련해 두었다.

히콕은 뉴비 가족들을 핑커톤 탐정에게 넘겨주고 미리 약속된 장소에서 막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그다음에 도착할 사람들도.

다음 날도 술집은 같은 풍경이었다.

오후 늦게 술집을 찾아온 무리가 있었는데, 바로 노예 사냥꾼들이었다.

“어이쿠, 이거 코딱지 만한 마을에 총잡이들이 어쩐 일인가.”

노예 사냥꾼의 리더 노든은 눈을 가늘게 떠 무장한 자들을 노려봤다.

딴에는 강하게 보이려는 의도였다.

안락한 버지니아주의 무법자들은 상대가 거칠디 거친 콜로라도의 총잡이라는 걸 알 턱이 없었으니.

막스는 눈길도 안 주고, 히콕은 노예 사냥꾼의 리더를 보며 히죽거렸다.

“총알 밥 먹는 친구끼리, 같이 한잔 어때?”

“네 놈 면상을 보면서 먹긴 힘들 것 같은데?”

“그러지 말고, 앉아 봐. 딱 보니까 노예 사냥꾼 같은데.”

‘우리 정체를 알아?’

리더인 노든이 잔뜩 경계심을 끌어올렸다.

“어떻게 알았는지 납득 못 시키면 뒈질 줄 알아.”

“아, 납득? 시켜줄 테니까. 잘 들어.”

히콕은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이마에 떡하니 노예 사냥꾼이라고 쓰여 있구만. 거울 안 보냐, 병신들아.”

“이 새끼가!”

노든이 홀스터로 손을 뻗지만,

철컥.

“이마에 구멍 내서 노예 사냥꾼 글자를 지워줄까?”

“......”

히콕의 총구가 이미 노든의 이마를 향해 날름거렸다.

콜린과 더불어 SFBC의 넘버2 총잡이. 

히콕의 미친 패스트 드로우 속도를 본 노든과 부하들의 눈동자가 심하게 출렁거렸다.

“앉아 새끼들아. 물어볼 것도 있으니까.”

기세에 눌린 노든은 입술을 깨물며 눈치를 살폈다.

“이건 선택이 아니야, 병신들아.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돼? 총만 장식품인 줄 알았더니, 대가리도 그러네.”

‘저것도 재능이라면 재능이다.’

상대를 도발하고 자존심을 뭉개버리는 능력.

막스는 스카프 속으로 히콕을 쳐다보며 내심 동료라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니었으면, 벌써 총을 쏘고도 남았을 테니까.

드르륵.

반강제로 노든과 부하들이 의자를 끌어와 자리에 합석했다. 

술집 절반을 무장한 자들이 장악했으니,

뒤늦게 들어온 마들 사람들은 기겁하며 다시 문을 닫고 발길을 돌렸다. 

그 정도로 술집 분위기는 살벌했다.

“바텐더도 잠시 자리 좀 비켜줘야겠는데.”

“아, 알겠습니다!”

두려움에 떨던 바텐더가 나가자, 히콕이 노든에게 말을 건넸다.

“너희들, 데인저필드 뉴비의 노예들을 추적 중이지?”

“이 새끼. 전부 알고 있었으면서···.”

“이렇게 큰 사건을 너네만 알 줄 알았어?”

“제시 제닝스가 너희들을 고용한 건가?”

“그건 아니고. 우린 더 높으신 분들 부탁을 받았거든.”

‘높으신 분?’

노든의 눈동자가 좌우로 굴러가며 머리를 굴렸다.

“어차피 피츠버그로 갈 거지?”

“......”

“그렇게 대가리 굴리지 말고. 우리도 마침 인원이 필요했는데, 어때? 같이 손잡는 게.”

“고작 노예 새끼들 잡는데 이 인원이 다 투입된다고?”

“너넨 노예나 잡아. 우린 타겟이 다르니까.”

“음?”

히콕이 몸을 앞으로 내밀자 노든이 흠칫하며 뒤로 물러났다.

“쫄긴. 귀 줘봐.”

히콕이 속삭이길.

- 우린 존 브라운을 암살할 거야.

- !

- 너넨 상황 봐서 노예들이나 붙잡으라고.

다시 자리에 앉은 히콕이 이죽거리며 말했다.

“노예 해방 외치는 새끼는 죽어도 싸지. 안 그래?”

‘그런 거였나.’

현 상황에서 존 브라운의 죽음을 바라는 건 노예주의 권력자들일 터. 노든의 머릿속이 말끔하게 정리되어갔다.

