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4화 (144/360)

그런데 이때 전혀 다른 방향에서 총성이 들려왔다.

타앙!

타앙!

“저, 적들이 이동했다! 10시 방향으로!”

막스는 스코프로 적들이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작전은 별것 없다.

부대는 다섯 방향으로 흩어져 자리를 잡고.

그중 여섯 명의 저격수들이 배치되어있다.

그런 다음 적들을 교란하기 위해 시계 방향으로 총을 쏘고 있었다. 

저격수들이 신나게 쏘는 동안 나머지 대원들은 손가락만 빨고 있었다. 그게 지루했는지 대원이 투덜거렸다.

“보스, 우린 언제 출격합니까?”

“왜, 심심하냐?”

“여기까지 와서 구경만 하려니까 좀 심심합니다. 애새끼들은 왜 저렇게 단순한지, 원.”

막스가 피식했다.

“단순한 게 아니라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해서 저런 거야. 이 거리에서 쏠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냐?”

“하긴. 그것도 그러네요.”

SFBC에 있으니까 ‘아, 이런 총도 있구나’ 싶지, 일반 사람들은 절대 모를 일이었다.

“전쟁의 전략과 전술은 무기에 따라 달라지는 거야. 그런데 그 무기가 뭔지 모르면 당황할 수밖에 없지.”

게다가 이 시기의 전투 지식이란 과거의 경험을 기술한 책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으니.

웨스트포인트 사관학교를 졸업한 율리시스지만 그의 전술은 낡은 병법에 머물러 있었다.

실제로 웨스트포인트에서 채택한 전술 교본은 나폴레옹과 독립전쟁 전투를 근간으로 했다.

멋지게 차려입은 장교가 병사들을 밀집된 일렬횡대로 집합시키고. 눈싸움하듯 적을 노려보며 소총의 사정거리까지 다가간다.

그런 다음 미친 듯 서로 총을 쏜다.

‘제발 나는 아니길.’

그렇게 기도빨이 먹혀 운 좋게 살아난 병사는 재장전의 틈을 주지 않기 위해 돌격한다.

이 시대의 단순 살벌한 전투 방식이었다.

전생의 막스가 주로 과일 깎는 용도로 칼을 사용했다면, 작금의 병사들은 총보다도 근접전에 유리한 칼을 무기로 사용했다.

그러나 시대는 변했다. 

부싯돌과 화약을 붓는 플린트락 방식이 저물고 퍼커션 캡으로 장전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장교들은 아직 그 차이를 깨닫지 못하고 과거의 병법에만 의존하고 있었다. 특히 전쟁 경험이 많지 않은 북군의 장교들은 그 정도가 심했다.

SFBC 저격수들의 총성이 날 때마다 적들이 죽어 나갔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팔 소리가 길게 울려 퍼졌다.

스코프에 눈을 가져다 댄 막스는 적 진영 너머로 쇄도하는 푸른색 군복의 병사들을 볼 수 있었다.

‘율리시스가 드디어 응답했군.’

탕! 탕!

적진을 침투하려면 돌격밖에 답이 없다.

율리시스의 부대는 총과 칼을 앞세워 적진에 뛰어들었다. 

결국, 사령관을 잃고 지휘체계가 무너진 적들은 진지를 버리고 퇴각했다.

아직은 악착같이 적을 추격해 죽일 만큼 증오가 쌓이진 않은 모양이다.

율리시스는 적을 쫓는 대신 진지 점령을 지시했다.

“아군의 상황을 살피고, 포로는 포박할 수 있도록.”

장교들은 두리번거리며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적을 교란하고 틈을 만들어 준 부대.

‘SF 뭐시기. 그자들은 왜 안 보이지?’

돌격할 때 보니까 이미 시체들도 꽤 있었다.

서로 자해하지 않은 이상 아군이 벌인 짓이라는 데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들이 보이지 않으니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런데 이때.

장내가 조용해지며 사람들의 시선이 한 곳을 향했다.

이백 명이 넘는, 검은색에 가까운 칙칙한 군복에 군장을 메고 나타난 대원들.

그 선두에 있는 자를 본 순간 장교들의 입이 쩍 벌어졌다.

‘동양인이 리더라고!?’

*

“첫 승리를 축하드립니다, 율리시스 대령님.”

“자네가 그러니까 상당히 어색하구만. 아무튼, 축하는 가당치도 않네. 내가 뭘 했다고. 하지만 이긴 건 나름 축하할 일이긴 하지.”

