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그를 조지 워싱턴, 링컨과 더불어 3대 영웅으로 추앙받게 한 남북전쟁이 코앞으로 다가왔거늘, 율리시스는 여전히 사업 실패의 절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전 재산을 건 포니 익스프레스.
8개월 만에 영업을 시작했건만, 남부 주의 탈퇴로 지금은 폐업 수순을 밟고 있었다.
한마디로 쫄딱 망한 것이다.
“율리시스! 잠시 쉬었다 해요.”
막스를 돌아본 눈빛은 급격히 생기를 잃어갔다.
*
“앞으로 절대 투자나 사업은 안 할 생각이네.”
과연 그럴까 싶지만.
“잘 생각하셨습니다. 그럼 앞으로 어쩔 생각입니까?”
“어쩌긴 뭘 어째. 자네에게 빚진 돈 갚으려면 개처럼 일해야지. ”
“전쟁 터지면 공장 문 닫을지도 모를 텐데요.”
율리시스의 눈빛이 급격히 흔들렸다.
이때 막스가 넌지시 운을 뗐다.
“SFBC 대원도 군대에 입대할 생각인데. 어떻습니까? 함께 가시는 게.”
“빚은?”
“우리 사이에 그 정도야. 군대 월급 모아서 갚으십시오. 시간은 넉넉하게 드릴 테니.”
“......”
율리시스는 생각해보겠다며 답변을 미뤘다.
물론 전쟁이라는 게 아직 현실로 다가오지 않은 이유가 컸다.
그런데 얼마 뒤, 4월 12일.
남부 연합은 사우스캐롤라이나에 있는 항구 도시의 섬터 요새를 둘러싸는 사건이 벌어진다.
- 남부 연합의 영토에 있으면 요새 또한 우리의 것이 되어야 한다.
- 미친 소리! 내가 충성하는 것은 연방이지, 남부의 반란군이 아니다!
남부 대통령 제퍼슨 데이비슨은 섬터 요새를 얻으려 했으나, 사령관 로버트 앤더슨은 끝까지 항복을 거부했다.
그 결과. 지원군이 올 것을 염려한 제퍼슨은 공격을 지시하고 이틀에 걸쳐 요새를 포격하며 항복을 강요했다.
존 브라운 대통령은 즉각 남부 연합의 공격을 반란으로 선포하고, 요새와 남부 주들의 재산을 탈환하기 위해 연방의 주에 7만 5천 명의 민병대를 요청했다.
그리고 이에 반발한 4개의 노예주가 추가로 연방을 탈퇴, 남부 연합에 들게 된다.
바야흐로 남북전쟁의 시작이었다.
*
두드드드드.
풀조차 없는 황무지에 수십 명의 무장한 자들이 말을 달린다.
그들이 향하는 곳은 콜로라도.
“제대로 가는 거 맞지, 월러스?”
“귀찮게 자꾸 물어볼래? 그리고 가슴에 배지나 떼라. 그게 뭐라고 아직도 달고 있냐.”
“내 맘이야, 자식아.”
포드 대위가 입술을 씰룩거리고, 월러스는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절레 저었다.
이들은 텍사스가 연방을 탈퇴하면서 공중으로 붕 떠 버린 텍사스 레인저스들.
월러스는 남부 연합에 동조한 대원들을 뺀 나머지를 이끌고 콜로라도로 향하는 중이었다.
‘지금 우리가 갈 곳은 SFBC뿐이다.’
하지만 그곳 보스가 자신들을 받아줄지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월러스는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말 허리를 박차 속도를 높였다.
< 남북전쟁의 시작 > 끝
< 북군과 남군으로 모여드는 의용군 >
“...... 자리에 없다고?”
콜로라도 요새에 도착한 월러스는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기대했던 SFBC의 보스대신 그를 맞이한 건 라이언 홀드라는 사내였다.
“지금쯤 캔자스에 있을 거야.”
“거, 거긴 왜 갔는데?”
“내가 그걸 왜 말해줘야 하는데?”
“......”
월러스가 얼굴을 일그러트리자 라이언이 피식거렸다.
“너무 상심하진 마. 보스가 지시한 게 있으니까.”
“지시?”
“이곳에서 빡세게 석 달 구르고 캔자스로 보내라고 했거든.”
“....... 우리가 올 줄 알았다고?”
라이언이 고개를 끄덕였다.
“보스는 모르는 게 없거든.”
