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식하고 정석대로 움직여야 마음이 편한 성격. 아마도 그녀에게 막스의 계획은 평생 잊지 못할 충격이 될 테고, 앨런은 이를 걱정한 게 아닐까 싶다.
잠시 후.
여느 유세 현장처럼 피츠버그의 공화당 의원이 기조연설을 하며 분위기를 북돋웠다.
존 브라운을 외치는 함성이 점점 커질수록, 모이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시작해 볼까.’
건물 옥상에 올라간 막스는 검은 천을 풀어 헤친 다음, 저격 총의 파츠를 조립해갔다.
‘나중엔 몸통도 두 부분으로 나눠야겠군.’
모신나강을 모티브로 만들어 총신 자체가 123cm에 달한다.
휴대성은 극악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목적지까지 들고 오면 스코프와 소음기를 장착하는 것으로 저격 준비는 쉽게 끝낼 수 있었다.
막스는 하늘을 올려봤다. 태양의 위치와 스코프 반사를 따진 끝에 미리 준비해온 나무판자 세 개로 빛을 가렸다.
‘거리는 70m.’
이번 저격의 핵심은 후유증 없는 안전한 총상을 만드는 것. 막스가 직접 온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거리를 최대한 줄이고, 납탄의 경우 관통이 아니라 몸에 박히며 상처를 크게 남기기 때문에 풀메탈재킷을 사용해야 했다.
탄알 처리야 알아서 할 테니까.
막스의 시선이 건물 아래를 훑어간다.
SFBC 콜린과 히콕, 그리고 다른 대원들의 위치를 파악해두었다.
‘제물들은 뭐하나 볼까.’
음침한 귀퉁이에 먹잇감을 노려보는 노든과 쪼무래기들. 버지니아에서 강도와 살인, 노예사냥을 주업으로 하던 놈들은 모여있는 모습도 불량하기 짝이 없었다.
‘원래는 저러다 객사하겠지만.’
막스는 놈들에게 과분한 선물을 준비했다.
어쩌면 남부의 영웅으로 기록될지도 모를 이름을.
“와아아아! 존 브라운이다!”
갑자기 단상에 존 브라운이 등장하자 함성이 울려 퍼졌다. 그는 자신감에 꽉 찬 눈빛과 연설로 순식간에 장내 분위기를 휘어잡았다.
‘저런 것도 타고난 거겠지.’
사람들을 선동하고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기는 능력. 이전의 폭력적 광기가 신념으로 바뀌었을 때 그 효과는 더 광범위하며 극명하게 드러났다.
이곳에서 수백 킬로 떨어진 메릴랜드주에서 연설하고 있을 링컨에겐 미안하지만, 막스는 존 브라운을 선택한 것에 후회하지 않았다.
‘역사가 어떻게 변하든. 예전보다 낫다면 충분히 해볼 만하지 않은가.’
인디언을 떠나, 미국이 세계 최강의 국가로 거듭나기 위해 벌인 짓들은 분명 바꿀 필요가 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막스는 자신의 욕망도 채워나갈 생각이었고.
< 피츠버그 암살 시도(1) > 끝
< 피츠버그 암살 시도(2) >
“저 존 브라운은, 갈등과 분열을 봉합하고 올바른 미래로 미연방을 이끌어갈 것입니다. 노예 해방은 그중 하나에 불과할 뿐, 무엇보다 중요한 건 국가가 국민에게 행복과 자유를 누릴 기회를 보장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입니다!”
“와아아! 존 브라운을 대통령으로!”
연설이 끝나자 존 브라운은 서슴없이 대중 속으로 뛰어들었다. 사람들과 악수하고 눈을 맞추며 말을 건네기도 했다.
그런데 이때, 막스의 시선에 한 여인의 모습이 들어왔다. 그녀는 자신이 있는 건물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케이트 와네?’
앨런의 지시를 어기고 건물을 점검할 셈인가.
막스의 눈이 가늘어졌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존 브라운. 이내 스코프에 눈을 가져가 표적을 응시했다.
존 브라운이 한 노인과 악수를 하고 짧게 몇 마디를 주고받을 때, 찰나지만 그의 눈이 위로 치켜지며 막스와 시선이 마주쳤다.
‘각오는 되었으니 쏘라’는 신호다.
- 저격도 타이밍이 중요합니다. 맞는 순간에도 감동을 줄 수 있다면 그때를 노려야죠.
