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게 걱정돼? 다들 각오하고 하는 거야.
- 알아. 막상 그때가 되면 오히려 담담할지도 모르지.
- 만약 내가 죽으면?
- ...... 절대 그럴 일은 없을 거야.
- 위험한 일은 안 시키려고?
- 아니. 위험한 일은 같이하려고.
그날의 대화를 마음에 고이 간직한 피치는 세인트루이스에 도착하자마자 이전의 복장으로 돌아갔다.
여자의 몸으로 군장을 짊어지고 검은 천으로 둘러싼 Max-A4 저격소총을 백 사이드에 끼웠다. 그 와중에도 브로치는 여전히 걸쳤다.
“미시시피강을 따라 북쪽으로 이동한다.”
미주리주와 일리노이주의 국경은 미시시피강.
막스는 강 건너로 넘어가 일리노이주 쪽에서 북상을 시작했다.
일리노이주 미시시피강 동쪽의 록포트 선착장.
이틀의 행군 끝에 도착하자 한 남자가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막스가 다가가 손을 내밀자 남자는 흠칫하며 한발 물러선다.
“막스 조입니다. 이건 위장입니다만.”
“아, 난 또. 갑자기 흑인이 악수를 청해서 깜짝 놀랐네요.”
남자는 웃으며 막스와 손을 맞잡았다.
“핑커톤 일리노이주 서부 담당자 하인리히 코르데입니다. 만나서 영광입니다, 막스. 그리고 SFBC 대원 여러분.”
SFBC와 핑커톤의 공조는 남북전쟁에서 더욱 빛을 발할 것이다.
공조의 핵심은 시시각각 변하는 정보를 핑커톤이 제공하고 SFBC는 이를 토대로 행동하는 것. 독일계 이민자 코르데 요원 역시 이 부근에서 일어나는 정보를 막스에게 전달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며칠 전, 팔미라산 부근에서 일리노이주 군이 반란군에 포위되었는데 지휘관이 이를 알고 후퇴했습니다.”
“일리노이주 제21보병연대는요?”
코르데는 질문을 예상한 듯 막힘없이 답했다.
“율리시스 대령이 이끄는 부대는 원래 포위된 군을 구출하는 것이었는데, 워낙 상황이 계속 변해서 노선이 바뀌고 있습니다.”
“예상 위치는요?”
“미주리주 팔미라에서 서쪽으로 이동 중입니다.”
‘역사와 똑같구만.’
막스의 예상대로 율리시스의 첫 전투는 미주리주였다.
코르데가 지도를 가리키며 말했다.
“지금쯤 위치는 이쯤인데, 반란군들이 어떻게 움직일지는 예측이 안 되네요.”
미간을 찌푸리는 코르데에게 막스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놈들이 노리는 건 한니발과 세인트 조셉 철도 노선 아닙니까? 미주리주를 관통하는 열차를 손에 넣으려는 거죠.”
“그러면···?”
“노선을 따라 보이는 대로 박살 내면 됩니다.”
‘뭐지, 이 단순한 해결책은!?’
틀린 말은 아니라 코르데는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그럼 바로 강을 건너도록 합시다.”
“...... 저도요?!”
“미주리주 핑커톤 요원과 우리 사이를 누가 이어주겠습니까? 앨런 국장이 따로 말 안 하던가요?”
“글쎄요···.”
정보수집 외에 앨런에게 받은 지시는 단순하고 애매했다.
- 적극적으로 협조해. 적극적으로.
‘같이 가야 적극적인 거겠지.’
“...... 30분만 준비할 시간을 주십시오.”
*
막스와 대원들은 강을 건너 미주리주로 넘어갔다.
일리노이에서 미주리주 서쪽 세인트로 이어진 철로를 따라 율리시스 부대를 따라잡기 위해 속도를 높였다.
코르데는 온갖 무기로 무장하고 무거운 군장까지 짊어진 SFBC 대원을 질린 눈으로 쳐다봤다.
‘무슨 괴물들만 모였나. 당최 쉬질 않네.’
정작 자신은 다리에 힘이 풀려 휘청거릴 지경인데.