“그런 이유라면 손을 안 잡을 이유가 없지.”

‘상황 봐서 뒤통수치면 되고.’

노든은 입꼬리를 올리며 손을 내밀었다.

그렇게 속내는 다르지만, 두 무리는 함께 피츠버그로 향했다.

“근데 저 흑인 새끼는 뭐야? 저 길쭉한 건 라이플인가?”

언제부턴가 노든은 말없이 뒤따라오는 막스가 신경 쓰였다. 라이플을 왜 검은 천으로 둘러쌌는지 이유도 궁금했다.

“신경 꺼. 이번 일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할 사람이니까.”

“저깟 흑인 새끼가 큰일을 한다고?”

“일단 너보다 총은 잘 쏴. 그리고 목소리 줄여. 저러다 꼭지 돌면 너 꽤 고통스럽게 죽을 수도 있다?”

“개소리. 저놈도 설마 도망 노예는 아니겠지? 신분증 확인해 봤어?”

계속 주절거리는 게 짜증 났는지, 히콕이 손을 휘이 저으며 소리쳤다.

“그렇게 궁금하면 직접 확인하든지, 새끼야!”

노든은 냉소하며 뒤를 힐끔 돌아봤다.

스카프 속 무덤덤한 막스를 보며..

“야, 너···.”

“입 다물어, 목구멍에 총 쑤셔 넣기 전에.”

“허허, 진짜 이건 뭐···.”

노예 사냥꾼이 흑인한테 언제 이런 대접을 받았던 적이 있던가. 

어처구니없어서 실소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막스의 음산한 목소리와 눈빛이 워낙 살벌해 노든은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젠장, 이젠 흑인까지 날 무시해?’

부하들 앞에서 구겨진 체면. 이를 제대로 펴기 위해 노든은 가는 내내 뒤통수칠 방법을 궁리했다.

*

1860년 10월 5일.

존 브라운의 유세 현장이 오하이오주에서 동쪽 펜실베이니아주로 옮겨졌다.

대도시인 피츠버그의 유세 현장에는 존 브라운을 보기 위해 많은 인파가 모여들었다.

노예 사냥꾼들은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데인저필드 뉴비가 나타나길 기다렸다.

모든 건 나름 치밀하게 계획한 히콕의 지시.

물론 실체는 막스였지만, 노든은 전혀 알지 못했다.

- 건물 옥상에서 저 친구가 존 브라운을 저격할 거다. 너흰 일이 벌어지면 뉴비를 납치해. 놈을 통해 가족에게 접근하면 노예들을 되찾을 수 있을 테니까.

대도시에 스며든 이상 도망간 노예를 찾을 방법은 히콕이 말한 것뿐이었다.

하지만 엄청난 리스크가 아닌가.

평소의 노든이라면 이쯤에서 포기할 테지만 대통령 후보 측근의 가족이라는 게 그의 욕심을 부추겼다.

더욱이.

- 노예들을 손에 넣으면 높은 분들에게 더 높은 가격을 받게 해줄 수도 있어.

- 호오, 구미가 당기는데?

- 생각 있으면 이곳으로 오던지. 일이 끝나면, 우린 여기에 다시 집결할 거니까.

‘뒤통수치라고 자세히도 알려주는구나.’

높은 가격보다, 당장 히콕과 흑인 새끼 대가리에 총알 밖는 게 시급하다.

그렇게 노든은 이를 갈며 일이 벌어지길 기다렸다.

한편, 존 브라운의 경호를 책임지는 케이트 와네는 오늘도 날이 잔뜩 서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옥상하고 주변 건물은 점검해야 하는 거 아녜요?”

“오늘은 그냥 건너뜁시다. 케이트 양.”

“벌써 느슨해진 거예요? 이럴수록 더 조심해야 하는 거라고요.”

“당신네 수장도 말했잖수. 동부로 갈수록 경호하는 것조차 사람들이 모르게 하라고.”

“아무리 그래도 그렇죠.”

케이트 와네는 입술을 깨물며 주변 건물을 둘러봤다. 

열린 창문들, 옥상에 머리 한두 개 솟아나 보이는 게 그렇게 신경 쓰일 수가 없었다.

‘쳇. 나라도 훑어보는 수밖에.’

케이트가 건물로 향하자 콜린이 고개를 절레 저었다. 

‘앨런이 말을 안 한 이유가 있었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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