- ...... 뭐, 내 머리와 심장에만 쏘지 않는다면 자네 마음대로 하게.
때마침 한 부인이 아이를 데려와 인사를 시킨다.
대통령과 악수하는 아들이 미래에 그의 길을 이어가길 기대하며, 부인은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좋은 그림이 나오겠군.’
막스가 왼손을 들어 올렸다.
이를 신호로 아래에서 막스만 뚫어지게 쳐다보던 히콕이 스카프로 얼굴을 가린 채 인파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런 다음.
하늘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타아앙!
총성과 함께 존 브라운이 가장 먼저 취한 행동은 아이를 감싸는 것.
훌륭한 연기에 흡족해하며 막스가 방아쇠를 당긴다.
뚜쿵.
소음기로 인해 소리가 먹힌 총성이 울리고,
첫발이 존 브라운의 오른팔을 관통했다.
철컥.
볼트를 다시금 뒤로 젖혀 재빨리 재장전하고.
뚜쿵.
연이은 두 발째는 허벅지를 관통했다.
상처 부위와 탄도 궤적을 추적하면 저격 위치가 잡힐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시대에 그것까지 추적할지는 의문이다.
“꺄아아아악!”
“조, 존 브라운이 총에 맞았다!”
삽시간에 유세 현장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두 발의 총알을 허공에 쏴댄 히콕은 현장을 벗어나 골목으로 도망쳤다.
황당한 건, 약속이나 한 듯 존 브라운의 참모 데인저필드 뉴비 역시 도망쳤다는 사실이다.
‘존 브라운이 저격당했는데 측근이 도망을?’
노예 사냥꾼 노든과 일당들은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뉴비를 뒤쫓고. 그 뒤를 SFBC 대원들이 따라붙었다.
이 모든 상황이 벌어지는 데 고작해야 10초.
경호원에게 둘러싸인 존 브라운은 황급히 병원으로 실려 가고. 이를 지켜본 막스는 파츠를 분리하고, 라이플을 천으로 감쌌다.
‘이제 옥상을 내려가 볼까.’
안에서 열지 못하게끔 옥상 문에 바쳐둔 지지대를 제거하고.
덜컥.
문을 열었다.
정면에는 케이트 와네가 숨을 헐떡이며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너, 너지 총 쏜 거!”
‘......’
보통은 존 브라운한테 달려가야 정상 아닌가.
그런데 신기하게도 케이트는 옥상으로 달려왔다.
건물 계단을 오르던 그녀는 옥상에서 난 소리를 듣고 쫓아왔음이 분명했다. 소음기로 인해 총성이 줄었음에도 말이다.
‘대단한데?’
하지만 놀라움도 잠시.
막스가 선택할 수 있는 건.
번개같이 발을 쳐들어 케이트 와네의 얼굴을 후려치는 것이었다.
빠각.
쿵.
‘미안.’
흑인으로 분장하길 잘했다.
막스는 기절한 케이트를 놔둔 채, 유유히 건물을 빠져나갔다.
복잡한 피츠버그 도시의 골목이지만 이미 몇 번이나 이동하며 지리를 익혀두었다.
밖으로 나온 막스는 빠르게 히콕과 접선하기로 한 장소로 이동했다.
가는 중에 총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졌다.
‘대원들이 제물들을 처리하는구나.’
아니나 다를까, 갑자기 골목으로 한 명이 비틀거리며 튀어나왔다.
가슴에 피를 쏟으며 거친 숨을 내쉬는 노예 사냥꾼의 리더 노든. 고개를 돌려 막스를 노려보는 핏발선 눈에는 분노가 가득했다.
“이 개새끼들, 우리를 속이고 뭔 짓을···.”
탕!
어느새 막스의 손에 들린 리볼버의 총구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났다.
“멍청한 놈. 말할 시간에 쏘겠다.”
시체를 확인한 막스는 사람들이 몰려오는 발소리들을 피해 방향을 틀었다.
얼마 안 가 합류 지점이 다가올 즈음.
히콕과 SFBC 인원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몸을 드러낸 암살범이자 그 시작을 알린 히콕은 입었던 옷을 버리고 스카프 역시 색이 바뀐 상태였다.
골목을 빠져나갈 즈음.
그 끝에 한 남자가 서 있었는데, 백인과 흑인 혼혈이자 존 브라운의 참모인 데인저필드 뉴비였다.