‘그렇다고 티를 낼 수도 없고.’
힘들어할 때마다 자신을 보며 묘한 웃음을 짓는 소년. 그리고.
‘저 여잔 대체 뭔데.’
유일한 여성이자 아름답기까지 한 대원을 보면 절대 약한 모습을 보일 수 없었다.
두 시간 후.
내리 걷던 끝에 마침내 행군이 멈추었다. 그렇다고 휴식 때문은 아니고.
저 멀리 산등성 너머에서 들려오는, 바람을 타고 전해지는 소리가 일행의 발을 멈추게 했다.
펑! 펑!
포성 소리가 나는 곳을 응시한 막스는 곧이어 지시를 내렸다.
“코르데, 핑커톤 요원이 주변에 있으면 정보를 가져다줘요.”
다음은 히콕.
“정찰대와 함께 전장을 살피고 와. 이왕이면 율리시스를 만나서 공략할 부분을 알아내면 더 좋고.”
히콕이 가장 먼저 한 일은 기차역 부근에서 말을 구하는 일이었다. 그중 하나를 코르데에게 주고, 나머지는 말을 타고 전장이 벌어진 곳으로 향했다.
그동안 막스는 대원들에게 휴식을 지시했다.
“밤에 움직일지 모르니까. 이왕이면 잠을 좀 자두라고.”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진을 치고, 교대로 경계를 섰다.
히콕이 돌아온 건 반나절이 지나 해가 진 저녁이었다.
“율리시스 대령이 이걸 줬어.”
편지를 뜯은 막스는 지도와 함께 현 상황을 상세히 알 수 있었다.
막스는 적 진영까지 살피고 돌아온 정찰대와 전략을 논의하고. 그런 끝에 다섯 부대로 나누어 작전을 펼치기로 했다.
현재 율리시스의 부대로는 적들의 취약점을 알아도, 그걸 공격할 능력이 없었다.
적을 교란시키고 필요에 따라선 적진에 침투해 와해까지 시도할 수 있는 능력.
“그걸 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
“SFBC!”
“지금까지 죽도록 훈련한 성과를 보여주자고.”
“옛썰!”
“그 전에 뭐 해야 하는지 알지?”
적들을 모조리 씹어먹을 듯한 눈빛.
SFBC 혹한기 한 달째에서나 볼 수 있던 눈빛이 되살아나며 움직임이 분주해진다.
철컥, 철컥.
굳게 입을 다문 채, 칼도 갈고 장비 손질에 이은 탄약 배분이 이어지고. 세상에 오직 SFBC만이 들고 있는 보조 무기들로 무장을 마무리했다.
“가자.”
상대는 민병대와 게릴라들이 뒤섞인, 미주리주를 연방에서 탈퇴시키려는 집단.
그날 밤.
어둠을 뚫고 SFBC 대원들은 다섯 갈래로 흩어져 은밀히 이동했다.
< 율리시스의 첫 임무 > 끝
< SFBC 대원이라면 >
적진 부근으로 이동하는 중에 갑자기 추적추적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이내 땅은 질퍽해지고 움직임을 둔화시켰다.
그리고 점점 빗줄기가 굵어지며 대원들의 발소리를 집어삼켰다.
- 목적은 적에게 발각되지 않도록 위치를 잡는 것이다. 원하는 목적지에 도착하면 그 위치를 사수하고, 해가 뜨고 연방 부대와 교전이 벌어지면 그때 공격한다.
밤은 깊었지만, 적 군막의 기름 등불은 꺼지지 않았다. 혹시 모를 기습에 대비한 보초들이 막사를 오가며 경계근무를 하고 있었다.
비가 오는 탓에 날은 어둡고 망원경의 시야 또한 선명하지 않았다. 엎드려있던 막스가 돌아눕자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피치를 볼 수 있었다.
“왜 그렇게 쳐다봐?”
“비가 오니까 드디어 네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있어서.”
“훗. 잘생긴 얼굴 꼭꼭 감추려 했는···. ”
“겁나 추해. 무섭기도 하고.”
“......”