막스 덕분에 얻어진 결과지만 율리시스는 만족스러웠다. 개인의 업적보다 그는 전투의 승리 자체에 의미를 두었다.

“어차피 우리가 개입하지 않아도 승리했을 겁니다.”

“내가 며칠 동안 애먹은 걸 알지 않나.”

“아직 처음이라 조심스러웠던 거겠죠.”

원 역사에서 율리시스는 자신의 힘으로 승리를 거둔다. 그리고 이 경험을 토대로 자신감을 얻게 된다.

율리시스와 대화를 나누는 사이 주변으로 장교들이 몰려들었다.

대통령 직속 특수부대의 리더!

SFBC보다 그 직책이 장교들의 마음을 홀렸다.

이참에 눈도장이라도 찍어두면 좋지 않을까.

물론 동양인을 혐오하는 눈빛도 있었다.

율리시스는 그들을 한명 한명 막스에게 소개해주었다.

그리고 클루이 차례가 되었을 때.

“얼굴 살이 좀 빠진 것 같은데?”

“그렇습니까? 전 잘 모르겠는데요.”

장교들은 동양인과 클루이의 관계를 추측하기 위해 눈과 귀를 열었다. 특히 군인도 아닌 클루이가 장교가 된 걸 못마땅하게 여긴 장교일수록 눈이 가늘어졌다.

이때 막스가 클루이에게 다가가 어깨를 토닥였다.

“SFBC 대원이라면 먹는 거엔 사활을 걸어야지. 비쩍 말라가는 거 보니까 입에 막 넣어주고 싶네. 잘 챙겨 먹어.”

“...... 알겠습니다.”

‘클루이가 SFBC?!’

결국 특수부대 일원이라는 소리가 아닌가.

장교들이 멍한 얼굴을 할 때, 클루이와 함께 자원입대한 동료들도 우르르 다가왔다.

“보스!”

대원들을 본 막스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그들을 반겼다.

*

막사 안.

율리시스는 막스에게 어떤 전략을 썼는지 물었다.

“흠. SFBC의 저격수와 개량된 무기가 그런 위력을 발휘했구만.”

“항상 통하는 건 아니죠. 병사의 숫자가 많아지면 그땐 먹히지 않을 겁니다. 더구나 같은 수법을 쓰면 저쪽도 대비책을 만들지 않겠습니까.”

무식하지만 때론 일렬횡대로 돌진하는 전법이 옳을 수도 있다. 

율리시스는 명장으로 유명하지만, 많이 죽이고 죽는 거로도 유명하다.

좌우명만 봐도 그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는데.

[가능하다면 언제나 공격하라. 그리고 계속 공격하라.]

저돌적으로 밀어붙이고 적이 후퇴할 때까지 전진하는게 그의 기본 전술이었다.

율리시스와 막스는 다음 임무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 

“아직 명령이 떨어지진 않았네. 뭐, 내 예상엔 오늘처럼 미주리주의 반군을 몰아내는 작전을 계속하지 않을까 싶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그럼 자넨 어떻게 움직일 생각인가?”

“앞으로 나가면서 가지를 치도록 하겠습니다. 듣기론 미주리주 플로리다 마을에 반군이 집결한다고 하더군요.”

율리시스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플로리다에서 보세나.”

대화를 끝낸 막스는 곧바로 SFBC 대원을 이끌고 율리시스 부대와 헤어졌다.

미주리주에서 첫 승리를 거두기 전.

버지니아주의 북서부가 웨스트버지니아주로 분리되었다. 존 브라운은 즉시 연방의 주로 공식 인정하였다.

그리고 율리시스가 첫 승리를 거둔 때.

워싱턴 DC에 비상이 걸렸다.

쾅!

“우리 연방군이 패했다니 이게 무슨 소립니까!”

“맥도웰 장군이 지금 남군에 쫓겨 퇴각하고 있습니다.”

버지니아주 매너서스 지역에서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첫 대규모 전투가 벌어졌다.

북군 3만 2천, 남군 2만 8천. 

일명 불런(Bull Run) 전투라 불린 첫 군단급 전쟁에서 북군이 남군에 대패한 것이다.

존 브라운과 링컨, 워싱턴 DC에 커다란 파장이 일었다.

< SFBC 대원이라면 > 끝

< 피치 >

제1차 불런 전투가 벌어지기 한 달 전.

연방군의 총 사령관인 윈필드 스콧은 한 가지 작전을 제안한다.

- 병력 8만 명을 동원해 서부의 미시시피강을 점령해야 합니다. 더불어 해안가 항구 도시인 뉴올리온스를 손에 넣고, 미 해군은 동부와 걸프 해안을 따라 남부의 항구를 봉쇄해야 합니다.