“은혜는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갈 때 출출할까 봐 빵을 좀 담았어요.”
뉴비가 미소를 지으며 봇짐을 건네줬다.
“우리보단 존 브라운을 챙겨야죠. 알다시피, 대통령 안 되면 우리 다 죽는 거 알죠?”
“압니다. 반드시 될 겁니다!”
“그럼 또 봅시다.”
미소를 주고받으며 짧은 작별 인사를 끝냈다.
머지않아 막스와 일행은 피츠버그 외곽에 묶어둔 말에 올라탔다.
“당분간 어디 처박혀서 기사나 지켜보자.”
“30분 거리에 있는 로스 타운쉽으로 갈까, 대장? 가서 제발 흑인 위장 크림 좀 지워. 볼 때마다 식겁한다고.”
“그럼 안내해.”
히콕과 대원들이 말을 박차고,
피츠버그 도시를 힐끔 돌아본 막스도 이내 뒤를 따랐다.
존 브라운도 그렇지만, 케이트 와네가 신경 쓰였다.
“글쎄, 흑인이 저를 때렸다니까요?!”
“그래서 그자가 암살범이란 말입니까? 흑인 인권을 주장하는 존 브라운을 흑인이?”
“......”
조금 이해는 안 가지만 어찌 됐든 케이트 와네에겐 명백한 증거가 있었다.
“이 얼굴 보면 모르냐고요!”
오른쪽 뺨이 잔뜩 부풀어 오른 케이트는 가만히 있어도 한쪽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다.
측은함과 어딘가 우스꽝스러운 모습이랄까.
콜린은 실소가 터지려는 걸 가까스로 참으며 말했다.
“...... 음, 좀 너무하긴 했네.”
“좀이라뇨!”
“많이 심했네.”
“그쵸!?”
‘진짜 막스는 인간도 아니구나.’
방해된다고 여자를 발로 후려 차다니.
막스의 잔인무도함에 치를 떨며, 콜린은 한동안 케이트에게 시달려야 했다.
*
[충격! 피츠버그에서 존 브라운의 암살 시도!]
[경악한 공화당 의원들 ‘노예주들의 사주를 받아 일어난 끔찍한 범죄 행위’라며 성토]
[민주당의 후보 스티븐 더글라스, ‘끔찍한 암살 시도, 민주주의 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일’라며 우려 표명.]
워싱턴 정계를 강타한 기사들에 이어,
[범행 현장 인근에서 다섯 구의 시체 발견. 경찰에서 신원 파악 중.]
[총소리가 나자마자 아이를 감싼 존 브라운. 부디 앞길에 하나님의 은총이 따르길!]
현장에서 사살된 범인들의 정체와 존 브라운의 건강 상태는 연일 뉴스거리였고.
아이를 감싸고 총에 맞은 존 브라운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이런 가운데 의외의 시선으로 기사를 낸 신문사가 있었으니 <프리덤 에코>였다.
[존 브라운의 암살 당시, 측근인 데인저필드 뉴비는 왜 현장에서 도망을 친 걸까?]
비난 같지만, 실상은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안타까운 기사랄까.
<프리덤 에코>는 데인저필드 뉴비의 비극적 삶을 조명하며 노예인 부인과 아이들과 함께 살 수 없는 사실을 부각했다.
처음엔 암살과는 동떨어진 이야기라 대중들은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경찰의 조사 결과 범인들이 버지니아주의 노예 사냥꾼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며 폭발적인 관심을 끌게 된다.
원 역사에선 하퍼스 페리를 습격하다 끔찍한 죽임을 당할 뉴비가, 지금은 노예제 폐지론자들의 분노와 슬픔을 이끈 존재로 급부상하게 된 것이다.
막스의 의도대로 언론은 존 브라운의 암살 배후를 노예주로 몰아가고. 자연스레 그들의 지지를 받는 민주당도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겁니까? 유세 현장에서 암살 시도라뇨!”
“설마 이걸 우리 쪽에서 했겠습니까. 남부 민주당도 그렇게 멍청하지 않을 거구요. 아무래도 놈들이 자작극을 벌인 게 분명합니다! 존 브라운이 치명상을 입지 않은 것도 바로 그 증거고요. 총 두 방을 맞고도 뼈 하나 다치지 않았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그럼 자작극으로 여론을 돌려보세요! 한 달도 안 남았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입니까!”