얼굴과 손에 위장크림이 흐르면서 피치의 말마따나 꼴이 말이 아니었다.
적 진영을 중심으로 대략 500m 떨어진 곳.
다섯 부대로 쪼개진 SFBC는 밤사이 적 진영을 포위한 채 날이 밝길 기다렸다.
세차게 퍼붓던 비가 그치고.
구름 사이로 솟아오르는 해가 모습을 드러냈다.
일리노이주 제21 보병부대 막사.
당초 부대는 포위된 아군을 구출하는 게 목적이었으나, 상부의 지시는 수시로 바뀌어 갔다. 그만큼 미주리주 상황이 급변했다.
아침 인원 점검이 끝난 뒤, 율리시스는 곧바로 장교들을 소집했다.
평소라면 어떻게 병사를 배치해야 할지 어떤 식으로 공격할지가 주였으나 오늘은 지시 내용이 달랐다.
“총과 대포를 쏘는 대신 적진에 이상징후가 생기면 그때 움직일 거네. 신속하게 돌격할 수 있도록 준비태세를 갖출 수 있도록.”
“적진의 이상징후라면 어떤 걸 말씀하시는 겁니까?”
“.... 지켜보면 알 거네.”
- 총성이 들리고, 적들이 우왕좌왕하면 그때 돌격하면 될 겁니다.
SFBC의 연락병이 주고 간 메모는 이것뿐이었다. 그 때문에 율리시스도 언제 어떻게 그런 일이 발생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연대장이 이런데 중대장들은 오죽할까.
“혹시 근거는 있는 겁니까?”
“근거? 지금 나를 의심하는 건가?”
“의심이라기보단, 타이밍이 안 좋아서 그렇습니다만.”
스스로 자원입대한 의용군의 군율은 정규군과는 사뭇 달랐다. 특히 장교로 임명된 자들의 경우 불만이 있으면 감추지 않았고, 할 말이 있으면 돌려 말하지 않았다.
이는 율리시스의 능력이 아직 검증되지 않았고 소문도 그리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 소문을 들었는데, 연대장이 군을 그만둔 게 알코올 중독으로 쫓겨난 거래.
- 이러다 좆되는 거 아냐? 그런 자를 뭘 믿고 따르냐고.
정규군에서 퇴짜 맞은 율리시스가 의용군 연대장이 될 때부터 이 같은 소문이 떠돌고 있었다.
“여기가 미주리주라는 걸 잊으신 건 아니죠?”
“적들은 계속해서 인원이 충원될 겁니다. 이대로 시간을 끌면 우리가 오히려 퇴각할지도 모릅니다.”
“내가 그 상황을 모른다고 생각하나? 적 후방에 아군이 있네. 그들이 신호를 보내면 병사들을 이끌고 적진에 침투하는 게 자네들의 임무야.”
율리시스의 차분한 답변에도 장교들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제가 듣기론 이 임무엔 우리 연대만 투입된 거로 아는데요. 더구나 강이 있어서 놈들의 눈을 피해 후미를 친다는 건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갑니다만.”
“그 아군은 어디 소속입니까?”
율리시스는 슬슬 짜증이 나지만 최대한 담담한 표정을 유지했다.
‘뭐, 저런 반응을 이해 못 할 것도 없지.’
미주리주에 깊숙이 들어와 적을 마주했을 때.
율리시스는 ‘일리노이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뭐든지 하겠다’라고 생각했었으니까.
이는 본인 역시 실전 지휘 경험이 없는 자신을 신뢰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율리시스는 묵묵히 입을 다문 클루이를 바라보며 입을 뗐다.
“자네들은 모르겠지만, 대통령 직속 특수부대가 있네.”
“특수부대요? 그게 뭡니까?”
“SFBC.”
클루이의 대답에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괴물 같은 체력과 총 솜씨.
그런데 군 경험이 전무한 인물.
같은 장교급이지만 그들 사이에서도 클루이는 가장 이해가 안 가는 부류 중 하나였다.
물론 시기와 질투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SFBC가 뭔데?”
“은행이야?”
‘이 새끼들은 기사도 안 보나.’
클루이는 치미는 짜증을 삼키며 말을 이었다.