윈필드 스콧은 육로와 해상을 차단하여 남부를 고립시키는 일명 ‘아나콘다 작전’을 제안했다. 하지만 여론은 그를 조롱했고, 존 브라운 역시 이 제안을 거절했다.

워싱턴 DC와 남부 연합의 수도인 리치먼드가 고작해야 100마일(154km). 사람들은 남부 연합을 쉽게 이길 수 있을 거라 여겼다. 이에 실망한 윈필드 스콧은.

- ..... 아무래도 저 대신 병사를 직접 이끌 수 있는 야전 사령관을 선출해야 할 것 같습니다.

자신의 제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은데다 75세라는 적지 않은 나이인지라 윈필드 스콧은 다른 지휘관을 내세울 것을 요청했다.

이에 재무장관 살몬 체이스는 야전 경험이 없는 어빈 맥도웰 준장을 추천한다.

하루빨리 남부를 공격해야 한다는 여론.

워싱턴 정계의 압력이 참모와 보급 장교 경력뿐인 자를 야전 지휘관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맥도웰 장군은 북미 대륙 최대 규모인 3만여 명이 병력을 다섯 사단으로 나누고 불런 지역으로 진격했다. 이때 워싱턴 거주자들은 전쟁을 구경하기 위해 나들이 가듯 행렬에 끼어 전쟁터로 향했다. 

남부 연합을 그만큼 우습게 여긴 것이다.

하지만 막상 도착한 곳엔 남부 연합의 대규모 병력이 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는 남부에서 심어둔 워싱턴의 스파이가 정보를 흘렸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1861년 7월 21일.

양측 병력이 충돌했지만, 맥도웰은 남부의 장군 토마스 잭슨의 방어선을 뚫지 못했다.

심지어 밀려오는 남군에 쫓겨 맥도웰은 포토맥 강을 넘어 퇴각까지 하는 졸전이 펼친다.

역사에 첫 패전 지휘관으로 기록된 맥도웰.

그와 달리 토마스 잭슨 장군은 ‘스톤월 잭슨’이라 불리며 남부의 영웅으로 추앙받게 된다.

원 역사와 똑같았다.

워싱턴 DC.

불런 전투의 패전 소식을 들은 존 브라운은 심각한 얼굴로 입을 뗐다.

“이번 전쟁은 뼈아픈 실책이오. 남군의 사기만 잔뜩 올려줬으니, 앞으로의 전쟁은 더 치열해질 수밖에요.”

관료들은 착잡한 표정으로 입을 닫고 있었다. 

맥도웰 장군을 추천한 재무장관 살몬 체이스는 더더욱 할 말이 없었다.

“남부 연합의 탈퇴도 막지 못하고 전쟁까지 패했으니, 국민들은 꽤 충격을 받았을 겁니다. 연방에 실망하고 욕을 하겠죠. 어쩐지 저는 내일 신문이 기대되는군요.”

존 브라운의 신랄한 비판은 스스로를 향한 것이기도 하다. 모든 책임은 대통령 자신에게 있고, 사태를 안일하게 여긴 것도 사실이었으니까.

회의장에 침묵이 이어졌다.

이를 깬 건 부통령 링컨.

“여론을 잠재우려면 결국 승리로 답하는 수밖에 더 있겠습니까. 전쟁이 얼마나 길어지고 잔인해질지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서, 가장 시급한 건 병력입니다.” 

“7만 5천 명의 의용군으론 부족한 게 사실이죠.”

이번 전쟁의 여파로 전선이 확대될 거라는 건 의심할 여지가 없다. 광범위한 범위에서 일어날 전투를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병력을 증원해야 했다.

존 브라운과 링컨은 회의 끝에 3년간 50만 명이 추가로 군에 입대하는 것으로 확정했다.

회의가 끝나고 존 브라운과 링컨은 별도의 자리를 마련했다. 여기에 콜린도 참석했다.

“막스는 미주리주에서 율리시스 대령과 움직이는 것 같더군. 뭐, 둘의 관계를 생각하면 그러려니 싶지만. 어떤가, 이리로 불러오는 건?”

충격적인 첫 패배 소식을 듣는 순간 존 브라운의 머릿속엔 자연스레 막스가 떠올랐다.

그런데 콜린이 고개를 저었다.

“아마 오지 않을 겁니다.”

“동양인이라서?”

서류를 훑어보던 링컨이 콜린을 힐끔 쳐딘보며 물었다.