“무슨 사이비 종교냐?”
“믿음이 부족하구먼. 아무튼, 할 거야 말 거야?”
“...... 여기 있는 동안엔 SFBC 숙소에서 머무는 건가?”
“당연하지.”
이미 견학을 온 월러스는 이곳 시설이 얼마나 좋은지 알고 있었다.
당장 돈을 떠나, 갈 곳 없는 레인저스들에겐 과분하리만치 좋은 환경이다.
‘SFBC에 들어갈 수만 있다면, 그까짓 훈련이 대수냐.’
월러스 입장에선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근데 훈련은 누가 해?”
“내가.”
라이언을 본 월러스가 피식 웃었다.
‘만만한 새끼.’
“뭐, 그럼 못할 것도 없지.”
월러스는 이 결정이 실수였다는 걸 다음 날 바로 깨닫게 되었다. SFBC의 훈련은 그야말로 지옥과도 같았으니까.
하지만 더 큰 난관은.
‘시발, 인디언이 왜 여기 있는데!?’
레인저스가 120여 명의 인디언과 함께 훈련받는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자신들을 노려보는 인디언 중엔 텍사스에서 몇 번이나 마주쳤던 아파치 인디언도 있었다.
“퓨마 대가리. 저 새끼가 왜 여기 있는 거지?”
퓨마 대가리를 모자처럼 뒤집어쓴 젊은 아파치 인디언.
그는 서부 아파치족 중 부동코헤 부족의 고야슬레란 자로 나바호족과 섞여 SFBC 훈련에 참가한 젊은 인디언이었다.
막스가 캔자스로 떠나기 전 키트 카슨은 이런 제안을 했다.
- 아파치 부족도 훈련에 동참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네.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자네 생각은 어떤가?
- 아파치요?
- 나바호족도 아파치의 한 갈래네. 같은 언어를 쓰고 문화도 같으니까. 자네가 인디언과의 공존에 진심이라면, 결국 아파치족과 손을 잡아야 할 걸세.
- 저도 당연히 그럴 생각이었습니다만. 콜로라도가 그들의 영역이 아니라 잠시 미뤄둔 것뿐이었거든요.
막스는 흔쾌히 수락했다.
한편으로 키트 카슨은 인디언의 군사 훈련을 부담스럽게 여기고 있었다.
결국 그들의 적은 백인이고, 미연방이 될 테니 말이다.
하지만 막스의 생각은 달랐다.
- 훈련이 꼭 싸우는 것만 가르치는 건 아닙니다. 중요한 건 바로 정신이죠. 그들이 납득하고 이해할 수 있는 정의가 심어진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렇게 훈련에는 아파치도 동참하게 되었다.
하지만 막스는 섬터 요새의 폭격으로 그들을 보지 못한 채, SFBC 대원들을 이끌고 캔자스로 향했다.
현재 콜로라도엔 조 짐 주니어와 라이언 홀드, 그리고 30명의 대원이 머물며 인디언들과 텍사스 레인저스를 가르치고 있다.
연병장 단상에 선 라이언 홀드는 불만에 찬 레인저스를 향해 소리쳤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거나, 불만 있으면 말로 하지 말고 몸으로 해라. 누구든 덤벼.”
“덤비라면 못 덤빌 줄 알아?”
호기 넘치는 레인저스 몇 명이 도전했다.
그리고 조 짐 주니어와 라이언 홀드에게 무참히 박살이 난 뒤에야 SFBC 대원의 벽을 실감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분노는 애꿎은 인디언에게로 향했다.
“너 이 새끼. 지금 동정하는 거냐?”
레인저스 대원들은 자신들을 불쌍한 눈으로 바라보는 퓨마 대가리를 향해 으르렁거렸다.
하지만 이는 오해에서 비롯된 것으로.
며칠 전, 퓨마 대가리 고야슬레 역시 도전했다가 박살 난 슬픈 기억 때문이었다.
“앞으로 훈련에 불만을 제기하는 놈들은 가만두지 않는다! 참고로 훈련이 끝날 때까지 너희들의 명칭은 병아리다! 알았나!”
라이언 홀드가 말하면, 인디언 언어로 조 짐 주니어가 번역해 소리쳤다.
“대답은 크고 짧게, 옛썰로 통일한다. 알았나?”
“..... 옛썰.”
“목소리 봐라. 맨 앞 월러스 기준, 병아리 오열 횡대 집합!”