결과를 장담하지 못하는 선거에 이런 대형 악재가 터졌으니. 민주당 대선 후보 스티븐 더글라스도 당황스럽긴 마찬가지였다.
민주당의 불안과 초조함은 워싱턴 정계는 물론 대통령 제임스 뷰캐넌까지 영향을 미쳤다.
백악관은 대통령을 주축으로 핵심 인사들은 연일 비상 회의를 열어야 했다.
이날도 책임을 두고 민주당 의원들의 갑론을박이 이루어졌다. 지켜보던 대통령 제임스 뷰캐넌이 냉소했다.
“어디서부터 꼬였는지는 민주당 후보 스티븐 더글라스에게 물어봐야죠. 지금 사태가 왜 벌어졌는지, 본인이 가장 잘 알 텐데.”
근본적인 노예 해방 문제가 불거진 건, 캔자스-네브래스카 법 시행부터다.
이를 입법으로 선정한 게 스티븐 더글라스였고, 그는 캔자스의 노예주와 자유주 선택을 주민 투표에 맡기며 국민 주권 주의라는 보기 좋은 말로 포장했다.
그리고 더글라스는 자신이 날린 부메랑에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민주당의 분열.
북부의 민주당은 노예제에 미온적이고, 남부의 민주당은 적극적으로 노예제를 옹호했다.
그 결과 당이 두 개로 쪼개져, 남부 민주당 역시 존 브레킨리지를 대통령 후보로 내세웠다. 그리고 지지율로 따지면 북부 민주당의 더글라스 보다 남부 민주당의 존 브레킨리지가 더 많은 지지를 얻고 있었다.
원 역사에서 링컨이 당선된 것도 이런 민주당의 분열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제임스 뷰캐넌은 남부 민주당의 구심점이었고, 자연 표를 갉아먹는 더글라스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하지만 근본적인 건 전 대통령 프랭클린 피어스부터 노예 문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원인이 크다고 할 수 있었다.
제임스 뷰캐넌은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캔자스 유혈사태가 벌어지고 정부와 민주당이 이를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으니 누구를 탓하겠습니까.”
“......”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선거판을 움직이는 핵심 인물들을 알아내는 겁니다.”
존 브라운의 배후.
캔자스 유혈사태가 벌어질 당시 존 브라운은 크게 주목받지 못한 인물이었다.
수많은 노예제 폐지론자 중 하나일 뿐, 정작 그의 이름이 정치인들 입에 오르내린 건 하퍼스 페리 습격 때였다.
때문에, 누구도 존 브라운이 대통령 후보까지 나올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이번 암살 시도가 자작극이라는 가정하에. 하퍼스 페리 습격 이전부터 지금까지. 존 브라운의 행적을 낱낱이 추적해요. 그를 후원하는 자들이 누구고 정치적 기반이 어디인지를 따져야 합니다.”
제임스 뷰캐넌의 지시로 시작된 존 브라운의 배후 추적. 이 과정에서 원 역사에선 시크릿 식스(Secret Six)라 불리며 존 브라운을 물밑에서 돕던 자들이 하나둘 밝혀지게 된다.
그들은 하퍼스 페리 습격을 위해 존 브라운에게 자금을 댄 자들로, 훗날에야 제대로 밝혀지는 존재들이었다.
비단 이들뿐 아니라, 캔자스 유혈사태의 중심인 로렌스까지 조사는 광범위하게 이루어졌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는 뒤늦은 감이 있었다.
백악관의 정보가 로렌스 의원들이 주축이 된 ‘미네랄 익스플로러’까지 접근했을 때.
대선 투표가 코앞으로 다가왔으니 말이다.
다급해진 남부 민주당 존 메킨리지 후보의 호소는 주로 남부 노예주를 중심으로 퍼져나갔다.
- 존 브라운이 당선되는 순간 남부의 노예주는 모든 재산을 잃게 될 겁니다! 노예들은 결국 북부 공장의 노동자로 전락하게 될 것이요, 존 브라운과 공화당은 값싼 노동력을 얻으려 노예 해방을 이용한 것에 불과하다는 걸 깨닫게 될 것입니다!
같은 민주당이지만 스티븐 더글라스는 인민주권 주의를 고집한다. 즉, 모든 사항을 해당 국민들의 투표에 붙인다는 것이다.
반면 남부 민주당은 절대 노예제도 폐지를 인정할 수 없었다. 이는 노예주의 사활이 걸린 문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