“뭐, 그렇다고 볼 수 있죠. 동양인이 백악관에 드나들면 두 분에게 불리할 테니까요. 노예제 문제도 아직 풀리지 않은데다, 또 다른 인종 문제까지 불거지는 건 원치 않을 겁니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말하지 않았다.

막스가 콜린에게 편지로서 전하길.

[전쟁은 당분간 관심 꺼요.

초반에는 북부가 전투에서 고전할 테니까.

남부를 쉽게 보는 데다, 지휘관들을 인맥과 혈연으로 임명하는데 전쟁이 되겠어요?

그렇다고 굳이 막을 필요도, 답답해할 필요도 없습니다.

자신들의 무능과 모자람을 깨달아야 정작 중요할 때 실수를 안 할 테니까.

그리고 존 브라운과 링컨의 공화당 내 입지를 유심히 지켜봐 둬요. 둘 다 당에 끌려다니느라 힘들어할 겁니다.]

막스의 말마따나 존 브라운 대통령의 노예 해방 선언은 여전히 답보상태였다.

‘남부 문제가 해결되면 하자’, ‘그냥 이대로 주의 자율에 맡기자’ 등의 공화당 내 의견이 분분했기 때문이었다.

[링컨 부통령과 공화당은 노예제보다 연방을 유지하는 게 우선입니다. 

하지만 기회는 올 겁니다. 

이기다 지는 것보다, 지다 이기는 게 감동과 기쁨이 더 큰 법이니까요. 그땐 존 브라운에게 지금보다 더 큰 힘이 실릴 겁니다.

추가로, 워싱턴 내 남부군 스파이들이 활동할 수도 있습니다. 앨런 핑커톤에게도 말해두었지만, 콜린도 신경 써줘요.]

편지 내용을 떠올리던 콜린에게 링컨이 물었다.

“그럼 막스는 계속 서부에만 머무르겠단 말인가?”

“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적당한 시기가 되면 오지 않겠습니까.”

“적당한 시기라. 대통령과 내가 편지를 써도 안 올 것 같은가?”

“잘 아시면서.”

존 브라운과 링컨은 팔짱을 낀 채 고개를 저었다. 결국, 막스 스스로 찾아오지 않는 한 불러들일 방법은 요원했다.

*

막스와 SFBC 대원은 미주리주 남쪽으로 향했다. 중심부로 갈수록 눈에 띌 것을 염려한 막스는 부대를 다섯 중대로 쪼개 이동했다.

그리고 가는 중간중간 핑커톤 요원 코르데가 물어온 정보를 토대로 게릴라들이 모여있는 장소를 급습했다.

미주리주의 한 작은 마을.

불런 전투 소식을 들은 남군 게릴라들이 흥분하여 떠들었다.

“빌어먹을 양키 새끼들! 속이 다 후련하네.”

“이러다 우리 ‘스톤 잭슨’ 장군이 워싱턴까지 점령하는 거 아냐?”

“가능할 것 같은데. 존 브라운이 허겁지겁 달려와서 '하, 항복이오!'라고 소리칠지 누가 알겠어.”

양키는 영국군이 아메리카의 영국계 이주자들에게 한 말로, 남군이 북군을 조롱할 때 사용한다어원에 대해 여러가지 설이 있긴 하지만, 최초 영국인들이 북부 해안가에 뿌리를 내린 것에 기인한 말이아닐까 싶다.

반대로 북군은 남군을 딕시(Dixie)라 불렀는데, 프랑스어로 딕스는 10을 의미했다. 루이지애나가 한때 프랑스령이었고 이를 남부 전체로 빗대어 딕시들이라 조롱한 것이다.

보다 강력한 레드넥(RedNeck)이란 표현도 있다. 이는 하루 내내 땡볕에서 일하는 남부 촌놈들의 목이 시뻘겋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었다.

저녁 식사를 끝낸 게릴라들은 탁자에 빈 접시를 놔둔 채 담배를 피우며 잡담으로 시간을 때웠다.

그런데 이때.

쾅!

문이 부서지고, 창문으로는 총구들이 쑥 튀어나왔다.

“!”

놀란 게릴라가 입에 물려있던 담배를 툭 떨어트렸다. 이를 신호로.

탕! 탕!

총성과 함께 사방에서 불빛이 번쩍거렸다.

순식간에 게릴라들이 전멸하자 부서진 문으로 SFBC 대원 열 명이 들어왔다.

선두의 스카프를 두른 남자가 손짓하자 대원들이 집안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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