훈련 스케쥴은 대부분 막스가 만든 것이다.
강인한 육체와 정신력 고양은 두말할 것도 없고, 레인저스와 인디언을 뒤섞어 분대를 조직한 것도 막스의 끔찍한 아이디어였다.
*
캔자스주의 주도 토피카.
회의실엔 핵심 인물들이 모였는데, 과거와 달리 직책의 변동이 심했다.
캔자스주의 초대 주지사 찰스 로빈슨.
토피카 초대 시장 홀리데이.
상원 의원 제임스 헨리 레인.
마찬가지로 올해 상원 의원으로 선출되고 홀리데이와 함께 철도 사업을 추진 중인 사무엘 포메로이.
그리고 광산 대주주이자 SFBC의 리더 막스.
어느덧 캔자스 권력의 핵심은 바로 로렌스 초기 정착민들이 꿰차고 있었다.
‘지금까지 헛지랄한 건 아니구만.’
막스가 로렌스를 택한 건 바로 이날을 위함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지고 보면 존 브라운을 만난 것도 로렌스였으니까.
자잘한 안건이 끝나고, 중요한 전쟁 이야기가 나오자 장내의 시선이 막스에게 쏠렸다.
이미 숱한 고난을 함께 겪어서인지 눈빛들이 따사롭다.
막스는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말을 꺼냈다.
“섬터 요새가 공격당했다고는 하나, 사상자도 없었고 양측이 충돌한 전면전도 아니었습니다. 본격적인 전쟁은 아마 의용군이 확보된 상태에서 벌어질 가능성이 크겠죠.”
현재 미연방의 정규군은 1만 6천 명.
이중 남부에 흡수된 숫자를 빼면 1만 명을 조금 웃도는 수준이었다.
“존 브라운 대통령이 7만 5천 명의 의용군을 모집하고, 남부도 이에 대응해서 병력을 증원하고 있으니. 전 그 숫자가 비등해질 때 충돌이 일어날 거라 보고 있습니다.”
“그럼 시간이 조금은 걸린단 소리겠군.”
“현재 추세로 보면 의용군에 가담하는 병력이 빠르게 늘고 있습니다. 길어 봐야 두세 달이 아닐까 합니다.”
자유주와 노예주에서 자원입대한 의용군들.
그중 캔자스는 다른 주보다 열성적으로 의용군에 자원하고 있다.
인구는 적지만 ‘제이호커스’와 노예제 폐지론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3천 명이 넘는 인원이 의용군을 자원했고.
그중엔 캔자스 출신은 아니지만, 이전 주지사 존 기어리와 율리시스 그랜트도 있었다.
율리시스의 경우 섬터 공격 발발 직후, 막스를 찾아와 이런 말을 했었다.
- 군에 입대할 생각이네.
- 투자금이 4배로 불어난 거, 모르세요?
- 알지. 그래서 대체 자네가 그걸 숨긴 의도가 뭘까 한참 고민했었네.
막스는 끝까지 감추려 했었다.
하지만 포니 익스프레스가 사업을 접으려 할 때 갑자기 웰스 파고가 끼어들어 지분을 인수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때 율리시스는 투자금을 조금이나마 회수하기 위해 포니 익스프레스 창업주 러셀을 찾아갔고, 결국 모든 걸 알게 되었다.
- 돈은 자네가 보관하고 있게. 전쟁 중에 내가 죽으면 가족들에게 전해주고.
- 흠. 돈하고 상관없이 입대하겠단 말입니까?
- 나를 속물로 봤구만. 이번 전쟁이 노예제도를 없앨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보고 있네. 무의미한 전쟁은 아니라는 얘기지.
멕시코 전쟁과 인디언 전쟁이 율리시스에게 회의감을 안겨줬다면 남북전쟁은 신념과 관계된 전쟁이다.
별다른 꿈과 희망이 없던 율리시스에겐 가장 뚜렷한 목적을 가져다준 셈이었다.
- 자네에게 한 가지 더 부탁이 있네.
- 가족 말이군요.
- 내 속을 잘도 아는군. 미주리주는 아무래도 위험해 보이거든.
-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아예 토피카로 이주하는 건 어떻습니까. 준비해놓죠.
- 왜 이렇게 나를 신경 써주는 건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네.
- 그래서 사업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 ....... 앞으로 안 하다니까 그러네!?
율리시스는 모든 걸 정리하고 SFBC 클루이와 네 명의 대원을 이끌고 의용군에 자원했다.