“스폐샬 포스 비욘드 더 칼라! 세계최강 용병집단이라고 있습니다만.”
“이름 참. 애들이 만든 건가?”
“세계최강이라는 거 보니까, 애들이 만든 거 맞구만.”
몰몬교 기사도 벌써 2년이 지나버렸다.
그 때문에 콜로라도와 캔자스를 벗어나면 SFBC를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그건 그거고.
‘죽일까.’
클루이의 눈썹이 꿈틀거리자 율리시스가 헛기침을 내뱉으며 말했다.
“...... 아무튼, 특수부대가 적 후방에서 작전을 펼칠 테니 다들 준비할 수 있도록. 이 이상 토를 달면 명령 불복종으로 이해하겠네.”
회의가 끝나고 율리시스와 클루이만 남았다.
“이래서 내가 의용군이 아닌 군기가 잔뜩 잡힌 정규군으로 들어가고 싶었네. 하여간 쉽지 않아.”
“뭐, 곧 나아지겠죠.”
율리시스는 작게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그나저나 후방에서 적진을 교란한다더니, 왜 하필 낮인가? 야간을 노릴 줄 알았는데.”
“예전에 보스가 말하길, 밤은 아군도 적도 유리하지 않다고 했거든요. 특히 적의 수가 많을 경우, 침투 목적이 명확하지 않은 이상 밤은 피하는 게 상책이라 했습니다.”
“그렇다면 낮에는 무슨 방법이 있지?”
턱을 매만지며 고민하던 클루이가 입을 뗐다.
“보스였다면 아마도 이런 방법을 쓰지 않을까 싶은데요.”
*
적진에 나팔 소리가 울리고 병사들이 한곳으로 집결했다. 민병대와 게릴라들을 이끄는 토마스 해리스 대령은 단상에 올라 사기를 북돋웠다.
“악랄한 연방 놈들이 노리는 건 우리의 신념과 땅이다! 여기서 밀리면 그다음은 가족들이 놈들의 발밑을 기어야 할 것이다. 이대로 물러날 것인가!”
“절대 물러날 수 없습니다!”
“목숨을 바꿔서라도 지키겠습니다!”
사기를 끌어 올린 해리스 대령은 흡족한 시선으로 병사들을 훑어봤다.
그리고 이를 스코프로 보던 막스가 슬며시 방아쇠에 검지를 가져다 대었다.
‘지금이다.’
타앙!
푸슉!
총성과 동시에 해리스의 머리에 피가 튀기고 고개가 뒤로 젖혀졌다.
“!!!”
“해, 해리스 대령이 당했다!”
순식간에 찾아온 대혼란. 이에 쐐기를 박듯 총성이 연이어 울려 퍼졌다.
드르륵. 팅!
철컥.
볼트를 뒤로 젖히자 탄피가 튀어나오고, 이어서 스코프에 잡히는 대로 방아쇠를 당긴다.
타앙!
막스를 시작으로.
근처에 있던 피치와 저격수 넷의 총탄이 적들을 더욱 혼란으로 몰아넣었다.
타앙!
타앙!
소리가 날 때마다 시체가 늘어나자 지휘관들이 소리쳤다.
“후방에 저격수들이 있다!”
“엄폐물을 찾아 몸을 숨겨!”
지휘관들의 지시에 병사들이 사방으로 비산하며 낮은 지형으로 몸을 숨겼다.
“젠장, 후방 정찰대는 대체 뭐 한 거야!”
“저격수들이 우리 뒤로 숨어들었다면, 그래봐야 몇 명일 뿐일 거야!”
“그래서 어쩌자고?!”
“소리가 한 방향에서 들려오잖아. 그러니까 잡아야지. 부대는 지금 당장 나를 따라 후방으로 돌격한다!”
“옛썰!”
지휘관들이 가장 신경 쓰이는 건 율리시스가 이끄는 천 명의 연대 병력. 놈들이 쳐들어오기 전에 후방부터 잡아야 했다.
빗발치는 총알을 뚫고 백여 명의 병사들이 총성이 들리는 곳으로 돌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