존 기어리도 마찬가지. SFBC 대원 다섯과 연방군에 입대했다.
회의실에서 막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전쟁이 본격화되기 전에 캔자스 자체 방어 병력도 신경 써야 합니다. 그래서 전 로렌스의 기지를 SFBC 주둔지로 쓸 생각입니다.”
“오오, 막스가 거기에 있는다면 무슨 걱정이 있겠나.”
“잘 생각했네. 그렇지 않아도 죄다 의용군으로 지원해서 걱정이었거든.”
로렌스는 이들의 가족과 집이 있는 곳이다.
다들 막스가 지켜준다는 결정에 입꼬리가 올라갔다. 하지만 이어지는 말에 표정들이 시무룩해졌다.
“저와 SFBC 대원 전체가 상주할 건 아닙니다. 대신 그곳을 훈련소로 사용할까 하는데, 부지가 더 필요합니다.”
“훈련소?”
제임스 헨리 레인이 물었다.
원 역사대로라면 그는 암살로부터 대통령을 보호하기 위해 120명의 민병대를 조직해서 워싱턴으로 가야 된다.
하지만 현재 그 역할을 SFBC와 핑커톤이 하고 있기에 레인은 상원으로서 임무에 충실하고 있었다.
“레인 의원님. 안 그래도 한 가지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말해보게.”
“존 브라운 대통령은 취임식에서 노예제 폐지를 천명했습니다. 아직 법적 효력은 없으나, 남부의 흑인 노예들은 꽤 동요하고 있을 겁니다.”
자신들의 운명을 결판지을 전쟁.
노예들이 누구 편에 설지는 빤한 사실이다.
막스의 의도를 눈치챈 레인이 눈을 빛냈다.
“흑인들로 군대를 만들겠다는 말인가?”
“도망 노예들과 흑인들을 로렌스로 집결시키면 연대 규모 정도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연대면 1천 명으로 구성된 병력이다.
문제는 흑인 노예들을 훈련 시키고 무기를 주는 것에 대한 거부감.
군대와 의회의 반발이 있을 수 있었다.
하지만 막스는 자신했다.
‘레인은 내 제안을 거절할 수 없다.’
아니나 다를까, 막스를 빤히 쳐다보던 레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원 역사에서 흑인 병사(유색연대)를 대통령에게 제안한 게 바로 레인이다. 그 시기가 언제인지 몰랐으나, 레인의 반응으로 봐선 이때부터 유색연대를 계획하고 있었음이 분명했다.
“자네 말에 적극 동의 하네. 워싱턴에 도착하는 데로 제안을 하겠네.”
*
로렌스의 막스 기지.
콜로라도 금광 이후엔 의류 공장으로 쓰인 곳이지만, 지금은 담벼락을 높이 세워 요새화하고 있었다.
“땅이 더 필요하면 말하게.”
“숙소와 연병장, 훈련장을 만드려면, 추가로 남쪽에 30에이커(약 3만 7천 평)가 더 있었으면 좋겠는데요.”
“알겠네. 자네도 들었지?”
로렌스 시장 플러의 말에 토지 측량 담당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시 공공부지니까, 민병대 훈련장소로 용도를 변경하면 되겠네요. 이왕이면 더 넉넉하게 잡아 놓겠습니다.”
“고마워요, 폴트.”
“고맙긴 뭘. 땅 필요하면 언제든 말해.”
시장부터 토지 담당관까지. 로렌스 보안관이던 시절부터 알아 온 사람들이다.
적극적인 협조는 말할 것도 없었다.
오히려 전쟁 시국에 막스가 로렌스에 머문다는 게 그들에겐 위안이었으니까.
막스가 SFBC의 주둔지를 요새화할 때 워싱턴에서 파발이 도착했다.
발신자는 짧게 존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그게 누군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봉투를 뜯기도 전, 피치가 다가왔다.
“대통령한테 편지도 받고, 출세했네.”
“다음엔 피치한테도 써달라고 할까?”
“아니. 난 그것보다.”
피치는 고개를 숙여 귀에 대고 속삭였다.
“너한테 받고 싶어. 러.브.레.터.”
“......”
찌이익.
봉투를 찢자 편지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다.
[하루하루 혼란한 일이 거듭되고 있네.
자네가 닦아준 길 위에서 뜻을 펼치고자 했지만, 고민과 고난의 연속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